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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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 누구를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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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3년 11월호>

한국 교회들은 해마다 11월이면 ‘추수감사절’을 맞아 다양한 행사들을 하는데, 그중에서 대부분의 목사들이 관심을 집중하는 것은 ‘추수감사절 특별헌금’이다. 추수감사절은 한국에 온 초기 미국 선교사들이 ‘그들의 명절’을 한국에서도 지켰기 때문에 우리 나라에 전래된 것이다. 성경 어디에도 현재 한국 교회들이 지키는 것과 같은 추수감사절을 교회가 지켜야 할 절기라고 말씀하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도 추수감사절은 우리 나라의 추석처럼 미국의 건국 초기에 청교도들로부터 시작된 ‘그들의 명절’일 뿐이다. 물론 한국의 추석이 하나님과 상관 없는 명절인 반면 추수감사절은 믿음을 지닌 청교도들이 하나님께 감사드린 명절이라는 점에서 차이는 있다. 그러나 단지 “감사”라는 좋은 명분만으로 추수감사절을 교회의 절기로 지켜야 한다는 것은 전혀 성경적 근거가 없다. 다만 미국 선교사들의 지대한 영향으로 한국 땅에 정착된 것이며, 양적 성장에 매진한 한국 교회의 목사들이 매년 최고의 ‘추수감사절 헌금’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매우 중요한 절기로 자리매김된 것이다.
한국 교회들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 가운데 ‘헌금의 문제’는 그 어떤 비성경적인 교리들보다도 성도들에게 미치는 폐해가 매우 심각하다. 올해도 추수감사절이 다가온 현 시점에서 각 교회들은 특별헌금 홍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많은 교인들은 성경적인 헌금에 대한 바른 지식 없이 “감사”라는 거절할 수 없는 명분과 “축복”을 받겠다는 목표가 혼합된 상태에서 표류하고 있다. 또 각 교회들에서는 강요 수준의 헌금 독려와 과중한 헌금의 부담으로 고민하는 교인들이 넘쳐나는 실정이다. 따라서 11월의 추수감사절을 계기로 성경적인 헌금이 어떤 것인가를 고찰함으로써 한국 교계에서 행해지고 있는 비정상적인 헌금의 문제를 바로잡고, 헌금을 어떻게 드려야 하는가에 대해 성경적 조명을 제시하고자 한다.

한국 교회의 헌금 문제
헌금은 매우 성경적이며,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감사의 표현이다. 그런데 모든 좋은 것을 왜곡하는 것은 인간의 악한 죄인지라 헌금 역시 교회에서 잘못 가르쳐지고 실행되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많은 불신자들이 믿음을 거부하는 변명으로 하는 말이지만 한국 교회의 현 주소를 말해 주는 것은, “교회에 가려면 돈이 있어야지”라는 그들의 푸념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가리켜 “주식회사”라고 빈정거리기도 한다. 한편 교인들 역시 신앙 생활의 큰 걸림돌이 헌금에 대한 과중한 부담이라고 고백한다. 왜 이러한 현상이 한국 교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인가?
예로부터 종교지도자들, 즉 예수님 당대에는 대제사장은 물론 바리새인들이 돈을 좋아하는 종교적 위선자들이었다. 그래서 성경은 그들을 『탐욕스러운 바리새인들』(눅 16:14)이라고 부른다. 이들 종교지도자들이 과부들의 집을 삼키면서도 남들에게 보이고자 길게 기도하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위선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에게 화 있으리라! ...너희는 더 큰 심판을 받으리라.』(마 23: 14)고 말씀하셨다. 물론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라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아니었다. 오늘날도 동일한 명분이 있지만 실상은 성공적인 목회와 대형 교회를 바라는 육신적인 목적이 목회자들을 사로잡고 있기에 헌금의 병폐는 끊이지 않는 것이다. 실상이 어떠한가?
첫째, 교인들이 헌금하도록 직간접적으로 강요한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헌금자의 이름을 주보에 게재하거나 헌금자와 금액 등 현황을 게시판에 공개한다. 또 예배 시간에 헌금 봉투를 들고 헌금자의 이름을 부른다. 이렇게 함으로써 체면 때문이라도 헌금하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주일밤 예배나 금요철야기도, 새벽기도, 수요예배 등에 드린 험금에 대해서는 헌금자를 호명하면서 직접적으로 ‘축복’하기도 하고, 또 기도제목과 함께 통성으로 기도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외되는 교인들이 많이 있으나 기복신앙에 익숙해진 대부분의 교인들은 과중한 헌금을 내게 되는 것이다.
둘째, 감정과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경쟁적으로 작정헌금을 하게 한다. 부흥회를 통해서 선포되는 설교가 주로 헌금을 하면 축복이고 헌금하지 않으면 저주받는다는 공포심을 주는 것이며, 또 그럴듯한 언변으로 감정을 고조시켜서 헌금을 작정하라고 요구하거나 소위 직분자들은 얼마는 해야 한다는 식으로 작정험금을 유도한다. 또한 부흥회 강사 목사에게 따로 돈을 주는 ‘별미 헌금’이라는 것을 만들어 특별 축복 기도를 받게 하는 방식으로 교인들의 헌금을 받고 있다. 따라서 부흥회가 끝나면 잠시 고조되었던 열기는 식고 감당하기 힘든 헌금의 짐을 떠안게 됨으로써 교인들 스스로도 ‘심령’부흥회가 아니라 ‘헌금’부흥회라고 자조적인 표현을 쓰기도 한다. 주로 교회의 재정이 크게 필요한 때에 부흥회를 하고 그것을 계기로 재정을 확보하기 때문에 이러한 비정상적인 일들이 관행처럼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교회 건축이 구약의 성전 건축이라고 가르침으로써 헌금을 작정하게 하거나 ‘일천번제’가 축복의 보장인 양 왜곡된 성경 해석과 거짓 교리들을 개발하여 교인들을 미혹하고 있다.
일례로 청주의 C교회는 담임목사가 교인들에게 건축헌금을 책정하여 다음과 같은 독려문을 발송했다. 「이제 담임목사가 정식으로 제1차 건축헌금을 책정해 드립니다. 먼저 청년들과 일반성도들은 100만 원 이상, 명예권사와 서리집사는 500만 원 이상, 시무권사들은 1,000만 원 이상, 그리고 장로님들과 안수집사는 2,000만 원 이상을 7월 7일 주일까지 작정해 주시고 7월 28일 주일까지 헌금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를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7월 첫 주까지 작정하지 않은 중직이나 재직들을 위해서 담임목사와 교역자들이 건축대심방을 하겠습니다. 작정하기 어려운 중직과 재직들을 만나서 기도한 후에 반드시 작정을 하도록 돕겠습니다. 만약 작정이 어렵다면 작정을 하는 날까지 계속 심방하겠습니다. 새벽이나 밤 시간이라도 가능한 시간을 택해서 심방하고 작정을 하도록 하겠습니다」(뉴스앤죠이, 2002. 10. 29). 가히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강요를 넘어서 협박 수준이 아닌가!
셋째, 교회의 직분을 교회 재정 확보의 수단으로 이용하여 헌금을 받고 직분을 주는 것이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집사, 안수집사, 권사, 장로 등의 직분을 주는 것을 전제로 감사헌금을 하게 한다. 따라서 직분을 제안 받았어도 헌금할 수 없는 사람들은 직분을 받지 못했다가 차후에 다시 직분을 제안받았는데도 헌금을 할 수 없는 형편에 있는 사람들은 눈총을 받기 일쑤며, 이것이 견디기 어려워 대출을 받아 헌금을 하고 직분을 받거나 아니면 그 교회를 떠나기도 한다.
여기서 몇 가지 사례들을 소개한다. 「서초구에 거주하는 C씨 부부는 J교회에 다니는데, 안수집사를 제안받고서 개인 당 100만 원의 감사헌금을 일괄적으로 걷는다는 말에 고민했다. 어려운 형편에서 부부가 200만 원을 내지 못해 전전긍긍한 것이다. 결국 이 교회는 3,000명에게 집사 안수를 결정하여 30억 원의 헌금을 모을 계획이었으나 1,000명이 동참하지 못하여 20억 원만 마련했다고 한다」(크리스챤 신문, 2003. 10). 「관악구의 J교회는 장로 1천만 원, 안수집사 5백만 원, 권사 4백만 원의 특별헌금을 요구하여 직분을 줌으로써 최근 2억 원의 재원을 마련했다」(뉴스앤조이, 20002. 12.16). 「예장합동 소속의 인천 I교회는 장로 후보자들에게 장로 준수사항 14가지를 제시하면서 2-3천만 원의 헌금을 할 수 있겠는가를 조건으로 물었다. 결국 후보 중에 L집사는 이 제안을 거부하고 10여 명과 함께 교회개혁을 외치는 모임을 형성하게 되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80년대 중순 장로로 임명된 ㅇ씨는 당시로서는 큰 금액인 5백만 원을 헌금으로 냈고, 95년에 또 다른 ㅇ씨는 1,700만 원을 냈다고 한다. 또 1997년 국민일보 때문에 돈이 필요했을 때 무려 120명이 한 번에 장로로 임명된 적이 있었다... 2002년 11월에는 60대 후반 나이의 ㄱ씨가 명예권사에 임명되었는데, 3년 전에도 권사가 되기 위해 300만 원의 특별헌금을 내야 된다는 말에 자식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포기했었다가 재차 권유가 있자 무리해서 300만 원을 내고 명예권사가 되었다. 그런데 이날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약 5,000명에게 장로, 권사, 안수집사, 서리집사 등의 직분을 주었다」(뉴스앤조이, 2002. 11. 30).
이와 같이 헌금 액수에 따라 직분자를 추천하여 결정하는 것이 한국 교회의 현주소이다. 또한 말이 감사헌금이지 직분에 따라 액수를 정해 미리 헌금을 작정하게 함으로써 헌금으로 직분을 사는 것이다. 교회가 위치한 지역이나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에서 억대의 돈을 소위 직분에 대한 감사헌금으로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모든 행위들은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할 것이라는 말씀처럼(딤후 3:2) 가장 모범적이어야 할 목회자들과 교회가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니, 이것을 욕심내는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방황하다가 많은 슬픔으로 자신들을 찔렀도다.』(딤전 6:10)라는 말씀을 진리로 입증해 주는 것이다.

헌금,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
헌금은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드려야 할 감사이며, 하나님의 사역을 지원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정확하게 가르치고 설교하며 또 바르게 강조해야 한다. 바르게 배운 성도들이 바른 헌금을 드릴 수 있는 것이다. 정확하게 가르치지 않고 은근히 헌금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가르침과 실행은 바른 믿음과 바른 실행으로 앞에서 언급했던 교계의 헌금 강요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헌금에 대한 첫 출발은 ‘하나님의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전적인 믿음과 확신이 신앙고백의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어야 한다. 즉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그리스도인임을 확신할 때 헌금에 대한 바른 믿음과 실행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 교회들에는 구원의 확신이 분명히 없는 사람들이 매우 많기 때문에 육신적인 방법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복을 받으려는 기복신앙의 비정상적인 방법들이 효과를 보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구원을 확신할 때 자신의 영, 혼, 몸은 물론(고전 6:19,20), 세상과 거기 충만한 것이 모두 다 하나님의 것임을(시 50: 12, 학 2:8) 고백할 수 있으며, 자신이 무엇을 드리든지 그것은 하나님의 것을 맡은 청지기로서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임을 고백하게 되고, 헌금 역시 철저히 청지기적 자세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헌금은 돈이 있는 사람이 드리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있는 사람이 드리는 것이다.
따라서 헌금이란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섬김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시금석이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이는 그가 한 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 쪽을 존중하고 다른 쪽을 업신여기기 때문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느니라.』(마 6:24)는 말씀과 같이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돈은 섬김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라고 그분께서 주신 것이며, 우리가 선용해야 할 도구일 뿐이다(대상 29:12-16). 이런 의미에서 최소한의 기준으로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은 열 중에 하나만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전부가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순종인 것이다. 따라서 성경대로 십일조와 헌금을 한다는 것은 그의 믿음의 중심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고 말씀하심으로써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통해 우리 마음이 하나님께 있음을 증거해 보이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헌금을 드리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전 생애를 통해 그의 생활을 특징짓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던 이유를 잊어버리고 있다.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은 “주는 것”(giving)으로 표시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속죄할 어린 양으로 세상에 주셨다. 그리고 죄 없으신 자신의 생명을 피값으로 주셨다. 그러므로 주는 것, 즉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을 처음부터 끝까지 특징짓는 핵심 요소이다.

헌금, 무엇을 드리는 것인가?
그리스도인이 첫 번째로 드려야 할 것은 자신의 “몸”이다. 먼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올바른 자세이다. 많은 목사나 부흥사들은 삶을 드리라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단지 우리의 삶을 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을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몸을 소유하셨다면 우리의 삶 역시 소유하실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것이 너희가 드릴 합당한 예배니라.』(롬 12:1)고 일깨워 주신다. 우리의 몸 안에 성령님께서 거하시므로, 우리의 몸은 성전이며, 하나님의 것인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첫 번째이다. 헌금함에 자신의 몸을 넣을 수 없기 때문에 헌금을 한다고 했던 리빙스턴의 말을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인은 모든 일에 대한 감사를 드려야 한다. 데살로니가전서 5:18은 이렇게 말씀한다. 『모든 일에 감사하라.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 관한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영원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하는 것이며, 사라져 버릴 지상의 부로부터 우리의 눈을 멀리 하도록 한다. 『너희 자신을 위하여 땅에다 보물을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이나 녹이 해치며, 또 거기는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서 도둑질하느니라. 오히려 너희 자신을 위하여 하늘에다 보물을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녹이 해치지도 않으며, 또 거기는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 마음도 있느니라』(마 6:19 -21). 또한 이렇게 드리는 것으로 가장 유익을 얻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보여 준 대로 수고함으로써 약한 자들을 도와주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하리라.”고 하더라』(행 20:35).

헌금, 성경적으로 드리는 방법
하나님께서 주신 복에 대해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헌금을 드리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겠는가? 고린도전서 16:2은 이렇게 말씀한다. 『매주 첫날에 너희 각자가 하나님께서 번성케 하신 대로 따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는 모금하는 일이 없게 하라.』
1. 우리는 “매주 첫날에” 헌금을 드려야 한다(고전 16:2). 헌금은 일차적으로 주일날 예배를 통해서 드리는 것이다. 이것은 주의 첫날 하나님께 경배드리는 것을 전제로 한다. 또한 로마서 12:1에 따르면 예배를 통해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경배할 때 자신의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릴 뿐만 아니라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함께 드려야 한다. 따라서 주일뿐만 아니라 “예배”를 드리는 경배에는 찬양과 기도와 말씀과 함께 헌금을 드리는 것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2. “각자 개별적으로” 헌금을 드려야 한다(고전 16:2). 한 집안의 가장만이 아니라 어머니도, 자녀도 모두 헌금을 드려야 한다. 또 부유한 사람만이 아니라 궁핍한 사람도 드려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성도 개인을 각기 받으시기 때문이다. 차이는 가지고 있는 것에서 드리는 것이 많거나 적다는 것밖에 없다.
3. 하나님께서 “번성케 하신 대로” 헌금을 드려야 한다(고전 16:2). 이것은 잘 지켜져야 하는 원칙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개인의 행실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께서 모든 필요를 반드시 채워 주실 것을 약속하셨기에(빌 4:19) 그리스도인은 누구라도 하나님 앞에 나올 때 각자 받은 것을 가지고 나와야 한다. 따라서 교회가 임의적으로 책정해 주는 작정(감사)헌금이나 주정헌금, 월정헌금 등은 교회의 운영을 위해 편리하게 재정을 확보할 수 있다 할지라도 성경적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늘 번성케 해주시는 것이 다르므로 하나님 앞에 나오는 자신이 늘 새로워져야 하듯이 매번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율법 이전에 믿음과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십일조를 가르치셨다. 아브라함은 “율법 이전에,” 야곱도 “율법 이전에” 십일조를 드렸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율법 아래서” 십일조를 드렸다.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번성케 하신 것의 가장 기본적인 비례에 따라 드리는 헌금이다. 그리고 그것은 최소한의 부분이다. 구약에서 유대인들은 그들의 율법에 의해서 그들 수입의 일정 양을 드리도록 되어 있었다. “십일조”라는 것은 한 사람의 수입의 10분의 1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그 외에도 유대인들은 다양한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자원하여 예물을 드렸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하나님께 드린 것은 언제나 10분의 1을 넘었다(대하 31: 11,12, 신 12:5-7).
교회는 분명히 구약의 율법의 조항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는 교회가 오늘날 율법 아래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약의 원리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있어서 한 모범을 보여 주는 것이다(고전 10:11, 롬 15:4). 그리스도인은 십일조에 대해 강압받지 않는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율법 이전에 은혜 아래서” 십일조를 드렸다면, 확실하게 그리스도인들도 “율법 이후에 은혜 아래서”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자유롭게 그가 가진 것을 드려야 하며, 또 고린도후서 9:6의 말씀에 따라 십일조 이상의 것을 드려야 한다. 이는 우리가 율법 아래 있던 사람들보다 은혜 아래서 더 많은 것을 드릴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4. “따로 준비하여 두었다가” 헌금을 드려야 한다(고전 16:2).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준비된 것이어야 한다. 우리 각자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이미 마음과 몸이 준비되듯이 드려야 할 헌금 역시 따로 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헌금 시간에 순간적으로 지갑에서 꺼내 드리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또 교회의 예배 전에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바른 자세이다.
5. “기쁨으로,” 또 “자원하여” 헌금을 드려야 한다. 고린도후서 9:7은 이렇게 말씀한다. 『각 사람은 미리 마음속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이나 억지로는 하지 말아야 하리니 이는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드리는 자를 사랑하심이니라.』 우리가 건강하며, 직업이 있고, 좋은 인상을 지녔으며, 가족이 구원받았고, 자녀들이 바르게 성장한다면 이러한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하여 하나님께 자원함으로 기쁘게 드리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따라서 한국 교회들에서 헌금이 과중하게 부담되거나 자기의 의사와 상관 없이 강요되는 모든 형태의 헌금은 비성경적인 것이다.
6.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주셨던 것과 같이 “헌신적으로” 헌금을 드려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가지셨던 모든 것을, 즉 자신의 생명까지도 주셨다. 고린도후서 8:1-4에 따르면,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연보를 심한 궁핍함 가운데서 드렸고 그들의 능력에 따라, 또 능력 이상으로 자원하여 드렸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적으로 드리셨던 것”같이 드렸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많이 드렸는가에 따라 측정하지 않으시고 드린 후에 얼마나 많이 남겨 놓았느냐에 따라 측정하신다. 상대적으로 많이 드린 부자보다 자신의 것을 모두 드린 과부의 두 렙돈이 더 큰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막 12:41-44).
7. 성도의 의무는 자신이 속한 지역 교회에 헌금을 드리는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모든 연보는 지역 교회의 사역 내에서 사용된다. 고린도전서 16:1-3은 이것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계획과 사역의 중심은 지역 교회이다. 교회 외에서 행해지는 어떠한 경우의 것들도 자신이 속한 지역 교회에서 행하고자 하는 사역들을 희생하면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이것은 연보를 드리는 것뿐만 아니라 시간과 섬기는 일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우리가 신실하게 십일조를 드렸고, 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드렸다면 주님께서는 확실하게 우리에게 갚아 주실 것이며, 복을 주실 것이다. 성경적인 헌금은 『향기로운 냄새요, 받으실 만한 희생제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빌 4:18).

헌금,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야 한다
헌금은 많이 하면 많이 한 만큼 복받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남기고, 얼마나 전부를 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또한 구원의 확신 없이 기복신앙의 형태로 드렸다면 아무 소용 없는 헌금을 드린 것이다. 만일 자신이 다니는 교회가 비성경적인 헌금을 실행하고 있고, 성경적으로 관리하거나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 교회를 떠나야 한다(롬 16:17,18). 목사와 교회가 잘못했어도 자신은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께서 갚아 주신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른 믿음과 바른 실행을 요구하신다. 목적과 과정이 모두 옳아야 한다. 교인들은 풍성한 헌금을 드렸으나 하나님께서 외면하시는 한국 교회의 헌금에 더 이상 무지한 교인들이 희생되지 않기를 바란다. 바로알았다면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 성경대로 믿는 교회를 찾고 성경적인 헌금을 드려야 하며, 그것이 하나님의 일에 바르게 쓰이는 것이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다.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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