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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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기, 그가 구원받은 목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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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4년 07월호>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가 5월 12일 장충동 엠베서더 호텔에서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최고위 과정 학생들에게 했던 특강 전체가 담긴 자료(A4용지 10매)를 미국에서 우리 교회 성경핵심강연회(6월 10,11일)에 참석한 한 목사님이 필자의 책상에 놓고 갔기에 읽어 보았다. 필자는 그 내용을 읽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조목사의 말을 빌리면 그는 교인 75만 명을 거느린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의 목사이며 지구를 80바퀴나 돌며 아프리카, 미국, 유럽, 남미대륙 안 간 곳이 없으며 상파울로에서는 150만 명이나 모인 집회를 가졌다고 자랑했다. 한세대, 국민일보, 엘림사회복지재단, 미국 베데스다대학, 선한사람들NGO를 통하여 아프리카, 아시아, 북한 동포 돕기에 굉장히 많은 물질적 도움을 주고 있다고 자랑했다(자기 아들이 운영하고 있는 <스포츠투데이>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처럼 위대한(?) 목사가 가서는 안 될 우상 섬기는 사람들 앞에 가서 왜 그런 망발을 했을까? 그는 성령을 가장 많이 들먹거리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어찌 그날에는 성령의 통제를 받지 못하고 그의 실체를 드러내고 말았는가! 예수님께서는 그런 경우를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고 하든지, 나무도 나쁘고 열매도 나쁘다고 하든지 하라. 이는 그 열매로 그 나무를 알기 때문이라』(마 12:33).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거둘 수 없는 것은 뻔한 일이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으며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가리켜 『오 독사들의 세대야, 악한 너희가 어떻게 선한 것을 말할 수 있겠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이 말하기 때문이라.』(마 12:34)고 지적해 주셨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조목사를 선한 안목으로 보았을 것이다. 그가 비록 방언하고 병 고치고 기적을 행한다며 무지한 사람들을 현혹하여 돈벌이하는 베니 힌, 로드니 하워드 브라운, 케네스 코프란, 딕 버날, 오랄 로버츠, 로버트 슐러, 스티브 힐, 제이 스넬, 토니 핍톤, 드와이트, 톰슨 크라우츠, 케네스 히긴스 등과 같은 은사주의 패걸이들과 같은 선상에 있는 인물이긴 해도 필자를 포함한 대다수의 설교자들은 그를 그래도 어느 정도 하나님께 쓰임받는 종이 아니겠느냐고 후한 점수를 주려고 애썼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런 기대에 부응하기에는 너무나 추한 인간이었으며 그의 그러한 행보는 많은 선의의 사람들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그 강연회가 그동안 숨겨 왔던 그의 본성을 드러내는 데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되었음을 필자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이는 그를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그가 하나님께서 쓰시지 않는 종이라는 것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말았기 때문이다.
통일교 문선명이 군수산업으로 재벌이 되었다면 조목사는 순복음이라는 교회를 기업화해서 돈을 모으는 재벌이 된 것뿐이다. 그가 유명했기에 불교인들이 불렀을 터인데 만일 그가 하나님의 종이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갈보리의 보혈의 능력과 혼의 불멸과 구원받은 사람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메시지를 전하여 허구인 윤회를 믿는다는 그들을 죄의 형벌과 지옥의 심판으로부터 구원시킬 수 있지 않았겠는가? 그들이 속으로 그런 복음을 기대하고 조목사를 부른 것이 아니었겠는가? 그런데 조목사가 얼마만큼 그들을 실망시켰겠는가? 그의 강연을 들었던 불교신자들이 ‘아, 그리스도인의 신앙이라는 것도 별게 아니구나! 예수 그리스도나 석가모니나 뭐가 다르단 말인가!’ 하고 돌아섰을 것 아닌가?
불교란 사람이 죽어 곤충이나 물고기나 새나 짐승으로 윤회한다고 가르치는 것인데 인간이 그런 것들로 다시 태어나서 무얼 하겠는가? 회의 속에 있고 공허한 곳에서 진리를 찾지 못하고 영적 방황을 한 그들에게 빛이 없는 조목사는 빛을 비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성경은 『너희는 빛들로서 세상에서 빛들을 비추는 자들이라.』(빌 2:15)고 그리스도인들에게 말씀해 주고 계신다.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과 살아 계신 하나님을 실망시킨 죄인이 된 것이다. 필자는 그의 구원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는 구원받지 않은 채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나선 많은 부류들 중 하나일 뿐이다. 구원받지도 않고 하나님께서 부르시지도, 들어 쓰시지도 않는 자들이 교회놀이를 하게 되면 이런 현상들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들이 누구인가? 바로 구원받지 않은 은사주의자들이다.
1. 그의 신앙관을 대충 살펴보면
「종교는 불교나 기독교나 마호메트교나 평등합니다. 저는 불교 집안에서 태어나 기독교 목사로 있으니까 선불교랑 같은 것이 너무 많아요. 내 마음이 부처라는 것도 예수님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지 마라. 예수님은 네 마음에 있다. 저 죽어서 서방정토세계가 아니라 지금 내 마음속에 천당이 이루어져야지 죽고 난 다음에 천당을 바라지 마라. 또 계율과 율법을 가지고 하면 전부 죄밖에 드러나지 않는데 믿음으로 예수를 믿고 구원받고 난 다음엔 그 다음엔 자동적으로 믿음에 따라서 마음이 뜨거워지면 율법과 계율을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원효사상을 좋아하는 것은 나무아미타불 네 글자를 외움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니 그 다음에 계율을 지켰으니 계율도 지키고 신앙생활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통하는 점이 많아요. 저는 불교 TV를 굉장히 좋아해요. 왜냐하면 불교를 내 친정집 같이 생각이 되기 때문에 그 강의를 들으면 굉장히 마음속에 유익을 많이 얻어요... 제가 왜 불교 강의를 열심히 듣냐면 불교강의를 들음으로 비추어 볼 때 내가 믿는 기독교 신앙의 깊이를 더 깨달을 수 있어요.」
그는 성경을 한 구절도 인용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떠들어댔다. 소위 목사라는 사람이 어떻게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가? 인간은 죄인으로 태어났기에 죄 문제를 해결보지 않고 죽게 되면 지옥으로 떨어진다. 그곳은 죄인으로 태어난 인간에게 내리신 심판이고 선언이며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고통의 장소이다. 지옥은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 곳이다(막 9:44,46,48).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게 하심으로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해 놓으셨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완성해 놓으신 그 사실을 믿고 쉬면 구원을 받도록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마련해 놓으셨다. 인간이 마귀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옮겨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신비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요 14:6)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불교의 중, 힌두교의 구루, 카톨릭의 교황, 추기경, 주교, 사제, 모슬렘의 사리프, 창녀, 마약중독자, 사기꾼, 종교 사기꾼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으면 정죄에 이르지 아니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이다(요 5:24).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2:8,9).
종교는 불교나 기독교나 마호메트교나 평등하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은 조목사의 신념과 다르다. 『그러므로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나니 이는 하늘 아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을 인간에게 주신 적이 없음이라.』(행 4:12)고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종으로 자신을 세상에다 제시하는가? 누가 그를 하나님의 종으로 세워 주었는가? 고명하신 순복음 목사님께서 종교가 다 같다고 말했다면 그 말을 믿는 사람들은 아무거나 붙들고 있다가 죽으면 지옥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옥은 본래 인간을 보내기 위해 만든 곳이 아니라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보내기 위해 만든 곳이다(마 25:41). 조목사는 자신이 구원받지도 못했고 지옥의 실체도 믿지 않는 사람으로 증명되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그의 말대로 여의도순복음교회 회원 75만 명이 구원받지 못한 목사 밑에서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었겠는가? 예수님이 틀렸는가, 조목사가 틀렸는가? 조목사의 말대로 종교는 다 똑같아서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다른 길, 진리, 생명이 있는데 예수님이 자신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자신을 통해서 구원받지 않으면, 즉 자신의 의로 옷입지 않고서는 심판주이신 하나님께 나올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면 예수님께서 거짓말하신 것 아닌가? 예수님만이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거짓인가, 부처도 길, 진리, 생명이 될 수 있다고 말한 조목사가 거짓인가를 이 시점에서 분명히 구분지어야 할 것이다. 불교에도 구원이 있다면 조목사는 왜 교회를 세워 목사를 하고 있는가? 친정집 같고 처갓집 같은 불교의 절간을 세워 중을 하는 것이 본인에게 훨씬 값진 일 아니겠는가?

2. “그리스도가 오신 목적은 3대 재앙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 오셨다”는 주장에 대하여
「첫째 재앙은 죄를 지어서 영원히 죽고 마귀의 종이 되어 그로 말미암아 모든 부정과 부패 더러움이 생기고 둘째는 환경이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살고 생활고에 허덕이게 되었으며 셋째는 늙고 병들고 몸이 죽어서 흙으로 돌아간다.」 그는 이 세 가지가 3대 재앙이라고 했다. 3대 재앙이란 용어는 성경에 없다.
「그리스도가 오신 목적은 이 3대 재앙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 오셨다. 그리스도는 윤리나 도덕이나 종교를 가르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속하기 위하여 오신 주님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윤리가 그런 것입니다. 교리나 율법이나 계명은 뒤에 오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구속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짐과 저주와 질병과 죽음을 짊어지고 죽음으로 우리를 속량해 주셨다. 그러므로 남녀 노유 빈부 귀천 할 것 없이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 그는 자기도 알지 못하는 소리를 하고 있다. 그 다음 말을 보라.
「저는 그 원리가 우리 아버님이 저 어릴 때 원효대사에 대해 얘기한 것과 너무 일치하더라구요. 원효대사님이 불교에 너무 계율이 많은데 그 계율을 다 지켜서 구원을 받을 수 없으므로 나무아미타불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 원효대사의 외침이 그거 아닙니까? 나무아미타불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 그러므로 대중불교로써 모든 서민들이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거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피흘려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고 저주와 죽음, 질고를 대신 했기 때문에 믿기만 하면 3중축복을 받을 수 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 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래서 전인 구원의 메시지가 우리 기독교 복음에 있습니다.」 그런 것은 기독교 복음에 없다.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는 복음의 진수를 제대로 깨달은 사람이 아니라 입에 발린 소리로 뱉어낸 말이다. 그의 말을 듣고 거듭날 수 있겠는가?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원효대사의 나무아미타불과 섞어서 조용기 복음을 만들어 버렸다. 필자는 그것이 순복음인가 묻고 있다.

3. 그의 3중축복은 3대 재앙에서 구제될 수 있다는 이론인데, 그는 3중축복을 지지하기 위해 요한삼서 2절을 인용했다. 『사랑하는 자여, 무엇보다도 네 혼이 잘됨같이 네가 번성하고 강건하기를 바라노라.』
모든 이단 교리를 창안해 낸 자들의 특징은 많은 분명한 성경 구절들은 모두 제쳐놓고 혼미한 성경 구절 하나 위에 교리를 정립시킨다는 점이다. 조목사는 성경에도 없는 3중축복을 말하면서 요한삼서 2절을 인용하고 있으나 그에게는 성경 전체를 볼 수 있는 지식과 안목이 없음이 드러났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기본적인 목적은 죄인들을 회개시켜 구원받게 하려 함이며(눅 5:32) 또 마귀의 일들을 멸하시기 위해서이다(히 2:14, 요일 3:8).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믿고 영접한 사람은 영이 거듭나며, 영적 할례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고, 영생을 얻으며, 성령의 전이 되고 등등 38가지의 새로운 일들이 순간적으로 일어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옛 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외칠 수 있는 것이다.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은 현재의 육신의 나이와 상관없이 이제 갓난아기로 태어난 속사람인 것이다(롬 7:22, 고후 4:16). 이 아기는 순수한 젖을 먹고(벧전 2:2) 말씀의 물로 씻기어져(엡 5:26) 새로운 차원의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둘째, 그러나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혼만 구원받았을 뿐 몸은 아직 구원받지 못했다. 우리의 몸은 휴거 직전에 주님의 부활하신 몸처럼 변화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지 않는가!(롬 8:23) 혼이 구원받았어도 우리의 육신은 구원받기 전과 같이 타락한 몸인 것을 알아야 한다. 이 몸을 성령님께 내어 드릴 때는 말씀대로 살 수 있지만 자기에게로 가져오게 되면 자신을 즐겁게 하는 데 쓰게 됨으로 죄를 짓게 된다(롬 8:1).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죄에 대해 죽고(롬 6:11) 세상에 대해서 죽고(갈 6:14) 자아에 대해서 죽어야 한다(갈 2:20). 그렇지 않고 육체가 나서서 설치게 되면 우상 숭배자들 앞에서 우리의 구속주와 심판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모욕하는 어리석은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누구나 죄를 지으면 죄의 종이요, 누구나 정복을 당하면 정복한 자의 종이 된다(롬 6:16, 벧후 2:19). 주님께서 영생을 선물로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신 것이다. 그러나 이 계명을 어기게 되면 우상을 섬기는 자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 원효대사의 말과 동등선상에 있게 된다. 바른 성경이 최종권위가 되지 못하면 누구나 이런 우를 범하게 되고, 이런 우를 범하면서도 자기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여기게 되지만 이것이야말로 마귀의 미혹에 제대로 걸려든 것이다.
셋째, 성경은 『불티가 위로 날아가는 것과 같이 사람은 고생하려고 태어나느니라.』(욥 5:7)고 말씀하고 있다. 구원받은 성도는 세상의 썩어질 것들을 위해 일하지도 않으며 그런 것들에 소망도 애착도 두지 않고 이 세상을 타국인과 순례자처럼 살아가지 않는가?(히 11:13) 왜냐하면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고(빌 3:20) 우리가 누릴 영광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는 고난도 받아야 된다고 우리의 구속주께서 가르쳐 주지 않는가?(롬 8:17, 딤후 2:12)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리요 교훈인데 조목사의 가설처럼 ① 죄짓지 않고 ② 물질적으로 번성하여 고생하지 않고 편히 살고 ③ 병에 걸리지 않고 지상에서 오래 사는 것이 예수를 믿는 의의라면 이것이야말로 성경의 가르침과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① 인간은 육신을 입었기에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다. 조목사는 목사 하면서 죄짓지 않았는가? 교회의 헌금으로 세상 신문사를 만들었으며 거짓 교리를 퍼트려 사람들을 모으지 않았는가? 우상 섬기는 자들 앞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이나 불교의 복음이나 마찬가지라고 십자가의 보혈을 모독하지 않았는가? 구원받은 성도라 할지라도 성령님과 교제 가운데 있으면서도 우리는 때로 생각으로도 죄를 짓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제대로 싸우지 않아서 죄를 지으며 온전히 선을 행하지 않아서도 죄를 짓고 산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은 우리의 타락한 원죄만을 깨끗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후 육신에서 나오는 모든 죄도 회개하고 자백하면 용서해 주는 능력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요일 1:7-9을 읽어 보라).
② 물질적으로 번성하여 고생 않고 사는 것은 거짓말 잘하는 사람들이나 향유할지 모르지만 식탁에 빵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땀흘릴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다. 인생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어도 그 연수의 힘은 수고와 슬픔 뿐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는가?(시 90:10) 예수 믿으면 만사형통하고 부자로 산다는데 어리석은 사람들이 속지 않겠는가? 심지어 노만 빈센트 필의 긍정적 사고 방식까지 도입하여 소망을 지니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는데 방석 가지고 여의도나 오산리 기도원으로 돈 싸가지고 가지 않을 사람들이 있겠는가? 예수 믿으면 다 부자되고 부자 못되면 저주받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인가 아니면 조목사의 교리인가? 둘 중 하나가 잘못된 것인데 누가 잘못된 것인가?
③ 사람이 병에 걸리는 것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썩은 음식을 먹으면 병이 나게 되어 있다. 썩은 말씀을 먹으면 혼과 영이 병들게 되어 있다. 건강 관리를 잘못하게 되면 병에 걸리게 된다. 병은 죄의 결과로 오는 것도 있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시며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은 구원받은 성도에게 반드시 징계를 내리신다(히 12:6). 그러나 조목사처럼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은 아무리 죄를 지어도 하나님은 징계하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아들에게만 징계하실 뿐 사생아나 마귀의 자식들에게는 징계하지 않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자칭 그리스도인이라는 자들은 성경을 거역하고, 우상과 하나님을 동격으로 고백하고 살아도 징계를 받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계속 죄를 지으며 자기 좋을 대로 하고 사는 것이다. 『속지 말라. 하나님은 우롱당하지 아니하시느니라』(갈 6:7). 물론 성도가 병에 걸리는 것은 다양한 요인에 의한 것이기에 때로는 마귀의 공격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의술과 약이 개발된 것은 하나님의 지혜로 비롯된 것이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많은 병든 자들이 나은 것을 보았지만 그들에게서 돈을 받은 적은 없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징계로 온 병을 인간의 방법으로 치료했다면 그것 역시 하나님의 뜻을 어긴 것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가 된다.
수많은 주의 종들이, 오지에 나간 선교사들이 그것도 젊은 나이에 아내를 잃고 자식을 잃고 자신들도 죽어갔던 것이 어디 한두 사람인가? 아,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헨리 마틴은 젊은 나이에 조용기 목사의 3중축복을 몰라서 죽었다는 것인가?
사람에게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고 그 다음에는 심판이 정해진 것같이(히 9:27) 사람은 죽게 되어 있다. 늙어서만 죽는 것이 아니고 사고, 재앙, 질병, 전쟁으로도 죽는다. 그러나 구원받고 영생을 얻고 죽으면 다시 살아나지 않는가?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아닌가?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속했더라면 필자도 3중축복 전인 구원이라는 소망을 가졌을 텐데... 그것이 소망인가 아니면 쓰레기인가?

4. 한 참석자의 질문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 목사님의 말을 기독교의 예수님, 하나님 외에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로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조목사의 답변을 보라. 「불교는 불교의 구원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기독교는 기독교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 차별성을 인정하고 대화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불교가 주장하는 것을 비판할 수 없습니다. 그런 권한이 없어요. 불교는 불교대로 존중을 하고, 인정을 하고, 기독교는 기독교대로 구원의 방식을 존중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동생은 불교를 통해서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믿기 때문에 존중하고 인정하고 나는 기독교 목사니까 기독교를 통해서 구원을 받는 것을 인정하고 내것만 절대 진리라고 인정할 수 없습니다. 너는 죽고 나는 살겠다 그렇게 되면 상생의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것은 부처님도 예수님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자비와 사랑의 원리에 어긋난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의 종인가? 이런 사람이 복음을 전파하여 잃어버린 혼들을 구원시키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진리의 지식을 가르쳐 마귀를 대적하게 하는 하나님의 사역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은가! 이 사람이야말로 데이브 헌트(Dave Hunt)가 말했듯이 샤머니즘을 교회로 가져와 실행한 자가 아닌가!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성별된 사람을 말하며 성경적 지역 교회는 구원받고 성별된 사람들로 모임을 이룬 양우리를 말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몸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을 치른 구속된 몸인 것을 인정하고(고전 6:19,20) 그 몸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린 사람들이며(롬 12:1,2) 주님께서 주신 성령의 은사로 그분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순종하여 말씀에 따라 그분을 섬기는 사람들이다. 성경적 지역 교회는 죄인들을 구령하여 그리스도께로 이겨오고(Soul winning) 그들에게 성경을 가르쳐 마귀의 계략과 공격에 대항하여 싸우게 하며(엡 6:11-18) 예수 그리스도와 만나는 재림의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서 자기가 구원받고 난 후 섬기는 그것으로 상을 받게 된다(롬 14:10, 고후 5:10을 읽어 보라). 그리스도인의 삶의 동기는 이 세상을 잘사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더 이상 자신들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그분을 위하여 사는 것이다(고후 5:15).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서 3중축복만 바라고 예수님을 믿으려 했다면 그런 기독교는 성경적 기독교가 아니다. 그렇게 가르치는 교회는 조용기 교회요, 조용기 교리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기독교나 불교나 같다고 알고 있으며 말하게 된 것이다. 구원받았으면 그의 믿음이 성경적 지식으로 진리에 뿌리 내릴 때 성령의 열매와 구령의 열매를 내게 되고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부르시고 들어 쓰시는 것이다. 조목사는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시며 인간을 구속하시려고 자신의 피를 흘려 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비참하게 만들었으며 한국 교계에도 엄청난 죄를 지었다. 그의 강연을 통해 볼 때 그가 구원받았다는 증거도 없고 누구를 그리스도께로 구령한 적도 없었다. 심지어 자신은 물론 자기 동생까지도 지옥으로 가도록 한 것이다. 선한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음성을 알며 양들도 목자의 음성을 알 수 있다. 그가 사랑하는 75만 명 중 그의 음성을 알고 그가 아는 양의 음성이 있는가? 신약 교회에 주신 두 가지 의식, 즉 침례식과 주의 만찬을 해 보지도 못한 그런 교회를 자랑하는가? 성경은 그런 목자를 삯꾼 목자라고 부른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다(요 10:12). 그들 가운데 눈을 가졌거나 귀를 가진 자들이 있다면 하나님의 권면에 귀기울이고 그대로 따라야 멸망받고 저주받은 자들 가운데서 구제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제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리에 역행하여 분열을 일으키고 공박하는 자들을 주의하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그러한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배를 섬기는 것이니 정중한 말과 그럴듯한 언변으로 순진한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롬 16: 17,18). 『만일 누군가가 다르게 가르치며 건전한 말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따른 교리에 일치하지 아니하면 그는 교만해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고 다만 질문과 언쟁만을 좋아하는 자니, 거기서 시기와 다툼과 악담과 사악한 의심이 생겨나며 마음이 부패하고, 진리를 상실하며, 이익이 경건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 무익한 논쟁이 일어나느니라. 그런 데서 네 자신은 빠져 나오라』(딤전 6:3-5).
암흑 시대에 로마카톨릭이 성경을 믿는 사람들에게서 성경을 빼앗고 나중에는 라틴어로만 떠들어대서 영적 양식을 얻지 못해 고사시켰던 것과 같이, 3중축복이야말로 교인들을 무지하게 만들어 그들의 믿음을 깡그리 망가지게 만드는 마귀의 사역인 것이다. 이 시대에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재림 때 면류관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며 웃고 떠드는 때가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시켜 지옥의 심판을 받지 않게 하는 시기인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주님이 오실 날이 매우 가까워 있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라』(벧전 5:8).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 때를 아노니 지금은 바로 잠에서 깨어나야 할 시간이로다. 이는 지금이 우리가 믿었던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음이라』(롬 13:11). 다수는 옳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선을 행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 대다수는 우상에게 절하고, 마리아에게 절하고, 조상의 묘 앞에 절하고, 심지어 삶은 돼지머리에도 절하지 않는가? 다수는 하나님의 뜻을 실행할 수 없다. 3중축복을 바라고 여의도나 다른 지역에 모인 자들은 진리의 지식을 배우고 실행할 수 없다. 이것은 영적 지식이며 바른 성경, 바른 믿음, 바른 지식을 갈망하고 추구하고 노력하는 자들에게만 조명을 주신다(잠 2:1-6). 교단 교리를 확산시켜 교세를 자랑하는 자들은 성경적 교리와는 무관한 자들이다. 교회라면 사람수를 자랑하고 헌금액수를 자랑해서는 안 된다. 교회가 자랑하려면 얼마나 많은 죄인들을 복음으로 이겨왔는지를 자랑해야 하며 그들에게 헌신을 가르치고 하나님을 두려워함을 가르치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함을 가르쳐서 그들로 곧 오셔서 이 땅을 천 년간 통치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게 해야 한다. 물론 에베소 교회, 스머나 교회, 퍼가모 교회, 두아티라 교회, 사데 교회,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의 사람들도 성경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살았다. 예수님은 그분을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다. 그 집주인이 언제 올지 저녁일지(A.D. 30-500), 밤중일지(A.D. 500-1000, 암흑 시대), 닭이 울 때일지(A.D. 1000-1500, 종교개혁), 아니면 아침일지(A.D. 1500-2004) 모르기 때문이다(막 13:34-37).
우리는 지금 라오디케아 교회 시대(1900-2004)에 살고 있고 그 교회 시대의 끝에 살고 있다. 이제는 그 누구도 성경을 가지고 거짓말하지 않게 되어 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워야 한다. 『가지가 이미 유연해지고 잎이 나오면 여름이 가까워진 줄 너희가 아나니』(막 13:28). 이스라엘이 국가로 태동된 1948년 5월 14일부터 여름이 가까워진 줄 알고 교회를 다녀야 한다.
지금부터 4349년 전에 노아의 홍수로 세상에서 생명을 가진 것은 노아의 식구 외에 다 진멸되었다.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시겠다고 노아를 통해서 복음을 선포하게 하신 후 120년간이라는 유예 기간을 주셨다. 그 당시 사람들은 곧 멸망당할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방주를 지어야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시집가고 장가가고 먹고 마시며 하나님의 복음을 무시하고 세상에서 잘사는 3중축복으로 바꿔 버렸다. 그 결과 그들은 모두 죽어 지옥으로 떨어졌다. 주님은 이 시대에 사는 사람들을 노아의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 같다고 말씀하셨다(마 24:37-39). 이 시대에 하나님의 교회가 할 일은 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여 그들의 혼을 그리스도께로 이겨와야 한다. 행복으로의 초대 같은 신문이나 나눠 주며 3중축복이나 믿는다면 그의 믿음은 심히 잘못된 것이다. 필자의 교회의 성도수는 350명 남짓 되지만 주말이면 서울 시내 14곳에서 복음을 전파하고 구령하여 적어도 한 달에 1,000명에서 1,400명을 구령하고 있다. 복음을 믿고 구원받은 이들은 지옥에 가지 않는다.
우리도 그들이 우리 교회에 와서 진리의 말씀으로 잘 양육되어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길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이제 갓 태어난 그들이 다른 교회들처럼 복음을 교회에 와서 돈 내라는 소리로 오해할까봐 삼가고 있다. 만약 조목사가 구원받은 목자라면, 진리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이라면 곧 멸망할 이 세상에서 잘 사는 데 소망을 두라고 가르쳤겠는가? 그가 혼의 소중함을 안 목자였다면 세상에서 인정받은 자칭 기독교 목사가 되어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과 나무아미타불을 똑같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75만 명을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시켜 우리 교회처럼 복음의 일꾼으로 훈련시켰더라면 우리 민족이 대환란을 통과하는 데 가장 적고, 지옥으로 떨어지는 데 가장 적은 숫자가 되지 않겠는가? 이것이 이웃사랑과 민족사랑이 아니겠는가? 그랬더라면 그리스도의 심판에서 그가 받을 상과 면류관이 얼마나 크겠는가? 그런데 그는 영원보다 순간을 위해 산 사람이 되고 말았다.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기 위하여 복음과 진리를 부인하지 않고 가짜 교리와 맞서며 죽어갔던 것이다(히 11:33-40). 조목사의 3중축복을 따른 사람들이 자기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생명을 내놓겠는가? 그의 사역은 알곡이 없는 쭉정이 사역인 것이다. 지금이라도 그는 자신이 지난 몇십 년간 주님 앞에 지은 죄들을 자백하고 이 땅의 복음화와 진리를 정착시키기 위하여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가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복음을 믿고 구원받는 일이다. 만약 그가 그렇게 하기 싫으면 그는 자진해서 그 강단을 내려와야 할 것이다.
『내가 이제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랴? 아니면 하나님께 사랴? 아니면 내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하겠느냐? 내가 아직도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한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알고 두려움과 떨림으로 그 말씀에 동의해야 할 것이다.
현재 한국 교회들이 실행하는 교리들은 성경적 기독교 교리가 아니다. 그들은 그들 교단 교리들로 교세 확장에만 급급하여 교단 세력을 부풀려 영적 분별력이 없는 우둔한 사람들을 전도란 명목으로 자기네들 교회로 끌어들여 치부의 수단으로 쓰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을 보수신앙이라고 이름붙이고 있다. 그 나라의 보수신앙이라면 이단 교리를 차단시킬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남침례교 등은 순복음 은사주의나 베뢰아 신학, 구원파 기타 이단들의 확산을 막지 못함으로써 파수꾼을 자처하는 자들이 짖지 못하는 개들(사 56:10)처럼 되어 버렸다. 순복음 은사주의자들이 세력을 얻고 교회들을 세웠을 때 장로 교단은 붕어새끼가 물을 토해낸 것 같은 소리로 “이단”이라고 했을 뿐 그 다음에는 그들과 어깨동무하고 국민일보의 우산 아래 모여 그나마 남은 믿음의 찌꺼기마저 순복음교회에다 넘겨줘 버렸다. 조용기 목사는 자기들의 비성경적 교리를 가지고 국민일보를 방패막이로 쓰고 사람수로 이중 보호막을 쳐서 세를 과시했으며 그의 계략은 이 나라를 순복음화하려고 시도했음이 역력히 드러났고 또 세상 언론과 손잡고 급기야 기독정당까지 만들어 순복음을 정치와 연계시키려 했던 것이다. 그는 복음을 형식적으로 이용하여 자신의 입지를 강화시킬 뿐 그에게서는 어떤 진리의 냄새도 풍기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의의 병기가 아니면 진리를 수호할 수 없다. 특히 사람수와 헌금을 자랑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일꾼이 아니다.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사람을 신뢰하는 사람과 육신을 그의 무기로 삼는 사람과 그의 마음이 주로부터 떠난 사람은 저주를 받으리라』(렘 17:5).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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