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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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 신학을 위하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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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3년 08월호>

“의롭게 됨”

『기준 신학을 위하여』는 피터 럭크만 박사(Dr. Peter S. Ruckman)의 조직신학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그의 조직신학은 13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으로서 기존 신학자들이 범한 오류들을 바로 잡았으며, 철저히 성경에 근거하여 조직신학을 정립한 것으로서 독자들이 기준 신학을 형성하는 데 훌륭한 지침이 될 것입니다.<편집자 주>

이 글은 구원론(Soteriology)으로 불려지는 가장 중요한 구원의 교리 위에 입각해 있다. 이 글에서 공부하고자 하는 교리는 “의롭게 됨”에 관한 교리이다. 구원론에는 많은 주제들이 있다 - 회개(Repentance), 믿음(Faith), 양자됨(Ado- ption) , 속죄(Redemption), 거룩하게 됨(Sanctification), 구원(Salvation), 화목(Propitiation) 등이 그것이다. 이 주제들은 성경에 나타난 중요한 구원의 교리들을 다룬다. 그러나 현대의 많은 설교자들은 이 주제들을 정확히 다루지 않고 있다. 이는 대부분의 설교자들이 구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이 성경적 용어들을 명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성령 세례”, “믿음”, “회개” 등에 관한 용어만 들을 수 있는 이유는 설교자들이 구원의 교리를 깊이있게 연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현대의 설교는 교리를 다루고 있지 않다. 교리는 논쟁을 일으키고 사람들을 언짢게 하기 때문이다. 교리는 절대 권위인 성경에 근거하여 다루어져야 한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절대 권위로서의 성경을 무시한다면 교리적인 문제에 봉착했을 때 진리의 편에 서지 못하게 된다.
“의롭게 됨”에 관해 마지막으로 설교를 들었던 때는 언제인가? 혹은 들어보지 못했는가? 그 이유를 아는가? 구원받기 위해 자신의 선행, 경험, 느낌이나 노력에 의지하는 사람은 “의롭게 됨”에 관하여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날 잘못된 가르침 중의 하나는 “의롭게 됨”을 “용서”와 같은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의롭게 됨”은 용서 그 이상이다. “의롭게 됨”이란 “의로움을 선포하는 것”이다. 인간을 구속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은 죄를 묵과하지 않으신다. 즉 죄인이 지은 죄를 정당화하지 않고 죄인을 의롭게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는 데 있어서 타협하지 않으시고, 결코 죄를 가볍게 다루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율법과 공의는 모든 죄에 대한 댓가로 죽음을 요구한다. 에스겔 18:4은 죄를 범한 혼(사람)은 죽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하시기를 갈망하고 계신다. 인간의 법정에서도 의로운 사람은 의롭게 여기고 사악한 자는 유죄 판결을 받도록 되어 있다(신25:1). 만일 하나님께서 사악한 자를 심판하시는 것이 분명하다면, 우리가 여기 존재하는 것이 확실한 것처럼 분명 우리 모두는 지옥으로 가게 될 것이다. 출애굽기 23:7에서 하나님은 사악한 자를 의롭게 여기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어떤 보상을 바라고 죄인들을 무죄로 판결한 인간 재판관들에 대해 재앙이 있을 것이라고 선언하셨다(사5: 22,23). 예수님 자신도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을 의롭게 여기는 바리새인들을 비난하셨다(눅16:15).
어떤 사람도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롬3:23). 하나님의 해결방법은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을 보내어 완전한 삶을 살게 하고, 완전히 죽게 한 후, 의로움을 얻게 하여 그 의로움을 믿는 죄인에게 선물로써 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롭게 됨”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여겨진다.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으로 옷 입으면 하나님은 그를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 안에서 완전하다고 보아 주신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그를 주 안에서 의롭게 보시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 숨겨 주신다.
그러므로 “의롭게 됨”은 하나님의 법률적 행위이고, 그것에 의하여 믿음을 그리스도 안에 두는 사람은 하나님의 견지에서 의롭다고 선언되며, 죄와 형벌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신약에서 이 교리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을 찾아 보려면 로마서 4:3-5을 주의깊게 읽어 보라. 그 말씀이 바로 법률적 선언에 의한 구속과 “의롭게 됨”에 관한 성경적 교리이다. 이것은 구원의 수단으로 물침례나 은사주의적 경험에 의존하는 어떤 사람도 감히 가르쳐 본 적이 없는 교리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더니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행함이 없어도 불경건한 자를 의롭게 하시는 그 분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지느니라』(롬4:3-5). 만일 당신이 행위로 천국에 가고자 한다면 당신의 믿음은 의롭지 못한 것이다. 『행함이 없어도...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지느니라.』
행위로 천국에 가고자 노력하며, 구원받지 못했으면서 말로만 그리스도인이라 고백하는 사람은 사람이 행위로써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항상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쓰여진 서신서를 들고 나온다(약1:1). 야고보서를 들고 나오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야고보서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게 기록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변개된 ‘성경’은 야고보서가 구원받은 히브리인이나 구원받은 유대인 혹은 영적인 유대인에게 쓰여졌다고 말할 정도로 완전히 오염되었다. 이는 야고보서가 열두 지파에게 쓰여졌다는 놀랍고 분명한 사실을 모조리 덮어 버리는 것이며, 선한 행위를 쌓음으로써 지옥에 가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야고보서를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성경 진리는 『행함이 없어도 불경건한 자를 의롭게 하시는 그 분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지느니라』고 말한다. 야고보서 2장에 의해 자신을 의롭게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의를 무시하고 열심히 자신의 의를 쌓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그들은 “그들 스스로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아니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믿는 모든 사람에게 의가 되시고자 율법의 마침이 되셨느니라』(롬10:3,4).
경험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위에 두는 감정적인 사람들, 즉 경험과 행위에 의존하는 사람들은 구원받기 위해 자신들을 완전하게 하고자 노력하며, 그리스도처럼 되고자 항상 노력하고 있다. 만일 여러분이 의롭게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처럼 행하고자 한다면 여러분은 분명히 지옥에 가게 될 것이다. 그 분은 죄가 없지만 여러분은 있다. 그 분은 삼위일체의 한 분이지만 여러분은 아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똑같이 행할 수도 없을 뿐더러, 그렇게 해서 여러분이 가는 곳은 결국 지옥이다.
그리스도를 닮는 것으로는 천국에 갈 수 없다. 그리스도를 닮는 것은 “의롭게 된” 이후에 하는 것이다. 당신이 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이 하나님의 의는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다. 다른 사람과 삶을 누리기 위해 그리스도를 그의 삶에 모시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현대의 감정적이고 경험적이며 종교적인 사람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기어 그 안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전자는 그리스도를 그의 삶에 모셔와 그의 삶을 고정시키고 행위를 통하여 천국에 이르고자 한다. 후자는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는 사람으로서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처형당했고, 비록 살아 있는 사람이지만 그가 산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사시는 것이다(갈2: 20).
사도행전 13:38,39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분을 통하여 너희에게 죄사함이 선포되었으며 너희가 모세의 율법으로는 의롭게 되지 못하였던 그 모든 일에 있어서도 그 분을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의롭게 되느니라.』 침례가 아니라 “믿기만 하면”이다. 고백이나 회개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기만 하면”이다. “의롭게 됨”이라는 용어는 성경 어디에서도 결코 침례와 관련되어 발견되지 않는다. 결코 그리스도를 당신의 삶에 모시는 것과 관련되지 않는다. “의롭게 됨”이라는 용어는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하신 의를 믿을 때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법률적 행위이다. 이것이 바로 “의롭게 됨”이 성경에서 ‘물침례’와 관련이 없다는 이유이다. “거듭난다”라는 말을 물과 관련하여 찾을 수는 있지만 물침례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요3:5). “구원받았다”라는 말을 물침례와 관련하여 찾을 수 있지만 영생을 통한 절대 구원의 의미로서는 찾을 수 없다. 물침례는 단지 인간을 구원하시는 모형일 뿐이다(벧전3:21).
“의롭게 됨”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대속이다. 대속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무엇을 전가하는 것, 혹은 어떤 것을 그들의 계산서로 부과하는 것이다. 대속을 통하여 죄인은 그리스도의 의를 부여받았고 예수 그리스도는 죄들을 부여받은 것이다. 여러분이 이러한 의를 소유한 적이 있다면 구원을 절대로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의 의를 소유한 적이 있다면 은사주의적 경험과 성경적 중생의 차이점을 알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의를 소유했다면 어떤 사람이 성경을 인용하여 여러분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혹은 성경을 인용함으로 여러분을 속이려 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받은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대속자가 되셔서 우리로부터 모든 죄를 옮기셨다. 의로운 자가 불의한 자의 죄를 옮기시고 여러분이 쌓은 죄와 지옥에서의 형벌을 하나님의 아들에게로 돌리셨다. 이것이 ‘구속’이다(고후5:21). 만일 여러분이 그것을 소유했다면 언제라도 악한자들이 여러분의 구원문제를 혼미케 하기 위해 사도행전, 히브리서, 마태복음을 인용하는 것을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예수 그리스도의 흠없고 완전하고 죄없는 생명이 당신 것이 되었고, 여러분이 비록 완전한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의 삶에 대한 신용을 얻은 것이다.
로마서는 죄인이 의롭게 되어 그리스도의 의를 받는 절대적이고 완전한 속죄를 다룬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은 용서받았고 해방되었으며, 모든 시민권을 얻은 것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하여 믿는 모든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3:22), 즉 죄없는 주님의 완전하고 거룩한 의를 통하여 죄인은 구속받은 것이다. 당신은 구속받았는가? 이것이 새 언약이며, 신학적인 성경 교리이다. 성경은 말하기를 마지막 날에 배교한 그리스도인들이 건전한 교리를 견디지 못하며(딤후 4장), 지금껏 다루어온 구원에 관한 신약의 성경적 교리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당신에게 새로운 탄생을 주실 수 있는 그 분을 영접하였는가? 여러분이 그 분을 영접하였을 때 그 분께서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해 완성하신 일을 의지하였는가? 아니면 아직도 여러분이 해야 할 일에 대하여 헤매고 있는가? 여러분이 그 분을 영접하였을 때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의를 주기 위해 흘리신 그 분의 피를 의지하는가? 아니면 여러분의 의로운 행위를 주장하려고 야고보서 2장과 히브리서 6장으로 달려가는가?
그리스도인이여! 분명하게 하자. 만일 여러분이 구원받았다면 의로와진 것이다. 만일 의롭지 못하다면 구원받지 못한 것이다. “어떻게 의의 선물을 받을 수 있는가?” 답은 “믿음으로”이다.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되는 줄 알고』(갈2:1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를 나타내심으로써 자신도 의로우시고 또한 예수를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롬3:26). 『행함이 없어도 불경건한 자를 의롭게 하시는 그 분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지느니라』(롬4:5). 가장 훌륭한 사람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며, 악한 죄인들도 같은 방법으로 역시 의롭게 될 수 있다.
“의롭게 됨”의 결과들은 무엇인가? 우선 화평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평을 갖자』(롬5: 1).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과 진리를 통하여 마음의 평안을 갖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화평은 세상이 갖지 못하는 화평이다. 『내가 너희에게 화평을 남겨 두나니 나의 화평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화평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우리는 또한 예배, 찬양, 간구를 위해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 『또 그로 인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혜에 믿음으로 나아가며』(롬5:2).
이 위대한 구원의 신약교리 - 당신의 구원에 관해 진리를 말해주는 - 가 로마서에서 몇 번이나 발견되는 가를 주목해 보라(롬5:1, 8:33). 이것이 물침례가 로마서에서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이유이다. 성령은 믿는 자를 그리스도 안으로, 또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도하지만(롬6:4), 물침례는 결코 속죄, 거듭남, 거룩하여짐, 구속, 의롭게 됨을 설명하는 중요한 신약의 교리와는 관계가 없다. 구원의 교리를 다루는 교리들은 항상 어떤 종류의 물침례와도 관련없이 쓰여졌으며, 로마서 1,2,3,4,5장에서는 심지어 성령침례와도 관계없이 쓰여졌다. 그 교리들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일을 믿는 것과 관련이 있으며,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대속이라 불려지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피의 속죄와 관련이 있다.
죄인이 구원받은 후 사탄이 그에게 원하는 것은 그가 그의 감정과 경험에 의지하여 변개된 성경과 그의 경험에 의존케 하여 그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는 것이다. 죄인이 구원받았을 때 사탄이 그 죄인과 관계를 끊어 버리는 것은 아니다. 사탄의 다음 번 책략은 그를 잘못된 방향으로 몰고감으로써 그가 구원받았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에게 일어난 일은 로마서에 설명되어 있다.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법적으로 의롭게 되었다(롬8:33).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롬5:1). 우리는 그리스도의 공로로 의롭게 되었다(사53: 11). 그리고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의를 소유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런 것을 씀은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며 또한 너희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도록 하려 함이라』(요일5:12,13).
할렐루야, 여러분이 외칠 것이 있지 않은가? 감정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나의 감정, 생각, 말, 행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내가 영광스런 집으로 가게 될 때 그것은 영광스럽고 축복된 사실이다. 나는 나의 죄, 비열함, 사악함이 나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옮겨졌으며, 그 분께서 그것에 대해 완전히 지불하셨고, 그 분의 영광스럽고 거룩한 의가 나를 구속하셨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이 되리라는 것을 아노니』(요일3:2)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의 형상을 따르도록 우리를 미리 예정하셨기 때문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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