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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땅에서 지켜야 할 법들 3 (신명기 17-1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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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9년 02월호>


17장에서 이어지는 법들도 앞에서와 같이 새 땅에 들어가서 지켜야 할 법들이다. 내용을 말한다면 앞 장에서 언급한 규례들을 반복하지만, 여기서는 특별히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즉 왕이나 재판관, 제사장, 선지자 등에 관한 관점으로 규례들을 제시한다.

1. 우상 숭배의 금지 (17:1-7; 18:9-14)

(1) 하늘의 군상을 섬기는 자들(17:1-7)
율법에서 우상 숭배라는 주제는 여러 번에 걸쳐 강조된다. 바로 앞인 신명기 16:20,21에서는 아세라와 형상들을 금하셨는데, 여기 17:2-7에서는 하늘의 군상들을 섬기는 일을 금하신다. 그리고 그러한 신들을 섬긴 자들을 돌로 쳐죽이라고 말씀하신다(5절).
하나님께서는 왜 그토록 가혹하게 명하셨을까? 그것은 우상 숭배자 개인의 도덕성 문제가 아니었다. 우상 숭배자들은 그 죄를 이스라엘에게 전파함으로써, 이스라엘을 하나님과의 언약에서 떨어져 나가게 하는 자들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는 백성이다. 율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그런데 우상 숭배자들은 그 고귀한 언약 체계를 기초부터 파괴하는 자들이다.
특히 여기에 제시된 우상들은 태양, 달 및 하늘의 여러 군상들이다(3절). 창세기 3:14에 따르면 해와 달을 포함한 하늘의 군상들은 "징조와 계절과 날짜와 연도를 위해" 존재한다. 달력 체계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절기들은 바로 이 하늘의 군상들을 따라 이루어졌는데, 이는 농경 사회에서 필수적인 것들이다.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농경민들은 하늘의 군상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것들을 신들로 섬긴다는 것이다.
태양과 달은 고대의 모든 농경 사회의 신들이었다. 카나안 역시 농경 사회였으므로 이러한 신들을 섬겼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출애굽과 동시에 40년 동안 유목민과 같은 생활을 했었고, 카나안이라는 농경 문화에 쉽게 동화될 수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어느 시대에나 농경 문화가 유목 문화보다 우월한 법이다. 그들에게는 풍요로운 곡물이 있고, 살기 좋은 집들이 있으며, 발달된 도시 문명이 있다. 이스라엘이 신앙으로 무장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이방 문화에 쉽게 젖어드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실제로 그들은 머지않아 이러한 이방 문화와 더불어 그들 종교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여러모로 훈련을 시켜가며 하나님과 그 백성 간의 독특한 언약을 맺어 주셨고, 그 땅을 바로 앞에 둔 신명기 상황에서 그 언약을 확실하게 상기시켜 주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언약은 소중했다. 하나님께서는 이 작은 백성 이스라엘을 통해 그분의 위대한 신정국가를 세우실 것이었고, 온 세상의 구세주를 보내실 것이었다. 온 땅을 향한 그분의 위대한 계획을 이루시려면 이 언약이 굳게 세워지는 것은 필수 사항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언약을 방해하는 자들은 극형을 면치 못했던 것이다.

(2) 이방인들의 가증한 죄들(18:9-14)
우상 숭배에 대해서는 18장에서 한 번 더 강조된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강조점은 그러한 우상 숭배의 기원인 이방인들이다. 『네가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네게 주시는 땅으로 들어가거든 너는 그들 민족들의 가증함을 따라 행하는 것을 배우지 말 것이요』(18:9, 참조. 레 18:3).
카나안 땅의 우상 숭배 풍습은 너무 악했다. 17장에서는 자연 숭배 종교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라면(animism), 여기서는 무당들에 대해 말씀하신다(Shamanism). 무당이란 특정 신 혹은 영과 인간을 중재하는 그 종교의 사제다. 그리고 그는 무속 행위를 통해 접신한다. 그들은 점치는 자, 때를 살피는 자, 마법사, 무당, 마술사, 부리는 영들에게 묻는 자(접신자), 강신술사 등으로 제시된다(10,11절). 이 모두가 무속 행위를 하는 자들이다. 점치는 자나 때를 살피는 자들은 구체적인 환경, 특히 어떤 사람과 연관된 연월일시 등을 계산함으로써 그의 운명을 점치는 행위를 하는 자들이다. 마법사나 마술사 등은 초자연적인 기적을 보여 주며 마귀를 숭배하고, 무당, 접신자, 강신술사 등은 구체적인 접신행위를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 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무속 행위들이다. 우상 숭배에는 동서고금이 없다. 모두가 사탄의 일을 수행하는 동일한 마귀들이므로 고대 카나안에서 행해지던 죄악들은 오늘 우리 사회 가운데서도 동일하게 행해진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들을 "가증함"이라고 규정하셨다. 인간들은 풍습이니 문화니 종교니 하면서 좋게 포장하지만, 결국은 지옥에 던져질 가증함들이다.
특히 카나안의 우상 숭배는 가증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데, 그것은 곧 인신제사(human sacrifice)이다. "자기 아들이나 자기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자"(10절)는 당시 카나안의 인신제사 풍습을 잘 보여 준다. 그들은 무당들의 무속 행위에 정신을 잃고 자식을 불에 태워 희생제사를 드린다. 하나님께서는 이 행위를 철저히 미워하셨으며, 율법에는 수많은 희생제사가 있지만 인신제사는 없다. 첫태생을 바칠 때면 반드시 어린양으로 대속하게 되어 있었다(출 13:13). 재판관 입다가 자기 딸을 희생제물로 바쳤지만(판 11:30-40), 그것은 전혀 하나님의 뜻이 아니요, 입다가 율법에 무지했던 결과이다. 입다는 그의 주변 지역에 있던 암몬 족속에게서 그런 풍습을 보았을 것이다. 암몬의 몰렉 종교는 인신제사로 유명한 종교였다(레 18:21; 20:2). 그러나 이러한 죄악은 이스라엘과 유다에서 종종 있었으며, 유다 왕 아하스와 므낫세는 직접 이 일을 행하기도 했다(왕하 16:3; 21:6).
이것은 이방인들이 왜 멸망해야 했는가를 보여 준다. 이방인들은 단순한 우상 숭배자가 아니라, 이처럼 극악무도한 자들이었다. 레위기 18장에 따르면 성적 범죄 또한 상당히 변태적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땅의 죄악들을 그 죄인들과 더불어 쓸어 버리신 다음 하나님의 백성을 심어 놓기 원하셨던 것이다.

2. 재판관과 왕들 (17:8-20)

(1) 재판관들(17:8-13)
재판관들에 대해서도 16장 끝부분에 말씀하신 바 있다(16:18-20). 16장에서는 재판관들이 공의에 따라 재판할 것을 명하셨으며, 여기 17장에서는 백성들에게 그 재판관들의 권위에 복종하라고 명령하신다.
8,9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네가 재판하기에 너무 어려운 문제가 생기거든 너는 일어나 주 너의 하나님께서 선정하실 곳으로 올라가서 레위인 제사장들과 그 당시의 재판관에게 나와서 물으라...』 이것은 지역 재판관들이 다루기 힘든 문제들은 중앙 재판관들에게 물으라는 말씀이다. 출애굽기 18장에서 모세 역시 사소한 일들은 다른 재판관들을 세워 맡기고 중요한 일들만 직접 처리한 바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이 되는 부분은 "주 너의 하나님께서 선정하실 곳"이다. 10절에서도 "주께서 선정하실 곳"을 말씀하여, 12장 이래로 강조하셨던(12:5,11,14) 하나님의 특별한 장소를 계속 강조한다. 그곳은 두말할 나위 없이 예루살렘 성전이다. 성전이 세워지기 전까지는 성막이 존재하던 장소가 될 것이다. 그곳은 하나님의 처소이며,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르는 곳으로서, 하나님께서는 거기에서 제사장들을 통해 그분의 뜻을 계시하신다.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재판관의 임무는 "율법의 판결에 따라서" 판단하는 것이다(11절). 그는 자기 자신의 뜻과 생각으로 재판해서는 안 되며, 따라서 그 스스로 율법에 박식하고 충실한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후에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범죄했을 때, 백성들만 우상 숭배하고 타락한 것이 아니라 왕, 제사장, 선지자 등 모든 지도자들이 타락했었다. 특히 재판관들이 타락했는데, 그들은 이익을 좇아 부자들과 권세자들을 위해 재판했고, 율법과 공의는 철저히 버렸었다(호 7:7, 미 7:3 등). 다른 것은 몰라도 율법과 공의가 바로 서지 못하면 이스라엘의 존립은 매우 위태해진다.

(2) 왕들(17:14-20)
사울이 왕으로 선임되기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스라엘에 왕정을 계획해 놓으셨다.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은 신정통치왕국이기 때문에 누군가 왕으로 선임되는 것은 당연하다. 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이 되실 것이지만 그 전까지는 인간 왕들이 선임되어야 한다. 따라서 사무엘상 8장에서 백성들이 왕을 요구한 것은, 왕정 자체를 구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인들과 같은 방식으로 왕정을 구했기 때문에 잘못인 것이다.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다윗이라는 인물을 예비해 놓고 계셨는데, 백성들이 성급하게 구함으로 인해 사울이라는 불법적인 왕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향후 왕정이 들어서게 될 때 왕은 어떤 사람이 해야 하는지, 왕은 어떻게 행해햐 하는지 그 규정을 정해 주고 계신다.
첫째, 왕은 타국인이 아니라 "네 형제들 가운데서" 세워져야 한다(15절). 즉 이방인 가운데서 왕을 세우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구별된 독특한 백성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창세기 49:10에 따르면 다른 지파가 아니라 유다 지파에서 왕이 나와야 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왕조는 다윗 왕조이며, 다윗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예언을 완벽히 이루실 것이다.
둘째, 왕은 말들을 많이 번식시키지 말아야 하며, 말을 번식시킬 목적으로 그 백성을 이집트로 돌려보내서도 안 된다(16절). 이집트(세상)의 군사력에 의존하면 안 된다. 히스키야왕은 앗시리아 왕 사르곤이나 산헤립이 침공해 왔을 때 이집트를 의지하려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사야의 경고를 받고(사 20:4; 30:7) 하나님만을 의지했더니,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포위한 산헤립의 군대 18만 5천 명을 하룻밤에 멸망시키셨다(왕하 19:35).
셋째, 왕은 아내들을 많이 두지 말아야 한다(17절). 왜냐하면 아내들은 왕의 마음을 하나님으로부터 돌려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방 아내들은 왕의 마음을 이방 신들에게 돌이킬 것이다. 솔로몬은 바로 이 부분에서 실패했다.
넷째, 자기에게 은과 금을 크게 늘리지 말아야 한다(17절). 즉 재물을 필요 이상으로 축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축재는 경제력과 더불어 문화의 찬란함을 가져온다. 하지만 그것은 세상적 즐거움을 맛보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떠나게 한다. 이스라엘은 언약의 백성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번영은 이방 왕국들의 번영과 같은 관점에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세상 왕국들은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문화적 업적으로 위대해지려고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것으로 위대해져야 한다. 왜냐하면 진정 그들을 위대하게 해주시고 그들에게 진정한 번영을 가져다 주시는 분은 주 그들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다섯째,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대해야 한다. 『...그는 레위인 제사장들 앞에 있는 책에서 이 율법서 한 권을 베껴 그와 함께 두고 평생 동안 그것을 읽어서 그가 주 그의 하나님을 두려워함을 배우게 하고 이 율법의 모든 말씀들과 이러한 규례들을 지켜 그것들을 행하게 할지니라』(18,19절). 통치자의 지혜는 위로부터 임해야 한다. 특히 이스라엘은 신정국가로서, 하나님의 지혜로 왕국을 통치해야 한다. 솔로몬은 처음에는 하나님의 지혜로 왕국을 통치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지혜를 사용함에 있어서 율법을 기반으로 삼지 않았다. 율법을 기반으로 삼지 않는 지혜는 옳지 않다. 처음에 솔로몬은 위로부터 온 지혜를 받았었지만, 후에 그의 지혜는 땅에 속한 지혜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3. 제사장과 선지자 (18장)

(1) 레위인과 제사장들(18:1-8)
여기에서는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에 관한 규례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유업을 다루고 있다. 그들은 다른 지파들과 같이 땅의 유업이 없기에, "주의 제물과 그분의 유업으로" 먹어야 한다(1절). 왜냐하면 주께서 그들의 유업이 되시기 때문이다(2절). 대신 각 지파 가운데 그들이 거주하는 성읍과 그 주변 들판만 받는다. 그 성읍들은 총 48개의 성읍이며(민 35:7), 여섯 개의 도피성읍도 그 48개 중에 포함된다. 레위인과 제사장들은 각 지파 가운데 살면서 그들에게 영적인 도움을 주며 실제적 부양을 받게 된다. 그리고 누구라도 하나님께 특별한 서원을 하게 되면 예루살렘 성전("주께서 선정하실 곳", 6절)에 와서 봉사할 수 있다.

(2) 위대한 선지자(18:15:22)
18:9-14에서는 무당들에게 경청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들은 이방 종교 가운데 선지자 같은 존재들이다. 대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지자에게 경청해야 한다.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네 가운데로부터 네 형제들 가운데서 나와 같은 한 선지자를 네게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에게 경청할지니라』(15절). 여기서 "나와 같은 한 선지자," 즉 모세와 같은 한 선지자는 일반적인 선지자라기보다는 진정한 선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위대한 예언이다.
일단 <킹제임스성경>에서 "선지자"(Prophet)라는 단어를 고유명사처럼 특수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는 일반 선지자들 중 하나가 아니라 "바로 그 선지자"를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의 임무를 띠셨다는 것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라는 선지자를 말씀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초림 때 선지자셨다(마 13:57; 21:11). 그분은 "갈릴리 선지자"시다. 선지자로서 설교하시고, 선지자로서 고난을 당하셨다. 특별히 여기서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 제시된다. 모세는 이스라엘에 민족적 구속을 가져온 인물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온 세상 죄인들을 구속하시는 분이시다. 모세는 기적을 일으키는 선지자였고, 예수님께서도 기적을 일으키는 선지자셨다. 모세는 율법을 가져다 주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은혜와 진리를 가져다 주셨다. 모세는 여러모로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는 선지자였다.
선지자(prophet,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언하는 사람들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하셨으며 많은 선지자들이 그랬다. 선지자가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로 설교할 때 그의 말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즉 선지자란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라는 말인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요한복음에서 여러번에 걸쳐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분임을 강조하셨다(요 3:31,34; 5:30; 6:29; 7:29; 8:16 등).
그런데 여기서 선지자라는 것은 단순히 예언을 하는 자 이상으로 "중보자"의 개념까지 갖는다. 왜냐하면 모세와 같은 선지자라 할 때, 그것은 16절에서 말씀하시는 바 시내산 사건을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그 위대한 광경을 너무나 두려워했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백성들과 소통하셨다. 마찬가지로 온 세상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는 두려운 일이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그분을 통해 죄인들과 소통하셨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께 이르는 길이며(요 14:6), 그분 외에 죄사함과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행 4:12).
그분은 지금 더 이상 선지자로 계시지 않는다. 지금 그분은 대제사장으로서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며, 미래에는 왕으로 재림하실 것이다. 그러나 선지자로서 행하신 그분의 말씀은 지금도 영원하신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그 선지자"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분의 말씀에 경청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하실 것이기 때문이다(신 18:19).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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