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지상강좌 분류

예수님을 잃어버린 “하나님의 어머니”

컨텐츠 정보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1년 06월호>

예수님을 잃어버린 “하나님의 어머니” ‧


삼위일체 논쟁과 관련하여 A.D. 431년에 열린 “에베소 공회”에서는 “네스토리우스 문제”가 심각하게 다루어졌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관한 문제였는데, 에베소 공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네스토리우스를 이단으로 정죄했다. 하지만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한 적이 없었다. 다만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가 아니다!”라고 주장했을 뿐이다. 이것은 성경적으로 올바른 주장이었지만, 소위 “영원한 처녀” 마리아를 “하늘의 여왕”으로 숭배하고 섬기는 로마카톨릭의 입장에서는 매우 듣기 거북한 발언이었다.


“마리아의 정체성”과 관련한 로마카톨릭의 주장은 이렇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낳은 모친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가 된다. 따라서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것이 된다.” 이것은 “궤변”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신 것은 옳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 마리아까지 하나님의 어머니가 되어야 할 논리가 성립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빛 가운데 거하시고 눈으로 볼 수 없으신”(딤전 6:16) 하나님을 낳은 것이 아니라 “육신으로 나타나신”(딤전 3:16) 하나님을 낳은 여인이었음에 주목해야 한다. 말하자면 “마리아”는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는 데 있어서 그 “몸”을 잉태하고 낳기 위한 하나의 “태”를 제공한 “인간 어머니”인 것이다.


한편 그 말도 안 되는 궤변으로 인해 전 세계 약 13억 명의 카톨릭교도들은 마리아를 “하늘의 여왕”으로 섬기고 있다. 로마카톨릭에서 발행한 잡지 <파티마의 십자군>에서는 마리아에 관해 이렇게 설명한다. “당신이 매일 묵주 기도를 드리게 되면 우리의 성모 마리아께서 당신을 지옥으로부터 구원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성모께서 그렇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가장 거룩하신 어머니께서 그 뱀의 머리를 부수실 것이다.” 1994년에 발행된 <카톨릭 교회 교리문답> 제966항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마침내 원죄의 모든 오염에서 보호를 받으신 순결한 동정녀는 그녀의 지상 삶이 끝났을 때 몸과 혼이 하늘의 영광을 입게 되었고 주께서는 만물 위의 여왕으로 마리아를 높이셨다.” 사실 이렇게 마리아를 “하늘의 여왕,” 곧 “여신”으로 숭배하는 신앙은 님롯의 어머니 세미라미스를 여신으로 숭배했던 고대 바빌론 종교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 가증한 우상 숭배를 따라 “하늘의 여왕”을 섬기다가 주 하나님을 격노케 하고 말았다(렘 7:18; 44:17,18).


이처럼 바빌론 종교를 따르는 로마카톨릭은 마리아에게 “죄 없는 여인”이나 “영원한 처녀성을 지닌 여인,” “변호인,” “중보자,” “공동 구속자,” “거룩한 은혜의 어머니,” “창조주 어머니,” “정의의 거울,” “계명성,” “천사들의 여왕,” “선지자들의 여왕,” “화평의 여왕” 등의 칭호를 붙이면서 그녀를 숭배한다. 일반적으로 추기경이 되면 소위 “문장”(紋章)이란 것을 받는데,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문장을 보면 “원죄 없이 잉태하신 성모 마리아를 수호성인으로 모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별 모양의 그림이 그려져 있고, 염수정 추기경의 문장에도 “우리나라를 보호해 주시는 성모 마리아와 종말에 구원의 완성을 이루실 예수님”을 상징하는 별 모양이 그려져 있으며, 고(故) 정진석 추기경의 문장에도 “우리나라를 보호하는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세 개의 별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녀를 “사탄의 신부”라고 부르는데(계 17장), 이는 그녀가 성경에서 말씀하는 “평범한 인간 마리아”가 아니라 고대 이교도 바빌론 종교에서 비롯된 “하늘의 여왕”이기 때문이다.


한편 성경에서 예수님께서는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부르시면서 마리아를 칭송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셨다. 심지어 “어머니”라고 부르시지도 않았다. 오히려 “여인이여”라고 부르셨을 뿐인데, 한 번은 카나의 혼인식에서 “포도주”(피를 상징함)를 요구하는 모친 마리아에게 『나의 때[죽으실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요 2:4)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렇게 부르셨고, 다른 한 번은 그때가 되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며 죽으시는 가운데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마리아를 의탁하시면서 그렇게 부르신 것이다(요 19:26).


본래 카톨릭교도였던 피터 럭크만 목사는, 휴 파일 목사가 전해 준 복음을 믿고 구원받았을 무렵에, 그동안 자신을 가르쳐 온 설리번 신부에게 카톨릭 초신자 과정을 위한 “마지막 수업”을 받고 있었다. 당시 그의 장모가 보내 준 <스코필드주석성경>을 들고 수업에 참석한 럭크만 목사는 신부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신부님, 유독 신경이 쓰이는 한 가지 사실이 있는데요, 무슨 영문인지 성경 어디에도 마리아를 경배해야 한다는 내용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혹시 마리아를 경배하라는 내용이 성경 어디에 나오나요?” 그러자 신부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네는 요한복음 19장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던 때의 상황을 기억하는가? 당시 예수님이 제자 요한에게 ‘네 어머니를 보라!’고 말씀하셨고, 모친 마리아에게는 ‘당신의 아들을 보소서!’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는가 말일세.” “네, 어렴풋이나마 기억납니다.” 신부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자, 그렇게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시면서 마지막 유언으로 몇 마디 말씀을 남기셨다면, 당연히 그 말씀들 속에는 그저 ‘그 여인을 집으로 모시고 가라.’는 정도가 아닌 그 이상의 더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지 않겠는가? 여기서 ‘더 중요한 의미’란 이런 것이라네. ‘마리아여, 나를 따르는 사람은 누구나 당신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은 분명 이런 의미로 말씀하신 것이지. 그러니까 럭크만 자네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마리아도 따라야 하는 거야. 왜냐하면 자네는 마리아의 아들들 중 하나이니까.” 그러자 럭크만 목사는 이렇게 물었다. “하지만 도대체 그것이 마리아를 경배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죠?” 『그러나 누구든지 무지하다면 무지하게 내버려 두라』(고전 14:38).


교황을 위시하여 성경 지식에 관한 한 무지의 극치를 드러내는 로마카톨릭은,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처럼 죄 없이 태어나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죄 없는 구주로 태어나시려면 그분을 낳은 어머니 역시 죄 없는 여인이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마리아를 낳은 어머니”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죄 없는 마리아를 낳으려면 마리아의 어머니 역시 죄 없는 여인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그녀는 “하나님의 할머니”가 된다.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로 만드는 순간 “하나님의 할머니,” “하나님의 증조할머니나 고조할머니” 등도 만들어져야 하는 해괴한 논리가 성립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이브”는 죄가 없는 여인이 되어야 하고, 그녀는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은 것이 되고 만다. 하지만 성경에 무지한 그들은 “죄의 씨”를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로부터 물려받는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이런 연유로 한 사람에 의하여 죄가 세상으로 들어오고 그 죄에 의하여 사망이 왔으니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었느니라』(롬 5:12). 이 구절에서 죄와 사망을 전달시킨 최초의 장본인은 한 “사람”(man), 곧 “남자”(man)로서 “이브”가 아닌 “아담”이었다. 모든 인류는 아담이 타락한 이후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모습, 곧 “아담의 모습” 또는 “아담의 형상”대로 태어나게 된다(창 5:3). 또한 그들은 마리아를 “영원한 처녀”로 만들려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녀와 정혼한 “요셉” 역시 “영원한 총각”이 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로마카톨릭만큼 그렇게 성경에 무지한 집단도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전지전능해야 할 “하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자기 아들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면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예수님께서 열두 살이 되셨을 무렵, 요셉과 마리아는 유월절과 무교절의 관례에 따라 자녀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절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말았다(눅 2:41-52). 어떻게 “하나님의 어머니”란 존재가 아들 하나 못 챙길 수 있단 말인가? 과연 자신의 아이조차 길에서 잃어버린 전력을 가진 마리아에게 기도하면 기도 응답이 되겠는가? 예수님을 길에서 놓쳐 버렸을 정도인데, 사람들의 모든 기도 내용을 마리아가 놓치지 않고 다 기억할 수 있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만큼 이 땅에는 그렇게 어리석은 카톨릭교도들이 약 13억 명이나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마리아를 필요 이상으로 높이면서 예수님을 잃어버린 마리아에 대해 너무 나무라서는 안 되겠다. 왜냐하면 그녀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인간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정신이 없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살이셨음을 감안하면, 당시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 밑으로 2년 터울로 자녀들을 낳았다고 가정해도 이제 갓 태어난 신생아까지 포함해서 총 여섯 명의 자녀들을 충분히 낳을 수 있는 기간이다(막 6:3). 그렇게 보면 아무리 요셉이 잘 도와주는 남편이었다 할지라도 어딘가 먼 장소를 오갈 때(나사렛에서 예루살렘까지의 거리는 약 150km임), 예수님을 포함해서 일곱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잠시 한눈을 팔아도 한 명의 아이 정도는 잃어버릴 가능성이 다분히 있는 것이다. 마리아가 잘했다는 말이 아니라, 마리아가 보통의 어머니들이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일들을 당시에 겪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녀를 불필요하게 높일 필요가 없다. 여느 어머니와 별반 차이가 없는 “평범한 죄인”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때에 한 사람이 주께 말씀드리기를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형제들이 당신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라고 하니』(마 12:47). 모친 마리아가 밖에 서 있는 상황에서 예수님이 여느 집 보통의 아들이었다면 당장 서둘러 나가 모친을 안으로 모셔 왔거나 “지금은 좀 바쁘니까 나중에 다시 오시면 안 되겠습니까?”라든지 “저녁때 집에 일찍 들어가서 뵐게요.”라든지 하면서 양해를 구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녀를 공손하고 친절하게 대하시지 않았다. 물론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경멸하거나 무례를 범하거나 “부모를 공경하라”는 다섯 번째 계명을 어기거나 하지는 않으셨다. 다만 의도적으로 마리아의 존재나 역할에 대해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는 덜 중요하게 생각하셨을 뿐이다. 물론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는 은총을 받은 여인이었다. 여자 중에서 복 받은 여인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 이상 마리아를 높여야 할 이유가 없다. 필요 이상으로 높여서 가증한 “마리아 숭배”를 조장하는 로마카톨릭의 미혹에 속지 말아야 할 것이다! BB

전체 341 / 3 페이지
RSS
번호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