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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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되어 들림받는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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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5년 05월호>

변화되어 들림받는 소망



하나님의 말씀을 꿰뚫는 실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피의 속죄라는 붉은 실과 주님의 재림이라는 금 실이 있다. 이 두 가지 진리는 우리의 영원한 소망에 있어 절대적이고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근래에 “어떤 세상이 다가올지 궁금하다.”라는 말을 사람들로부터 자주 듣게 된다. 그러나 성경은 이에 대하여 우리들에게 확실하게 말씀하신다. 지금의 이 세대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부터 재림하실 때가 임박했다. 우리는 이 복된 소망의 광채 속에서 급속도로 타락하고 있는 현 시대의 사건들로나 역사적 정황으로 볼 때 더욱더 그분의 재림이 임박했음을 본다.
기독교로 새로 개종한 한 작은 부족의 인디언 원주민이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지를 들어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분께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알고 싶습니다.”라고 캐나다 북서지방에 있는 한 선교사를 방문하여 질문한 적이 있다. 그것은 아주 합당한 질문이었다. 그것에 대한 대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는 것이다.
성경은 신약에서만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말씀을 무려 300회 이상 가르쳐 주고 있다. 비록 현 시대에서 이 진리를 별로 가르치지도 않고 또한 믿지도 않는다고 해도 이 진리는 성경이 말씀하는 그 사실이다.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반드시 실현되어야 하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가득 차 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친히 내려오시리니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리고 나서 살아남아 있는 우리도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영원히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언급하는 첫 번째 단어는 헬라어로 도착(arrival)과 임재(presence)를 의미하는 “파로우시아”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6:17에서 스테파나와 포투나토와 아카이코가 “오는 것”에 대하여 말하면서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 그는 고린도 성도들에게 바울이 그들과 함께 있을 때처럼 그가 없는 동안에도 예수 그리스도께 잘 순종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그러나 “파로우시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설명하기 위하여 특별한 경우에 사용되고 있다(마 24:3,27,37,39, 살전 2:19; 3:13; 4:15; 5:23, 살후 2:1,8, 약 5:7,8, 벧후 1:16; 3:4,12, 요일 2:28). “파로우시아”라는 단어는 황제나 왕, 혹은 어떤 유명한 사람의 도착을 알려 줄 때 사용되는 전문 용어이다. 그러한 위대한 사람의 방문이 예정되어 그가 도착할 때 그를 영접하기 위하여 대대적인 행사준비가 마련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무엇보다도 더욱 소중하고 우리들의 간절한 소망이기에 믿는 자들은 모두 그분을 만날 준비를 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련하여 사용되는 또 다른 단어는 나타남(appearing) 또는 현현(manifestation)을 의미하는 “에피페니아”(epiphenia)라는 단어가 있다. 바울은 이 단어를 디모데후서 4:8에서 사용하고 있다.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어 의로운 재판관이신 주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며 또 나뿐만 아니라 그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이라.』
세 번째 단어는 계시(revelation)를 의미하는 “아포칼립시스”(apokalypsis)라는 단어가 있다. 이 사건은 교회가 휴거된 후 이 세상의 불신앙 제도에 대하여 심판하기 위하여 우리의 주님께서 그분의 교회와 함께 오실 때 일어난다.
그 때의 첫 번째 큰 사건은 교회의 휴거가 이루어지는데, 데살로니가전서 4:13-17에 기록된 그 때의 사건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형제들아, 잠든 자들에 관해서는 너희가 모르게 되는 것을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가 소망이 없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하는 것이라. 예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우리가 믿는다면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예수 안에서 잠든 자들도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남아 있는 우리가 잠들어 있는 자들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친히 내려오시리니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리고 나서 살아남아 있는 우리도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영원히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리고 우리는 고린도전서 15:51-58에서도 위와 똑같은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오히려 우리가 모두 변화될 것이니 마지막 나팔에 눈깜짝하는 순간에 그러하리라.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하는 몸으로 일으켜지며 우리도 변화되리라. 그리하여 이 썩을 몸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몸을 입고 이 죽을 몸이 반드시 죽지 아니할 몸을 입으리라. 이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또 이 죽을 몸이 죽지 아니함을 입게 되면 그때 “사망이 승리 속에 삼킨 바 되었느니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오 사망아, 너희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오 음부야,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능력은 율법이라.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라, 흔들리지 말라, 항상 주의 일을 넘치게 하라. 이는 너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아니한 줄을 너희가 앎이니라.』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일어나게 될 세 가지 확실한 기적들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에 주목해 주기 바란다.
첫 번째 기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는 생명의 부활이다. 전 세계적으로 주 안에서 죽은 믿는 자들이 그들의 무덤으로부터 일으켜지는 것이다. 로마의 지하묘지에는 약 300만 명의 믿는 자들이 묻혀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바다 속에, 산 기슭에, 개인 묘지에, 이름 없는 지하 무덤의 믿는 자들의 몸을 생각해 보라. 그러나 주님은 성도들의 몸이 어디 있든지 그 장소를 아신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는 것이다.”
두 번째 기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살아서 믿는 자들은 에녹과 엘리야와 같이 모두 변화되고, 변모되어 죽음을 맛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오히려 우리가 모두 변화될 것이니 마지막 나팔에 눈깜짝하는 순간에 그러하리라』(고전 15:51,52). 우리는 새롭게 변화되어 약함에서 강함으로, 죽을 몸에서 죽지 않을 몸으로, 수치에서 영광으로, 인간의 몸에서 그분의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된 몸을 입게 되는 것이다. 만일 우리 주님이 이 시대에 오셔서 그 사건이 지금 일어나게 된다면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주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남아 있어 죽음을 맛보지 않는 사람들은 얼마나 복된가! 죽음도 없고, 장례식도 없으며, 무덤도 없고, 세상과의 분리도 없고, 다시 흙으로, 재로, 먼지로 돌아갈 일도 없다.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오히려 우리가 모두 변화될 것이니』 죽은 성도들의 몸은 썩지 않을 몸으로 입혀지기 전까지는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죽을 몸을 가진 살아 있는 성도들의 몸은 죽음을 맛보지 않도록 죽지 않을 몸으로 변화된다. 이것은 눈깜짝하는 순간에 변화되는 것이다.
셋째로, 우리에게는 휴거되어 주님과 영원히 함께 거하게 되리라는 복된 소망이 있다.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그때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가운데 나타날 것이라』(골 3:4).

사람들은 우리가 그날에 사랑했던 가족들을 잘 알아볼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물론 우리는 그들을 잘 알아볼 수 있다. 우리는 제자들이 변형산에서 구세주와 함께한 두 사람을 보고 그들이 누구인가를 금방 알아차렸던 것처럼 알아볼 것이다. 그때 그들이 모세와 엘리야라는 것을 누구도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여 주지 않았다. 그런데 그 제자들은 모세와 엘리야를 쳐다보는 순간에 그들이 누구라는 것을 알았다.
성경은 고린도전서 13:12에서 우리 자신이 누구인가를 아는 것처럼 우리도 그들을 알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그곳에서 주님과 영원히 함께 거하며 서로가 서로를 알아본다는 것은 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이것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는 복된 소망인 것이다. 우리는 현재 이 땅에 거하고 있지만 이 세상은 잠시뿐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땅에 있는 동안에 우리는 하늘 나라에 보화를 쌓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산 증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위대하신 사역인 그분의 교회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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