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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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적 선택 (1) : 칼빈주의의 하나님과 이상한 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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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5년 10월호>

우리는 드디어 극단적 칼빈주의의 다섯 가지 요점인 “TULIP” 중 가장 핵심적인 교리인 무조건적 선택(Uncondi- tional Election)의 화원에 이르렀다.
한국 교계에서 ‘칼빈주의’란 말을 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예정론이며, 이 예정론은 “무조건적 선택”의 교리에 기초한 생각이다. 흔히 칼빈의 “이중예정론”(Double Predestination)으로 불리는 예정론은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사람과 멸망할 사람을 세상의 창조 이전에 이미 주권적이고 영원한 판결에 의해 정하셨다는 것이다.

칼빈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는 한 가지 판결을 하셨으며, 이 판결은 모든 것을 포함하는 영원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 영원한 판결들 중 특히 사람과 천사의 영원한 운명과 관련이 있는 부분을 “예정”이라고 부른다. 이 예정은 더 깊이 들어가 두 부분, 즉 영원한 생명으로 정해진 “선택”(election)과 선택되지 못하여 영원한 진노와 형벌로 정해진 “저버림”(reprobation 유기)으로 나뉜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자를 이미 선택하셨다는 이 교리에 모든 칼빈주의자들은 그들이 장로교나 개혁주의, 침례교, 타락전선택설(supralapsarian- ism), 타락후선택설(infralapsarianism), 후천년주의, 무천년주의, 세대주의, 약속신학 중 무엇을 믿든 간에 상관없이 한 목소리로 “아멘”을 외친다.
이 글은 칼빈주의를 비난하거나 알미니안주의를 옹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무엇을 가르치는가를 말하려는 것이다. 알미니안주의나 칼빈주의 또는 그 어떠한 주장도 성경만큼 무오하고 건전한 생각과 교리를 제공하지 못한다. 우리는 이 “무조건적 선택”의 교리를 성경으로 비추어 봄으로써 칼빈주의자들이 갖고 있는 구원관이 왜 비성경적인지를 정확하게 살펴볼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영원한 선택으로 말미암아 천국의 후사를 정하시고 말씀의 씨를 뿌리고 뿌리를 내리게 하시며 열매를 맺게 하신다. 그러나 버림받은 자들은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며 깨닫지도 못하며 멸망받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하셨는가?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비밀한 뜻이 있을 뿐이다. 우리의 생각은 미천하고 조잡해서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행하심을 따를 수 없다(사 55:8-9). 선택과 예정은 하나님의 주권 영역에 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절대주권의 자비하심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 최상의 삶의 자세이다.” - 존 칼빈, <기독교 강요>
“선택이란 인류의 일부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라 정의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일부만을 구원하시기로 목적하셨다는 말은 자연히 나머지는 구원치 않기로 목적하셨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 루이스 벌콥, <기독교 교리 요약>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해 어떤 사람들과 천사들은 하나님의 판결에 의해 영원한 생명으로 미리 정하셨고 나머지 모두는 영원한 죽음으로 예정하셨다.” - 댑니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자들과 구원받지 못할 자들을 주권적으로 미리 정하셨다.” - 호크세마
“바울서신에서 바울은 예정의 위대한 교리를 반복해서 가르친다. 사실 바울이 가르친 모든 것은 예정의 교리에 기초하고 있다.” - 메이첸
“선택의 교리를 사도 바울보다 더 쉽고도 강력한 언어로 말한 사람이 있는가?” - 뵈트너, 사도 바울이라니? 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4:15), 『...내가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을 구원하고자 함이라』(고전9:22)고 말한 사람이다.


칼빈주의자들은 무조건적 선택으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칼빈주의자에 의하면 선택과 미리 정하심은 성경의 주요 주제들이다.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판결, 하나님의 영광 등으로 치장을 하지만, 본질은 역시 구원으로의 선택에 있다. 문제는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구원으로 미리 정해진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에 의해 미리 정해졌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가”이다.
칼빈주의의 기본적인 원칙은 하나님의 주권이다. 물론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본다. 그 분은 유일하시며 위대하신 분이시다(대상29:12, 시47:2).
『부와 존귀가 다 주께로부터 나오고, 주께서는 모든 것을 치리하시며, 권세와 능력이 주의 손에 있고, 모든 것을 위대하게 만들고 힘을 주시는 것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29:12).
『그러나 우리의 하나님은 하늘들에 계시며, 하시고자 하는 일은 무엇이나 행하셨도다』(시115:3).
『만군의 주가 맹세하여 말하기를 “내가 생각했던 대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며, 내가 계획했던 대로 그것이 확고히 되리라』(사14:24).

그러나 칼빈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주권적이고 영원한 판결에 의해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미리 정하셨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모든 일들을 정해놓으셨는가? 칼빈주의자들은 담대히 그렇다고 주장한다.
가끔씩 칼빈주의자는 웨스트민스터 소교리 문답의 7번 질문의 대답을 인용한다.
“하나님의 판결들을 그의 의지의 계획에 따른 그의 영원한 목적이며 그 자신의 영광을 위해 일어나는 것을 무엇이나 그가 미리 정하셨다.”
길(John Gill)의 말대로 모든 것이 결정적인 계획과 하나님의 뜻에 따라 된 것이라면, 아담의 타락은 어떤가? 극단적 칼빈주의자들의 주장대로 만일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미리 정하셨다면 타락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심지어 아담의 타락과 그를 통한 인류의 타락도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비밀된 생각 안에 정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판결이 없이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분명히 죄가 이 세상에 들어온 것도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었고 그렇지 않았으면 들어오지 않았다.”

아담의 죄에 대한 칼빈주의자의 견해는 이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바울의 가르침과 전혀 다르다. 바울은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가 넘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롬6:1)라고 물은 뒤 간단하고 분명하게 답한다.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롬6:2).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계속해서 죄에 거할 수 없다. 그러나 칼빈주의자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이 원칙을 어기신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죄를 미리 정하셨다고 말하는 것도 성경적이다. 죄가 하나님의 계획 밖에 있는 것이라면 인생의 한 가지 중요한 일이 하나님에 의해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다.”
칼빈주의자들은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만들어 놓으면서도 이렇게 변명한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창시자나 범죄함에 있어 동조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연이 일어나거나 하나님의 판결과 관계 없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은 죄의 창시자가 아니시다. 사람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 죄를 짓는 것이지 강요에 의해 죄를 짓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미리 정하셨는가? 칼빈주의자들은 어떤 교리를 입증하려 할 때는 그렇다고 말하고, 또 예정론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을 만나면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이 이중적인 말장난은 칼빈주의자의 특징이다.
뵈트너(Boettner)는 “요한복음에는 선택이나 저버림에 관해 언급하지 않는 장은 한 장도 없다.”고 말하면서 정작 자신의 말을 뒷받침하는 성경 구절을 하나도 제시하지 않는다. 메이슨(Mason)도 “신약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주권을 강력히 믿었으며 결론적으로 선택과 예정의 교리를 믿었다.”고 말하지만 어떤 교부의 글이나 증거자료도 제시하지 않는다.
칼빈주의자들이 하나님의의 주권을 이야기할 때 그들이 의미하는 바는 결국 “임의성”이다. 이 교리는 결국 하나님께서, 소위 자신의 주권으로 인해, 자신이 제정하신 법을 바꾸거나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더 핑크가 이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하나님의 의지와 하나님의 성품 사이에는 갈등이 없다. 하나님은 스스로에게 법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단순히 ‘의’가 그렇게 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가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의’가 된다. 하나님은 어떠한 법에도 매이지 않으시고 모든 법 위에 계신다.”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아직 창조되지 않은 사람들을, 어떤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주권적인 선한 즐거움에 의하여 사람들을 지옥으로 가도록 저주하실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 3장의 첫부분에도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그의 마음의 원대로 가장 지혜롭고 거룩한 뜻을 따라 자유롭게 장차 될 일을 ‘불변’하게 정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볼 때 하나님의 가장 크고 우선적인 속성은 그 분의 거룩하심이다. 하나님은 절대 거룩하시다고 선언되어 있다(사6:3, 시47:8, 시99:9). 『주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의 거룩한 산에서 경배하라. 이는 주 우리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기 때문이라』(시99:9).
하나님께서는 그의 주권을 오직 그의 거룩하심에 일치될 때만 사용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죄를 미워하시며 참지 못하시기 때문이다.
『주께서는 정결한 눈을 가지셨기에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죄악을 볼 수도 없나이다』(합1:13).
『이는 주께서는 악을 기뻐하는 하나님이 아니심이니, 악이 주와 함께 거하지 못하리이다』(시5:4).
『그러므로 너희 총명한 사람들아, 내게 경청하라. 하나님께서 악을 행하신다는 것과 전능하신 분께서 죄악을 행하신다는 것은 그 분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도다』(욥34:10).

칼빈주의자는 하나님께서 일어날 일들을 정해 놓지 않으셨다면 미래의 사건들에 대한 절대적인 지식을 가질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만일 하나님이 모든 것들을 미리 정하지 않았다면 그는 미래를 모르실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들을 그렇게 판결하셨기 때문에 모든 것들을 알고 미리 아신다.”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미명 하에 인간의 자유의지와 심지어 하나님의 절대적인 지지하심을 없애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고의적인 거부이고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치명적인 공격이 아닐 수 없다. 칼빈주의자들의 문제점은 하나님의 명령, 조정, 지시, 묵살, 허락이 하나님의 예정, 선택, 저버림, 미리정하심, 판결과 같지 않다는 데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판결들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는가? 우리가 살펴보면 그 용어가 하나님보다 사람에게 더 많이 쓰인 것을 볼 수 있다. 코레스가 판결을 내렸고(스5:13) 다리오도 판결을 내렸다(스6:1). 아탁세르세스도 판결을 내렸고(스7:21) 느부캇넷살도 판결을 내렸다(단3:10). 심지어 여인인 에스더도 판결을 내렸고(스9:32) 신약에서 카이사(눅2:1, 행17:7)와 사도들(행6:4)도 판결을 내린 것을 볼 수 있다.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판결들은 비(욥28:25), 하늘들(시148:6), 바다(잠8:29, 욥38:6), 모래(렘5:22), 멸망(사10:22), 느부캇넷살(단4:24), 예수 그리스도(시2:7)에 관한 것이다. 극단적 칼빈주의를 암시하는 무조건적 선택이나 예정의 판결들은 성경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았으므로 칼빈주의자는 이사야 55:8-9을 인용하면서 이 교리들에 관한 비밀들을 모두 설명할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
뵈트너는 성경에는 없지만 자신의 예정론 책에 있기 때문에 이것이 정확하다며 억지를 부린다.
“하나님께서 비록 그 이유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는 않았지만 이 사람은 택하시고 저 사람은 버리시는 일에 대해 최선의 이유를 갖고 계심에 틀림없다.”
팔머(Edwin Palmer)는 “이 비밀스러운 일은 주 우리 하나님께 속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비밀한 생각을 철저히 조사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며 칼빈주의의 모토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감춰진 일들은 주 우리 하나님께 속하나 나타난 일들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의 자손에게 속하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라』(신29:29).

극단적 칼빈주의자들은 무조건적 선택과 예정의 교리를 가능한 모든 성경 본문에 억지로 집어넣는다. 그들이 제시하는 성경적 근거를 잠언에서부터 시작한다. 『사람의 마음이 자기의 길을 계획하나, 주께서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느니라』(잠16:9). 『제비는 마음대로 뽑으나 그 일의 결과는 주께 있느니라』(잠16:33). 『왕의 마음이 주의 손 안에 있음이 마치 강의 물 같으니, 그가 원하시는 곳이면 어디로라도 그것을 돌이키시느니라』(잠21:1).

칼빈주의자들의 관점은 분명하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모든 말, 생각, 행동과 동기들을 언제나 미리 정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하나님은 괴물 같고 추잡하고 비윤리적인 하나님이 되고 만다. 만일 사람이 살인하거나 강간하기로 계획했다면(잠16:1), 이것도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셨는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거짓대답(행5:2-5)도 주님으로부터 나왔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한 증인들의 거짓 증거는 어떤가? 하나님은 헤롯이 두 살 아래의 모든 아기를 살해하도록 영원히 판결하셨는가?(왕상21:1-13) 하나님은 이교도들보다 훨씬 악한 므낫세의 사악함을 미리 정하셨는가?(왕하2:1,11) 하나님은 그의 목적을 이루시려고(습3:8) 여전히 왕들의 마음을 움직이실 것이다(계17:17). 그러나 그들이 범하는 모든 죄가 하나님의 주권적인 영원한 판결의 일부는 아닌 것이다.
성경은 종종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록 허락만 하신 것을 하나님께서 그 일을 행하셨다고 말한다. 사탄이 다윗에게 이스라엘을 계수하도록 시켰으나(대상21:1)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하셨다고 말한다(삼하24:1). 가장 좋은 예는 욥기에 나온다. 사탄은 욥의 고난의 원인이다(욥1:12, 2:7). 그러나 욥과(욥1:21) 사탄 자신도(욥1:11, 2:5) 그 고난의 원인을 하나님께 돌렸다.

성경에서 볼 때 하나님이 개인이나(삼하17:14, 왕상 14:10, 21:21) 민족들에게(느13:18, 겔14:2, 단9:14) 재앙을 가져오시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칼빈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주권적인 뜻에 따라 임의대로 이곳에는 선을, 저곳에는 재앙을 가져오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왜 하나님께서 악을 가져오시는가에 대한 완벽한 설명이 여기 있다(렘19:3-5). 예레미야에서만도 많은 구절들이 그 이유를 정확히 말해주고 있다.
『오 땅아, 들으라. 보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가져오리니 그들의 생각의 열매에까지라. 이는 그들이 내 말들과 내 법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그것을 거절하였기 때문이라』(렘6:19).
『그들은 내 말 듣기를 거절했던 그들의 선조들의 죄악으로 돌아가서 다른 신들을 좇아 섬겼으니,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이 내가 그들의 조상들과 더불어 맺은 내 언약을 파기하였도다. 그러므로...내가 재앙을 그들 위에 가져오리니...』(렘11:10-11)
위의 구절들은 하나님이 사람들의 죄 때문에 악을 가져오셨다고 말하고 있다(렘16:10-11, 36:3 등). 한편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행하는 죄악을 명령하시지도, 원하시지도 않았다고 명백히 선언하신다. 『그들은 또 바알의 산당들을 지어 자기들의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물로 주어 불로 사르게 하였으니, 그것은 내가 명령한 것도, 말한 것도 아니며 내 마음에 의도한 바도 아니니라.』(렘19:5)
또 다른 예를 살펴보자. 어떤 사람이 그의 첩을 열 두 조각으로 난도질하여 이스라엘의 모든 지경에 보냈다(재19:29). 그것도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영원한 판결에 의해서 일어난 일인가? 어떤 사람이 자신의 아이들을 불로 태우고 동물과 성행위를 했다면(레18:21-24) 그것도 하나님의 주권적 판결인가? 그래도 칼빈주의자들은 끝까지 그들의 주장을 정당화시키고자 노력한다.
“만일 하나님이 모든 죄와 사악함을 판결하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는가?”

그러나 여기에 대한 대답은 전적 타락에 있다. 사람의 부패하고 타락한 성품으로 악이 발생하는 것이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허용하셨다. 하지만 허용과 판결은 분명히 다르다. 그들은 성경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 오해한 것이다.
이처럼 무조건적 선택의 교리 뒤에는 원칙없이 자의적으로 행하는 칼빈주의의 하나님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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