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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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복음과 은혜의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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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0년 09월호>

무릇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라 하면 누구라도 “복음 전파”라 한다. 마태복음 28:19 -20이나, 마가복음 16:15은 “지상 명령”이라 불리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위탁하신 내용을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이 받은 대로 그 귀한 복음을 죄인들에게 전파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아름다운 일일 것이다.
복음(gospel)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유앙겔리온”이라 하여, 우리말로 번역된 그대로 “좋은 소식,” “복된 소식”이라는 말이다. 영어로 “gospel”이라는 말도 “god”이라는 말과 “spell”이라는 말의 결합인데, 여기서 “god”은 ‘하나님 또는 신’이라는 말이 아니라 고대 영어에서 “good”(좋은)의 의미이며 “spell”도 단순한 ‘철자’란 의미가 아니라 고대 프랑스어나 고대 영어에서 “말, 언어”의 의미로서, 역시 “좋은 말,” “좋은 소식”이라는 말이 된다.
그러면 무엇이, 왜 좋은 소식인가? 그것은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값없이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죄 때문에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형벌을 받아주셨기 때문에 나는 죄를 용서받고 하늘 나라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우리가 어떠한 행위를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 사실을 받아들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기만 하면 영생을 얻게 되기 때문에 그것은 “좋은 소식,” “복된 소식”이다. 완전한 절망의 상태에서 이 값없이 주시는 구원의 길은 참으로 복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 복음을 가리켜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라고 말한다(행 20:24).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복음이 모두 “은혜의 복음”만은 아니다. 이 은혜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에야 전파되는 복음이다. 성경에는 이 은혜의 복음 이외에도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전파되는 복음들이 있다. 그리고 그 복음들은 신약 시대에 전파되는 은혜의 복음과 다소 차이를 보인다.

이사야가 전파한 “좋은 소식”과 왕국 복음

대표적인 경우가 이사야 52:7이다. 『좋은 소식들을 가져오며 화평을 선포하고 번영의 기쁜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선포하여 시온을 향하여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도다.” 하는 자의 발이 산들 위에 있을 때 어찌 그리도 아름다운가!』
여기서 “좋은 소식”이라 했으니 이는 분명 “복음”이다. 그런데 여기서의 복음의 내용은 “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도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화평과 함께 번영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사야가 말하는 이 예언의 상황은 예루살렘의 사로잡힌 자들이 돌아오며 그들의 긴긴 압제의 기간이 끝나고 그들의 심판이 종결됨과 동시에 그들의 왕이신 메시야께서 임하셔서 그 백성을 화평 가운데서 통치하시며 번성시키신다는 것이다. 아직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죄악 가운데서 바빌론 포로가 선포되는 동안이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이사야는 먼 미래에 있을 이스라엘의 완전한 회복을 바라보는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이 예언이 유다 백성들의 바빌론 포로에서의 귀환에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사야는 항상 유대인들의 범죄로 인한 심판과 더불어 그들의 회복을 예언했던 선지자이다. 따라서 이사야가 바빌론 포로를 선포함과 동시에 그 땅에서의 회복을 선포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예언은 단순히 바빌론 포로에서의 귀환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는 그보다 먼 미래에 있을 이스라엘의 대심판과 더불어 그 심판의 끝에 있을 대사면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예언이 그렇다. “좋은 소식들을 가져오며 화평을 선포하고 번영의 기쁜 소식을 가져오는 것”은 포로 귀환을 말한다고 해도 좋다. 그래도 그것은 “좋은 소식,” 즉 “복음”이다. 잠언에서 『먼 땅에서 오는 좋은 소식은 목마른 혼에게 냉수 같으니라.』(잠 25:25)고 말씀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이 소식은 참으로 고통 가운데에 있는 자들에게 소망을 주는 귀한 복음인 것이다. 하지만 이사야의 예언 가운데서 “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도다.”라고 말하는 부분은 당시 포로 귀환 때에 적용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치 구역을 할당받았을 뿐 여전히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고, 그 후로는 그리스의 지배를, 그 후에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예언은 메시야께서 그들의 왕이 되시어 통치하신다는 것이고, 따라서 그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들을 회복시키시고 번영케 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너희는 위로하라. 너희는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의 하나님이 말하노라. 너희는 예루살렘에 다정하게 말하며 그녀에게 부르짖으라. 그녀의 싸움이 다 되었고, 그녀의 죄악이 용서받았나니 이는 그녀가 그녀의 모든 죄에 대하여 주의 손에서 배로 받았음이라.』(사 40:1,2)는 예언과 마찬가지로 이사야 선지자의 주된 예언 가운데 하나로 유대인들에게 주어지는 “좋은 소식,” 즉 “복음”인 것이다. 같은 복음이 나훔 1:15에서도 제시된다. 『보라, 좋은 소식을 가져오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들 위에 있도다! 오 유다야, 네 엄숙한 명절들을 지키고 네 서원들을 이행하라. 이는 악한 자가 더 이상 너를 통과하지 못할 것임이라. 그가 완전히 멸절되었느니라.』 특별히 이 복음에서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있어서 그들의 원수는 완전히 멸절되어 더 이상 그들을 두렵게 할 수 없다는 완전한 약속까지 주어지게 된다. 이것이 구약에서 제시되는 대표적인 “복음”이다.

그 후 예수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셨을 때 백성들 가운데에서 복음을 전파하셨는데 이때의 복음을 “왕국 복음”이라고 부른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며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또 왕국 복음을 전파하시며』(마 4:23; 9:35). 이 복음이 왕국 복음이라고 불리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왕으로 오셨으며, 구약성경에서 예언했던 그 메시야 왕국을 가져오셨다는 사실을 그 왕국의 백성들에게 전파하는 복음이었기 때문이다. 이 복음은 “천국 복음”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침례인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복음을 전파하실 때 『너희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 4:17)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복음의 내용은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메시야를 알리는 것이고 또 그들에게 그 왕과 왕국을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복음은 앞서 말한 이사야 52:7의 “좋은 소식”과 정확히 맥을 같이 한다. 이 복음에서 가장 강조가 되는 것은 왕의 통치이다. 이 통치는 백성들의 마음을 다스리는 영적인 통치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그 땅의 왕국을 다스리는 실제적이고도 물리적이며 정치적인 통치이다. 이사야 9:6,7에서는 장차 태어나실 그 아이(즉 예수 그리스도)에게 정부(government)가 주어질 것이라고 말하고, 사무엘하 7:16에서는 그 왕국이 영원하다고 말하며, 다니엘 2:44에서는 그분의 통치가 이방 왕국들의 모든 통치들을 완전히 부숴버린 다음 완전하게 세워진다고 말하고 있다. 특별히 다니엘에서는 바빌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등의 실제적인 왕국들을 말한 다음에 그리스도의 왕국을 말한 것으로 보아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도 실제적인 왕국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실제적인 왕국들을 다 없애버리고 영적인 왕국이 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왕국 복음은 이스라엘에게 예언을 성취해 주시는 메시야 왕국의 복음인 것이다.
그래서 이 복음은 첫째, 유대인들에게 전파된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10:5,6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천국 복음 전파를 위임하시면서 『이방인들의 길로도 가지 말고, 또 사마리아인의 성읍에도 들어가지 말고, 다만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이 복음의 일차적인 대상은 유대인이다.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을 얼마나 잘 대접했느냐에 따라서 보상받는다(마 10:40-42; 25:31-46).
둘째, 이 복음에서는 표적과 이적이 따른다. 주로 병고침의 이적이 등장할 텐데, 예수님께서도 왕국 복음을 전파하시면서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시는 것을 함께하셨고(마 4:23,24), 제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의 것을 명령하셨다(마 10:7,8).
셋째, 이 복음은 왕국이 임하기 이전에 왕과 왕국을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이므로 예수님의 초림 때에 한 번 제시되었고, 다시 재림 직전인 대환란 때에 전파될 것이다. 은혜의 복음은 교회의 휴거와 함께 끝나고, 대환란 때에는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다시 왕국 복음이 표적과 이적들을 수반하며 전파될 것이다.
넷째, 이 왕국 복음에서는 마태복음 5장에서 제시된 엄격한 규례와 같이 율법적인 행위가 강조될 것이다. 또한 교회 시대처럼 구원의 영원한 보장이 없고, 구원받은 사람도 배교하게 되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히브리서 6:4-6이 말하고 있는 바이며, 마태복음 24:13에서처럼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는 것이다.

교회 시대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거부당하셨고, 자연히 그분의 왕국도 연기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이스라엘은 그 왕국을 받아들이기에 부족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니 반드시 주시겠지만 아직은 그 일이 성취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이에 매우 중요한 일이 생겼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인해 새로운 백성, 즉 하나님의 영적 백성이 태어난 것이다. 이 새로운 백성은 그 출신 성분과는 관계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인데, 이들에게 전파된 복음이 바로 “은혜의 복음”이다. 이 복음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부당하신 이후에 전파된 것이고, 또 유대인의 예언과는 관계없는 상태에서 전해졌으니 왕이나 왕국에 대해서는 강조되지 않는다.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되므로 십자가와 그분의 보혈, 또는 그분의 죽으심이 이 복음의 핵심이 된다. 또한 이 구원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이 될 수 있는 일이기에 은혜 또한 강조되며, 죄와 마귀에게 사로잡힌 상태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지는 것이니 죄와 형벌이 강조된다. 또 믿음으로 의를 얻기 때문에 무엇보다 믿음이 강조된다.
이에 대해서는 아브라함에게 전파된 복음에서도 확인된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복음을 들었다고 말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하실 것을 미리 보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파하기를 “네 안에서 모든 민족이 복을 받으리라.”고 하였느니라』(갈 3:8). 이 구절에 따르면 성경이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말씀한다. 이때 복음의 내용은 “네 안에서 모든 민족이 복을 받으리라.”는 말씀으로, 갈라디아서에서는 이 말씀을 이방인들이 믿음으로 의를 얻는 것에 적용하고 있다. 바울 사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약속을 아브라함과 그의 씨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한정시키고 있는데, 즉 이방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를 얻어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 제시된 이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브라함의 씨로서 이 땅에 제시하는 것이고, 우리에게는 어떠한 종류의 행위도 필요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만 구원받고 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복음은 다른 사도들에게보다 특별히 바울 사도에게 맡겨진 사명이었다. 다른 사도들도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증인이었지만, 바울 사도는 특히 이 복음에 관한 모든 구체적인 교리들을 받았던 자로서 이 은혜의 복음을 “나의 복음”이라고 말할 정도로 이 복음은 그에게 매우 중요했다(롬 2:16; 16:25).

저주받을 다른 복음

이처럼 신구약 성경에 나와 있는 많은 복음들은 크게 두 가지, 즉 왕국(천국) 복음과 은혜의 복음으로 나뉘는데,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은 성경 연구에 있어서뿐 아니라 우리의 실제적인 신앙 생활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다.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면 우리는 복음을 전파하는 데 있어 상당한 오류를 범하게 되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14장에는 “영원한 복음”이라 불리는 또 하나의 특별한 복음이 있다. 이는 대환란 때에 한 천사가 땅에 있는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선포하는 복음으로서 천국 복음이나 은혜의 복음과는 다른 별도의 복음이다.]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경고를 한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너희를 교란시키는 어떤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개시키려는 것이라. 그러나 우리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것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으리라』(갈 1:7,8). 바울 사도가 강조하는 것은 은혜의 복음이다. 그리고 “다른 복음”이란 은혜의 복음이 아닌 모든 다른 복음들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복음 비슷한 것으로 사람들을 미혹시키는 가짜 복음들도 포함되지만 또한 천국 복음도 포함된다. 이 시대에는 은혜의 복음 이외에는 어떤 복음도 금지되어 있다. 은혜의 복음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구원의 길로 제시될 수 없기 때문이다. 천국 복음도 우리에게 구원의 길로 제시될 수 없다. 천국 복음은 유대인에게 주어진 복음이다. 또 천국 복음에는 병고침이나 이적 등의 표적이 따른다. 천국 복음에 따르면 율법도 지켜야 한다(마 5장). 더욱이 천국 복음 아래에서는 구원을 받았다가도 배교하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 그러므로 죄인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한다 해놓고 잘못된 길을 제시하여 그를 지옥에 던져넣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그 다른 복음을 전파한 자가 어찌 저주를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천국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지 가르치는 것이 저주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천국 복음을 구원의 길로 제시하는 것이 저주받는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시대와 대상에 따라서 다른 복음을 제시하셨다. 그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복음이 아니면 모두 다른 복음이다. 이 시대에는 은혜의 복음 외에는 모두 “다른 복음”이고, 천국 복음이 전파되는 시대에는 천국 복음 외에는 모두 “다른 복음”이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는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전한다 하면서도 잘못된 복음을 전하고 있다. 특히 선교를 한다는 사람들도 『이 왕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런 후에야 끝이 오리라.』(마 24:14)는 말씀을 붙들고 “온 세상에 복음을 다 전파해야 주님께서 오시므로 열심히 복음을 전하자” 하며 천국 복음을 전하는데, 이는 매우 중대한 오류가 아닐 수 없다. 단지 용어를 잘못 알아서 은혜의 복음을 전하면서 천국 복음이라고 말하는 정도는 무식해서 그렇다 하나, 만일 천국 복음을 전한다며 마태복음 5장의 산상설교의 내용이라든지, 끝까지 견뎌야 구원받는다든지(마 24:13), 구원받은 사람도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든지(히 6:4-6), 야고보서에서처럼 행위를 강조하는 내용을 전한다면 그 사람은 천국 복음을 구원의 길로 제시하는 것이므로 갈라디아서 1:8의 말씀에 따라 저주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이라 해서 무조건 다 좋다고 전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전파할 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즉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다. 우리는 모두 죄인으로서 죄 가운데서 죽어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영원한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해 주셨다. 이 사실을 믿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은혜의 복음이다. 우리는 모두 이 복음을 전하여 죄 가운데서 죽어가는 저 어리석은 죄인들을 구령해야 한다. 그러나 한 가지 더 명심하라. 이 은혜의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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