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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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막 집이 무너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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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8년 08월호>

우리가 아는 것은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큰 집, 즉 손으로 짓지 아니한 하늘들에 있는 영원한 집이 있다는 것이라(고후 5:1).

우리나라에는 55,767개의 교회가 있는데, 이는 김밥집이나(46,221개) 편의점(26,874개)보다 많은 수치다["사업체 수"에 관한 2014년 통계청 자료]. 목사를 비롯한 교역자들의 수도 전체 11만 명에 이르고, 400여 개의 신학 교육 기관이 있으며 매년 7천 명 이상의 졸업생들이 배출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중에 위 구절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유가 무엇인가? 대부분 성경 공부에 관한 한 게으르고 열매 없는 자들로서(벧후 1:8) 하나님의 말씀에는 완전히 무지하기 때문이다. 목사들은 교인들을 무지하게 만들고, 교인들은 무지한 상태로 남아 있기를 좋아한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상고하라."(요 5:39), "선한 교리의 말씀들로 양육을 받으라."(딤전 4:6), "진리의 지식에 이르라."(딤전 2:4),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안에서 자라가라."(벧후 3:18),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하라."(딤후 2:15)라고 반복적으로 명령하시지만, 진리에 관심조차 없는 이들은 도무지 "공부"를 하지 않는다.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은 언젠가 무너지게 되어 있다. 장막은 몸을 나타내기에(벧후 1:13,14), 장막 집이 무너진다는 것은 몸에서 떠나는 것(고후 5:8), 곧 죽음을 의미한다. 이 집이 무너지면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큰 집으로 들어간다. 말하자면 우리가 죽을 때 우리의 혼은 흙으로 만들어진 집(몸)을 떠나 새집으로 이사하게 되는데, 본문에서는 이 집을 가리켜 하늘들에 있는 영원한 집이라고 말씀한다. 주의할 것은, 이 집은 그리스도인들이 휴거 때 입을 "구속받은 몸"이나 영원에서 거주할 "새 예루살렘"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집은 우리가 죽는 순간 어떤 시간적인 간격 없이 "즉시로" 입게 될 몸이기 때문이다. 육신의 몸이 죽은 이후부터 몸의 구속이 일어날 때까지, 그사이에 하늘나라에서 부활을 기다리며 입게 될 "혼적인 몸"(soulish body)인 것이다. 그런데 이 몸은 "큰 집"으로 불린다. 그리스도인이 장차 새 예루살렘에서 거할 집이 "방"(room) 정도가 아니라 "저택"(mansion, 요 14:2) 정도의 큰 집인 것처럼, 우리가 죽은 이후 즉시로 입게 될 집 역시 하나님께서 지으신 "큰 집"(building, 1절)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죽는 순간 곧바로 우리를 입히실 커다란 무언가를 예비해 두신 것이다.

바울은 하루속히 이 집으로 옷입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정녕 우리가 여기에서 신음하며 하늘에서 오는 우리의 집으로 옷입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나』(고후 5:2). 쉽게 말해서 일종의 "빨리 죽고 싶은 욕망"(빌 1:23)을 지니고 살았던 것이다. 이것은 죽음이 두려워 평생 노예로 속박되어 있는 죄인들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욕망이다. 하지만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죽을 때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기에 하루라도 더 빨리 이 몸을 떠나 주님과 함께 있고 싶어 한다(고후 5:8). "죽은 그리스도인이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보다 훨씬 낫다!" 왜냐하면 이곳 지상에서는 죄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로 "신음"하며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오,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해 낼 것인가?』(롬 7:24)라고 부르짖는다. 이 신음을 종식시킬 수 있는 방법은 하늘에서 오는 집, 곧 혼적인 몸으로 옷입거나(죽음) 휴거가 속히 이뤄지는 것뿐이다. 『그들뿐만 아니라 성령의 첫열매들을 가진 우리까지도 속으로 신음하며 양자 되는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느니라』(롬 8:23). "혼적인 몸"이나 "구속받은 몸"은 현재 우리가 입고 있는 육신의 몸과 달리 어떤 잘못이나 흠이나 죄가 있는지 노심초사할 필요가 없다. 마귀와 죄의 권세에 사로잡혀 있지도 않으며, 모든 고난과 위험과 죄로부터 완전히 단절된다. 배고픔도 아픔도 슬픔도 전혀 없는 몸인 것이다. 만일 주님께서 "지금 무엇을 구하든지 즉시 이루어 줄 테니 내가 네게 줄 것을 구하라."(왕상 3:5)라고 말씀하신다면, 나는 사도 요한이 그랬던 것처럼 "주님, 빨리 오십시오."라고 말씀드릴 것이다. 예수님께서 돌아오실 때 해결되지 않을 문제는 단 한 가지도 없기 때문이다. 럭크만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는 더 이상 고통도 슬픔도 없고, 청구서도 세금도 없으며, 가정의 근심거리도 아이들과의 갈등도 없으며, 대머리도 없고 이가 흔들거릴 일도 없으며, 관절염도 백혈병도 없고, 담석도 궤양도 없으며, 창자에 이상이 생길 일도 없고 위가 불편하거나 뼈가 부러질 일도 없으며, 실의에 빠질 일도 관에 들어갈 일도 없으며, 처방전도 구급차도 없는 날이 올 것이다. 나는 오늘이라도 갈 준비가 되어 있다. 빠르면 빠를수록 더 좋다."

하지만 유념해야 할 것이 있으니, 곧 이런 소망을 가지되 벗은 채로 발견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옷입고 있다면 벗은 채로 발견되지 아니하리라』(고후 5:3). 여기에서 옷은 앞선 1,2절의 옷의 개념과 다르다. 다시 말해 성도가 죽을 때 하늘에서 오는 영원한 집인 혼적인 몸을 입되 그 위에 아무것도 걸칠 옷이 없는, 곧 벌거벗은 채로 발견될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계 3:18; 16:15). 요한계시록 19:8에서는 이 옷을 가리켜 "성도들의 의"인 "세마포"라고 말씀한다. 이 옷을 입으려면 인내로 고난을 견디며 신실하게 주님을 섬겨야 한다. 주님을 위해 올바른 동기로 섬기고 일한 정도에 따라, 벌거벗은 모습에서부터 정결하고 흰 세마포를 입은 모습에 이르기까지 각자가 입은 "옷의 등급"은 엄청난 차이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이상 "옷을 입는 것"과 연관된 진리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누구든지 구원받기 전에는 더러운 걸레(사 64:6)를 걸치고 있었다. ② 거듭나는 순간 걸레를 치우고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는다(롬 3:22, 갈 3:27). ③ 죽을 때는 하늘들에 있는 영원한 집, 곧 혼적인 몸을 옷입게 된다. 이것을 고린도후서 5:4은 『죽을 것이 생명에 의해서 삼켜지는 것』으로 설명한다. ④ 장차 휴거가 일어나게 되면 혼적인 몸을 넘어 구속받은 실제적인 몸을 입는다. 이에 대해 고린도전서 15:54에서는 『사망이 승리 속에 삼킨 바 되었느니라.』라고 말씀한다. ⑤ 구원받은 이후 주님을 위해 행한 선한 일들로 실제적인 의를 쌓았을 경우, 하나님께서는 그에 따른 합당한 보상으로 성도들의 의라고 불리는 옷 한 벌을 제공해 주신다. 이 옷을 입으려면 이 땅에서 열심히 주님을 섬겨야 한다. 선한 일들에 유념하여 진력하고(딛 3:8), 땅 위에 있는 지체를 죽이고(골 3:5-8), 어둠의 행위를 벗어 버리며 선한 일들로 옷입어야 하는 것이다(롬 13:12-14, 골 3:12). 이처럼 선한 일들을 통해 이루어진 의는 영원토록 남을 것인데(고후 9:9), 그 증거가 장차 입게 될 그 옷으로 드러날 것이다! 루이비통, 구찌, 샤넬, 롤렉스, 까르띠에, 프라다, 버버리, 마이클 코어스 등의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 외모를 치장하고 단장해 보라!(벧전 3:3) 그 끝은 시기와 증오, 상대적 박탈감과 상실감, 정신 병동과 병원 침대, 무덤 그리고 영원한 불못에서 옷입게 될 "벌레"로 귀결된다. 결단코 주님께서 오셨을 때 주께서 바라시는 모습을 보여 드리지 못하거나 주께서 바라시지 않는 모습을 보여 드리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권유하노라』(고후 5:11).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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