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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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 교인들은 성경 지식에 무지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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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9년 02월호>

1. 한국 교인들이 성경 지식에 무지한 이유는, 우선 그들의 목사들이 성경에 무지하여 교인들에게 성경을 가르칠 수 없기 때문이다. 시편 23편에서는 "목자와 양 무리들"을 제시하는데, 읽기만 해도 넓고 푸른 초장에 듬성듬성 자리 잡은 하얀 양 무리들이 주위를 경계할 필요도 없이 풀을 뜯어 먹는 광경이 연상되지 않는가! 또한 다윗이 쓴 그 시편의 진리는 얼마나 심오한가?

우리 교회 "유치부"(초등학교 이전에 유치원을 다니는) 어린아이들도 시편 23편을 암송한다. 요한복음 10장도 목자를 다루면서 좋은 목자와 나쁜 목자의 모습을 제시한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양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길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요 강도라』(1절). "문"으로 들어가는 목자는 좋은 목자이지만(2절), 다른 길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요 강도라고 하셨다(1절). 양들은 낯선 사람의 음성을 모르기에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않는다. 여기서 "문"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신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서는 셋째 하늘로 들어가는 실제 출입구를 말하기도 한다(계 4:1).

기본적으로 이 양들은 구원받은 유대인들이지만(겔 34:1-31, 마 9:36-38, 눅 15:4-6), 영적으로는 이 시대에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된다. 다만 구원받지 않고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지역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과 같고, 구원받은 성도로 구성된다. 조직체가 아니라 유기체인 것이다. 헬라어로는 "에클레시아"( 에클레시아.jpg ), 즉 불러냄을 받은(called out) 모임(assembly)이다. 『이는 너희가 길 잃은 양들 같았으나 이제는 너희 혼들의 목자와 감독에게로 돌아왔음이니라』(벧전 2:25).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반석이시기 때문에 그 위에 세워진 교회는 거듭난 성도들(살아 있는 세포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더 이상 나그네도 타국인도 아니요, 오히려 성도들과 같은 시민이며 하나님의 가족이니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졌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귀중한 모퉁잇돌이 되셨고 그분 안에서 건물 전체가 함께 알맞게 맞추어져 주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 가며 또한 그분 안에서 너희도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져 가고 있는 것이니라』(엡 2:19-22).

이 나라 교단 교회들은 모인 사람들의 수와 헌금 액수나 자랑하는 라오디케아 교회 시대의 전형이며, 영이 거듭나지 않은 교인들은 교회는 다녀도 그리스도인들이 아니기에 그리스도의 몸을 형성하지 못한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 모든 것들을 채우시는 분의 충만이니라』(엡 1:23). 율법하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셨고, 비록 그 길은 좁지만 생명으로 인도한다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이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고 그 길이 광대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으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소하여 그것을 찾는 자가 적음이니라』(마 7:13,14).

왜 한국 교인들은 성경 지식에 무지한 것인가?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라고 말씀하시는데, 변개된 개역성경은 "지식"이 삭제되었기에 교인들로 하여금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조차 모르는 목사들이 너무나 많다. 그들 스스로가 영적인 눈이 멀어 있기에 교인들까지 소경으로 만들고 있다. 그들은 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영이 거듭나고 혼이 구원받도록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복음을 믿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종교적인 열성을 강조하여 새벽에도 나오라고 부추기면서 교회만 다니게 하고 있다. 교인들은 거듭나지 않았기에 영적 양식인 성경을 읽고 암송하고 배우고 싶은 의욕이나 열정이 없음에도, 그저 새벽부터 열심히 교회만 다니기를 권장받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몸과 혼과 영으로 되어 있는데, 영이 거듭나지 않으면 믿음이 생길 수 없다. 그래서 영적으로 자라나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습관적으로 교회만 다니게 된다. 『이제, 계명의 목적은 순수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가식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것들에서 벗어나서 헛된 언쟁에 빠져 율법 선생이 되고자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해하지 못하느니라』(딤전 1:5-7).

그런 상태로 교회만 다니다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그의 혼이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받게 된다. 그렇게 되려고 교회에 다니는 것인가? 그래서인지 그런 삯꾼 목사들은 지옥의 심판에 대해 설교하지 않는다. 필자는 그들 교인들을 보면 늘 회의감이 든다. "왜 그들은 그런 교회들을 다니고 있을까?" 하고 말이다. 그런 교인들이 절간에 다니는 사람들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우리 교회 교육관 뒷산에는 필자가 다니는 등산 코스에 절이 하나 있다. 오후 4시경이면 그 길을 지나는 등산객이 들으라고 염불을 녹음해서 틀어 놓고 있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를 녹음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소리만 있을 뿐 알맹이는 전혀 없다. 한국 교회들도 마찬가지인데, 절이니까 그런 짓을 하듯이 교회니까 설교 아닌 설교를 하는 것인가? 요즘에는 십일조를 하지 말라고, 심지어 기도하지 말라고 설교하는 교회들도 있다.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는 육신적인 양식 외에도 영적 양식을 필요로 한다. 영적 양식은 젖, 꿀, 사과, 빵, 고기로 비유되는데, 연령과 관계없이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님께서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서 완성해 놓으신 구속 사역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하면 예수님께서 그 사람 안에 들어가시어 그를 구원해 주시고, 동시에 그도 예수님 안에 들어가서 예수님의 몸을 이루게 된다. 이 계약은 영원불변하다. 이것이 바로 영적 거듭남이다. 교회에 다닌 기간이 오래되었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최소 세 장 이상, 최대 자신이 원하는 만큼 읽지 않으면 그 성도는 영적으로 배를 곯게 된다. 결국 말씀을 읽고 공부하는 데 소홀히 하게 되어 그의 영적 생명은 멈추고 만다. 사람이 며칠간 먹지도 않고 잠깐의 휴식도 취하지 않으면 몸이 무력하게 되듯이, 영적 생명도 한동안 성경을 읽지도 않고 기도도 하지 않으면 고사하게 된다. 이런 사람은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받지 못하기에 어떻게 살아야 바른 길로 들어서는지 모른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들을 듣느니라. 너희는 하나님의 말씀들을 듣지 아니하나니, 이는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지 않음이라』(요 8:47). 만일 당신이 교회는 오래 다녔으면서도 지금 성경을 읽고 암송하고 배우고 싶은 욕망이 없다면, 당신은 이미 영적으로 죽어 있거나 현재 죽어 가고 있다는 증거다. 영적으로 죽어 가는 사람에게 성령님께서는 어떤 각성도 주실 수 없다. 자신이 영적으로 침체되어 있다는 사실을 감지했을 때는 이미 그 기간이 꽤 오래된 것이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시어 모든 것들을 그의 손에 주셨으니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그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5,36).

2. 과연 틀린 성경으로 누가 잘 믿는지를 측정할 수 있겠는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이 온전하게 되며,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게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성경은 모든 것을 재는 잣대(canon)이다. 시편 119편은 성경에서 가장 긴 장으로 176구절을 담고 있고, 각 단락마다 히브리어 알파벳 22개의 글자로 시작하고 있다. 이 장에 기록된 "말씀"이란 단어는 법, 증거, 주의 법규, 규례, 진리의 말씀, 등불, 빛 등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 얼마나 경이로운 섭리인가? 하나님께서 누구를 위해 이런 영적인 표현들로 말씀을 떠받치고 계신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속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들로 삼아 주셨다. 이와 더불어 현 생애에서는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살게 해 주셨으며, 휴거가 된 이후에는 7년 동안 셋째 하늘에서 지내다가 다시 지상으로 내려와 말 그대로 천 년 동안 천년왕국(Millennial Kingdom)에서 살게 하시고, 그 후 천 년이 끝나면 새 예루살렘에서 거주하도록 해 놓으셨다. 이 새 예루살렘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한 행성이다.

인간에게 생로병사는 일반적인 생의 과정이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진노 가운데 지나가며, 우리의 연수가 한갓 이야기처럼 지나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어도 그 연수의 힘은 수고와 슬픔이니, 그것이 곧 끊어지면 우리가 멀리 날아가나이다』(시 90:9,10).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소유한 성도는 영원히 살 수 있다. 『이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서, 우리를 가르치시되, 불경건과 세상 정욕들을 거부하고, 우리로 신중하며, 의롭고 경건하게 이 현 세상을 살아가게 하시며, 그 복된 소망, 곧 위대한 하나님이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음이니, 그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은 우리를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시고 자신을 위해 정결케 하사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독특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런 것들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를 가지고 책망하여 아무도 너를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라』(딛 2:11-15). 하나님께서는 구원받고 죽은 성도들의 혼을 하늘나라로 옮기심으로써, 그들의 몸이 땅에서 썩는다 해도 다시 살아나서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해 주셨다. 성경은 이것을 "복된 소망"(딛 2:13)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라면 당연히 성경대로 믿는 교회로서 이러한 소망을 가져야 하지만, 세상 교회들은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성경을 배격한 채 마귀가 3만 6천 군데 이상을 고치고 삭제한 개역성경을 가지고 로마카톨릭을 형제라 부르면서 교회 아닌 교회를 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누이동생 마르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며 또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누구나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이것을 믿느냐?』(요 11:25,26)라고 물으셨다. 이러한 보장은 교회만 다닌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교회에 돈을 많이 내고 돈으로 산 직분으로 권위를 행사한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시인하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분의 피로 인류의 죄를 제거하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온전히 알고 믿었을 때 가능하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교단 교회를 세우시려고 자신의 몸을 희생제물로 드린 것이 아닌데, 무수한 교회들이 그렇게 변질시켰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가? 이것은 프로테스탄트들을 박해하고 고문하고 살인한 로마카톨릭에 의해 야기되었다. 그것이 피로 얼룩진 반카톨릭 신약 교회사이다.

성경을 믿는 믿음이 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다. 아무 교회나 골라잡아서 다니라는 말씀은 성경에 없다. 왜냐하면 그런 곳들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교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 교회들은 바른 성경과 진리의 지식을 거부한다. 『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딤전 2:4). 세상 교회들은 구원받지 않은 교인들을 데리고 놀면서 그들로부터 돈을 갈취한다. 이 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교회들이 거의 대동소이하다. 영적 소경이 되어 버린 그들은 성경에서 어떤 책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비성경적인 찬송만 부르면서 스스로 종교심만 내보이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할 일이 아니다. 이런 식의 종교적 행태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인가? 도대체 왜 그러셔야 했겠는가? 그런 교회들은 마귀가 세우고 관장하는 세상 교회들이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교회를 보라! 『내가 이제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랴? 아니면 하나님께 사랴? 아니면 내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하겠느냐? 내가 아직도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한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

바른 성경으로 진리의 지식을 가르치지 않는 교회들은 모두 마귀에게 속한 교회들이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라. 이는 너희의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니기 때문이니라. 믿음 안에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벧전 5:8,9).

왜 한국 교회들은 성경 지식에 무지한가? 바른 성경이 없기 때문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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