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신학논단 분류

영의 새로움 가운데 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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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4년 10월호>

그리스도인은 사람을 처음 만나면 상대방에게 “거듭나셨습니까?” 혹은 “언제 거듭나셨나요?”라고 묻는다. 구원파에 시달린 한국 사람들은 “구원파세요?”라고 되묻는다. 구원파에 놀란 사람들이 “구원”과 “거듭남”을 말하면 구원파인 줄 생각한다. 거듭났냐고 묻는 것은 그 사람이 구원받았는지, 또 하나님과 소통이 가능한 사람인지 묻는 것이다.

사람의 삼중구조

『화평의 하나님 바로 그분께서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책망할 것이 없게 보존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하노라』(살전 5:23). 사람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곧 영과 혼과 몸이다. 혼은 인지하고(지), 느끼고(정) 뜻을 가진(의) 사람의 자아를 말한다. 예전에는 “혼”을 막연하게 생각했으나, 피터 럭크만 박사가 혼이 눈에 보이는 몸의 형태를 가졌음을 성경적으로 설명해 놓았다. 지옥에 간 혼들도 “눈”이 있으며, “혀”가 있고, “손가락”이 있으며(눅 16:23,24), 죽은 성도들도 혼적인 몸이 있기에 “의복”을 입을 수 있는 것이다(계 6:9-11). 몸은 그야말로 세상을 느끼는 부분으로 사람의 물리적인 구성 요소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영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요소로서, 태초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아담은 살아 있는 영을 가졌으나 타락하면서 그 영이 즉시 죽게 되었고 그 후로는 영이 죽은 자신의 형상을 따라 자손을 낳게 되었다(창 1:27; 2:7; 5:3).

거듭남, 곧 중생의 정의

거듭남은 새로운 출생, 두 번째 출생, 영의 부활을 의미한다. 곧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을 때 성령께서 그 사람 안에 있는 영을 살리시는 사건을 말한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이 때 『물』로 태어나는 것은 육신적인 출생을 말하고,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은 영의 출생을 말한 것이다(요 3:6). 거듭남은 몸의 탄생처럼 순간적으로 이뤄지며 결코 서서히 진행되는 과정이나 절차가 아니다. 곧 구원받은 사람은 누구나 몸의 출생을 말하는 생일이 있고, 영이 생명을 얻은 영적 출생의 생일이 있는 것이다. “한 번 태어나면 두 번 죽고(히 9:27, 계 20:14), 두 번 태어나면 한 번 죽는다.” “두 번 태어나면 죽지 않고 주님을 뵐 수도 있다!”

거듭남의 아닌 것

1. 물 침례는 거듭남이 아니다.

“침례에 의한 중생”(Baptismal Regeneration)을 믿는 로마카톨릭과 그리스도의 교회 이단들은 침례를 받아야 거듭난다고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다. 물에는 사람의 영을 살리는 힘이 없다. 한국수자원공사가 고도로 정화시켜 제공한 물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뿌리고 그것으로 온 몸을 적셔도 영적인 변화는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신부나 목사가 에비앙으로 세례를 줘도 영은 살아나지 않는다. 이단들은 사도행전 2:38을 토대로 물 침례로 거듭남이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맥을 읽어 보라(행 2:36,37). 사도행전 2:38은 당시에 유대인 사도들이 민족의 메시아를 죽인 유대인들에게 제시한 해법이다. 교회 시대의 구원 방법으로 주어지지 않았으며 신약 전체에서 단 한 번도 이를 구원의 방법으로 다시 제시하지 않는다.

2. 종교 행위나 자기 개혁은 거듭남이 아니다.

거듭남은 죄인이 종교에 심취하여 종교적인 규례들이나 의식들에 열심을 낸다고 일어나지 않는다. 꼬박꼬박 “새벽기도”, “수요예배”, “금요철야”, “토요일봉사”를 나가는 것이 거듭난 증거가 아니다. 거듭남은 죄인 스스로의 도덕적 종교적 변화와 발전, 자기 개혁의 단계를 밟아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죄인은 영이 죽은 자인데(마 8:22) 죽은 자가 죽은 종교의 행위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가당치도 않은 말이다. 거듭남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행위로 새로운 생명을 영에 전달하는 하나님의 역사다.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에 의하지 않고 그의 자비하심에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이 성령을 예수 그리스도 우리 구주를 통하여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셨느니라』(딛 3:5,6).

거듭남의 필요

1. 『허물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너희』(엡 2:1). 아담의 타락 이후로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허물과 죄 가운데서 그 영이 죽은 채로 태어난다(고전 15:21,22, 엡 2:1-5).

2. 또한 아담의 모든 후손들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자 하는 악한 죄성을 물려받는다(창 8:21, 렘 13:23; 17:9). 각 사람이 한 영이신 하나님, 또한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는 그 영이 다시 살아나야 하고 영의 생명에서 나오는 새로운 성품이 필요하다. 『누가 더러운 것 가운데서 깨끗한 것을 가져올 수 있나이까? 아무도 없나이다』(욥 14:4).

따라서 시대와 장소와 국경을 넘어, 남녀노소, 지위고하, 신앙 경력과 종교를 불문하고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거듭나야만 한다. 『내가 너에게 ‘너희는 거듭나야만 한다.’고 말한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요 3:7).

거듭남의 방법

1. 중생의 도구, 하나님의 말씀

거듭남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영적인 생명을 주셔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시는 것을 말한다. 복음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지 않고는 거듭남이 있을 수 없다. 『그분 자신의 뜻으로 우리를 진리의 말씀으로 낳으셔서』(약 1:8).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

2. 중생의 행위자, 성령님

죄인이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이면 성령께서 그 사람 안에 들어가셔서 그의 영을 살리시고 그를 그리스도의 몸 안에 넣어 주신다.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 바람이 임의로 불어서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듯이 성령으로 난 사람은 모두 그와 같으니라』(요 3:6,8). 중생의 주관자는 아버지 하나님이시며, 중생의 통로는 예수 그리스도시며, 중생의 집행자는 성령 하나님이시며, 중생의 도구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거듭남의 결과

먼저 거듭난 사람은 영이 살아나서 새로운 영적 생명을 부여받는다. 또한 거듭난 사람 안에서 영적 생명에 따른 새 사람이 형성된다. 아담의 후손들이 모두 공유하는 육신적인 인격체인 옛 사람과 반대되며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새 사람』이 그 안에 형성되는 것이다(골 3:10). 또한 거듭난 사람은 새 사람에 따른 새로운 본성, 곧 거룩한 본성이 있어 하나님과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즐거워한다(롬 7:22).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영적 욕구가 생기고(요일 3:14)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된다(요 8:47). 죄인은 하나님께는 죽은 사람이요 타락한 세상 체계와 영적 악에 대해서 살아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은 이제 성령을 통해 영으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모든 계획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깊은 것들도 깨달을 수 있게 된다(고전 2:9-13). 이전에는 전혀 몰랐던 새로운 영적 세계가 그에게 펼쳐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옛 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후 5:17). 이제 자유함 가운데 하나님의 영을 따라 『영의 새로움으로』 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롬 7:6).

거듭나지 못한 죄인은 무엇과 같은가?

거듭나지 못한 죄인은 바람 빠진 공과 같다. 아무 일에도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거듭나지 못한 죄인은 전원이 꺼진 라디오와 같다. 아무리 채널을 바꿔도 송수신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거듭나지 못한 죄인은 나비로 변하지 못하고 고치 속에 갇힌 애벌레와 같다. 넓은 창공을 한 번도 날아보지 못하고 어둡고 좁은 고치 안에서 죽은 것이다. 거듭나지 못한 “기독교인”은 회칠한 무덤과 같다. 겉은 경건하게 치장되어 있지만 그 속은 죽음으로 인한 부패가 만연하여 악취가 나는 것을 종교적 위선으로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반 4세(Ivan IV)는 16세기를 산 인물인데, 러시아 전역을 다스린 첫 번째 황제였다. 그는 극단적인 공포정치체제를 시행한 너무도 잔인학고 사악한 군주여서 사람들은 그를 “폭군 이반”(Ivan the Terrible)이라고 불렀다. 그는 부도덕하고 흉포하기로 소문이 났다. 그런데 막상 1584년 그가 죽을 때는 그의 머리를 깎고 성직자의 겉옷을 입혀서 장사를 지내게 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이반 4세를 성직자로 착각하셔서 폭군 이반을 하늘나라로 들여보내 주시기를 바랐던 것이다.

오늘날 종교적 가식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거듭난 사람으로 받아 주시기를 바라는 사람이 이와 같다. 로마카톨릭 교황, 추기경, 대주교, 주교, 신부, 수녀, 이슬람 칼리프, 이맘, 유대교 랍비들, 불교의 중들, 힌두교의 그루들은 모두 죽은 영으로 죽은 종교를 섬겨 영적 생명을 얻고자 하는 자들이다. 『에디오피아인이 그의 피부를 바꿀 수 있으며 표범이 그의 점들을 바꿀 수 있겠느냐? 그렇다면 악을 행하는 데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렘 13:23).

거듭나지 않은 자들의 타락과 방황, 이것이 한국 교회를 묘사하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교회는 현 상태에 있는 것이다. 당신이 무엇이든, 한기총 대표회장, 보수교단 대표회장, 노회장, 목사, 부흥사, “권사,” 장로, 집사, 모태신앙 교인, 그 무엇이든 거듭나지 않았다면, 당신은 구원받지 않은 것이며 니코데모처럼 아직도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종교인일 뿐이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BB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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