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주제별 교리 연구 분류

하나님의 임재

컨텐츠 정보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6년 09월호>

성막에서 천년왕국 성전까지



하나님께서 인간 역사를 다뤄 오신 이래 그분은 인간과 만나고 인간과 교제하셨다. 그러나 아담의 타락 이후에 하나님께서 인간과 온전한 교제를 할 수 없게 되자 그분은 특별한 방법으로 특정한 사람들과 만나시곤 하셨다. 때로는 천사의 모습으로 때로는 환상으로, 왕이나 선지자나 또는 당시의 지도자에게 자신을 계시하시는 그분의 임재의 방법은 다양했다(히 1:2).
그러한 임재의 방법 가운데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중요한 방법은 자신의 임재를 나타내는 특별한 장소를 마련하셔서 그곳에서 섬기는 특별한 사람들을 통해 만나시고 역사하시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는 첫 번째의 장소는 “성막”이었다. 이것은 모세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해서 광야로 들어간 다음 처음 만들어졌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때와 관련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표적”으로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본격적으로 “민족적으로” 태동했고, 그때부터 “표적”이 시작되었으며, 그것은 믿지 않는 백성들에게 눈에 보이도록 하나님의 편에서 체결한 언약을 확증시켜 주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생활은 성막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성막에 구름이 있으면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며, 성막에서 제사장이 죽으면 하나님의 임재에 두려워 떨었고,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지시하시면 그것은 곧 법이 되었다.
그러나,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였지만 그것은 또한 그리스도인들의 구원에 대한 귀중한 모형이 된다. 성막에 사용되는 각 기구들은 각각 영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제사장이 성막에 들어가서 제일 처음 만나는 것은 타오르는 불이다(번제단, 출 27:1-8). 그리고 이것은 죄 때문에 그 혼을 불태우는 지옥불을 의미한다. 바로 우리가 가야 할 곳이다. 그러나 이 제단 위에서 불타고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대신해서 죽은 제물들이다. 그것은 우리를 위해 죽으신 속죄양,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다(요 1:29). 바로 우리가 받아야 할 지옥 불의 형벌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받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놋제단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더불어 그분의 은혜를 보여준다.
번제단을 지나치면 놋으로 만든 “물대야”가 있다. 제사장들은 번제물을 태운 다음 이 대야에서 손과 발을 씻어야 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가기 위해 성결해야 함을 뜻한다. 특별히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맞추어 볼 때 이것은 구원받은 후에 행해야 할 지속적인 성결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이미 죄는 번제단에서 심판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씀의 물로 지속적으로 성결해져야 한다(엡 5:26). 이것은 최후의 만찬의 자리에서 베드로의 발을 씻겨 주시면서 『이미 목욕한 사람은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으니, 그는 온 몸이 깨끗함이라』(요 13:10)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도 연결된다.
물대야를 통과한 제사장은 이제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뜰을 지나 안으로 들어간 이 곳은 “성소”라고 불린다. 이 성소 안은 금으로 번쩍번쩍 빛난다. 성소 안의 모든 기명들은 금으로 만들어져 있다. 금은 하나님의 신성과 더불어 왕으로서의 권위를 상징한다. 우리가 성막의 바깥에서 성막을 바라본다면, 그 집은 초라하게 보일 것이다. 그것은 세련된 건축양식으로 지어지지 않았으며 고급스런 재료로 지어지지도 않았다. 성막을 덮은 것은 붉게 물들인 수양의 가죽과 오소리 가죽이었다(출 26:14). 그러나 막상 그 안에 들어가면 번쩍거리는 금빛을 보게 된다. 게다가 성소 안에는 촛대가 마련되어 있어서 금빛을 더욱 밝게 한다.
성소 안에 들어가면 오른 쪽에 빵을 차려 놓은 상이 있다. 상위에는 빵이 두 줄로 여섯 조각씩, 총 열두 조각이 놓여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의미하기도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기도 한다. 특별히 여섯 줄씩 두 줄로 놓여 있다면 6‧6, 즉 성경 66권을 상징하기도 한다.
왼쪽으로는 촛대가 있는데 촛대가 일곱으로 갈라졌다는 것은(출 25:32) 하나님의 일곱 영을 상징한다(사 11:2, 계 3:1). 이 촛대의 목적은 빵을 밝혀 주는 것이다. 이것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에 조명을 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좀더 앞으로 나아가면 또 하나의 제단이 있다. 성막 뜰에 있는 번제단과는 달리 이 제단은 금으로 입혀져 있는데, 여기서는 제물을 태우는 것이 아니라 향을 태운다. 영적으로 향이 성도의 기도를 뜻하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계 5:8). 또한 향은 제사장 사역의 가장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있다. 제사장의 임무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중보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성도의 기도를 열납받으시듯이 제사장이 피우는 향 냄새를 받으시면서 그들을 받으시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성을 나타내기 위해 마태복음 2장에서 현자들은 유향을 가지고 왔다.
특이한 것 중 하나는 성막의 바닥이 치장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소의 바닥은 그냥 흙이다. 그들은 마루를 만들지 않았다. 또한 모든 기명들은 항상 이동할 수 있도록 고안되어 있는데, 특히 상이나 제단, 언약궤 등은 이동을 위해서 채가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세상을 순례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상징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땅을 밟고 있다. 항상 세상과 함께 있다. 그러나 그 세상은 결코 그들의 집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더 좋은 본향을 위하여 세상을 순례할 뿐이다(히 11:13-16).

이제 제사장은 휘장을 통과하여 지성소에 들어간다. 휘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찢겨졌을 때 성전의 휘장도 찢겼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지성소로 나아가는 길이 모든 백성에게 열린 것이다.
휘장을 열고 들어간 지성소에는 언약궤와 자비석이 놓여 있다. 언약궤 안에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만나를 담은 항아리와 언약의 돌판이 들어 있고, 자비석에는 두 그룹이 날개를 펼치고 있다. 보통 보좌가 왕이 앉으시는 자리라면 이 자비석은 하나님께서 앉으시는 자리이다. (그래서 사탄은 늘 이 자비석에 앉으려고 했고, 마침내 대환란 중에는 이곳에 앉을 것이다). 바로 이곳이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이다. 하나님께서는 이곳에서 모세와 제사장들과 만나셨다.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는 너무 거룩해서 특정한 사람만 특정한 때에 특정한 방법으로 나아가야 했다.
하나님의 임재가 특별한 방법으로 인간에게 계시되는 것은 율법 아래에서는 동일했다. 성막 이후에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는 솔로몬 성전으로 옮겨졌고 그 형태는 성막과 여러 부분이 달랐지만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만나는 방법은 동일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생활은 모두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가 중심이 되었다. 모든 유대인 남자들은 일년에 세 차례씩 성전에 와서 경배해야 했고, 북왕국의 여로보함은 이것을 막기 위해 벧엘에 우상의 성전을 세웠다. 다니엘이 포로가 되었을 때에도 하루에 세 차례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가 계셨던 성전이 예루살렘에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의 사건이지만 사도행전 8장에서 에디오피아 내시가 예루살렘 성전에 예배하러 왔다가 돌아가는 것도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를 중심으로 한 유대인의 생활을 보여 주는 한 면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는 더 이상 한 장소에 머물러 계실 수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이후에 그 임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거하였다(골 2:9).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기간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그렇게 중요한 위치로 부각되지 않았다. 그분의 사역에서 예루살렘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왜냐하면 그분은 유대인의 왕이시고 예루살렘은 왕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분의 사역은 갈릴리에서 더 많이 이루어졌다. 사복음서의 중심 장소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어디든지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이었다. 그곳이 예루살렘이든 사마리아든 갈릴리든 여리코든 심지어 골고다 언덕이든, 그 분이 가시는 곳이 곧 모든 것의 중심이 되었다. 왜냐하면 바로 그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계시기 때문이다.
안식일의 주인이기도 한 인자께서는 성전의 주인이기도 하셨다. 그래서 급기야는 성전을 가리켜서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마 21:13)고 말씀하시기까지 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임재는 예루살렘 성전이었는데 이제 그 임재가 몸의 형태로 거하신 그 성전의 주인께서 자신의 집으로 오신 것이다. 그리고 그분이 그 장소를 떠나자 그곳은 무용지물이 되고 오히려 저주로 가득차게 되었다(마 23:38-39).
그 이후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는 그리스도인의 몸이 되었다.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임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하나님의 임재는 성령의 형태로 그리스도인의 몸에 거하시게 된다(고전 6:19). 이제는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는 없다. 오직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야 할 뿐이다. 그러나 이 임재는 그 어느 시대의 임재보다도 더욱 성도들을 확실하게 붙들어 준다. 성도 안에 내재하시는 성령께서는 그들의 구원의 영원한 보장이 되실 뿐 아니라 항상 떠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성도들은 더 이상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만날 필요가 없다. 그들은 그들 안에 계신 하나님을 언제 어디서든지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임재의 방법은 성도의 휴거와 더불어 이 땅에서 사라지게 된다. 대환란 기간을 거쳐 천년왕국이 오면 다시 하나님의 임재는 예루살렘 성전에 자리하시게 된다. 그곳은 천년왕국 성전이다. 그리고 그 안에 자리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는 왕으로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 성전의 모습은 에스겔 40:1-44:31에서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이 때에는 아론의 계열에 따른 제사장 직분이 다시 복원될 것이며, 특별히 사독의 아들들이 제물을 드리는 임무를 맡게 될 것이다(겔 44:15-31). 또한 레위기에 명시된 제사들이 회복될 것이다(사 56:7, 말 1:11). 뿐만 아니라 안식일도 회복된다(사 56:4). 그러나 이 성전에는 언약궤도 없고, 빵을 차리는 상도 없으며, 향을 피우는 제단이나 휘장도 없다. 제사장제도가 회복될 것이지만 이때 친히 대제사장 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은 왕이신 동시에 대제사장이 되실 것이다(슼 6:12,13, 렘 23:5,6). 이때 그분의 임재는 확실하며 모든 사람들에게 보이도록 나타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임재의 방법은 변하였고, 또 변할 것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 사이에 임재하시고, 그 임재로 말미암아 자신의 백성들을 다스리신다는 것이다. 이때 그분의 임재를 느끼는 백성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느끼지 못하는 백성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한다. 이것은 어느 세대에나 마찬가지이다. 지금 성도들 안에 그리스도가 계신 것은 너무나도 확실하지만 이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성도는 늘 죄와 육신 가운데 종노릇 하며 살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임재를 항상 인식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내 안에서 증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제별 교리 연구 39 / 1 페이지
RSS
번호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