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성경과 예언 분류

아브라함 언약 대 아브라함 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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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0년 11월호>

지난 9월 15일에 미국의 중재로 아랍에미리트(UAE) 및 바레인과 “아브라함 협정”을 맺은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평화를 위한 새로운 동력이 아랍과 이스라엘의 분쟁을 완전히 끝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스라엘의 “평화”가 아닌 “장송곡”의 서곡에 불과했다.
중동에서 부는 때아닌 “평화의 바람”은 국제 사회에서 잊힐 만하면 등장하는 구태의연한 “레퍼토리”이다. 하지만 『어떤 것을 가리켜 “보라, 새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느냐? 그것은 우리 앞에 있었던 옛 시대에 이미 있었던 것이라.』(전 1:10)라는 말씀의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하는 완고한 이스라엘을 향해 성경은 “평화는 없다!”라고 경고한다. 『“화평이라, 화평이라.” 하나 거기에는 화평이 없도다』(렘 6:14). 『우리가 화평을 바라나 좋은 것은 오지 않고 건강한 때를 바라나, 보라, 고난이라!』(렘 8:15)


“평화”를 위한 협상 테이블에 절대로 함께 앉지 말아야 할 세 집단이 있으니, 곧 “로마카톨릭”과 “공산주의자”와 “모슬렘”이다. 그들은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는 자들로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 목적 앞에서는 거짓말도 정의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국가 간의 협약이나 협정을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뒤집어 버리는 거짓말쟁이 집단과 과연 무슨 협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악인들과 죄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나를 데려가지 마소서. 그들이 자기 이웃들에게 화평을 말하나 그들의 마음속에는 해악이 있나이다』(시 28:3). 『나의 혼이 화평을 미워하는 자와 함께 오래 거하였도다. 나는 화평을 원하나 내가 말할 때 그들은 전쟁을 원하는도다』(시 120:6,7).


어떤 시인이 “물오징어를 다듬다가” 이렇게 시를 읊었다. “간도 쓸개도 배알도 뼛골마저도 다 빼어 주고 목숨 하나 가까스로 부지해 왔단다. 목 고개 오그려 쪼그려 눈알조차 숨겨 감추고 눈먼 듯이, 귀먹은 듯이, 입도 없는 벙어린 듯이 이 눈치 저 코치로 냉혹한 살얼음판을 어찌어찌 헤엄쳐 왔단다.” 이것은 북한의 눈치나 살피는 현 문재인 정권의 무능한 작태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묘사이다. 지난 9월 22일, 우리나라 “국민”(연평도 공무원)이 대한민국의 주적인 북한 군인들에 의해 무참하게 피살되었다. 그러나 실종부터 발견까지 무슨 조치라도 취할 수 있는 상당히 많은 시간이 있었음에도 우리나라 정부와 대통령과 군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국가가 죽음의 위협에 놓인 한 국민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리려 하기는커녕 수수방관해 버린 것이다. 이에 국방부 장관은 북한이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는데, 도대체 그는 어느 나라 국방부 장관이란 말인가? 특히 이번 피살 사건을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북한 김정은의 통지문 한 장에 정부의 표정이 금세 달라지기도 했다. 대통령이 주재한 장관 회의에서는 북한의 신속한 사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박지원 국정원장은 “김정은이 총살 지시를 한 것 같지는 않다.”라고 에둘러대며 면죄부를 발부한 것이다. 또한 아랫사람에게 하는 말인 “미안하다”(“송구하다”나 “죄송하다”가 아님)를 김정은이 두 번이나 쓴 것에 대하여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반색했다.


이와 맞물려 청와대와 여당의 북한을 향한 규탄의 목소리는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사그라들었고, 그 대신 종전 선언, 관광 재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견학 재개 등을 위한 목소리만 높아졌다. 더욱 가관인 것은 여권 인사들이 김정은을 향해 쏟아 낸 찬사였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김정은을 가리켜 진짜 계몽 군주가 맞다고 말했고, 정세현 민주평통수석 부의장은 통 큰 측면이 있다고 치켜세웠으며,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굉장히 선진화된 태도라고 한껏 띄워 주었다. 고사포로 고모부를 잔인하게 처형했고, 이복형을 독살했으며, 1%의 특권층(노멘클라투라)을 위해 약 2,500만 명의 인민을 노예로 삼고 있는 “미친 독재자”에게 그런 찬사가 웬 말이란 말인가? 『해 아래서 행해지는 모든 것들 가운데 이것이 한 가지 악이니, 곧 모든 사람에게 한 가지 일이 있다는 것이며, 또 정녕, 사람들의 아들들의 마음이 악으로 가득 찼으며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후에는 죽은 자에게로 간다는 것이라』(전 9:3).


대통령은 지난 8월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한민국은 이제 단 한 사람의 국민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한 지 1년이 지났는가? 6개월 아니 3개월이 지났는가? 불과 한 달 남짓 되는 기간에 일어난 비극이 아니던가? 인천 낚싯배 전복 사고 때는 바로 다음 날 묵념하면서 애도를 표했던 대통령이지 않던가? 그런데 국민이 이렇게 처참한 죽임을 당했는데도, 그것도 “적들”에 의해 피살되었는데도, 그는 위로와 자책은커녕 북한의 눈치나 살피며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엿새 만에” 입을 열었다. 도대체 그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국민”은 어느 나라의 국민을 말하는 것이며, 또한 그는 어느 나라의 대통령이란 말인가? 국민이 죽었다! 그리고 국가도 죽었다! 이런 마당에 “종전 선언”이란 말이 입 밖에 나오던가? “평화”라는 말이 술술 나오던가? 거짓말쟁이 김정은의 “미안하다, 미안하다”는 두 마디 말에 국민들이 입은 상처가 고쳐지던가? 그런 말을 하는 자나 반기는 자나 후안무치한 자들이로다! 하지만 평화는 없을 것이다! 『그들이 내 백성의 딸의 상처를 가볍게 고쳐 주며 화평이 없을 때에 말하기를 “화평이라, 화평이라.” 하였음이라.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그들은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였고 얼굴도 붉히지 않았도다. 그러므로 그들은 넘어지는 자들 가운데 넘어질 것이요, 그들이 감찰의 때에 버려지리라. 주가 말하노라』(렘 8:11,12).

가증한 일을 하면서도 얼굴을 붉히지 않고 부끄러움을 전혀 모르는 것에 관한 한 이스라엘만큼 “뻔뻔하고 완악한”(겔 2:4) 민족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올 생각은 아예 하지 않은 채, 또 하나의 거짓말쟁이 집단인 모슬렘들과의 공조 속에서 “평화”만 외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 평화에 불과하다. 이렇듯 이스라엘이 자기들이 처해 있는 역사적 현실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엄청난 덫”에 걸려 있기 때문인데, 사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지니는 “양면성”(히 4:12 - “양날 가진 칼”)에서 기인한다. 즉 성경을 제대로 믿고 올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사람에게는 이 책이 복된 말씀이 되지만, 제대로 믿지도 않고 올바르게 해석하지도 적용하지도 않는 사람에게는 진노와 저주와 애가가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그들에게는 가장 위험하고 무서운 덫과 올무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걸려 있는 덫과 올무는 무엇인가? 바로 이사야 42:6,7의 말씀이다. 『나 주가 의로 너를 불렀으니 내가 네 손을 붙들고 너를 지킬 것이며, 백성의 언약과 이방인들의 빛으로 너를 주어 앞 못 보는 눈들을 뜨게 하며, 감옥에서 갇힌 자들을 이끌어 내며 암흑 속에 앉은 자들을 감옥에서 이끌어 내게 하리라.』 여기서 “이방인들의 빛”은 문맥적으로(사 42:1-5) 하나님께서 드높이시는 종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 빛을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자기들, 곧 “이스라엘 민족”에게 잘못 적용한다. 이를테면 그들은 이런 식으로 잘못 해석하는 것이다. “세상은 이방인들의 빛인 유대인들의 자유를 통해 자유롭게 되고, 유대인들의 부를 통해 부유하게 되며, 유대인들의 위대함을 통해 위대하게 될 것이다.” “이방인들의 빛인 유대인들은 흩어져 있는 전 세계 인류를 위한 영적 세계의 중심이 될 것이다. 유대교의 미래는 세상을 개종시키는 것이다!” 실로 배교에는 약도 없는 법이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그때까지는 어떤 평화도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을 보면 유대인들이 절대다수이다. 유대인 인구는 전 세계 인구수의 약 0.2%에 불과하다. 그러나 역대 노벨상 수상자 중 22%가 유대인이거나 유대인 가문이다. 특히 1901년부터 2014년까지의 통계만 보더라도 19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특히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는 총 29명으로 39%에 이르고, 노벨상을 받은 여성들은 그 절반이 유대인들일 정도로 독보적이다. 또한 노벨상을 받지 않았다 해도 유대인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기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의장은 유대인들이 독식하는 자리로 유명한데, 역대 의장 15명 중 11명이 유대인이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 대형 금융사 JP모건과 골드만삭스 등도 유대인이 세운 회사다. 또 전 세계 억만장자 3분의 1은 유대인이며,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가 가장 대표적이다. 영화계에서도 유대인의 영향력은 이목을 끈다. MGM, 파라마운트, 20세기폭스사 등은 모두 유대인이 소유한 영화사다. 영화 E.T., 쥬라기 공원 등을 연출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도 유대인이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과학, 예술,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이루었는데, 문제는 그들이 이방 세계에서 이룬 이런 업적에다가 “이사야 42:6”을 잘못 적용한다는 것이다. 물론 유대인이 아니었으면 받지 못했을 노벨상들이 많았고, 또 유대인이 아니었으면 이루지 못했을 과학의 눈부신 발전도 있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종종 다음과 같은 우스갯소리를 한다. “우리 마을은 시골이야. 왜냐하면 유대인이 없기 때문이지. 너희 마을은 도시야. 왜냐하면 유대인이 있어서지.” 그만큼 유대인들이 있었으니까 세계의 경제, 과학, 문화, 예술 등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유대인들은 과거 1,900여 년간의 수난의 역사 속에서도 자부심을 한껏 뽐낸다. 그들은 오랜 기간 나라 없는 슬픔 속에서 여러 나라로 흩어져 아등바등 살아왔으면서도, 문화적인 우위를 드러내어 그 우수한 문화를 해당 국가에 전수했다고 자부하려 한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이방인들의 빛”이 되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전혀 성경적 관점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그런 세속적인 관점을 따라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이방 민족들의 관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독특한 백성”(신 14:2; 26:18)으로서의 위상을 포기한 지 이미 오래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관계를 스스로 뿌리친 것이다. 본래 이스라엘은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친히 맹세와 약속으로 확정하시고(히 6:16-18) 서명하신 “아브라함의 언약”(창 12:1-3; 13:14-17; 15:5-21; 22:15-18)에 따라 선택받은 백성들이다. 『오 그의 종 너희 이스라엘의 씨야, 그의 택하신 자들, 너희 야곱의 자손들아, 그는 주 우리 하나님이시요, 그의 심판들이 온 땅에 있도다. 너희는 그의 언약, 곧 그가 천 대에 걸쳐 명하신 말씀을 항상 기억할지니 이는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이요, 이삭에게 하신 맹세며, 그 동일한 것을 야곱에게는 한 법으로 이스라엘에게는 영원한 언약으로 확정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게 카나안 땅을 주리니 너희 유업의 땅이니라.’ 하셨도다』(대상 16:13-18). 하지만 그들은 그 언약을 저버렸으니, 아브라함의 언약을 잊었고 모세의 언약을 파기했다.


심지어 그들은 다른 이방 민족들처럼 되어 버렸다. 특히 “인간 왕”을 요구할 때 그러했는데, 『이제 모든 민족들처럼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재판하게 하소서.』(삼상 8:5)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스라엘이 결코 다른 이방 민족들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한다. 『내가 바위들의 꼭대기에서 그를 보며 작은 산들에서 그를 보니, 보라, 이 백성이 홀로 거할 것이요, 민족들 가운데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 아니하리라』(민 23:9). 이것은 이스라엘이 “국제연합(UN)의 회원”이 될 수 없고, 또 되어서도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그러나 그들은 현재 국제연합의 회원국으로 들어가 민족들 가운데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한낱 바람과 같은 종잇조각에 끄적이는 “서명식”으로 “예루살렘의 평화”를 이룩하려 한다. 그들이 선택받은 민족이 되게 하고 하나님께서 가까이하시는 위대한 민족이 되게 만든(신 4:7) “아브라함의 언약”은 안중에도 없고, 모슬렘들과 맺은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분쟁을 종식해 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동의 평화”는 그런 식으로 오지 않는다! 결국 이스라엘은 “반유대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이방 민족들에 의해 “국제연합”에서 쫓겨날 것이고, 그들의 “협정”은 완전히 백지화되고 말 것이다.

이스라엘은 결코 “이방인들의 빛”이 아니다. 지난 1,900여 년 동안 유대인들이 받은 고난은 그들의 가증한 죄, 특히 그들의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응징”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으로 여기지 않는다. 오직 그들이 “이방인들의 빛”으로서 빛을 비추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치부해 버린다. 그 결과 A.D. 70년 이래로 유대인들은 전 세계로 흩어져 그야말로 모기같이, 하루살이같이, 벼룩같이, 쥐새끼같이, 바퀴벌레같이 취급받으며 죽어 갔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그들은 대환란이라는 가장 혹독한 겨울을 통과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야 그들은 진정으로 회개하는 가운데 그들을 옭아매고 있는 “덫”에서 벗어날 것이고, 그들이 그토록 열망하는 “평화”가 임할 것이다(학 2:7-9). 즉 그들의 메시아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어 이방 민족들을 심판하시는 가운데 그들을 회복시키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평화”는 없다! 성경은 미리 기록된 역사책이다. 역사는 믿음의 대상이지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여기에는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문제만 남아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믿지 않는 개인, 민족, 국가를 지옥으로 날려 보낼 수 있는 매우 무서운 책임을 유념해야 한다. 『악인은 지옥으로 돌려질 것이요,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민족들도 그러하리라』(시 9:17).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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