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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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러윈데이의 마귀적 풍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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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3년 03월호>

핼러윈의 대표적인 풍습 중 하나는 모닥불이다. 켈트족의 이교도 지도자였던 드루이드는 핼러윈에 악령들을 쫓기 위한 목적으로 큰 불을 피웠는데, 이 불은 현대인들이 상상하는 낭만적인 분위기나 따뜻한 온기를 위한 불이 아니었다. 모닥불에는 장작뿐만 아니라 바구니도 함께 태우는 전통이 있었고, 그 바구니 안에는 짐승이나 사람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바구니에 담겨 있던 짐승이나 사람은 모두 살아 있는 채로 모닥불에 태워져야만 했는데, 켈트족이 이렇게 끔찍한 의식을 행했던 이유는 이런 의식을 치르면서 미래를 알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즉 미래를 알고 싶었던 켈트족은 희생자가 불에 타 죽는 것을 지켜봄으로써 이 세상에서 다음 세상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통해 미래의 징조를 알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현 시대에도 유럽과 필리핀, 아메리카 대륙의 일부에서는 핼러윈에 동물을 제물로 바치고 있다. 미국의 일부 대도시에서도 핼러윈데이에 이런 풍습이 행해지고 있으며, 중소도시에서는 집과 창고, 교회 등지에서 약 200건에 달하는 방화가 이날 하루에 발생하기도 한다. 현대의 핼러윈데이 모닥불은 사람을 제물로 희생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그 원래 의도는 사람을 제물로 태우는 의식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이런 의식을 행하면 그분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너는 네 씨 중의 누구도 몰렉에게 주어 불을 통과하게 하지 말 것이며 너는 너희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도 말지니라. 나는 주니라』(레 18:21).

미래를 알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은 자신의 불완전함을 보완하기 위해 추구하게 되는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것이다. 하지만 미래를 정확히 알고 계신 분은 영원히 살아 계신 하나님 한 분뿐이시다. 사람은 내일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정확히 아신다. 그뿐 아니라 성경을 통해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성도들에게 알려 주기도 하신다. 일례로 성경을 믿는 그분의 자녀들은 앞으로 자신들이 큰 기쁨 가운데 하늘로 휴거될 것이고, 그 후 그리스도의 심판석과 어린양의 혼인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동안에 땅에서는 대환란이 펼쳐지고, 그때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서는 버티기 힘들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이렇게 성경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 정확히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들은 멸망할 세상과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지옥을 외치며 구원을 받으라고 설교한다. 왜냐하면 곧 다가올 휴거와 이 땅에서의 대환란을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닥칠 미래를 전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구원받는 것보다 먹고 마시며,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사울은 앞날을 알고 싶었지만 하나님께 버림받은 후 앞날을 전혀 알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부리는 영을 지닌 여자를 찾아 사무엘을 불러 올렸다. 『그러자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어찌하여 네가 나를 불러 올려 나를 어지럽히느냐?” 하니, 사울이 대답하기를 “내가 심히 불안하나이다. 필리스티아인들은 나를 대적하여 싸움을 벌이는데, 하나님께서는 나를 떠나시어 선지자를 통해서도, 꿈을 통해서도 더 이상 내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므로, 내가 당신을 불러 올렸으니, 당신께서는 내가 할 일을 나로 알게 하옵소서.” 하자』(삼상 28:15). 하나님께 버림받아 불안해진 사울은 급기야 자신이 금지시킨, 부리는 영을 지닌 사람을 찾아내는 불법적인 방법까지 동원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앞날을 알아냈음에도 여전히 평안할 수 없었고, 오히려 미래를 알게 되었는데도 죽은 사람처럼 되어 버렸다. 『사울이 곧바로 땅에 완전히 쓰러졌으며, 사무엘의 말로 인하여 심히 무서워하더라. 또 그에게 기력이 없었으니, 이는 그가 온 낮과 온 밤에 어떤 음식도 먹지 아니하였음이더라』(삼상 28:20).

사울은 궁금했던 미래를 알게 되었음에도 전혀 기뻐하지 못했다. 그 미래란 것이 전쟁에서의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복음을 거부한 사람들 역시 자신의 미래를 알게 된다면 사울처럼 땅에 완전히 쓰러져 심히 무서워하게 될 것이다. 죄인들은 미래를 몰라서 불안한 것이 아니다. 미래를 알면 훨씬 더 불안하게 된다. 왜냐하면 복음을 거부한 그들의 미래는 문자 그대로 무섭기 때문이다! 『악인은 지옥으로 돌려질 것이요,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민족들도 그러하리라』(시 9:17). 켈트족처럼 살아 있는 사람을 바구니에 넣어 모닥불에 태우든, 사울처럼 부리는 영을 불러올리는 방법을 사용하든, 어떤 방법이든 상관없이 하나님과 무관한 사람의 미래는 그에게 평안을 줄 수 없다. 평안한 마음은 모닥불에서 행하는 주술이나 무당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함으로만 얻을 수 있다.

당신은 미래를 알고 싶은가? 평안을 얻고 싶은가? 정확한 미래와 확실한 평안은 모두 “성경”에 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거짓말하지 않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의탁한 그분의 자녀들만이 얻을 수 있는 특권이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의 구하는 것들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알려지게 하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구원받지 못한 불쌍한 죄인들은 지옥으로 가기 전까지 계속해서 불안해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실하신 하나님께로부터 확실한 약속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트라우마나 정신질환이 있어서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확실한 보장을 받지 못했기에 불안한 것이다. 반대로 그리스도인들은 평강 가운데 기뻐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로부터 확실한 약속을 받았기 때문이다. 돈이 많거나 질병이 없거나 가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신뢰하기에 기뻐한다. 그러한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핼러윈데이에 행해지는 풍습은 이 땅 대한민국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이교도들의 끔찍하고도 미신적인 우상 숭배 의식이다. 우리나라는 기업들의 성공적인 마케팅으로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를 비롯한 여러 “데이”들이 유행하게 되었고, 크리스마스와 부활절, 핼러윈 같은 이교도들의 우상 숭배 의식들도 점점 더 큰 규모로 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모든 기념일과 축제들은 세상을 사랑하는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을 위해 만든 날들이며, 모두 하나님과 전혀 무관한, 하나님께서 가증하게 보시는 날들일 뿐이다. 핼러윈의 기원과 그 형편없는 가치도 모르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자기 민족과 전혀 상관없는 켈트족의 2천 년 전 우상 숭배 의식을 즐기기 위해 이태원 좁은 골목에 모여들었다가 켜켜이 쌓여 서로가 서로의 호흡을 방해하며 고통스럽게 죽어 갔으니 참으로 비통스럽고 안타까운 참사가 아닌가!

핼러윈데이 참사에 대한 국가와 국민의 반응은 어떠한가? 대비와 대책을 촉구하고, 용산구청장을 구속시키고, 국회 청문회를 진행했다. 그것은 다시는 동일한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아직 몸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비롯된 일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런 참사에서 죽지 않았다고 해서 안전한 것인가? 다음의 예수님의 말씀을 보라. 『또 실로암에서 망루가 무너져 죽은 열여덟 명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보다 더 악한 죄인들이라고 생각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아니라,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이와 같이 멸망하리라』(눅 13:4,5).

압사로 죽든 늙어서 죽든 모든 사람은 죽는다. 참사는 일어날 수도 있고 평생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사실 평생 동안 참사를 당하지 않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그렇다면 참사에 대한 대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바로 죽음 이후에 대한 대비이다! 머리 좋은 사람들은 확률과 통계를 이용하여 사고나 질병의 발생 가능성을 예측하고 보험에 가입하여 미래를 대비한다. 하지만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면 불확실한 가능성에만 치중하지 않는다. 오히려 확실하게 정해진 죽음과 그 후에 있을 심판을 더욱 대비하는 것이다. 압사에 대한 대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죽음 이후의 심판에 대한 대비이다. 죽음이 끝이 아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뒤에 심판이 정해져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히 9:27).

성경을 통해 미래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땅에 두고 주님께서 계신 셋째 하늘로 올라갈 것을 알기에 이 땅에서 육신의 정욕을 채우려고 계획하지 않는다(롬 13:14). 오히려 세상 사람들을 향해서 죽음과 그 후에 있을 지옥의 심판을 대비하라고 경고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으라!”라고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다. 『가라, 너는 네 백성의 자손들, 사로잡힌 자들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그만두든지 간에 그들에게 고하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신다.’ 하라』(겔 3:11).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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