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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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동물,”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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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2년 10월호>

성경은 “영”이 죽은 사람, 곧 “영”이 거듭나지 않고 “혼”이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동물보다 “월등하지 못하다”고 말씀한다. 『내가 사람들의 아들들의 지위에 관하여 내 마음속에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그들을 드러내사 그들로 자신들이 짐승들이라는 것을 보게 하소서.” 하였도다. 이는 사람들의 아들들에게 닥치는 일이 짐승들에게도 닥침이니, 곧 한 가지 일이 그들에게 닥치는도다. 하나가 죽는 것처럼 다른 것도 죽으니, 정녕, 그들 모두가 한 호흡을 가졌도다. 그러므로 사람이 짐승보다 월등함이 없으니, 이는 모든 것이 헛됨이라』(전 3:18,19). 이런 면에서 사람이 동물보다 월등한 것이 없기에, 그들 모두를 창조하신 주 하나님께서는 성경 곳곳에서 종종 “사람”을 “짐승”에 빗대어 설명하신다. 때로는 “개”(빌 3:2, 계 22:15)로, 때로는 “이리”(마 7:15, 행 20:29)나 “뱀”(마 10:16; 23:33), “독수리”(사 40:31), “비둘기”(사 59:11), “소”(시 22:12, 고전 9:9), “양”과 “염소”(마 25:31-46), “물고기”(마 4:19; 13:47) 등으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심지어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사자”(계 5:5)나 “어린양”(요 1:29, 계 5:12)으로 묘사된다. 이를 흉내 내는 사탄과 적그리스도 역시 동물로 묘사되는데, “표범”(계 13:1-3) 또는 “사자”(벧전 5:8) 등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남자”는 “곰”(사 59:11, 잠 28:15)과 “개”로 묘사되고, “여자”는 주로 “돼지”(잠 11:22, 벧후 2:22)에 비유된다. 특히 성경에서는 『사람이 들나귀 새끼같이』(욥 11:12) 태어난다고 말씀한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두 가지”뿐인데, 우선 “영”이 다르다. “사람의 영”은 “영교”(spiritual communion), “직관”(intuition), “양심”(conscience)의 기능을 갖고 있지만, “동물의 영”에게는 그러한 기능이 전혀 없다. 두 번째로, 사람은 “말,” 곧 “언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지만, 동물은 소리나 몸짓으로 소통할 뿐 인간처럼 말로 소통하지 못한다. 한편 “동물”의 삶은 “세 가지 기본적인 본능”에 의해 이끌리고 좌우되는데, “자기 보존”과 “자기 번식”과 “자기 만족”이다. “자기 보존”은 항상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다른 존재를 배려하는 일은 그다음에 두는 것을 의미하고, “자기 번식”은 생식을 통해 자기 후손을 유지하고 늘리는 일로서 일종의 “성행위”를 뜻하며, “자기 만족”은 자기의 느낌이 가는 대로 행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 역시 이런 “세 가지 동물적 본능”이 육신 안에 그대로 들어 있다. 그런 본능에 충실하게 살다가 동물처럼 죽는 것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그들이 죽으면, 둘 다 호흡이 끊어지고, 둘 다 심장 기능이 멈추며, 둘 다 시체와 사체가 땅에 묻히고, 둘 다 그 흙 속에서 썩어 버린다. 『모두가 한 곳으로 가나니, 모두가 흙에서 왔고 모두가 흙으로 다시 돌아가도다』(전 3:20). 이처럼 사람과 동물 사이에는 별반 차이가 없는데, 이에 성경은 『사람이 존귀할지라도 오래 살지 못하니 그가 멸망하는 짐승들과 같도다.』(시 49:12)라고 말씀한다.

얼마 전 라디오 기독교 방송 중 하나인 CBS의 “성서학당”이라는 한 프로그램에서 “강아지도 천국에 가나요?”라는 제목으로 어떤 목사가 강의하는 약 4분짜리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요즘에는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많이 키우고, 또 교인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많다 보니, 반려동물이 죽으면 너무 슬프고 헤어지는 게 아쉬운 나머지 나중에 저 하늘나라에 가서라도 그 죽은 반려동물을 봤으면 하는 그들의 바람이 커서 그런 강의를 한 것으로 보인다. “과연 개와 고양이 등의 ‘동물’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하늘나라’에 가는가, 아니면 ‘지옥’에 가는가?”


이 질문에 대해 그 목사는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피난처와 요새가 되신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그런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성도의 “작은 소원,” 다시 말해 자신의 반려동물, 곧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강아지나 고양이가 죽은 후에 하늘나라에 갔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과 기도를 피난처와 요새가 되시는 주님께서 안 들어 주시겠냐면서 운을 뗐다. 그러면서 “개와 고양이 등의 동물은 ‘영혼’이 없어서 하늘나라에 못 간다가 아니라, 오히려 ‘영혼’이 없기에 하늘나라에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영혼”은 사람에게만 주셨다는 것이다. 또한 “영혼”에는 “자유 의지”가 있는데, 그런 자유 의지를 지닌 사람은 자유 의지를 통해 제 발로 지옥으로 들어가게 되지만, “자유 의지를 지닌 영혼”이 없는 동물은 스스로 선택할 수 없어서 지옥으로 가지 않고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 근거로 이사야 65:17,25을 제시했는데, 그야말로 그 주장과 논리가 가관이다! 『보라, 내가 새 하늘들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이 기억되거나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먹을 것이요 사자가 송아지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흙이 뱀의 양식이 될 것이라. 그들이 나의 모든 거룩한 산에서 해치지도 손상시키지도 않으리라. 주가 말하노라.』 이에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강의를 끝냈다. “물론 이 구절들이 실제로 일어나는 일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어요! 그러나 왜 하나님께서 사자와 이리를 등장시키고, 또 어린양을 등장시키겠어요. 그것은 하늘나라에 동물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는 이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립니다. 동물들은 ‘영혼’이 없으므로 모두 다 하늘나라에 갑니다!”


이것이 이 나라 목사들의 성경 지식이고 영적 수준이다! 반려동물을 하늘나라에서까지 보고 싶어 하는 교인들의 가려운 귀를 얼마나 시원하게 긁어 주고, 또 얼마나 즐겁게 해 주고 싶었으면(딤후 4:3) 성경을 이렇게 제멋대로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단 말인가? 우선 이 목사는 “영혼”이라고 말함으로써 “영”과 “혼”도 구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드러냈다. 인간은 “몸”과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몸”과 “혼”과 “영”으로 구성된 “삼중적인 존재”이다.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몸]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콧구멍에다 생명의 호흡[영]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었더라』(창 2:7). 『화평의 하나님 바로 그분께서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책망할 것이 없게 보존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하노라』(살전 5:2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능력이 있어 양날이 있는 어떤 칼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 그리고 관절과 골수[몸]를 찔러 가르고 마음의 생각들과 의도들을 판별하느니라』(히 4:12). “사람의 혼”은 앞서 언급한 “영”의 세 가지 기능과 달리, “지성”(intellect), “감정”(emotion), “의지”(will)의 기능을 하는데, 이렇듯 “자유 의지”(free will)는 “혼”이 가진 기능이지 “영”이 하는 역할이 아니다.


또한 이 목사가 근거 구절로 인용한 “이사야 65:17,25”은 미래에 있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왕국 그리고 새 하늘들과 새 땅이 창조될 영원 세계에 관한 내용이지, 하늘나라의 “현재 모습”이 아니다. 여기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재림 때 있을 “천년왕국”의 상황과 천년왕국 이후에 새 하늘들과 새 땅이 창조될 “영원 세계”를 동시에 중첩해서 보고 있는데, 말하자면 “17절”은 현재 있는 하늘들과 땅이 모두 불타 없어진(벧후 3:7) 이후에 새롭게 창조될 “새 하늘들과 새 땅”(벧후 3:13, 계 21:1)에 관한 내용이고, “18-25절”은 그 일이 일어나기 “천 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 땅에 세워질 “천년왕국의 상황”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 땅에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와 화평으로 다스리실 천년왕국이 세워지면, 자연계가 회복되고 동물들의 본성과 체질이 바뀌면서 동물들이 “평화롭게” 지내게 된다. 『또한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울 것이요,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하며 어린아이가 그들을 이끌리라.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들이 함께 누울 것이요,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으리라. 또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으리라. 그들은 나의 모든 거룩한 산에서 해치거나 파괴시키지 않으리니 이는 마치 물들이 바다를 덮음같이 세상이 주의 지식으로 충만할 것임이니라』(사 11:6-9). 육식 동물도 “짚”과 “푸른 채소”를 먹는 “초식”을 하게 되는데, 곧 사람이 죄로 타락하기 이전의 완벽했던 상황으로(창 1:29,30) 돌아감으로써 모든 창조물의 신음과 고통이(롬 8:22) 끝나는 것이다. 어린이들이 “맹수들”을 이끌며, 이리와 표범과 사자와 곰을 타고 다니며 노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 “반려견”뿐만 아니라 “반려이리,” “반려표범,” “반려사자,” “반려곰” 등이 사람들 곁에 있을 것이다! 사실 강사로 나선 그 목사는 자기가 인용한 구절들의 온전한 의미가 무엇인지도 몰랐고, 또 감히 그 구절들을 성경적으로 해설할 엄두조차 못 냈기에, “이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일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자기가 틀릴 수도 있는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살짝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하는 비겁함과 꼼수를 보였다.

한편 동물에게 “영혼”이 없다고 주장하는 그 어리석은 목사의 말과 달리, 동물 역시 “몸, 혼, 영”으로 구성된 “삼중적인 존재”이다. 『주 하나님께서 땅으로부터 들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그들을 부르는가 보시려고 그들을 아담에게로 데려오시니, 아담이 모든 생물을 무엇이라고 부르든지 그것이 그 이름이 되더라』(창 2:19). 이 말씀에서 보듯이 동물의 “몸”은 『땅으로부터』, 곧 “땅의 흙”으로 지어졌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그 “몸”은 모두 “흙”에서 온 것이다(전 3:20).


또한 동물은 “혼”을 갖고 있는데, 이에 대해 성경은 『오, 주의 산비둘기의 혼을 악한 무리에게 넘겨주지 마시고 주의 가난한 자들의 회중을 영원히 잊지 마소서.』(시 74:19)라고 말씀한다. 물론 여기에서 “산비둘기”는 문맥적으로 “가난한 자들의 회중”을 빗대어 설명하기 위해 언급된 것이지만, 산비둘기에게 “혼”이 없다면 『산비둘기의 혼』을 언급할 리 만무하다. 『둘째 천사가 자기 호리병을 바다에 쏟으니 바다가 죽은 자의 피같이 되어 모든 살아 있는 혼들이 바다에서 죽더라』(계 16:3). 이 구절에서 “바다에서 죽은 살아 있는 모든 혼들”은 “동물들의 혼들”을 가리킨다. 물론 바다에 있는 “사람들”도 포함될 수 있지만, 본문에서는 “모든 살아 있는 창조물”을 가리키는 의미로서 “혼”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지, 불멸하는 “인간의 혼”의 개념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말씀에 따르면 동물은 그 몸이 죽는 순간 그 “혼”도 죽는다. 곧 소멸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동물은 죽으면 그 “혼”이 하늘나라도, 지옥도 가지 않는 것이다. 인간의 혼처럼 “불멸”이 아니라 동물의 혼은 그 몸이 흙으로 돌아가듯이 소멸되어 사라진다. 물론 하나님께서 계시는 하늘나라에도 “동물들”은 있다. 장차 그 셋째 하늘에서 동물들이 이 땅으로 내려오기도 한다. “유니콘들”과 “수송아지들,” “수소들”이 내려오고(사 34:7) “말들”이 내려오는 것이다(계 19:14). 이것은 말 그대로 하늘에 있는 동물들을 언급하는 것이지, 이 땅에서 죽은 후에 하늘나라로 간 “반려동물들”이 아니다!


동물은 “영”도 가지고 있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영”이 “호흡”과 연관되어 있고, 동물 역시 숨을 쉬고 호흡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영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영은 땅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누가 알리요?』(전 3:21) 사람은 죽으면 “영”이 위로 올라간다. 구원받은 성도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모든 인간의 영은 “하나님의 호흡”이어서(창 2:7) 하나님께로 모아지는 것이다. 『그때에 흙은 예전에 있던 대로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셨던 하나님께로 돌아 가리라』(전 12:7). 이에 반해 동물은 죽으면 그 “영”이 “땅 아래로 내려가는데”(goeth downward to the earth), 곧 그 몸이 땅속에 묻혀 흙으로 돌아가듯이 “영”도 땅의 흙으로 돌아간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동물은 “몸, 혼, 영”으로 구성되어 있고, 죽으면 “몸, 혼, 영” 모두 흙으로 소멸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사람은 죽으면 구원을 받았든, 받지 않았든, 구약 시대이든 신약 시대이든, “몸”은 흙으로 돌아가고 “영”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그러나 “혼”은 죽지도 않고 썩지도 않고 소멸되지도 않은 채 어딘가로 가서 영원히 불멸하게 된다. 즉 구약 시대이든 신약 시대이든, 구원받은 사람의 “혼”은 “낙원”으로 가고, 구원받지 않은 사람의 “혼”은 지옥으로 가서 영원히 살게 된다. 다만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 간에 차이가 있다면, 구약 시대에는 “짐승의 피”로 죄가 용서되고 덮어진다 해도 구속되거나 제거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구약 성도들이 죽으면 그 “혼”이 일단 “지하에 있는 낙원”으로 가서 임시로 머물러 있어야 했다. 언제까지 그곳에 머물러 있어야 했는가 하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구속이 완성될 때까지였다. 구속이 완성된 이후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지하에 있는 낙원에서 빠져나와 셋째 하늘에 있는 낙원으로 옮겨지게 되었다(마 27:51-53, 엡 4:8). 한편 신약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죄가 온전히 구속되고 완전히 제거된 이후이기 때문에, 그 피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구원받은 성도들은 죽게 되면 그 “혼”이 즉시 “셋째 하늘에 있는 낙원”으로 들어가게 된다(고후 12:2,4). 하지만 구원받지 않은 죄인은 영원히 불타는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지금 당장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고 구원받아야 하는 것이다. 『사람이 존귀에 처해 있어도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들과 같도다』(시 49:20).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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