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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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에 대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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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5년 01월호>

사랑과 평화라는 말만큼이나 남발되는 말이 "은혜"이다. 은혜에 대해 말은 많이 하는데 정작 은혜에 미치지 못할 수가 있고, 더 나아가 은혜를 헛되이 받아 은혜의 영을 모독할 수 있다. 은혜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아 은혜 가운데서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은혜에 대한 첫 번째 오해는, 구원에만 초점을 맞추는 자들이 주장하는 "은혜의 목적은 구원받는 데 있다."라는 것이다. 은혜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엡 2:8) 그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일치되도록 예정된 사람이다(롬 8:29). 이 약속의 말씀이 성취될 때까지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러야 한다(엡 4:13). 하나님께서는 이 목적으로 은혜를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성도로 하여금 죄를 이기게 하여, 하나님의 뜻인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가운데 세상 정욕들을 거부하고,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한다. 더 나아가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독특한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선한 동기를 부여한다(딛 2:11-14). 또한 하나님의 은혜는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게 한다. 『이 은혜로써 하나님을 기쁘게 섬기되』(히 12:28). 은혜는 구원만을 위한 것이 아닌 것이다.

은혜에 대한 두 번째 오해는, 죄를 합리화시키는 자들이 주장하는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일수록 은혜를 많이 받는다."라는 것이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보면, 주인공인 크리스찬이 한 번도 청소한 적이 없는 방으로 인도되어 청소하기 시작하는 대목이 나온다. 먼지가 일어 거의 질식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 물을 뿌리자 먼지가 가라앉는다. 인간의 마음을 죄의 먼지로 가득 찬 더러운 방으로 비유한 것이다. 율법의 빗자루로 청소를 하면 할수록 마음에서는 먼지가 더 일어나 질식 직전까지 가는데, 그때 당사자는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해 낼 것인가?』(롬 7:24)라고 부르짖게 된다. 그때 은혜의 복음인 물이 먼지를 해결하여 마음을 깨끗하게 한다.

커튼이 쳐져 있는 캄캄한 지하실 방에 얼마나 먼지가 많이 있는지는 햇빛이 들어오는 순간에서야 알게 된다. 은혜로 구원받아 점차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가는 가운데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을 깨닫는 동시에 그 말씀이 육신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조명하여 육신이 죄들로 이루어졌음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가 많아지게 하려는 것이라. 그러나 죄가 많아진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 5:20).

하나님께서는 드러나는 죄들에 대해 이기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사람에게 그분의 은혜를 넘치게 주신다. 죄를 많이 저지른다고 은혜가 넘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난 죄에 대하여 그것을 단절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가질 때, 그 죄와 피흘려 맞서 싸우고자 하는 믿음의 강한 투지를 가질 때(히 12:4)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죄에 대해 승리하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우상을 버리는 사람에게 자비와 은혜를 넘치도록 베푸시는 분이시다.

은혜에 대한 세 번째 오해는, 하나님의 은혜를 정작 원치 않는 자들의 주장으로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든지 원하기만 하면 받을 수 있다."라는 것이다. 하나님께는 그분이 은혜를 베푸실 특정한 때가 있다. 『말씀하시기를 "기뻐 받아들여진 때에 내가 네 말을 들었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도다." 하였으니, 보라, 지금이 기뻐 받아들여진 때요, 보라, 지금이 구원의 날이라』(고후 6:2). 인간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실 때 구원받아야 한다. 필요한 은혜를 베푸실 때 그 필요를 공급받아야 한다(히 4:16). 은혜 아래 있는 사람은 구원받은 즉시 침례에 순종하고 곧바로 성경을 공부하는 모임을 통해 성장한다. 어릴 때의 습관이 평생의 성격을 형성하듯, 갓 구원받았을 때의 삶의 원칙이 이후 믿음의 삶의 틀을 형성한다. 이 시기를 놓치면 마음이 왜곡되고 편향된 채 굳어져 평생 자신을 찌르게 된다. 물을 댄 논에 벼를 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바짝 마른 논에 벼를 심으려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콘크리트 타설 직후에는 무엇을 꽂든지 심겨지지만, 일단 굳어지기 시작하면 어지간한 힘을 가해도 심겨지지 않는다.

교회를 떠났다가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다시 회복하고자 교회에 출석하는 '옛 성도들'이 있다. 거의 대부분은 회복하지 못하고 몇 번 나오다가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게 된다. 도둑인 마귀는 성도가 은혜를 받을 만한 기회를 도둑질하여 타락시키고, 그 약점을 물고 늘어진다. 한 번 마귀에게 삼켜졌다면 회복되기가 결코 쉽지 않다.

또한 은혜는 일반적으로 성도들의 모임을 통하여 주어진다. 각 모임마다 받을 은혜가 다르기에 은혜를 갈망하는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모임을 귀히 여기고 모이기에 힘써야 한다. 성도들의 모임 안에서 인격적으로 받는 은혜와 인터넷 설교를 모니터로 시청하면서 받는 은혜는 엄연히 다르다.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 오는 마지막 날들에 더 많은 하나님의 사랑과 더 많은 하나님의 격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의 습관처럼 우리 자신들이 함께 모이는 것을 저버리지 말고 서로 권면하여 그 날이 가까워 오는 것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5).

은혜에 대한 네 번째 오해는 감정의 지배를 받는 자들의 주장으로 "은혜 받은 증거는 기분이 좋은 것이다."라는 것이다. 예배를 마친 후 "오늘 설교가 은혜로웠습니다."라는 말이 자신의 성정이나 기분을 만족시켜 주었기에 하는 말이라면 은혜를 오해한 것이다(딤후 4:3). 자신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설교가 은혜로운 설교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많은 경우 '은혜로운' 설교는 자신의 죄를 드러내고 책망하기에 기분이 좋지 않은 법이다. 자신의 자아를 부인할 때 비로소 은혜는 하나님의 화평을 보장한다. 은혜 아래 있는 사람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자신의 감정과 무관하게 우선적으로 책임 있게 하는 사람이다. 은혜 아래 있는 사람은 감정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감정뿐 아니라 이성의 지각까지도 초월하는 하나님의 평강의 통치를 받는 사람이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7).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건하라』(딤후 2:1). 은혜 가운데서 강건한 사람은 은혜의 말씀에 자신을 의탁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은 더욱더 높이는 반면 자신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부인하는 특징이 있다. 이런 사람이 성경에서 말하는 겸손한 사람이며,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사람을 매우 좋아하신다.

또한 은혜 가운데서 강건한 사람은 은혜의 복음을 전파하는 데 있어 이생의 일들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달려갈 길을 기쁨으로 끝마치고 내가 주 예수로부터 받은 사역,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라면 이런 일을 전혀 개의치 아니할 뿐 아니라 나의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아니하노라』(행 20:24).

은혜로 말미암아 성숙할수록, 성도는 감정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기에 믿음으로 행하게 된다. 옳은 것을 알았다면 느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 성숙한 성도의 특징이다.

『그러나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예수로 인하여 그의 영원한 영광으로 우리를 부르신 분께서, 너희가 잠깐 고난을 받은 후에 너희를 온전케 하시고, 견고케 하시며, 힘을 주시고, 확고히 하시느니라.』(벧전 5:10)고 기록한 베드로는 『오직 은혜와,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안에서 자라가라.』(벧후 3:18)고 우리에게 권면한다. 거듭난 성도는 모든 은혜의 하나님 그 "은혜" 안에서 자라야 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안에서도 자라야 한다. 은혜 안에서 자라고, 또 지식 안에서도 자라야 한다. 은혜와 지식 가운데 그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오해하지 않고 올바로 누리며 자라갈 때 성도로서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제가 너희 모두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고후 13:14).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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