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부흥의 깃발 분류

참된 기도로 주님께 나아가라!

컨텐츠 정보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1년 07월호>

참된 기도로 주님께 나아가라!
찰스 피니 / 손주영 옮김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이는 우리가 마땅히 기도해야 할 것을 알지 못하나 성령께서 친히 말할 수 없는 신음으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기 때문이라. 마음을 살피시는 분이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시나니 이는 그분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들을 위하여 중보하시기 때문이라』(롬 8:26,27).

인간은 “하나님의 뜻”에 무지하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뜻”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성경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뜻이고, 다른 하나는 “계시되지는 않았지만” 그분의 섭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이다. 인류는 성경에 있는 약속들과 예언들에 대해서도 상당히 무지한데,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을 통해 인도하셔서 일깨워 주셔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더더욱 어두운 것이다.
내가 알고 지내던 어떤 이는 커다란 영적 어둠 속에 갇혀 있었다. 그는 기도를 드리기 위해 한적한 곳을 찾았고, 주님을 찾기 전까지는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결심했다. 이에 그는 무릎을 꿇고 기도해 보려고 했다. 그러나 생각이 어둠 속에 갇혀 있었기에 기도가 잘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무릎 사이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고는 잠시 서 있었다. 그렇다고 기도를 그만둘 수도 없었는데, 그는 밤이 찾아오기 전까지 반드시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겠노라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무릎을 꿇었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전처럼 어둡고 완고했다. 이제 거의 자포자기 상태에 빠진 그는 고뇌 속에서 이렇게 울부짖었다. “저는 성령님을 슬프시게 했고 제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완전히 끊어진 상태입니다.”

▣ 하나님을 찾는 방법 ▣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다시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 몇 마디 말씀을 아뢰었을 무렵, 마치 조금 전에 읽었던 말씀처럼 다음의 구절이 매우 생생하게 떠올랐다. 『너희가 너희의 온 마음으로 나를 찾으려 하면 너희는 나를 찾게 되고 나를 만나리라』(렘 29:13). 비록 이 약속이 구약에 들어 있고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것일지라도, 그는 이 약속을 자신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주님께서 친히 성경 말씀을 사용하셔서 단단하게 굳어 있던 그의 마음에 망치질하시자 그의 완고한 마음이 깨져 버렸다. 이제 그 젊은이는 기도할 수 있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마음이 가득 채워진 상태로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 중보기도 ▣


내가 아는 어떤 목사는 자신이 특별히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들의 명단을 오랫동안 관리해 오고 있는데, 한번은 어떤 계기를 통해 그가 누군가의 회심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하면 얼마 안 가서 구원받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가 명단에 기록된 사람들을 위해 글자 그대로 “고뇌” 속에서 기도하는 것을 보았다. 때로는 그가 다른 성도들에게 자신이 기도하는 대상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 목사의 마음과 생각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접근하기가 어려울 만큼 마음이 완고한 “버림받은 죄인들”에게 항상 고정되어 있었고 그들에 대한 강렬한 열망으로 마음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하나님을 위한 새로운 각성과 부흥이 일어났던 어떤 마을에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에 대해 폭력적으로 대응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술집을 운영했고,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말을 들을 만한 거리에 있을 때면 일부러 주님을 저주하고 맹세하는 것을 즐겼다. 시간이 지나도 그의 그런 행동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가 그토록 악질이었던 탓에 집을 팔거나 버리고 떠나는 것이 낫겠다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도 있었다. 그런 식으로 저주하고 맹세하는 사람과 가까이에서 산다는 것이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그 목사가 이 마을을 지나가다가 그런 상황에 대해 듣게 되었고, 이내 그는 그 죄인으로 인해 큰 슬픔과 고통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 “저주하는 사람”의 이름을 그의 기도 대상자 명단에 올렸다. 깨어 있을 때나 잠이 들 때나 그 목사의 머릿속에는 온통 이 죄인에 관한 문제로 가득했다. 그는 그 불경건한 죄인을 계속 생각하면서 며칠 동안 그를 위해 고뇌하며 기도했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을 무렵 그 술집 주인은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 참석하여 자신의 죄들을 자백했다. 그는 자신의 혼을 하나님 앞에 쏟아 놓았고, 여태껏 만났던 그 어떤 사람보다도 자신의 죄에 대해 크게 각성하고 회개했다. 그 술집 주인은 지금까지 하나님과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그 부흥과 모든 선한 것들에 대해 자신이 나쁘게 말하고 행동한 것들을 모두 자백하고 회개했다. 결국 이 “새로운 회심자”가 운영하던 술집은 곧바로 기도 모임이 열리는 장소로 탈바꿈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방법을 통해 각각의 그리스도인들을 인도하시어, 그분의 인도하심이 없었다면 절대로 기도하지 않았을 그런 대상들을 위해 기도하게 만드신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방법을 통해 『하나님의 뜻대로』(롬 8:27) 기도하게 되는 것이다.

▣ 성령님의 인도하심 ▣


일반적으로 성령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인도하시어 기도하게 하신다. 만일 하나님께서 어떤 그리스도인을 인도하셔서 다른 어떤 죄인을 위해 기도하게 하셨다면, 성경적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 그 죄인을 구원하려고 하신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 우리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성경에 비추어 보는 가운데 우리가 어떤 사람을 위해 기도하도록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복을 주실 준비를 끝마치셨다고 확신할 수 있는 명확한 증거가 된다. 기도하는 헌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이러한 것들을 너무나 명료하게 파악하고 있고, 심지어 아주 먼 앞일까지도 조망하고 있어서, 이를 전혀 감지하지 못하는 사람들로서는 매우 의아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그런 그리스도인들의 말들은 때때로 “예언”에 가까울 정도다.

▣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달으라 ▣


부흥이 막 시작된 뉴저지주에 사는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부흥이 또다시 일어날 것으로 생각했으니, 곧 그녀에게는 다가올 부흥을 바라볼 안목이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앞으로 있을 부흥을 준비하기 위해 집회를 마련하려고 했다. 그러나 정작 그 집회를 준비해야 할 목사와 일꾼들은 부흥이 일어날 만한 어떤 조짐도 감지할 수 없었기에 아무 일도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들의 영적인 눈이 멀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자기 혼자서라도 다가올 부흥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목수를 데려다가 자기 집에서 모임을 할 수 있도록 좌석들을 만들게 하였다. 부흥이 반드시 일어날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이다!
성령 하나님께서 크신 능력으로 임하셨을 때 그녀는 이미 깨어 있었기에 그러한 사실을 예감하고 있었지만, 잠에 취해 있던 그녀 주변의 그리스도인들은 죄에 대해 찔림을 받은 죄인들의 무리가 갑자기 몰려와 자기들을 둘러싸고 있을 때야 비로소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그저 그들은 『진정으로 주께서 이곳에 계시는데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창 28:16)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이 여인과 같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이미 깨닫고 있었는데, 이는 성령님께서 그들을 명철로 인도하고 계셨기 때문이지, 그들이 그만큼 지혜로운 자들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는 현재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이 어떻게 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보여 준다.

그렇다면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을 통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서두에 언급한 성경 말씀처럼 『성령께서 친히 말할 수 없는 신음으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롬 8:26)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이 말씀의 의미에 대해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성령님께서는 그토록 갈망하시는 어떤 것에 대해 무척 고무되시어 말씀으로는 하실 수 없고 오직 신음을 통해서만 중보하실 수 있다. 말하자면 우리의 “마음”이 너무나 성령으로 충만해져서 그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만드시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 다다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그저 “신음”으로만 마음을 표출할 수 있을 뿐인데, 이때 주님께서는 그 성도들의 “마음의 언어”를 알아들으신다.


한편 죄인들이 찔림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자신이 죄인임을 “자각”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 역시 죄에 대한 깊은 자각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 이런 부분이 선행되지 않으면 죄에 대해 찔림을 받기가 쉽지 않다. 특히 이를 위해서는 성경을 펼쳐서 “세상”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그리고 “세상”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를 보여 주는 말씀들을 확인해야 한다. 성경을 읽으면서 세상과 우리의 자녀들과 이웃 사람들이 현재 처해 있는 심각한 상태를 인지하고, 죄 가운데 뒹굴고 있는 그들의 비참한 상태를 직시해야 한다. 그런 다음 “하나님의 영”께서 주시는 복과 찔림이 있을 때까지 인내를 가지고 기도하며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기도할 때 일련의 정해진 기도문이나 책자를 사용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기도에 관한 한 “어떤 형식을 사용해야겠다는 생각” 자체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거부하는 것이 된다. “기도의 영”을 파괴하고 기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에 관한 개념을 혼란하게 하며 영적으로 완전히 어둡게 만드는 요인 중에는 “기도의 형식”보다 더 나쁜 것도 없다. “기계적인 방식으로 하는 기도”는 그 자체로도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다른 성도들의 영을 파괴하고 기도의 능력을 부수기 위해서 마귀가 사용하는 “장비 제1호”이기도 하다.
단지 “말 조각들”을 늘어놓는 식의 기도는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기도할 때 그 마음이 성령 하나님에 의해 인도되고 있지 않다면 “무슨 내용의 기도를 하느냐”는 논할 가치조차 없게 된다. 기도하는 성도의 열망이 불타오르지 않고 그 생각들이 주님의 지도를 받고 있지 않다면, 또한 성령 하나님께서 감정의 모든 흐름을 주관하시지도 인도해 주시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기도가 아니다. 고착된 형식은 그 성도가 참된 기도를 할 가능성마저 박탈해 버린다. 다시 말해 기도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불타는 열정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혼을 쏟아 놓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지혜와 명철과 능력을 허락하실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참된 기도로 주님께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BB

전체 288 / 4 페이지
RSS
번호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