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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2 - 예레미야의 소명 (예레미야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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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0년 02월호>

1. 예레미야의 배경
예레미야가 사역한 기간은 요시야왕 때부터 유다가 멸망할 때까지였다. 이 기간은 반 세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요시야가 31년, 여호아하스가 3개월, 여호야킴이 11년, 여호야킨이 3개월, 시드키야가 11년, 총 53년 중 예레미야는 요시야 치리 제13년부터 예언했으니까, 총 40년 정도를 예언한 것이다. 요시야는 8살 때 왕이 되었고, 치리 제8년과 제12년에 우상들을 무너뜨리는 등 유대의 종교개혁을 시도하기 시작했으니, 예레미야의 등장은 요시야에게 힘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예레미야 사역의 전반부를 장식한 요시야 시대가 꽤 의로운 시대였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비록 왕이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상들을 찍어내고 산당과 아세라들을 폐하며 또 성전까지 수리하는 등(대하 34:1-8) 훌륭한 일을 수행한 것은 사실이지만, 백성들이 모두 그 의로운 일에 동참한 것은 아니었다. 더욱이 고관들과 제사장들은 선왕들인 므낫세와 아몬 시대에 행했던 모든 이교도적 관습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백성들뿐 아니라 왕들과 고관들과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이 총체적으로 배교했다고 책망한다(2:26). 요시야의 개혁은 분명 효과를 보고 있었지만, 그것은 일시적이요 지엽적인 회복이었을 뿐, 왕국은 여전히 배교와 멸망으로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왕국이 멸망으로 나아가는 시기라는 것은 국제적으로도 혼란의 시기라는 것이다. 당시 북왕국 이스라엘은 이미 100여 년 전에 멸망해 버린 상태고, 그 땅의 새 주인인 앗시리아도 쇠퇴기에 들어섰다. 최전성기 때에는 이집트까지 지배했던 앗시리아지만, 지금은 바빌론 지방에서 일어난 칼데아인들이 동방의 메데인들에게 위협을 받고 있으며, 또 독립한 이집트와의 세력 경쟁에서 뒤지고 있다. 요시야 치리 말기에는 바빌론의 느부캇넷살이 앗시리아를 멸망시키고 이집트의 파라오 느코와 전쟁을 하게 되는데, 이때 요시야왕은 파라오의 진출 경로를 막아서다가 므깃도에서 죽임을 당하기까지 한다(대하 35:20-24). 그리고 이어지는 일들은 느부캇넷살이 여러 민족들뿐 아니라,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멸망시키는 것이다.

2. 예레미야의 소명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예레미야는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는다. 예레미야는 요시야 때 처음 예언을 하고, 여호야킴과 시드키야 때까지 지속적으로 예언을 한다(1:2,3). 그는 유다 왕국의 마지막 부흥기를 거쳐 급속한 쇠퇴와 멸망의 시대를 살며 예언을 했다. 따라서 예레미야서에서는 당시의 상황이 여느 역사서 못지않게 자세히 그려져 있다. 선지자는 미래를 예언하는 사람이지만, 반드시 당시의 상황을 토대로 예언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레미야의 책을 통해 그들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멸망시키셨는지, 선지자는 그에 대해 어떤 예언을 했는지를 자세히 보게 된다.
예레미야는 제사장 출신의 레위인이다(1:1). 이는 그가 성전과 왕궁에 얼마든지 가까이 있을 수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는 율법을 중심으로 왕궁에서 또 백성들을 향해서 많은 예언들을 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예언 사역을 위해 예레미야를 선택하셨다. 심지어 “태에서 나오기 전에”(1:5) 선택하셨다. 이 때문에 칼빈주의자들은 사람이 태어나기도 전에 구원받을지 멸망할지 선택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이다. 예레미야는 구원받기 위해 택밤받았다는 말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상 선지자의 사역을 위해 선택된 것일 뿐이다.
그는 선지자 사역을 위해 구별되었다. 하나님께서는 태에서 나오기 전에 그를 “거룩하게” 하셨다(sanctified) 했는데, 이는 구원받아 거룩하게 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구별되었다”는 말이다. 구약에서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이나 사물들은 세상의 다른 용도로부터 구별되었으며, 그것을 “거룩하게 했다”라고 말한다.
특별히 예레미야는 “민족들의 선지자”(1:5)로 부르심을 받았다. 10절에서도 『보라, 내가 뿌리째 뽑아 내며 넘어뜨리고 멸망시키고 전복시키며 세우고 심기 위해 오늘 너를 민족들과 왕국들 위에 세웠느니라.』고 말씀한다. 민족들과 왕국들이라면 이방인들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유다뿐 아니라 이방 세계에도 예언의 메시지를 선포하셨는데, 예레미야는 바로 그 임무를 띤 선지자이다. 그는 단순히 이방 민족들에 “대하여” 예언한 것일 뿐 아니라 이방 민족들“에게” 예언했다. 그리고 그 예언들의 핵심은 멸망이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심판과 더불어 회복의 메시지를 주시지만, 이방 민족들에게는 멸망의 메시지를 주실 뿐이다.
특히 예레미야는 부르심을 받을 당시 나이가 어렸다. 『아, 주 하나님이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서 말할 수 없나이다』(6절). 몇 살이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다른 선지자들이 사역을 시작하는 나이보다는 훨씬 어렸을 것이다. 예레미야는 이것을 부르심을 거절하는 핑곗거리로 삼았다.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을 때 거절하는 이 모습은 마치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하는 모습과 같다. 모세도 시내 산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부르셨을 때, 사람들이 자기 말을 듣지 않을 거라느니 언변이 둔하다느니 하는 핑계를 대며 거절했었다(출 3,4장).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국 그를 사용하셨으며,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위대한 일을 해냈다. 예레미야도 부정적인 모습으로 출발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셨다(8절).
대부분의 선지자들은 자신의 소명에 대해 언급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무수한 거짓 선지자들이 난무하는 시대에, 자신이 이렇게 부르심받았다고 분명히 말하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는 데에도 중요하며, 그의 예언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실히 증명하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구원을 확실히 간증하는 것과도 비견될 수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간증할 수 있어야 한다. 더욱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들은 소명에 대한 분명한 간증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그분의 싸움을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는 것이다.
이사야도 자신의 소명에 대한 간증을 했다(사 6장). 그는 스랍들의 찬양을 받는 거룩한 하나님을 뵌 순간 자신의 죄악됨을 깨달았고, 그때 스랍 중 하나를 통해 제단 숯불로 입술을 정케한 후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가랴?” 하셨을 때 그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즉각적으로 반응했다(사 6:8). 반면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고사했었다. 하지만 모세처럼 지속적인 거절을 한 것은 아니며, 곧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된다.
반응의 즉각성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나지만, 이 모든 부르심은 부정적인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이사야는 자신의 죄악을, 예레미야는 자신의 연약함을 보았다. 그러나 인간의 연약함은 하나님께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또 이사야에게 스랍을 통해 숯불을 “입”에 대신 것처럼, 예레미야에게도 주님께서는 그분의 손을 “입”에 대셨다(9절). 이는 그들의 사역이 예언하는 사역임을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예레미야의 “입”에 두셨다. 이제부터 그가 하는 말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그의 임무는 하나님의 말씀을 외쳐 전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에 확실한 약속을 해주셨다. 예레미야는 자기를 반대할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 염려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있어 그를 구해 내리라고 말씀하셨다(8절). 유다의 통치자들과 백성들이 그를 대적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견고한 성읍과 철기둥과 놋성벽”으로 막아 주시겠다 약속하셨다(18절). 즉 하나님께서 그에게 견고한 방패가 되어 주시겠다는 말씀이다. 따라서 그에게 요구되는 것은 담대함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얼굴을 무서워 말라고 말씀하신다(8절). 허리를 동이고 일어서서 담대히 말하라 하신다(17절). 이것은 그분의 복음을 선포하는 오늘날의 모든 사역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주시는 말씀이다. 특히 우리는 이방인들에게 직접 전파하는 사명을 갖고 있다. 예레미야와는 좀 다르지만 그처럼 우리도 이방인들에게 전파한다. 그들의 죄를 책망하고 심판을 선포하며 복음을 전한다. 이 일에 무수한 사람들이 방해를 하겠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그들의 얼굴을 보고 낙담하지 말라”(17절)는 것이다. 우리가 담대하면 승리할 것이요, 담대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로 그들 앞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실 것이다(17절). 무엇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철기둥과 놋성벽”이 되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들이 너를 대적하여 싸울 것이나 너를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해 낼 것임이라. 주가 말하노라』(19절). 이 말씀은 예레미야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시는 말씀이다.

3. 두 가지 표적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부르심에 있어서 두 가지를 보여 주셨다. 그것은 아몬드 나무와 끓는 솥이다. 예레미야는 아몬드 나무를 보았다. 아몬드는 히브리어로 “서둘러 피는 나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겨울 추위가 간신히 지나자마자 싹이 트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몬드 나무는 급하게 처리하시겠다는 의미가 있는데,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는 내가 내 말을 서둘러 실행하려 함이라.』(12절)고 말씀하신다.
두 번째 표적은 표면이 북쪽을 향해 있는 끓는 솥이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북쪽으로부터 재앙이 땅의 모든 거민들 위에 임하리라.』(14절)고 말씀하셨다. 즉 북쪽으로부터 오는 민족들이 유다를 멸망시키리라는 예언인데(15절), 이것을 아몬드의 표적과 연결시켜 보면, 그 멸망의 재앙이 속히 실현되겠다는 말이다. 이것은 하박국 2:3에서 『그 때가 더디지 아니하고 반드시 이를 것임이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심판을 속히 이루실 것이며, 그래서 선지자를 통해 그 일을 선포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 심판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16절에서 설명한다.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고 그들 자신의 손으로 만든 것들에 경배했던 그들의 모든 사악함으로 인해 내가 그들에 대하여 나의 심판들을 발할 것이라.』 그렇다. 그들의 문제는 우상 숭배였다. 하나님을 저버리고 이방의 우상을 향해 나아갔다는 것은, 그들을 구속해 주신 하나님과 맺은 그 언약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행위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민족들을 거절하시고 이스라엘을 택하셨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도 세상의 모든 신들을 치워 버리고 하나님만 섬겨야 했다. 이렇게 이 둘은 “그들의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이라는 관계성을 설정한 것이다(레 26:12).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언약을 저버렸다. 그리고 그 대가는 철저한 심판이다.
이는 일찍이 신명기 28장에서 경고하신 바였다. 십계명을 보라. 그 첫 두 계명은 우상 숭배에 대한 금지 명령이다. 레위기나 신명기 등 율법책들을 읽어 보라. 우상 숭배를 행하면 어떠한 심판을 받을지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역사서들을 읽어 보라. 그들의 하나님을 저버리고 우상에게 나아간 백성들을 어떻게 심판하셨는지가 그 생생한 역사로 기록되어 있다. 예레미야는 그 역사들을 종식시키는 장면이다. 즉 그 민족이 완전히 멸망하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바로 그 일을 선포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 이것이 바로 예레미야서가 전반적으로 어두운 이유인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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