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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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렙에서의 명령을 상기함 3 - 율법 준수에 대해 재강조 (신명기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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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8년 09월호>

신명기 6장은 4,5장에서 말한 바, 시내 산에서 주신 율법을 반드시 지키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말씀이다. 매 말씀들마다 그 땅에서 번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1절에서는 차지할 그 땅에서 율법을 지켜야 함을 말씀한다.
2절에서는 율법을 지켜야 그들의 날들이 길어진다는 것을 말씀한다.
3절에서는 율법을 지켜야 젖과 꿀이 흐르는 그 약속된 땅에서 크게 번성한다고 말씀한다.
17-19절에서는 율법을 열심히 지켜야 그 아름다운 땅을 차지할 것이며, 또 그들의 원수들이 쫓겨난다고 말씀한다.
25절에서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그들의 "의"가 된다고 말씀한다.
다시 말해 약속의 땅은 조상에게 하신 약속대로 주실 것이지만, 이들이 그 땅을 차지하고 또 그 땅에서 번성하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여부에 달렸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언약은 이처럼 모세의 언약하에서 성취된다. 그러나 모세의 언약은 아브라함의 언약을 거스를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 그대로 성취시키기 위해 백성들을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1. 위대한 계명 : "하나님을 사랑하라"(4,5절).
앞서 5:29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강조했었다. 출애굽기 20:20은 두려움이 죄를 짓지 않게 하는 동기가 된다고 말씀한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그분을 배반하지 못하도록 하고, 다른 신들로 돌이키지 못하도록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온전치 못하다. 하나님께서는 신명기에서 이들에게 더 높은 수준의 법도를 요구하고 계시니, 그것은 곧 그분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두려움도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는 동기지만, 사랑 역시 그 동기가 되어야 한다. 그것도 "네 마음을 다하고 네 혼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신명기 율법의 큰 특징이다. 신명기에서는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다양한 형태로 11번이나 제시하고 있다(신 6:5; 7:9; 10:12; 11:1,13,22; 13:3; 19:9; 30:6,16,20).
흔히들 율법은 복종만을 무섭게 강요하고 복음은 사랑과 은혜로 주어진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처럼 율법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분에 대한 사랑을 요구하셨다. 이는 행위의 복종이 진정한 복종이 아니요, 마음으로부터 사랑함으로 복종하는 것이 진정한 복종이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친히 먼저 그들을 사랑하셨다. 율법을 지키고 섬기는 동기에 있어서 사랑은 두려움과 더불어 필수적인 것이었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 정의되었다(마 22:37,38). 모든 율법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형제를(서로를) 사랑하는 것으로 정리된다. 십계명만 하더라도 제1-4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연관되고 제6-10계명은 서로를 사랑하는 것과 연관된다.

2. 말씀을 가까이 두라(6-9절).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분의 말씀이 항상 생활 가운데 드러날 것이다. 그분의 뜻을 자발적으로 행하려 할 것이며, 그 말씀에 대해 자주 말하게 될 것이다(7절). 이에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들을 "마음속에" 두라고 말씀하신다. 즉 율법은 전심으로 행해야 하는 것이지 겉으로만 행하는 것이 아니다. 8,9절에서는 『또 너는 그것들을 네 손에 매어 표적을 삼고 네 양 눈 사이에 표가 되게 할 것이며 너는 그것들을 네 집 기둥들과 네 대문들에 기록할지니라.』고 말씀하는데, 이것이 바로 말씀을 가까이하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 명령은 유대인들에게 거절되었다. 그들은 외형적인 행위로만 율법을 지켰으며, 나중에는 율법에 더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고 율법은 거절하게 되었다. 율법의 본질을 버리고 외형만 좇게 된 것이다. 심지어 이 8,9절의 명령까지도 미신적인 전통으로 바꿔 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조그만 성구함을 만들어 그것을 손에 매고 눈 사이, 즉 이마에 매었다. 그들은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 지킨다는 미명하에 그렇게 했지만, 그것은 결국 성경 구절을 부적으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이러한 행위를 크게 책망하셨다. 『그들이 행하는 모든 일은 사람들에게 보이려는 것으로, 가죽 성구함을 크게 만들어 지니고 옷단을 넓혀 입느니라』(마 23:5).
말씀을 손과 눈과 기둥과 대문에 기록하라는 말씀은 그만큼 말씀을 가까이하라는 것이다. 물론 집 안 곳곳에 성경 구절을 붙여 놓으면 그것은 여러 모로 유익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미신적인 요소로 작용해서는 안 되며, 형식적 신앙으로 자리잡아서도 안 된다.
이것은 말씀을 전심으로 사랑하라는 명령에 해당하는 것으로, 말씀이 그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을 때 그 율법의 규례들은 단지 "돌판"에 기록된 것으로 끝나게 된다. 사도 바울은 율법, 즉 옛 언약은 돌판에 기록된 것이며, 새 언약은 마음판에 기록되었다고 말했다(고후 3:3). 또 예레미야 31:33에서도 새 언약은 마음속에 기록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율법이 외형적인 행위와 연관된 반면, 새 언약은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사랑과 연관된 것임을 보여 준다. 하지만 이는 이스라엘이 율법이라는 하나님의 언약을 어겼기에 그렇게 된 것이지(렘 31:32),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신명기 본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고(5절), 말씀들을 "마음속에" 두라고 하셨다(6절).
한편 비슷한 말씀이 출애굽기 13:9에 나오는데(『이것이 네게는 네 손에 표적이 되고 네 눈 사이에는 기념이 되게 하여 주의 법도가 네 입에 있게 하라.』), 여기서 "표적"은 구체적으로 무교절의 누룩 없는 빵을 의미한다(출 13:7,8). 누룩 없는 빵을 먹으면서, 이것을 왜 지켜야 하는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기억하고 또 후손들에게 가르치라는 말씀이다.

3. 하나님을 잊지 말라(10-19절).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마음속에 두라는 것에 더해 이번에는 "주를 잊지 말지니라."고 명령하신다(12절). 주를 잊는 것은 그 땅을 차지한 후 풍족한 삶을 살게 될 때 생길 수 있는 일인데(10,11절), 이는 오늘날의 우리도 마찬가지다. 고난을 겪는 동안에는 그 고난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주님을 가까이하다가도 고난이 끝나고 풍요가 다가오면, 또한 그 풍요를 너무 오랫동안 만끽하다 보면 누구라도 주님을 잊으려는 유혹을 받게 된다. 처음에는 풍요에 대해 감사하겠지만, 나중에는 그 풍요가 자기 자신의 힘으로 이룬 것이라 생각한다. 누가복음 12장의 어리석은 부자도 그렇게 생각했다.
10-12절은 약속임과 동시에 경고다. 아름다운 약속의 땅을 주시어 풍요를 누리게 하신다는 것은 아브라함 이래로 확실한 약속이다.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키신다. 반면 백성에게도 요구하신 것이 있으니, 그것은 하나님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잊지 말고 그분의 계명들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 특히 우상 숭배에 대한 경고를 강조하시는데,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따를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멸하실 것이라 하신다(14,15절). 그들이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이집트 땅, 즉 종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12절). 바로 그분이 이스라엘과 언약을 체결하셨다. 언약(covenant)의 개념을 다시 한 번 인식하라. 언약에서는 하나님과 백성 간의 의무 사항이 존재한다. 이 경우 하나님의 의무 사항은 그 땅에서 복을 주신다는 것이고, 백성의 의무 사항은 마음을 다해 율법을 열심히 지키는 것이다(17절).
특별히 16절에서는 『너희가 맛사에서 그분을 시험한 것같이,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말씀한다. 이 사건은 출애굽기 17장에서 르피딤에 이르렀을 때 물이 없다고 불평한 사건이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해주셨다. 이스라엘은 물이 없음을 불평하면서, 모세에게 왜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왔냐고 하면서 돌을 던지려고까지 했다(출 17:3,4). 이들은 물에 대해 불평했지만, 정말 문제였던 것은 이집트로 돌아가고자 했던 것이다. 물에 대해서라면 하나님께서 이미 여러 차례 기적을 보여 주셨다. 나일 강을 피로 변하게 하셨고, 홍해를 가르셨으며, 마라에서는 쓴 물을 달게 해주셨다. 즉 하나님께서는 물로 심판하시기도 하고 구원하시기도 하며 마실 물을 주시기도 하신다. 그러한 분 앞에서 물에 대해 불평하는 것은 믿음이 없고 불평 잘하는 민족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본질적인 것은 이집트에서 나온 것 자체를 불평한 것이다. 그들이 이집트에서 어떤 마음으로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광야이기 때문이다. 광야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충만한 능력과 은혜를 누리고 있지만, 그들의 육신적인 눈에는 여전히 삭막한 광야만 보일 뿐이다. 출애굽기 17:7은 『그가 그곳의 이름을 맛사와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기 때문이요, 이는 그들이 주를 시험하여 말하기를 "주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기 때문이라.』고 기록한다.
반면 하나님께서는 12절과 같은 말씀을 지속적으로 하고 계신다. 『너는 주의하여 이집트 땅, 종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를 잊지 말지니라.』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나오면서 민족적으로 탄생했고, 민족적으로 선택받았고, 조상에게 하신 약속의 땅을 얻게 되었고, 이방 신들로부터 구출받았다. 율법을 받고 위대한 민족이 되었다. 그들을 그렇게 위대하게 해주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그래서 더 이상 맛사에서와 같이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고, 오직 그분을 "잊지 말아야" 한다.

4. 율법의 의의(20-25절)
이스라엘은 언제까지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하는가? 후손들 대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20절부터는 후손들에게도 교육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이 본문은 율법이 무엇이냐는 본질적인 질문에 대해 해답을 주고 있다. 후손들이 율법의 규례들에 대해서, 『주 우리 하나님께서 아버지께 명령하신 증거들과 규례들과 명령들이 무엇을 의미하나이까?』(20절)라고 물으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파라오의 손에서 이끌어 이 땅을 주셨는가를 설명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노예였을 때 하나님께서 구출해 주셨는데(21절), 표적들과 이적들로 이끌어 주셨으며(22절), 조상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여 놓으셨기 때문에(23절)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즉 율법이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속하시어 그들에게 주신 언약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율법은 그 언약에 대한 구체적인 명령이다. 율법이 없으면 언약도 없고, 그들이 존재할 이유도 없다. 율법은 이스라엘을 존재하게 하는 그들의 정체성이다.

5. 행함으로 얻는 의(25절)
그뿐 아니라 율법은 그들의 "의"이기도 하다. 『만일 우리가 주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주 우리 하나님 앞에서 이 모든 계명들을 지켜 행하면, 그것이 우리의 의가 되리라』(25절). 물론 신약적인 개념으로 말하면 율법을 통해서는 의를 얻을 수 없지만(롬 3:20), 율법 자체는 충분히 의로운 것이다(롬 7:12). 그런데 여기서는 율법 자체보다도, 그 율법을 행한다면 의가 된다고 말씀하신다. 즉 율법은 행위에 따라 그 의로움이 결정된다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이 의롭게 되지 못했던 것은 율법을 따라 그 모든 계명들을 지켜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율법이 행위에 따른 언약임을 잘 보여 주는 구절이다(롬 2:13).
물론 이는 구약적 의를 말하는 것으로, 신약적인 의에는 당연히 이르지 못한다. 아무리 율법을 완벽히 지켜 행한다 한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따라잡을 수는 없다. 따라서 이 구절은 구약적인 의에 적용되어야 하며,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경륜에서 이것을 요구하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신약의 틀 속에 구약을 끼워 맞추어서, "구약에도 의는 율법으로 얻을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야 된다."라고 말하는 것은 지극히 잘못된 생각이다.

6. 시험을 물리치신 말씀(13,16절)
한편 신명기 6장에는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세 가지 시험을 받으셨을 때 물리치신 말씀이 두 구절이나 있다.
하나는 13절인데, 마태복음 4장에 따르면 세 번째 시험(누가복음 4장에서는 두 번째 시험), 즉 마귀가 예수님을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의 영광을 보여 주고, 자기에게 경배하면 이 모든 것들을 준다고 시험했을 때 물리치신 말씀이다(마 4:10). 『너는 주 너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지니라』(신 6:13).
또 하나는 16절인데, 마태복음 4장에서 두 번째 시험(누가복음 4장에서는 세 번째 시험), 즉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 했을 때 물리치신 말씀이다(마 4:7).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신 6:16).
나머지 하나는 8:3에 나와 있다. 바로 첫 번째 시험, 즉 돌로 빵을 만들라는 시험에서 물리치신 것(마 4:4)이다. 『이는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3).
이것은 서론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신명기라는 책이 상징적으로 말씀 자체를 가리킨다는 것을 잘 보여 주는 사실이다. 예수님께서는 세 번의 시험을 모두 신명기를 통해 물리치셨다. 그만큼 신명기는 오경("토라")의 핵심이다. 새로운 땅을 눈 앞에 둔 백성들에게 매우 실제적으로 주어진 언약임을 기억한다면, 신명기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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