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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의 시작 (여호수아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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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2년 11월호>

(여호수아 1장)

여호수아는 역사서를 시작하는 책이다. 신명기까지가 모세오경이고 여호수아부터 역사서이니(유대인들의 성경에서는 여호수아부터를 “전선지서”라 부른다), 여호수아는 구약성경에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책이다. 그렇지만 신명기와 단절된 책이 아니다. 여호수아 1:1은 『모세가 죽은 후...』로 시작하고 있어, 여호수아와 신명기의 연관성을 보여 준다. 즉 출애굽기에서 시작한 카나안 정복의 역사가 신명기를 거쳐 여호수아에서 완성이 되는 것이다. 출애굽기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위한 출발이요, 민수기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위한 과정이요, 레위기와 신명기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 혹은 들어가서 지켜야 할 규례들이요, 여호수아는 약속의 땅을 정복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모세에게 주신 명령을 여호수아가 성취하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새로운 임무를 맡은 것이 아니라, 모세의 임무를 이어받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떤 학자들은 여호수아를 포함해, 창세기부터 여섯 권을 “모세육경”이라 부르기까지 할 정도이다. (물론 우리가 구약성경을 새로 분류할 필요는 없다. 예수님께서도 모세오경은 별도로 구분해 주셨기 때문이다. - 눅 24:44)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는 새로운 시작의 책이다. 그 시작은 무엇보다도, 그들이 “그들의 땅”에서 갖는 새로운 역사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카나안 땅에 살았었지만 아직 그 땅을 “그들의 땅”이라 부를 정도로 소유하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자신을 타국인이라 고백했었다(창 23:4, 히 11:13). 그는 약속만 받았을 뿐이다. 창세기의 마지막과 출애굽기의 시작은 이집트에서의 유대인들의 역사이며, 그 이후부터는 광야에서의 그들의 역사이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그들의 땅”에서의 그들의 역사이다.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상태에서의 새로운 역사이다. 그것이 중요하다. 이는 예표적으로도 중요한데, 왜냐하면 여호수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서, 예수님께서 천년왕국이라는 새로운 땅으로 그 백성들을 이끄시고 들어가시는 일을 예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천년왕국은 이전 시대를 종결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시대이다. 예수님께서 직접 통치하시는 왕국, 구약의 모든 예언들을 성취시키어 새로운 역사를 도래시키는 정말로 새로운 시대이다. 여호수아는 바로 그 일에 대한 그림자로서, 유대인들에게 새로운 역사를 시작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호수아라는 인물을 통해 볼 수 있는 예표는 매우 중요하다. 말했듯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인데, 이는 그 이름에서도 확인될 수 있는 바 “여호수아”라는 말 자체가 “예수”라는 말이다. 그 이름은 “구원”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세주이시기 때문이다. 여호수아도 그 민족을 카나안 땅으로 들여옴으로써, 이집트에서 탈출시킨 민족적 구원을 완성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안식의 천 년”(천년왕국)으로 이끄시는 모습을 예표하기 때문에 사도행전 7:45에서는 여호수아를 아예 “예수”로 기록하기도 한다.
영적인 의미도 있다. 모세는 율법을 가져다 주었고, 여호수아는 그 율법을 가지고 민족의 역사를 시작했다. 모세는 이미 가고 없지만, 여호수아의 손에는 율법책, 즉 “말씀”이 들려 있었다. 여호수아서는 “말씀”을 가지고 시작하는 역사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역시 “말씀”으로 불리신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육체로 우리 곁에 계시진 않지만,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그분과 구체적으로 동행한다. 하나님께서도 여호수아에게 “율법책”(즉 말씀)을 떠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수 1:7-8). 그런 의미에서 여호수아서는 말씀과 함께하는 성도들의 삶을 보여 주기도 하는 것이다.
또 우리는 여호수아가 전쟁으로 그 땅을 차지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카나안 땅이 안식의 땅이라면, 영적 견지에서 성도들이 이 세상 고난을 끝내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것을 예표할 것이다. 찬송가에서도 “요단 강을 건너...” 등의 노랫말이 많은데, 그것은 성도들이 죽어서 주님 앞에 가는 것을 묘사한다. 하지만 그것은 “광야의 고난을 끝내고 요단 강 건너 안식의 땅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에 대해서만 예표이다. 카나안 땅을 차지하는 과정에 대해서는 전혀 “하늘나라”에 대한 예표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정복으로 안식을 차지했지만, 우리는 은혜로 안식을 얻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적 전쟁의 결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게 구원을 얻는다면 그것은 행위 구원이 된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영적 전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이겨 주셨다. 우리는 그분이 승리하신 공로에 기대서 쉬면 된다. 오히려 카나안의 정복은 성도들의 삶에서 영적 전쟁으로 차지해 나가야 할 “유업들”을 예표한다. 카나안 땅은 이스라엘 각 지파들에게 유업으로 주어졌고, 그들은 지속적으로 그 거민들을 몰아냄으로써 그 유업을 차지하고 또 지켜야 했다. 우리 역시 주님을 위해 싸워 나가며 우리에게 주어진 영적인 영역들을 확장시킨다. 그 영역들은 각자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주어진 사역의 실제적인 영역일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유업을 더 차지해 나가는 것이다.
이와 같이 여호수아서는,
1) 역사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새 역사를 시작하는 책이고,
2) 교리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 년의 안식을 주시는 것을 예표하는 책이며,
3) 영적으로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영적 전쟁을 치름으로써 각자에게 주어진 유업을 차지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책이다.
자, 이러한 것들을 염두에 두고 여호수아서라는 중요한 역사서를 연구해 보자.

이 책의 저자는 여호수아 자신이고, 다만 그의 죽음을 다루는 24장의 일부는 그가 죽은 후 누군가가 추가로 기록한 것이다. 이는 마치 신명기를 모세가 기록했으나, 모세의 죽음을 다룬 신명기 34장의 일부는 여호수아가 기록한 것과 같다. 그러나 추가된 부분도 다른 부분과 똑같은 권위의 “성경”이다. 어차피 성경의 모든 부분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감으로 기록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단지 도구로 쓰임받았을 뿐이다.
참고로 여호수아서는 B.C. 15세기 중엽에 일어난 사건이다. 많은 고고학자들은 이 책의 사건들을 B.C. 13세기로 잡는데, 그때는 필리스티아인들이 이스라엘 서남해안에 대규모로 이주한 때이다. 학자들이 여호수아의 연대를 200년 뒤로 물리는 이유는, 이스라엘로 그 땅의 주인이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스라엘과 필리스티아가 그 땅에 같은 시기에 이주했다, 혹은 필리스티아가 먼저 이주했다고 말함으로써, 그 땅의 주인을 필리스티아(팔레스타인)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성경의 연대를 세밀하게 계산하거나 혹은 고고학적 증거를 보더라도 여호수아의 연대는 B.C. 15세기가 맞다. 그 땅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주신 유업인 것이다.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의 사역 시작(1장)


1) 모세를 이은 여호수아(1-4절)
여호수아서는 『그때 주의 종 모세가 죽은 후...』(1절)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는 여호수아 사역의 시점을 보여 줌과 동시에, 그가 모세의 뒤를 이어 사역하는 후계자라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나 2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와 이 모든 백성은... 그 땅으로 가라.』 이것은 이제 모세가 죽었으니 그들이 그 땅에 들어갈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모세는 므리바 물에서의 죄 때문에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모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들어갈 수 없었으며, 이제 죽었기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영적인 진리를 보게 해준다. 즉 모세는 율법을 상징하는데, 율법은 우리를 안식으로 이끌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를 안식으로 이끄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다.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것은 모세(율법)가 아니라 여호수아(예수)이다.
그래도 여호수아의 사역 자체는 모세의 사역의 연장이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모세에게 말한 대로』 그 땅을 주신다고 하셨고(3절), 여호수아의 권위에 대해 말씀하실 때도 『내가 모세와 함께하였던 것과 같이, 내가 너와도 함께하리니』(5절)라고 말씀하셨다. 모세를 통해 약속하셨던 땅의 경계는 4절에 나온다.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유프라테스 강에 이르는 힛인의 온 땅과 해지는 편 큰 바다에 이르기까지 너희의 지경이 되리라.』 이 땅은 꽤 넓은 땅이다. 오늘날 이스라엘 국가의 경계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광야는 카데스바네아 및 시내 광야를 말하고, 레바논은 투로와 시돈이 있는 페니키아 지역을 말한다. 유프라테스 강은 말할 것도 없고, “힛인의 온 땅”이라 했는데, 이는 카나안 땅에 약간 잔류했던 힛인들에 한정되지 않는다. 힛인들(히타이트)은 소아시아 동쪽에 꽤 큰 제국을 이뤘었으며, 한때는 유프라테스 하류인 바빌론 지역까지 점령했었다. “힛인의 온 땅”은 이 모든 지역을 포함하는 것으로,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모두 차지할 땅이다.

2) 강건하고 담대하라(5-18절)
하나님께서는 카나안 땅으로 보내는 명령을 하시면서 먼저 확고한 약속을 해주신다. 모세와 함께하셨던 것처럼 여호수아와도 함께하신다고 말씀하시면서, 『내가 너를 단념하지 아니하고 버리지 아니하리라.』(5절)고 하셨다. 이 말씀은 이미 신명기 31:6,8에서 모세를 통해 말씀하신 바다. 이는 또한 히브리서 13:5에도 인용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 이루시기로 정하신 일은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 일을 위해 누군가를 택했다면 그 역시 버리지 않으신다. 지금 여호수아는 백성을 이끌고 그 땅에 들어가야 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 일은 하나님의 경륜적 계획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당연히 포기하실 이유가 없다. 특히 신약적으로 이 말씀은 “구원의 영원한 보장”의 교리를 보여 준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사신 바 된 성도들을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요 6:37)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강건하고 담대하라.”는 명령이 나오는데, 1장에서 총 네 번 나온다. 그 중 세 번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이고, 한 번은 백성들이 한 말이다. 그 각각의 상황을 보면, 이 명령이 얼마나 확실한 약속의 바탕 위에 주어졌는지 알 수 있다. 왜 그가 강건하고 담대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1) 『강건하고 담대하라』(6절). 왜냐하면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땅을 백성들에게 유업으로 나눠 줄 것이기 때문이다.
2) 『오직 강건하고 아주 담대하여』(7절). 왜냐하면 율법(말씀)대로 행할 때 여호수아는 번영할 것이기 때문이다.
3) 『강건하고 담대하라』(9절). 왜냐하면 여호수아가 어딜 가든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4) 『강건하시고 담대하소서』(18절, 백성들의 말). 왜냐하면 모든 백성들이 여호수아를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신다는 것이고, 둘째는 말씀이 내 힘의 근원이 되며, 셋째는 어딜 가도 하나님 안에서 안전함을 얻고, 넷째는 그렇게 할 때 사람들 앞에 우뚝 서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 강건하고 담대할 수 있다. 그러한 성도는 세상을 향해 두려움이 없다.
이 모든 것에 율법(말씀)대로 행하라는 것이 강조된다. 8절은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주야로 그 안에 있는 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모든 것대로 지켜 행하라.』고 말씀한다.
1)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지 않게 하라.” 항상 가까이 두고 읽으라.
2) 그 말씀들을 “묵상하라.” 겉으로만 읽지 말고 깊이 소화하여 완전히 내 것이 되게 하라.
3) 기록된 모든 말씀대로 “지켜 행하라.” 말씀을 믿고 의지한 사람은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성경은 우리 교리적 믿음에만 최종권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실행”에도 최종권위가 되는 것이다.
이제 여호수아는 새 땅을 향해 진군함에 있어서 모든 것을 갖춘 셈이다. 이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이제 여호수아는 관원들을 통해 백성들에게 진군할 준비를 시킨다. 『식량을 준비하라. 삼 일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그 땅을 가서 차지할 것이라』(11절). “삼 일 안에”(!)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3일 안에! 모세의 애곡 기간이 지나자마자 3일 안에!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다. 식량을 준비하라(11절). 군인들도 모으라. 특히 요단 동편에 자리잡은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의 용사들을 앞세우라(12-16절). 백성들도 여호수아에게 충성을 서약했다(16-18절).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약속이 확고히 주어졌다. 이렇게 모든 것이 갖춰진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담대함과 추진력이다. 이제 다음 장부터 여호수아는 그것을 행하게 된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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