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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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이란 말에 미혹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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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4년 11월호>

지구촌교회 이동원 원로목사가 지난 9월 15일부터 18일까지 제6차 미국장로교 전국한인목회자 컨퍼런스에 주강사로 참여해 강의를 했다고 한다. 강의 주제는 "목회자의 자기관리"였는데, "건강한 영성"에 관한 강의가 언론에 공개되었다. 언론에 따르면, 이 목사는 지난 15여 년 동안 "영성"이라는 화두에 빠져 있었고, 그 결과 은퇴 후 경기도 가평에 필그림하우스라는 영성의 집을 만들어 영성을 주제로 한 목회자 세미나를 인도하고 있다. 이 목사는 그날 강의에서 한국 교회의 영성을 4가지로 줄여 제시했는데, 그는 그것을 복음주의와 오순절주의, 사회 복음주의, 수도원주의라고 했다. 강의 말미에 가서 "저는 복음주의에서 시작하여 오순절주의 그리고 사회 복음주의로 왔다가, 목회의 거의 마지막 마무리에 와서 '영성'이라는 화두에 걸리면서 수도원운동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10년간 미친 듯 수도원운동의 흐름들을 찾고, 같이 기도도 해 보고, 내가 몰랐던 부유한 광맥이 그 안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저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것 때문에 훨씬 적어도 내면에 훨씬 더 커다란 부유를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정직한 나의 고백이다. 같은 교단에 있는 목회자라도 영적인 경험의 전이는 매우 다양하다."라고 한 이 목사가 분류한 한국 교회의 4가지 영성이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첫째, 복음주의(Evangelicalism)이다. 이 목사는 이것이 한국 교회의 가장 많은 전통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복음주의의 목표는 하나님의 진리를 추구하고, 성경공부 같은 것을 통해 우리가 믿어야 할 명제적 진리를 붙잡으려고 노력하며, 방법으로는 연구하고 분석해서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믿어야 할 진리, 붙잡아야 할 진리가 무엇인가를 찾는다고 했다. 이것이 복음주의 전통 혹은 개혁주의 전통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 왔던 전통이며, 복음주의에서 부족했던 부분은 채워지지 않는 예배에 대한 갈망이라고 했다.

"복음주의"란 무엇인가? 쉽게 말해서 복음의 본질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대속에 대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교리에 있다는 것이다. 흔히 복음주의를 말할 때에는 "복음"이라는 순수한 의미와 관련하여 요한 웨슬리의 감리교 운동과 조나단 에드워즈와 조지 휫필드를 중심으로 영국과 미국에서 일어난 영적 대각성 운동을 떠올린다. 최소한 그때에는 "복음"을 전해서 죄인들이 현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기 때문에 실로 "복음주의"라고 부를 만했다. 말하자면 진정한 복음주의는 죄인을 회심시킬 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실제적으로 증거하는 복음 전파(Evangelism)가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것이다. 복음 전파가 없는 복음주의란 있을 수 없고, 복음 전파만 잘 이뤄진다면 복음주의라는 말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복음주의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면, 그것은 열정적인 복음 전파의 부산물일 뿐이다. 복음을 너무도 열심히 전하니까 그런 사람들을 복음주의자라고 부른 것이다. 지금은 그런 기본적인 의미마저 퇴색되어 복음도 안 전하고 복음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가리켜 복음주의자라 하고 있다. 이동원 목사 같은 이들이 대표적인 경우로, 그는 "하나님의 진리를 추구하고, 성경공부 같은 것을 통해 우리가 믿어야 할 명제적 진리를 붙잡으려고 노력하며, 방법으로는 연구하고 분석해서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믿어야 할 진리, 붙잡아야 할 진리가 무엇인가를 찾는 것"을 복음주의의 목표라고 했다. 아마도 그는 교회에 십자가를 걸어 놓고 진리 비슷한 것을 추구하는 어떤 열정 같은 것을 복음주의로 착각한 듯하다. 그는 그것을 한국 교회의 첫 번째 영성이라고 했다.

둘째, 오순절주의(Pentecostalism)이다. 하나님의 진리, 믿어야 할 진리, 고백해야 할 진리, 붙잡아야 할 진리, 전해야 할 진리로서 하나님의 진리를 복음주의나 개혁주의 전통이 강조했다면, 오순절주의에서는 하나님의 은사를 경험하는 것, 은사집회를 하고, 은사를 위해 기도하고, 은사를 받고, 은사를 나누고, 은사를 추구한다고 했다. 오순절주의의 방법은 예배인데, 예배하는 도중에 은사를 받고 방언을 하고 하는 것이 오순절주의이며, 이들에게 결핍된 갈망은 연구가 부족하다는 것인데, 이 목사가 목회했던 교회에 오순절 교회인 순복음교회에 있던 이들이 오면, 열정은 그대로 있고, 그동안 굶주렸던 성경공부 과정을 통해 잘 정착하는 모습을 본다고 했다.

이 목사는 오순절주의자들을 "지식이 부족한 열정"의 시각으로 보았고, 그들이 추구하는 은사를 인정했으며, 특히 방언을 인정했다. 이 목사는 (그의 말에 따르면) 처음에 아주 근본주의적인 성격의 선교사들에게 전도를 받아 성경공부 하다가 예수님을 믿었는데, 자기 아내는 어쩌다 젊은이 수양회를 갔다가 혼자 방언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선교사에게서 방언은 마귀가 주는 것이라고 배웠고, 그가 공부한 신학교에서도 모든 은사는 과거에 초대 교회에서 끝났다고 배웠는데, 자기 옆의 아내가 방언을 하니 참으로 해석하기가 곤란했지만, 아내의 정직성과 순결성을 볼 때 아내는 전혀 구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이 주셨다고 하고, 혼자 방언으로 기도하면 그것을 통해 마음에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느낄 수 있다고 하니, 세월이 흘러가면서 어쩌면 아내가 맞을지 모른다는 조용한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으며, 그리하여 마음을 넓혀 오순절운동들에 "기웃거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것이 그가 오순절주의를 한국 교회의 두 번째 영성으로 제시한 이유이다. 이 목사야말로 지식 없는 열정으로 쓸데없는 곳에 "기웃거렸다가" 오염된 것이다. 사실 그가 배웠던 방언에 대한 지식만큼은 바른 것이었다.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한 표적으로서의 방언(고전 1:22; 14:22)은 신유의 표적과 함께 『사도의 표적들』(고후 12:12) 가운데 하나였으며 사도들이 죽음으로써 사도들의 시대로 중단되었다. 신유도 그때 중단되었다(딤전 5:23, 딤후 4:20). 현재 오순절주의자들이 행하고 있는 방언은 성경적인 방언이 아니며, 그들의 신유 또한 성경적인 은사가 아니다. 성경에서 아니라고 말씀하는 것을 옳다고 하는 사람은 마귀에게 미혹된 것이다. 믿음이 진리의 지식에 뿌리내리지 못한 이 목사가 "기웃거리면" 그것이 진리가 되는 것인가? 수십 년간 목회를 해오면서 무엇이 진리인지도 몰랐다는 말인가? 그는 한국 교회를 망쳐 놓은 오순절주의를 목회 말년에 와서 한국 교회의 영성으로 추켜세우고 있다. 그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인가?

셋째, 사회 복음주의(Socio-evangelicalism)이다. 이 목사는 한국 교회의 영성의 마당에서 사회 복음주의는 절대로 무시할 수 없었던 길이며, 주로 한국에서는 기장, 감리교, 그리고 통합 일부에서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 민주화 투쟁을 하면서 걸어왔던 길이 사회 복음주의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목표는 하나님의 정의이고, 하나님의 정의가 역사 안에 사회 안에 실현되는 것을 보는 것이며, 그 방법은 행동이라고 했다. 사회참여 행동을 통해서 그날이 오기를 기대했는데, 거기에 결핍된 것은 행동만 하다 보면 내면의 고갈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결핍된 갈망은 묵상에 대한 갈망인데, 열심히 다니면서 데모도 하고 투쟁도 하는데 자기 안이 비어가는 것을 경험하기에 묵상에 대한 갈망이 있으며, 그래서 이 목사가 마지막으로 제시한 카드가 넷째, 수도원주의(Monasticism)이다.

사회 복음주의란, 마귀가 통치하는 세상으로부터 성별되어 복음과 진리를 위해 애쓰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비해야 할 교회가 해서는 안 되는 인본주의적 사회개혁운동이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형체가 사라져 간다고 말씀하신(고전 7:31) 세상, 즉 멸망해 가는 이 세상을 인간의 힘으로 개선시키려 하지 않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실 천년왕국을 소망하며 마귀들과의 영적 전쟁을 치르는 믿음의 전초기지여야 한다. 그러나 거듭나지 못한 교회 안의 종교인들이 교회의 이름으로 이 타락한 세상을 변혁시키겠다고 나선 것이 사회 복음주의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길거리에서 데모나 하라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셨던가? 주님의 사도들이 정부를 향해서 단 한 번이라도 시위를 한 적이 있었던가? 그 시위대들은 이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 없이 인간의 힘으로 살기 좋게 만들려고 하는 헛된 무리들이다. 복음과 아무런 관계도 없고,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가 전혀 필요치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복음주의라는 말을 가져다가 왜곡시켰다.

"이들이 사회운동에만 치중하다 보니 자기 안이 비어가 묵상에 대한 갈망이 생긴다"면서 이 목사가 추천한 것이 수도원주의이다. 그는 과거 카톨릭의 관상기도를 한국 교회에 들여오려다가 많은 비판과 반대에 부딪쳤었다. 그는 그 그릇된 소신을 꺾지 않고 현재까지 카톨릭의 영성을 꾸준히 전파해 오고 있다. "저만해도 사실 복음주의 신학교에서는 과거에 공부할 때, 수도원 운동하면 도피주의와 신비주의로 관심을 가지지 말아야 할 것으로 배웠었다. 좀 더 신앙생활이 지나면서 이 부분에 있어서 우리가 배워야 할 많은 것을 놓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하나님과 영적인 연합을 이루는 것, 그리고 일치를 이루는 것이 수도원주의 수도사들이 추구했던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라고 수도원주의를 옹호했다. 이 부분 역시 이 목사의 "기웃거림"이 작용했다. 그가 "기웃거린 것"은 다 진리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자신이 이전에 거부했던 것이라 할지라도 일단 "기웃거리면" 그것이 그의 사고방식 안에서는 교회가 추구해야 될 일이 되어 버린다. 이것은 이 목사 자신을 한국 교회가 믿고 따라야 할 "믿음과 실행의 최종권위"로 제시하는 교만의 극치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 목사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이 목사 자신의 "영성의 이동"이었다. 그는 "(이상한) 복음주의에서 시작하여 오순절주의 그리고 사회 복음주의로 왔다가, 목회의 거의 마지막 마무리에 와서 '영성'이라는 화두에 걸리면서 수도원운동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고 했다.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한국 교회가 모두 이 목사를 따라서 결국 "계시록의 창녀"의 "영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 목사는 그 "영성"이란 말의 매력에 홀딱 빠져 버린 눈먼 안내자이다. "영성"을 대단한 것으로 여기고,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도 못한 채 마치 진리인 양 가르치는 거짓 선지자이다. 복음주의 영성, 오순절주의 영성, 사회 복음주의 영성, 수도원주의 영성, 이 모든 것이 다 무엇이란 말인가?

"영성"이란 말은 성경적 근거가 전무한 이교적 표현이다. 배교한 기독교계에서는 카톨릭에서 흘러들어온 그 말을 신앙과 관련된 정신성 정도로 보고서 손에 잡히는 것마다 "영성"이라는 말을 가져다 붙이고 있다. "영성"(Spirituality)이란, 말 그대로 "영적이다"(Spiritual)는 뜻인데, 참된 "영적인" 것과 관련하여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우리가 그것들을 말하되 인간의 지혜가 가르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말로 하나니 영적인 일들을 영적으로 비교하여 말하느니라. 그러나 자연인은 하나님의 영의 일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일들이 그 사람에게는 어리석게 여겨지기 때문이요, 또 알 수도 없나니 이는 그 일들이 영적으로만이 분별되기 때문이니라.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들을 판단하나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고전 2:12-15). 성경은 우리에게 『영적인 사람』을 강조하고 있으며, 『영적인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고 있다. 『영적인 사람』이 되는 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것들』을 말할 때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말』 곧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영적인 일들을 영적으로 비교하여』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바른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을 서로 비교하여 진리를 말한다면 그 사람이 성경이 규정한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성"을 추구하라고 하시지 않고 『영적인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 그러나 많은 교인들이 성경의 진리를 알지 못한 채 이교도 카톨릭을 따라 온갖 것에 "영성"이라는 말을 붙여가며 미혹당하고 있는 것은 심히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이 목사처럼 카톨릭 수도원주의에 "기웃거리면서" 적극적인 "영성" 전파자가 되기까지 한다. 배교한 기독교계에 퍼져 있는 "영성"이라는 말은 마귀가 던져 놓은 카톨릭의 미끼이다. 미끼를 덥석 문 물고기가 맞이할 것은 죽음뿐이다. 그들은 죽음의 세력을 가진 마귀에게 붙잡혀 있다(히 2:14). 마귀가 던져 놓은 죄를 붙잡으면 사망을 열매로 거두게 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롬 6:23). 『속지 말라, 하나님은 우롱당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이는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둘 것이기 때문이라』(갈 6:7).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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