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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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나무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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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1년 05월호>

“무화과나무”는 올리브나무 및 포도나무와 더불어 성경의 “3대 나무”에 속한다. 성경에서 무화과나무는 아담과 이브가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열매를 먹은 이후에 깨닫게 된 “자신들의 벌거벗음”을 가리기 위해 그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입은 사건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창 3:7). 말하자면 죄의 수치를 인간 스스로 가려 보려는 육신적인 “자기 의”를 상징하는 나무로서 그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주 하나님께서는 최초의 인류에게서 무화과 잎사귀로 만든 치마를 걷어 내시고 친

히 마련하신 짐승의 가죽옷을 입혀 주셨는데(창 3:21), 이로써 인간의 죄 문제는 인간 자신이 아닌, 하나님께서 친히 마련하신 짐승 제물을 통해 해결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보여 주셨다. 그때 죽임당한 짐승이 무엇이었는가 하면, 인류의 죄를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마련하실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을 예표하는 “양”이었다. 이는 인류가 “자기 의”라는 더러운 걸레 같은 옷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의 어린양』(요 1:36)이라는 대속 제물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받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피 흘려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주님께서는 지금으로부터 약 6천 년 전에 에덴동산에서 예시하신 것이다. 『만일 너희가 내가 전한 복음을 굳게 잡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다면 복음을 통하여 너희도 구원받은 것이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달하였나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성경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셔서』(고전 15:2-4).


“무화과(無花果)나무”는 꽃 없이 열매가 맺힌다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지만, 사실 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열매 속에서 꽃을 피우기에 꽃이 없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래서 무화과를 꽃이 은밀히 숨어 있다는 뜻으로 “은화과”(隱花果)라 부르기도 하는데, 잘 익은 무화과는 그 투박한 외양과 달리 맛이 일품이어서 은근한 매력을 지닌다. 다 자란 열매는 크기가 어린 아기 주먹만 하기에 길을 걷다가 두어 개만 따 먹어도 손쉽게 시장기를 면할 수 있다. 그래서 초림 당시 예수님께서도 어느 날 아침에 시장기를 면하실 요량으로 한 그루의 무화과나무에 다가가신 것이다. 『주께서 아침에 그 도성으로 돌아오실 때에 시장하셔서, 길가에 있는 한 그루의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 나무에 가셨으나 잎사귀 외에는 아무것도 찾지 못하시자, 그 나무를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이제부터 네게서 영원히 열매가 맺히지 못할 것이라.”고 하시니, 그 무화과나무가 곧 말라 버리더라』(마 21:18,19).


주님께서 무화과나무에 다가가신 것은 그 잎사귀가 무성했기 때문이다. 잎사귀가 무성하다면 필시 열매가 맺혔을 것이기에 따서 먹기 위해 가신 것이었는데, 나무는 주님의 기대와 달리 열매가 단 한 개도 맺히지 않아 매우 실망스러우셨다. 그 무화과나무는 아담과 이브의 “자기 의”를 상징하는 잎사귀만 무성했으니, 이 점은 초림 당시 열매 없이 자기 의로만 가득 차 있던 “이스라엘”의 상태를 보여 준다. 종교적인 위선으로 가득 차서 왕을 거부한 이스라엘의 모습인 것이다. 이런 해석이 가능한 이유는 성경에서 무화과나무가 “이스라엘”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바빌론의 느부캇넷살왕이 유다의 여호야킴왕의 아들 여코냐와 유다의 고관들을 목공들과 대장장이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부터 사로잡아 바빌론으로 데려온 후에, 주께서 내게 보여 주셨으니, 보라, 무화과 두 광주리가 주의 성전 앞에 놓여 있더라.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 무화과 같은 아주 좋은 무화과가 있고 다른 광주리에는 아주 형편없는 무화과가 있어 너무 나빠서 먹을 수가 없더라』(렘 24:1,2). 다시 말해 주님께서는 그분의 징계에 순종하여 칼데아인들에게 순순히 사로잡혀 간 유다 사람들을 “아주 좋은 무화과들”에 비유하셨고(렘 24:5-7), 바빌론 군대에 저항하던 그 땅의 잔류자들과 이집트로 도피한 유다 사람들을 “먹을 수 없는 나쁜 무화과들”에 빗대셨던 것이다(렘 24:8-10). 이처럼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나무인데, 주님께서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며 『이제부터 네게서 영원히 열매가 맺히지 못할 것이라.』(마 21:19)라고 하신 것은, 초림 이후로는 이스라엘이 말라 버린 무화과나무처럼 저주 가운데 있을 것을 예언하신 것이었다. 그러나 그 “저주”가 그 무화과나무 자체로서는 영원하겠지만, 실제 이스라엘 민족과 관련해서는 영원하지 않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마태복음 24장의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예언하시기를, 현 교회 시대의 어느 시점에서 “무화과나무(이스라엘)의 가지가 유연해지고 잎이 나올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무화과나무의 한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유연해지고 잎이 나오면, 여름이 가까운 줄 너희가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것을 보면 그 일이 가까이, 곧 문들 앞에 이른 줄 알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리라. 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내 말들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32-35절). 이 무화과나무의 비유가 기록된 마태복음 24장은 주님께서 이 시대의 종말과 관련하여 말씀하신 “위대한 예언의 장”이다. 그것은 『주께서 오실 표적과, 세상 끝의 표적』(3절)에 관한 제자들의 질문에 답변하신 내용이었는데, 특히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의 예언과 관련하여 “대환란”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다. 『이는 그때에 대환란이 있으리니, 그와 같은 것은 세상이 시작된 이후로 지금까지 없었으며, 또 결코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21절).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있을 일들을 언급하신 뒤, 그 일들이 있기 전에 있을 “한 가지 중요한 현상”을 예로 드신 것이었다. 곧 『그 날들의 환란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또 하늘들의 권능들이 흔들릴 것이라. 그후에 하늘에 있는 인자의 표적이 나타나리니, 땅의 모든 지파들이 통곡할 것이며, 또 그들은 인자가 권세와 큰 영광으로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리라. 또 주께서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시리니, 그들이 하늘 이편 끝에서 저편 끝까지 사방에서 그의 택하신 사람들을 함께 모을 것이라.』(29-31절)라고 하시면서 재림을 언급하신 뒤, 그렇게 택함받은 유대인들을 모으시는 일이 있기 전에 있을 중요한 현상 하나를 무화과나무의 비유로 설명하신 것이다. 이 비유에서는 두 가지 주목해야 할 사항이 있다.


첫째,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유연해지고 잎이 나오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는 것처럼, 무화과나무로 비유되는 이스라엘의 가지가 유연해지고 잎이 나오면 대환란과 재림이 문들 앞에 이른 줄 알라는 것이다(32,33절). 이스라엘은 A.D. 70년에 예루살렘이 완전히 파괴된 후 전 세계로 흩어지는 방황의 역사를 지나왔는데, 1,900년 가까이 국가도, 땅도 없이 전 세계를 떠돌며 이방인들에게 고난과 박해를 당해 온 것이다. 한편 그들을 상징하는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유연해지고 잎이 나오는 것은 이스라엘이 국가적으로 재건되는 것을 의미한다. 1948년 5월 14일 오후 4시, 이스라엘은 국민평의회 의장 데이비드 벤구리온이 이스라엘이 독립 국가임을 전 세계에 선포함으로써 독립 국가가 되었는데, 바로 이것이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유연해지고 잎이 나온 사건이었다. 긴긴 고난의 세월을 끝낸 이스라엘의 독립은 우리가 사는 이 시기가 대환란과 재림에 무척 가깝다는 점을 보여 준다.


둘째,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언된 모든 일이 이루어지리라는 것이다(34절). “이 세대”는 문맥상 그 가지가 유연해지고 잎이 나오는(32절) 세대를 가리키는데, 곧 “1948년에 독립한 이스라엘 세대”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 1948년에 독립한 세대는 마태복음 24장에 기록된 대환란과 인자의 재림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1948년에 독립할 때 태어난 세대는 그들의 세대가 다 지나가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목도할 것이기에, 교회 시대의 마지막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휴거와 재림에 대한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다가온다.

무화과나무의 비유에서 한 가지 더 알아야 할 점은, 주님께서는 그분의 백성 이스라엘을 소멸시키시지 않고(말 3:6, 렘 31:35-37) 반드시 회복시키신다는 사실이다.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21장에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지만, 24장에서는 무화과나무의 회복을 말씀하셨다. 이는 “아브라함의 언약”으로 인해 아브라함의 육적인 후손인 이스라엘을 “영원히” 저주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이 깊은 잠에 빠졌을 때 주님께서 아무런 조건 없이 일방적으로 맺으신 언약은 아브라함과 그의 씨가 언젠가는 약속의 땅에 영원히 거할 것이라는 사실을 보장하시는 내용이었다. 『그 날에 주께서 아브람에게 언약을 세워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땅을 이집트 강에서부터 큰 강 유프라테스까지 네 씨에게 주었으니, 켄인들과 크니스인들과 캇몬인들과 힛인들과 프리스인들과 르파인들과 아모리인들과 카나안인들과 기르가스인들과 여부스인들의 땅이니라.” 하시니라』(18-21절). 주님께서는 땅에 관한 이 “무조건적인 언약”에 따라 이스라엘이라 불리는 무화과나무를 그 저주에서 푸시어 그들의 본토로 회복시키셔야 한다. 이스라엘 민족은 『복음에 관하여는 그들이 너희로 인하여 원수가 되었으나 선택에 있어서는 그들의 조상으로 인하여 사랑을 받는 자들』(롬 11:28)이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들을 “영원히” 버리시지 않고 대환란이라 불리는 『야곱의 고난의 때』(렘 30:7)를 통해 그들의 죄를 정결케 하실 것이며, 그 후에는 그들의 본토로 회복시키셔서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비옥한 초승달 지역을 그들의 영원한 유업으로 주실 것이다.


현재 이스라엘 땅에 거하는 세대는 여전히 회심하지 않은 상태이므로 그들이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볼 수 없다. 그 회심하지 않은 세대는 대환란 기간에 또다시 흩어져서 전무후무한 고난을 통과할 것이고 그들 가운데 남은 자만이 그들의 본토로 회복될 것이다. 현재 그 한 조각의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과 분쟁은, 하나님의 백성이 그 땅에 심긴 무화과나무로서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이다. 열매를 맺지 못하면 약속의 땅에 대한 온전한 소유주가 될 수 없다(신 28:15-68). 주님께서는 『그 날에는 주께서 다시 두 번째로 손을 펴사 남아 있는 그의 백성의 남은 자들을 회복시켜 앗시리아와 이집트와 파드로스와 쿠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의 섬들로부터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사 11:11)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회복이 “두 번” 있음을 보여 주는데, “첫 번째”는 유대인 남은 자들이 바빌론 포로 생활 70년의 기간이 다 찼을 때 사로잡힘에서 풀려나 본토로 회복된 사건이고, 주님께서 손을 펴셔서 그들을 회복시키실 “두 번째” 사건은 앞으로 또 흩어질 현세대의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그들의 본토로 회복시키실 재림 때를 가리킨다. 1948년에 이스라엘이 독립한 사건은 재림과 관련된 두 번째 회복이 매우 가깝다는 것을 잘 시사해 준다. 『너를 지으신 분이 네 남편이니 만군의 주가 그의 이름이며, 너의 구속주,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라. 그가 ‘온 땅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리라... 잠시 동안 내가 너를 버렸으나 큰 자비로 내가 너를 모을 것이니라』(사 54:5,7).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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