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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6 - 파기된 언약 (예레미야 11,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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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0년 06월호>

율법의 가장 중요한 개념은 무엇인가? 그것은 율법이 하나님의 "언약"(covenant)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한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어, 이 율법을 통해서 그들을 그분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다. 율법 아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위대한 백성이 되었다. 신약의 은혜와 자유에 비교한다면 구약의 율법은 행위와 속박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구약 내에서 이스라엘과 이방을 비교한다면 율법은 이스라엘을 위대하게 만든 하나님의 언약의 법이다.
이스라엘은 이 언약으로 말미암아 존재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으로 이스라엘을 이끄셨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범죄함으로써 이 언약을 파기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점을 책망하고 계시는데, 그래서 예레미야 11-12장은 그들이 언약을 파기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버리시겠다는 저주의 말씀인 것이다.

1. 언약의 말씀들(11:1-10)

11:4은 이 "언약의 말씀들"이 율법임을 잘 알려 준다. 이것은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셨을 때 명령으로 맺어진 것이고, 그 목적은 그들이 하나님의 음성에 복종할 때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또한 3절에서는 이 언약의 말씀들에 복종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하셨는데, 이는 율법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처럼 율법은 하나의 언약이다. 신학적으로는 "모세의 언약"(Mosaic covenant)이라고 불리며, 이 언약은 출애굽 이후로 구약 시대 전체를 이끄는 하나님의 특별한 경륜이 된다.
율법은 행위의 언약이며, 조건적인 언약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 가운데 지속적으로 거하려면 지속적으로 율법을 잘 지켜야 한다. 본문 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그 맹세를 오늘날도 그와 마찬가지로 행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역시 그들의 지속적인 순종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오늘날도" 그와 마찬가지로 행하신다는 말씀은 조금 특별했다. 그 말씀은 오늘날도 그때처럼 축복해 주시겠다는 말씀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를 행하시겠다는 말씀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때부터 이때까지 지속적으로 그들에게 경고하셨다. 그들에게 죄에서 돌이키라고 "간절히" 경고하셨다(7절). 하지만 그들은 복종하지 않고 "악한 마음의 상상대로" 행했다(8절). 여기서 우리는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심정을 잘 읽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선과 악의 길을 객관적으로 제시해 놓으시고 그 선택에 따라 무자비하게 처리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에게 의의 길로 돌이키라는 경고를 참으로 "간절히" 하시는 분이다.
왜 간절히 경고하시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그만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사랑하지 않는 자들에게 간절히 경고하실 이유가 없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속하신 백성이다. 이집트에서 첫태생들의 피를 흘리심으로써 구속하신 백성이다. 목자가 어린양을 안고 험한 산골을 헤매듯이 이스라엘을 안고 그 거친 광야를 헤치고 나오신 분이 바로 이스라엘의 목자이신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그 목자의 심정은 오늘 우리에게 더욱 간절하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성도들이기 때문이다. 그분의 소중한 피값을 위해서라도 그분은 간절하지 않으실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로 죄에서 돌이키라고, 우리로 하나님의 귀한 언약 가운데 지속적으로 거하라고 "간절히" 경고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간절한 경고하심을 끝까지 거절했다. 예레미야 시대는 하나님께서 더 이상 참으실 수 없을 정도로 끝까지 거절한 시대이다. 즉 그들은 그 언약을 "파기"해 버린 것이다.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이 내가 그들의 조상들과 더불어 맺은 내 언약을 파기하였도다』(10절). 이것은 일반적인 죄를 좀 지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다른 신들"을 섬겼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의 백성된 민족이 다른 신들을 섬겼다는 말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지위를 스스로 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곧 언약의 파기이다. 더 이상 하나님과 맺은 율법이라는 언약은 그들에게 필요치 않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그 언약대로 행하신다. 그러나 이 경우 언약대로라 함은, 언약대로 축복을 주신다는 말이 아니라, 언약대로 저주를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이 언약의 모든 말씀들을 그들 위에 응하게 하겠노라』(8절). 이 언약 안에는 축복의 말씀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레위기와 신명기에는 축복과 저주의 말씀이 함께 있어, 그들의 행위대로 받게 된다. 여기서는 레위기 26장이나 신명기 28장의 그 저주를 시행하시겠다는 말씀이다.

2. 파기된 언약(11:11-23)

언약의 파기로 말미암아 유다는 재앙을 당하게 되는데, 그 모든 징계보다 더 큰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듣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또 그들이 내게 부르짖는다 해도 내가 그들에게 경청하지 아니하리라』(11절). 생각해 보라.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사람이 징계를 받아도 하나님과 여전히 소통이 된다면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가벼운 징계를 받아도 하나님과 막혀 있다면, 즉 하나님께서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면 그것은 비참한 것이다. 필요해서 부르짖었을 때 어떠한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태, 그것이 바로 예레미야 시대의 유다였던 것이다.
유다가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이유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듣지 않으시는 것이다. 대신 그들은 우상들에게 구해야 한다. 그들이 하나님 대신 선택한 우상들은 무수히 많다. 하나님께서는 『오 유다야, 네 성읍들의 수에 따라 네 신들이 있으며...』(13절)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그 우상들은 "그들의 고난의 때에 조금도 그들을 구원하지 못한다"(12절). 그들은 구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능력 없는 자에게 구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이 어디 있는가?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의 전능하심은 성도들을 향해 열려 있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거절하고 세상을 향해 구한다면 그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향해 도움을 구하고 있다. 세상은 성도들을 도울 능력이 없다. 도우실 능력도 있고 도우실 의향도 있으신 유일한 분은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유다에게 재앙을 선포하셨다(17절). 하나님께서는 유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주가 네 이름을 불러 아름답고 좋은 열매 맺는 푸른 올리브 나무라 했는데 큰 소요 소리와 더불어 그가 그 위에 불을 지피니 그 가지들이 꺾였도다』(16절). 올리브 나무는 이스라엘에 대한 상징 중 하나다. 나무가 번성했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번영했다는 것인데, 시편 80편에서는 비슷한 내용이 포도나무로 비유되어 있다. 포도나무든 올리브 나무든 그 번영했던 이스라엘이 꺾이는 것은 그들의 죄 때문이다.
특별히 여기서 올리브 나무가 꺾였다는 것은 로마서 11장에서 올리브 나뭇 가지가 꺾이고 돌올리브 나뭇 가지가 접붙임받는다는 말씀과 연관되어 있다(롬 11:17-25). 이스라엘의 범죄로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에서 떨어져 나가고, 이방인들 중에서 하나님의 언약 안으로 들어온다는 로마서 11장 말씀은, 교회 시대의 이방인들의 구원을 보여 주는 말씀이다. 이방인들 중에서 구원받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되는 이 말씀도 전제는 유대인들의 죄이다. 예레미야 상황에서 유대인들은 우상 숭배를 행함으로써 심판을 받아 멸망했다. 로마서 상황에서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거절함으로써 심판을 받아 멸망했다. 그리고 그 둘은 모두 "올리브 나무"가 꺾이는 것으로 비유되었다. 따라서 예레미야 11장의 올리브 나무 비유는 당시의 바빌론 포로뿐 아니라, 신약 시대의 멸망까지 포함하는 예언인 것이다.
이러한 징계에 대해 하나님의 입장은 단호하시다. 유다에게 멸망을 선포하셨고, 예레미야에게는 이 백성을 위해 부르짖지도 기도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신다(14절). 그러나 설사 예레미야가 이 백성에게 이 사실을 선포할지라도 그들이 먼저 선지자의 경고를 거절할 것이다. 예레미야는 이 백성들 앞에 마치 도살장의 양이나 소같이 취급되었다(19절). 그의 고향 아나돗 사람들은 그를 향해 『주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라. 그래야 네가 우리의 손에 죽지 아니하리라.』고 경고하기까지 했다(21절).
이러한 상황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초림 때 거절당하시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준다. 그리스도께서는 도살당할 어린양으로 취급되셨다(사 53:7). 『산 자들의 땅에서 그를 끊어 버려서 그의 이름이 더 이상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19절)는 것은 정확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거절의 모습이었다. 또한 예레미야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도 동족에게 미움을 받고 버림을 받았다. 예수님께서는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을 제외하고는 존경받지 못하는 일이 없느니라.』(마 13:57)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나돗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겠다 하셨는데(23절), 이는 예수님께서 벳새다와 카퍼나움에게 저주를 내리신 모습과 같다(마 11:21,23).

3. 유다에 대한 징계(12:1-13)

여기서 선지자는 이 패역한 세대를 심판해 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한다. 『어찌하여 악인의 길이 번성하나이까? 어찌하여 아주 패역되이 행하는 자들이 다 행복하나이까?』(12:1) 특히 『언제까지 이 땅이 애도하며 온 밭의 채소가 거기 사는 사람들의 사악함으로 인하여 마르리이까? 짐승들과 새들도 진멸되나니...』(4절)라는 말에서는 이 악한 세대로 인하여 괴로워하는 선지자의 심정을 잘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이 구절을 다시 한번 주목하라. 사람들의 죄 때문에 그 사회만 타락한 것이 아니라 식물, 짐승, 새들, 즉 자연 환경까지 파괴된다. 이것은 느부캇넷살이 침공하여 유다의 땅을 황폐케 한 내용이 아니다.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인간 사회뿐 아니라 자연 환경까지 훼손되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신명기 28장은 그들이 범죄할 때 『네 광주리와 네 창고가 저주를 받을 것이요, 네 몸의 열매와 네 땅의 열매와 네 소떼의 소산과 네 양떼들도 저주를 받으리라.』(신 28:17,18)고 말씀한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으며 전염병까지 돌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신 28:21-24). 밭의 식물들도 저주를 받는다(신 28:38-42). 신명기에서 이러한 저주는 그들이 이방 땅으로 사로잡혀가기 직전의 모습이다. 따라서 예레미야에서 그와 같은 저주가 펼쳐지고 있다는 것은, 곧이어 이방인들이 침공하여 그들을 멸하고 사로잡아간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따라서 유다 사람들은 신명기의 말씀을 기억하고 경고를 받았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행하지 않았다.
이 말씀은 오늘날도 우리가 눈여겨봐야 하는 말씀이다. 지금 세상은 인간성뿐 아니라 자연 환경이 많이 파괴되었다. 이에 사람들은 환경을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며 개발을 제한한다. 하지만 자연이 파괴된 원인은 개발 때문이 아니다. 그 파괴의 근본적 원인은 죄 때문이다. 우리의 죄가 우리가 사는 땅을 파괴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땅이 회복되려면 사람들의 죄가 그쳐져야 한다. 그 죄들이 언제 그쳐지겠는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완전히 그쳐질 것이다.
특별히 3절 말씀을 주목하라. 『도살할 양같이 그들을 끌어내시고 살육의 날을 위하여 그들을 예비하소서.』 앞에 11:19에서는 선지자가 그 백성들에 의하여 도살할 양같이 되었다. 이제 선지자는 그 악한 백성들을 도살할 양처럼 취급해 달라고 간구한다. 예레미야를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 삼을 때, 그 도살할 양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그 죄인들이 도살할 양이 되는 것은 언제인가? 그것은 재림 때이다. 초림 때 그분은 죄인들에 의해 죽임당하셨지만, 재림 때에는 그분에 의해서 죄인들이 멸망할 것이다. 특히 같은 절에서 "살육의 날"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야고보서 5:5에서 재림의 문맥 가운데 나오는 표현이다. 따라서 본문은 교리적으로 재림(대환란 포함) 때의 심판에 대한 예언이다. 대환란 때 유대인들은 적그리스도에 의해 엄청난 살육을 당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심판이다. 마치 느부캇넷살에 의해 유다가 살육당한 것과 같다.
이러한 선지자의 청원에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멸망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 주신다.
1) 하나님의 유업을 포기하고 원수들의 손에 넘기셨다(7절). 하나님의 유업이란 이스라엘(유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언약의 백성을 원수들의 손에 넘기실 것이다.
2) 유다는 산림 속의 사자 같다(8절). 여기서 사자란 강인하고 용감한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전서 5:8처럼 울부짖는 사자이다. 즉 마귀와 같은 모습이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미워하신다.
3) 유다는 얼룩덜룩한 새 같아서 주위의 새들이 대적한다(9절). 그래서 주변 이방인들에게 대적받아 멸망받을 것이다.
4) 많은 목자들이 하나님의 포도원을 파괴시킨다(10절). 여기서 포도원이란 하나님의 유업, 즉 이스라엘(유다)이다. 역시 이방인들에 의해 짓밟히는 모습을 예언한다. 이 이방인들을 12절에서는 "약탈자들"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적그리스도의 예표인 바빌론의 느부캇넷살을 말한다.

4. 유다의 회복(12:14-17)

그러나 선지자의 예언은 단순히 하나님의 백성의 멸망만을 선포하지 않는다. 그들의 죄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멸망당해야 하지만, 하나님의 자비는 그들을 다시 회복시키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대적한 원수들을 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로 상속받게 한 유업에 손대는 나의 모든 악한 이웃들을 향하여... 보라, 내가 그들을 그들의 땅에서 뽑아내 버리겠고...』(14절). 유다 또한 뽑힘을 당하겠지만(14절), 그후에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긍휼함으로 회복시키실 것이다(15절). 이 예언대로 유다는 70년 만에 자기 땅으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이 예언은 단순히 바빌론 포로 회복에만 한정되지 않고, 재림에 대한 예언으로까지 이어진다. 무엇보다 바알을 버리고 주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그렇게 될 것인데, 그래서 이스라엘은 재림 이전에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지금 이스라엘이 자기 땅에 국가로 세워져 있지만, 그것이 온전한 회복이 아닌 것은 아직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환란을 겪은 후, 주님이 재림하실 때 그들이 회개하고 영적 회복을 이루면, 주께서는 이 땅을 천년왕국이라는 의의 왕국으로 만드실 것이요, 그때 이스라엘은 자기 유업에서 평안히 거하게 될 것이다.
비록 그 백성의 범죄로 귀중한 언약이 파기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속에 항상 회복을 염두에 두고 계신다. 그 회복의 궁극적 모습은 예레미야 31장에서 『새 언약』(new covenant, 31절)으로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그 새 언약이 맺어질 때까지 이스라엘(유다)은 그들이 파기한 그 언약으로 인하여 극심한 고난을 당할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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