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성경의 비유들 분류

새 천조각과 낡은 옷의 비유

컨텐츠 정보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0년 01월호>

필자가 유년 시절을 보낸 1970년대는 그리 풍족한 시대가 아니었다. 아무것도 남겨 놓지 않은 6/25 전쟁의 참상을 딛고 일어서려는 노력이 20년 넘게 이어지면서 경제가 가까스로 기지개를 켜려 하던 때였다. 바야흐로 2020년에 이른 현시대처럼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않았던 것이다. 긴 연필이 몽당연필이 되면 볼펜 깍지에 끼워 그 존재가 소멸될 때까지 쓰고, 지우개도 자투리까지 문질러서 없어져야 새 지우개를 사곤 했다. 요즘은 양말에 구멍이 나면 새 양말로 갈아 신는 것이 예삿일이지만, 그때는 구멍 난 양말을 바늘로 기워 어색한 모양으로 신고 다녀야 했다. 옷은 말할 것도 없고, 터진 이불도 천조각을 대고 기워서 가족의 밤을 지켜 주곤 했다. 찢어지면 일단은 기워 써야 한다는 철칙이 암암리에 지배했던 시기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던 초림 때도 그 점에 있어서는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오늘날처럼 의류 제조업이 발달하지 않아 일일이 수공업에 의존해야 했을 그때에 옷은 귀한 축에 들었을 것이다. 십자가에 높이 못박혀 계신 주님을 두고 저 아래의 로마 병사들이 그분의 옷을 찢어서 나눠 가진 것만 보아도 그 점을 알 수 있다. 『그들이 주를 십자가에 못박은 후 주의 옷들을 제비뽑아 나누었으니』(마 27:35). 이때 병사들은 주님의 겉옷을 네 조각으로 나누어 각자 한 조각씩 가져갔고, 잇지 않고 위로부터 통으로 짠 속옷은 당시로서는 아주 귀한 것이었기에 누가 가질지 제비를 뽑아서 가져갔던 것이다(요 19:23,24). 이처럼 멀쩡한 옷을 찢어서 나눠 가져가고, 통으로 짠 옷은 한 사람이 제비를 통해 가져간 것을 볼 때, 옷이 낡아 찢어지면 새 천조각을 대서 기워 입는 것이 당시의 일상 풍경이었음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예수님께서는 세리 마태의 집에서 주님을 위한 큰 잔치가 벌어졌을 때 다음과 같이 "새 천조각과 낡은 옷의 비유"를 말씀해 주셨다. 『주께서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새 천조각을 낡은 옷에 대고 깁는 사람은 아무도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것도 해어진 것이 될 뿐만 아니라 새 것에서 자른 천조각과 낡은 옷도 어울리지 아니하느니라. 또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붓는 사람은 아무도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그 가죽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쏟아지고 가죽 부대도 망가지리라. 그러나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부어야만 하나니, 그리하면 둘 다 보존되느니라. 또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즉시 새 포도주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나니 이는 그 사람이 말하기를 '묵은 것이 더 좋다.' 함이라."고 하시더라』(눅 5:36-39).

예수님께서는 새 천조각과 낡은 옷의 비유에 이어 새 포도주와 낡은 가죽 부대의 비유도 말씀하셨는데, 이 두 비유는 개별적이지 않고 하나의 진리를 전달하는 하나의 비유이다. 이는 마치 창세기 41장에서 파라오가 꾸었던 두 꿈이 하나의 사실을 계시한 것과 같은데, 즉 깡마르고 흉하게 생긴 암소 일곱 마리가 살진 암소 일곱 마리를 먹어 버린 꿈이, 파리하고 깡마른 일곱 이삭이 속이 가득 차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켜 버린 꿈과 "동일한 사실"(칠 년의 큰 풍년에 뒤이은 칠 년의 흉년)을 계시한 것과 같은 방식인 것이다.

주님께서는 새 천조각을 낡은 옷에 대고 기웠을 경우에 생길 수 있는 몇 가지 문제를 제시하셨다(36절). 첫째, 낡은 옷이 새 천조각이 주는 긴장과 압박을 견디지 못해서 찢어질 것이고, 둘째, 새 천조각 역시 해어질 것이며, 셋째, 새 천조각과 낡은 옷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주님께서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부을 때 생기는 문제도 제시하셨는데(37절), 물론 이 경우에 새 포도주는 "포도송이의 새 포도주"(사 65:8), 곧 "포도즙"이므로 이것이 발효되면 가죽 부대에 가스가 차서 부대가 손상될 위험성이 크다. 그래서 첫 번째 문제는 새 포도주가 발효되면서 생기는 가스로 인해 낡은 가죽 부대가 터져 망가진다는 것이고, 두 번째 문제는 그 결과 부대에 담겨 있던 포도주가 쏟아져서 마시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부어야만 둘 다 보존된다고 비유를 정리해 주셨다(38절).

그런 가운데 주님께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한 말씀을 더 추가해 주셨는데, 『또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즉시 새 포도주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나니 이는 그 사람이 말하기를 '묵은 것이 더 좋다.' 함이라.』(39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정리하자면 이 비유에서 각 요소가 상징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첫째, 『새 천조각』(36절)과 『새 가죽 부대』(38절)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생명"(고후 5:17)을 상징한다.

둘째, 『낡은 옷』(36절)과 『낡은 가죽 부대』(37절)는 "아담의 옛 본성"을 상징한다.

셋째, 『묵은 포도주』, 곧 『묵은 것』(39절)은 "율법"을 상징한다.

넷째, 『새 포도주』(39절)는 "성령"(행 2:4,13, 엡 5:18)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마 26:28,29, 요 2:3,4)를 상징한다.

즉 낡은 옷에 새 천조각이 합당치 않듯이 아담의 옛 본성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생명(고후 5:17)은 혼합될 수가 없는 것이다. 혼합되면 그 새로운 생명의 효력이 사라져 버리는데 『그렇게 하면 새 것도 해어진 것이』(36절) 되고 만다. 그런가 하면 육신은 "알코올 성분이 들어 있는 묵은 포도주" 같은 "옛 본성"을 더 좋아하기 마련이다. 『이는 그 사람이 말하기를 '묵은 것이 더 좋다.' 함이라』(39절). 그렇기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생명은 아담의 옛 본성을 지닌 옛 사람에게 붙어 있을 수 없다(엡 4:22-24). 옛 본성은 하나님의 의보다 자신의 의를 더 좋아하기 때문에(롬 10:3) 새 생명은 그 부패한 육신으로부터 반드시 분리되어야 한다. 바로 이 일을 행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시다. 『또한 너희가 그의 안에서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그리스도의 할례로 육신의 죄들의 몸을 벗어 버린 것이라』(골 2:11). 성령님께서는 죄인이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을 때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죽은 영을 살리심과 동시에 혼을 죄의 몸에서 분리시키는 영적 할례를 행하셨다. 이로써 우리의 혼은 아담의 옛 본성이 악취를 풍기고 있는 몸에서 분리되어 성령님께서 거듭나게 하신 영(요 3:5,6)에게 붙게 되었고, 그렇게 되고 나서야 비로소 영의 지시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의 고뇌를 살펴봐야 한다. 바울은 비록 거듭났어도 『몸의 구속』(롬 8:23)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여전히 죄의 몸에 거해야 하는 한계에 직면했고, 결국 이렇게 번민했다. 『우리는 율법이 영적인 것인 줄 알고 있노라. 그러나 나는 육신적이어서 죄 아래 팔렸도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이는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내가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내 안에 (곧 내 육신 안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 줄을 내가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한 것을 어떻게 행하는 것인지는 알지 못하노라... 오,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롬 7:14,15,18,24) 이러했던 바울이 궁극적으로 깨닫게 된 것은 무엇인가?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지만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는 비참한 자신을 사망의 몸에서 구해 내실 수 있는 분이(롬 7:24,25) 바로 "성령님"이심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행하느니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시켰기 때문이라』(롬 8:1,2).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을 살기 시작하면 "생각"이 바뀌게 되는데, 그때부터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일들을 생각』(롬 8:5)하고 『영적으로 생각』(롬 8:6)함으로써 생명과 화평 가운데 거하게 된다. "혼"이 구원받기 이전의 습성대로 죄의 몸에 이끌리는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속 사람(영)의(롬 7:22) 지시를 받아 그것을 몸에 전달함으로써 『성령을 통하여 몸의 행실을 죽이』는(롬 8:13)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성도의 영적 전쟁은 주로 "생각"의 영역에서 일어난다. 『(우리의 전쟁 무기는 육신적인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을 통하여 견고한 요새들을 무너뜨리는 능력이라.) 여러 가지 구상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거역하여 스스로 추켜세운 모든 높은 것들을 무너뜨리며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서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니 너희의 복종이 이루어지면 모든 불복종을 응징하려는 준비를 갖추고 있느니라』(고후 10:4-6). 우리 안에 견고한 요새로 자리 잡은 여러 가지 구상(상상)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거역해서 스스로를 높인 헛된 지식들과 관련된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치르는 영적 전쟁인 것이다.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낡은 옷과 낡은 가죽 부대 같은 죄의 몸을 벗어 버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생명"이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만 한다.

비유에서 발효되지 않은 새 포도주는 "성령"의 유형인데, 문제는 성령님을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있다. 『그러나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부어야만 하나니, 그리하면 둘 다 보존되느니라』(눅 5:38). 성령께서는 우리의 몸 안에 들어와 사시기 전에 새 가죽 부대, 곧 새로운 "그릇"을 준비하셔야 했는데 그 방법이 매우 독특하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구원받을 때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침례를 받게 하심으로써 그분께서 거주하실 "적절한 그릇"을 직접 마련하신 것이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한 성령에 의하여 우리 모두가 한 몸 안으로 침례를 받았으며 또 모두가 한 성령 안으로 마시게 되었느니라』(고전 12:13). 성령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넣으심으로써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고(고후 5:17), 그러한 우리를 그분께서 영원히 내주하시기에 합당한 영적인 새 가죽 부대로 만드신 것이다. 이로 인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안에" 영원히 계실 수 있게 되었다(골 1:27).

발효되지 않은 새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피"의 유형이기도 한데, 이 새 포도주는 "묵은 것"(율법)에 얽매인 이스라엘이 아닌 "새 포도주"(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좋아하는 "새로운 백성"(벧전 2:9,10), 즉 "교회"와 관련이 있다. 이는 교회가 율법의 행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았고(갈 2:16),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구속, 곧 죄들의 용서함을 받았기 때문이다(엡 1:7). 보혈과 교회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 새로운 백성은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고 거듭난 백성이기 때문에(벧전 1:18-23), 여전히 "묵은 것"(율법)을 좋아하는 유대인들과는 차원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좋아하는 사람들로서, 자신의 피로 한 번 성소에 들어가셔서 영원한 구속을 이루신(히 9:12)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장차 영생의 몸을 갖게 될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몸 안에 그분의 생명으로 영원히 내주하신다. 『이 신비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요, 곧 영광의 소망이라』(골 1:27). BB

전체 288 / 2 페이지
RSS
번호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