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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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부족한 것이 없으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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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5년 04월호>

내가 부족한 것이 없으리로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에 대해서 오해하는 것은 “믿기만 하면 ‘아무것도 안 해도’ ‘뭐든지’ 다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 말은 절반의 진실과 절반의 거짓을 다 포함하고 있다.

1. 너희 믿음대로 되라.
먼저 “믿기만 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은 사실이다. 한 아버지가 벙어리 영을 지닌 아들의 치유를 위해서 간구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네가 믿을 수만 있다면,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막 9:23)고 말씀하셨다. 한 백부장이 중풍에 걸린 종의 치유를 위해 간구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가라, 네가 믿은 대로 네게 이루어지리라.』(마 8:13)고 말씀하셨다. 두 소경이 눈뜨기를 소망하여 자비를 구했을 때, 우리 주님께서는 그들의 눈을 만져 주시며 『너희 믿음대로 되라.』(마 9:29)고 말씀하셨다. 물론 성경은 믿음의 책이고, 기적의 책이며, 초자연적인 능력의 역사를 기술하고 ‘영의 세계’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2. 그의 모든 역사는 진리 가운데서
그러나 “믿기만 하면 ‘만사’가 형통하고 ‘뭐든지’ 다 해결된다.”는 생각은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다. “오직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갈 5:6)만이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이 세상에서도 잘못된 신념과 초월 명상, 마인드컨트롤, 긍정적인 사고방식, 기 수련, 차력이나 마술이나 염력 등을 동원해서 자신들의 꿈과 이상을 실현해 보려고 노력하고, 또 일정 부분 그렇게 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비록 선한 동기와 목적으로 시작된 것이라 할지라도 사악한 영의 영향을 받아 그릇된 방법으로 성취하려는 것이고, 대부분은 악에서 기원한 것일 뿐 아니라 인간의 이기적인 목적과 야망을 성취하는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라엘리안 운동(Raelian Movement)의 본질은 창조주 하나님을 거부하면서 또 다른 신을 만들어 섬기는 것이다. 성경을 오해하는 사람들은 성경 속의 기적과 영적인 일들을 이런 초자연적인 현상과 동일시하려고 한다. 하나님의 역사에는 거짓과 위선과 비진리와 오류와 사악함이 포함될 수도 없고, 또 포함되어서도 안 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참되신 하나님이 될 수 없으며, 수많은 신들 중의 하나에 불과할 따름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은 우상들은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니며, 하나님은 한 분밖에 계시지 아니한다는 것이라.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들이라고 불리는 (많은 신들과 많은 주들이 있어도) 우리에게는 오직 한 분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이다(고전 8:4-6). 오히려 성경에서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너희 정욕에다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약 4:3)고 말씀하시고, 『실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박해를 받을 것이라.』(딤후 3:12)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고난을 받는 자들(벧전 4:19, 3:17)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슬퍼하는 일이 있고(고후 7:11), 하나님의 일들을 나타내기 위해서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도 있는 것이다(요 9:3). 기도는 인간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사람을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역사이다. 『우리가 그의 안에서 가지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그가 우리를 들으시는 것이라. 우리가 구하는 것은 무엇이나 그가 들으시는 줄을 안다면, 우리가 그에게 구한 요청들을 받은 줄도 아느니라』(요일 5:14,15). “믿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이루어진다.”는 명제에서 한 가지 단서는 『그의 뜻대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이루어지는 것이다.

3.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또 한 가지 위험한 생각은 “믿음은 행위가 필요치 않으며, 믿기만 하면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는 식의 발상이다. 『모세가 백성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주께서 오늘 너희에게 보여 주실 주의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이집트인을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하더라』(출 14:13,14). 이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구원의 법칙이 아니다. 개인의 구원 문제는 좀 다르다. 본인의 자유 의지에 따른 선택과 책임이 뒤따른다. 물론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전적인 주님의 은혜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선택받은 민족이었고,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방법으로 그 민족을 이집트에서 구해 내셨다. 이것은 개인의 죄 문제를 다루시고 개개 영혼을 구하시는 하나님의 일반적인 방법이 아니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께서 전쟁에서 승리를 이끄시는 일반적인 방법도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승리를 주셨을 때도 여리코 성읍을 함락할 때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묵으로 행군만 할 때도 있었지만(수 6장), 그 때에도 칼날로 성읍의 모든 것을 진멸해야 했다(수 6:21). 아얄론 골짜기에 태양이 머물러 거의 종일 내려가지 않았을 때도(수 10:12,13), 하늘에서 우박이 내려서 죽은 사람들도 많았지만, 이스라엘 자손이 칼로 죽인 자들도 많았다(수 10:11b).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는가 하면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무능하셔서 인간이 도와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고 불가능이 없으시지만, 우리 인간들에게 자유 의지를 주셔서 선택의 기회를 주시고 그 책임을 물으신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을 자동 로봇 같은 기계로 창조하지 않으신 까닭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무능한 존재로 만드시지도 않았다. 인간에게는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 세계에서) 유에서 유를 창조해 나갈 수 있는 역량을 허락하셨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하시고 인간들은 가만히 있는 그런 꼭두각시 놀이가 아니다. 인간들이 원하면 뭐든지 무조건 들어 주는 도깨비 방망이나 알라딘의 요술 램프식의 인격이 없는 신들은 나약하고 게으르며 무기력한 인간들만 양산해 왔을 뿐이다. 성경에서는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라.』(살후 3:10)고 명령하고 계시다. 노아에게 방주의 설계도를 주시고 모든 짐승들을 모으시고 그 문을 닫으신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그 계획대로 120년 동안 산 정상에서 방주를 지은 것은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었다(창 6,7장). 유월절 죽음의 천사가 지나가게 한 것은 어린 양의 피였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문 인방에 발라야 했다(출 12장). 홍해의 물을 가르시고 그 물을 다시 합치신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믿음으로 막대기를 바다 위로 뻗쳐야 했다(출 14:16). 보리빵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일으키신 분은 주님이시지만, 소년은 자기의 양식을 주님께 드렸고, 제자들은 그 빵을 떼어 나눠 줌으로써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게 되었다(요 6장). 나사로를 살려 주신 분은 주님이시지만, 무덤의 돌을 굴리고(요 11:39) 손발에 동여진 수의와 얼굴의 가려진 수건을 풀어 주는 것(요 11:44)은 인간들의 몫이었다. 죄인들에게 죄의 찔림을 주시고 그들을 감동하게 하셔서 변화시키시는 것은 성령의 역사이지만(요 16:8),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딤후 4:2) 복음을 “전파”(고전 1:18,21)해야 하는 것은 인간들의 몫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내리신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백성들은 하늘의 양식을 얻으러 들로 나아가야 했다. 아무리 “하늘의 곡식과 천사들의 음식”(시 78:24,25)이라 할지라도 수고하지 않고는 먹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땅에 이슬처럼 깔렸던 만나는 해가 뜨거워지면 녹아 버렸다(출 16:21). 『게으른 사람은 사냥해서 잡은 것을 굽지 아니하』며(잠 12:27), 『게으른 사람은 자기 손을 품에 감추고 자기 입으로 다시 가져오는 것조차 하지 않으려 하』는 법이다(잠 19:24; 26:15). 사르밧 과부의 고갈되지 않는 가루통과 비지 않던 기름병에도 퍼 담는 믿음과 수고의 손길이 필요했다(왕상 17:14-16). 퍼 올리지 않은 우물물은 곧 썩고 말라 버린다. 사르밧 과부의 가루통과 기름병이 고갈된 것은 그 땅에 비가 내리고 수확물을 거둔 때였다. 그러나 아마 그 이후에도 그 과부의 가루통과 기름병은 결코 고갈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이다. 선지자들의 아들들의 아내를 위해 빚을 갚기 위한 기름병의 기적이 있을 때에도 그릇을 빌려오고 기름병을 붓는 수고가 따라야 했다. 집안의 그릇이 다 채워지자 기름이 그치게 되었다. 기름을 부을 더 이상의 그릇은 없었다(왕하 4:6). 보리빵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의 기적으로 5,000명을 먹이셨을 때에도 12광주리가 남았듯이, 보리빵 일곱 덩어리와 물고기 두어 마리의 기적으로 4,000명을 먹이셨을 때에도 일곱 광주리가 남았듯이, 하나님의 복은 늘 차고도 넘치며 풍족하고 남음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영광 가운데서 그의 풍요함을 따라』(빌 4:19) 공급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은 카나안 땅의 경계까지 올 때에 만나를 먹었지만(출 16:35), 『그들이 그 땅의 옛 곡식을 먹은 이튿날에 만나는 그쳤으』며, 『이스라엘 자손이 더 이상 만나를 얻지 못하였』다(수 5:12). 그들은 그 해 카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다. 보리빵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의 기적은 5,000명의 사람들에게 다 분배되었을 때 끝나게 되었다. 하나님의 기적이 끝날 때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4. 믿음을 경시하는 풍조
이와는 다른 차원에서의 또 다른 위험성은 믿음을 경시하는 풍조이다. “예수 믿으면 밥이 나오느냐? 떡이 생기냐? 내가 예수 믿어 봤지만, 내 손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더라.” “너무 깊이 빠지지 마라! 나중에 쪽박 차고 후회하지 말고.” “그건 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마음에 위안으로 삼으려고 그러는 것뿐이야!” “야, 목사들도 먹고살아야 할 것 아니냐? 다 먹고살려고 그 짓 하는 거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고리식으로 다 갖다 붙이기 나름이야.” “실패하면 예수 안 믿어서 실패했다고 하고, 예수 믿다가 실패하면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고 하고, 교회에 열심히 충성하고 봉사하는데도 어려움이 생기면, 하나님이 연단하시느라고 그런다고 하고, 다 그런 거야.” “야, 너 교회 다닌 지 오래 되었다면서 아직도 ‘교회의 생리’를 모르냐?” 사람들이 야이로에게 와서 딸이 죽었으니 이제 그만 포기하라고 권유할 때, 예수님께서는 회당장 야이로에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막 5:36, 눅 8:50)고 말씀하셨고, 주님께서 통곡으로 소란한 그 집에 찾아가 『탈리다쿠미』(막 5:41, “소녀야 일어나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죽었던 소녀가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성경적 믿음이란 주님의 존재와 역사에 대한 신뢰를 말한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분이 존재하시는 것과 그분이 자기를 열심히 찾는 자들에게 보상하는 분이심을 마땅히 믿어야 하느니라』(히 11:6).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자라난다(롬 10:17).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성경을 통해서 그분의 존재와 인격과 성품과 역사를 알아감으로써 형성되는 것이다. 믿음은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겸허히 수용하는 것이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뵐지라도 말씀만을 굳게 잡고 나갑시다. 귀에는 아무 소리 아니 들려도 하나님의 약속 위에 굳게 서.”(찬송가 239장) 성도의 믿음 중의 하나는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이다. 조지 뮬러는 하나님의 능력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들의 믿음을 세워 주기 위해서 고아원을 시작했고 그의 생애에 5만 번 이상의 기도 응답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성도의 삶에는 부족함이 없다. 『주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한 것이 없으리로다』(시 23:1).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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