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은사주의 분류

성령의 증인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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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7년 08월호>

『그러나 성령께서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방언”을 받으리니, 그러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성령”의 증인이 되리라.』

당신은 성경에서 이런 구절을 본 적이 있는가? 이와 비슷한 내용이라도 읽어 본 적이 있는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도수 높은 확대경을 들고 샅샅이 훑어본다 해도 이와 같은 구절은 결코 찾아 낼 수 없다. 그럼에도 이런 말도 안되는 내용을 버젓이 교리로 삼아 마치 건전한 기독교인 양 수많은 사람들을 미혹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들은 바로 그 이름하여 “은사주의자”들이다.

은사주의자들을 식별하는 것은 간단하다. 그들은 대규모의 집회를 좋아하며 가만 앉아 있기보다 땀이 날 정도로 손뼉을 치거나 양팔을 번쩍들고 “할렐루야”, “아멘”이라고 외치는 것에 익숙하다. 말씀 묵상보다는 정열적인 방언 기도를, 설교를 듣는 것보다는 신나는 “찬양”을 목이 터져라 되풀이해서 부르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평범한 교회 생활만으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어서, 맘이 맞는 동료 은사주의자들과 어울려 툭하면 산이나 기도원에 들어가 맘껏 소리지르며 그간에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또 “문제해결을 위한 축복 대성회”나 “능력” 있다는 치유자를 내세우는 신유집회라면 빠짐없이 참석하며 그것도 모자라 캐나다(빈야드 집회)나 미국 펜사콜라(킬패트릭의 집회)까지 해외 원정을 가는 앞서가는(?) 은사주의자들도 있다. 심지어 목사들까지도 그 폭발적인 “성장”의 비결을 배우기 위해 70-80명 씩 떼를 지어 몰려가서 견학한답시고 귀중한 성도들의 헌금을 낭비하고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두드러진 은사주의자들의 특징은 그들의 입만 열면 튀어나오는 “성령”이다. “성령체험”, “성령세례”, “성령의 능력”, “성령 안에서 죽기”, “성령의 불”, “성령의 기름부음”, “성령의 은사”, “성령을 거스르지 말라” 등등. 그들은 바야흐로 그리스도가 아닌 성령만을 증거하는 “성령의 증인”인 것이다.

물론 성령님은 은사주의자들이 떠벌리지 않더라도 너무도 중요하신 분이며, 그리스도인에게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성경을 통해서 그분이 하시는 일들을 살펴보면, 은사주의자들이 말하는 것들(방언, 뒤로 넘어지기, 만병통치, 만사형통 등)과는 너무도 동떨어져 마치 붕어와 붕어빵처럼(혹은 성령과 악령처럼) 전혀 관계가 없다.
은사주의자들이 모여서 “불길 같은 주 성령”을 달라고 아무리 외친다 해도 성령님은 그런 사람들과는 무관하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간 데 없고 오직 성령만이 부각된 그런 집회가 아무리 그럴듯하고 웅장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할지라도 성령님과 하등의 관계도 없는 이유는 그분은 자신의 이름을 높이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성령님은 자신에 관해서는 결코 말씀하시지 않으시며, 다만 들은 것을 말씀하실 뿐이기 때문이다(요 16:13). “내가 전심으로 성령을 찬양하리이다”, “성령의 이름을 높이라”, “모든 무릎을 성령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같은 말이 성경에 등장하는가 보라.

이런 연유로 은사주의자들은 끊임없이 성령에 대해서 외치면서도 정작 성령님에 대해서는 극도로 무지한 무식한 자들인 동시에, 성경에도 없는 “성령의 증인”을 자처하는 “거짓 증인”인 셈이다.
은사주의자들에게 방언이 악령의 역사라고 하면 “성령을 거스르는 죄”라고 펄쩍 뛰며 흥분하지만, 실은 성령님을 혼란스럽고 시끄러운 분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들이야 말로 성령을 거슬러 모독하는 자들이다. 그들 중 대다수가 구원받지 못했기에 거듭났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얼떨떨한 표정으로 아주 이상히 여긴다(요 3:7). 설사 그들이 구원받았다 할지라도 자신에게 들어오셔서 자신을 거듭나게(요 3:5) 하실 뿐 아니라 자신 안에 거처를 정하시고 내주하시며(고전 6:19) 결코 떠나지 않으시는(요 14:16) 성령님을 자기 안에 모시고도 또다시 성령을 달라고 울며 불며 성령님을 괴롭히고 근심케 하는 지극히 말썽피우는 하나님의 “문제 자녀”인 것이다.

당신은 참으로 성령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싶은가? 말씀으로 돌아가라. 그분은 말씀 밖에서는 역사하실 수 없으시다. 성령충만을 경험하고 싶은가? 자신의 고집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라. “자아 충만”한 사람에게는 성령님께서 충만하실 수 있는 영역이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성령세례”를 주장하고 싶은가? 그러면 성경에서 성령 충만한 성도들이 무엇을 했는지 점검해 보라.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다(행 4:8-12).
성령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선포하며(행 2:11; 4:31), 자신이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행 9:17,20). 자신 안에 성령께서 충만하시면 복음을 전하고 싶은 것을 참을 수가 없는데, 이는 그것이 그리스도인을 참으로 기쁘게 하기 때문이다(행 13:52). 이것은 은사주의자들이 말하는 성령충만과 얼마나 다른가!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요 15:26)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시는 일(요 16:13)을 멈추지 않으신다. 당신의 “성령충만”도 과연 그런가?

당신이 진정 성령 안에서 행하고 싶다면 “성령”을 말하는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라. 역사상 가장 성령 충만했던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에서만 17번이나 “그리스도”를 말함으로써 분열, 다툼, 자랑, 시기, 음행, 방언 등의 문제들로 가장 시끄럽고 육신적이었던 고린도 교인들에게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의 본때를 보여 주었다. 그리스도인은 늘 그리스도를 말하는 사람이다. 잊지 말라. 우리는 “성령의 증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증인”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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