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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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성경으로 돌아와 나라를 살리는 주역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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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7년 03월호>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세상이 되레 교회를 걱정하는 시대가 되었다. 교회들이 얼마나 보잘것없으면 그리하겠는가? 6만여 개의 교회들과 13만여 명의 목회자들의 타락과 세속화가 교회 역사상 가장 빠르게 한국 교회를 집어삼키고 있다. 마지막 날들의 교인들은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사랑한다. 교회를 통해 자신의 영광과 자기만족, 자기 욕구를 실현하려 하기 때문에, 그들은 맛을 잃은 소금과 같이 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마구 짓밟히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원인인가? 그리고 과연 이 난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인가?

우선, 한국 교회는 바른 복음의 부재와 더불어 처음부터 배교로 시작된 교회였다 . 우리나라에 처음 발을 들여 놓은 선교사들은 정상적인 복음을 가지고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사회 발전을 위해 배제학당, 이화학당, 연희학당, 세브란스병원 등을 세우는 등 "사회 복음"을 심는 데 주력했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사역이라고 오인했기 때문이다. 저주받을 "다른 복음"에(갈 1:8) 근거한 교육과 사회봉사로, 이 땅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교회들은 처음부터 잘못 배운 것을 기반으로 운영되었고, 더욱이 그들도 북한, 중국, 아프리카 등지에서 복음 없는 사회사업이나 하며 그것을 "선교"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처럼 바른 복음이 없는 데다 세상까지 섬기려다 보니, 세상적으로 규모가 커 보이는, 그런 양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 세상적인 방법도 서슴없이 수용해 버렸다. 성경에 계시된 교회의 본질을 올바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세상적인 방식으로 운영되는 세상 교회를 정상적인 교회로 오해해 버린 것이다.

세상이 바라는 교회는 "복음 없이" 사회 전반에 깊숙이 개입하는 교회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는 세상에서 성별하여, 잃어버린 죄인들을 이겨오려고 복음을 열심히 전하는 교회이며, 성도들에게 성경을 가르쳐서 그들로 죄와 싸울 수 있게 하고,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도록 만드는 교회이다. 그런데 이를 배우지 못한 목사들과 교인들은,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지탄받는 것을 하나님께 책망받는 것보다 더 두려워하여 세상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고자 안달했다. 세상 언론 매체에 교회 이름이 오르거나 담임목사의 얼굴이라도 나오면, 세상에서 인정받은 것을 만족해하며 "성공한 교회"라고 자랑하기도 했다. 이렇듯 섬김의 목적이 불순한 교회들은 세상을 향해 결코 죄를 책망하지 못한다. 세상에서의 성공이 그들이 교회를 하는 목적이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서 세상의 정욕을 즐기고 싶어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세상을 구별 못하고 거짓되게 섬겼던 자들을 가려내실 것이다. 주님의 자녀들은 『또 다른 복음』, 『또 다른 예수』, 『또 다른 영』을(고후 11:4) 분별해 내야 한다. 변개된 성경을 성경인 양 들이밀고 성경에 나오는 용어들을 오용하여 비성경적인 교리를 가르치는 자들을 분별해서 그들에게 속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

또한 육신적인 설교가 한국 교회의 타락을 부추겼다 . 세상을 사랑하는 교인들은 건전한 교리를 견디지 못하여 자신의 정욕을 채워 줄 선생들을 원했고(딤후 4:3,4), 목사라는 자들은 이에 틀린 성경으로 화답했다. 성령님의 조명을 받을 수 없는 개역성경 및 개역개정판으로 강단에서 헛된 말들을 나불댔고, 정중한 말과 그럴듯한 언변으로 은사주의, 칼빈주의, 후·무천년주의 등과 같은 거짓 교리들을 가르쳐 교인들의 마음을 미혹했다(롬 16:18).

그러한 육신적인 설교는 어떤 육신의 죄도 죽이지 못한다(골 3:5). 오히려 설교가 "엔터테인먼트"가 되어 버렸고, 소위 재밌는 설교로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인문학 강좌가 신학교는 물론 교회 강단까지 점령하여 대단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신학교들은 일찌감치 성경에 대한 끝없는 이론과 가설, 다양한 의견들 같은 결론도 없는 무익한 교육으로 일관했고, 배우면 배울수록 살아 계신 하나님을 불신하게 하고 심한 혼란을 가중시켰다(딤후 3:7). 그리하여 "직업 목사들"만 배출시킨 것이다. 이런 무자격자들이 교회 강단을 차지했고, 또한 그들은 변개된 성경에서 아무것도 건질 것이 없었으므로, 심리학, 교양, 윤리 강론, 사회 참여, 문화, 예술 등을 논하여 인간의 악한 본성에 아무런 찔림도 주지 못했다. 도리어 그런 인본주의적 설교가 거듭나지 못한 교인들의 가려운 귀를 즐겁게 해 주어 그들의 종교심이 대단한 것인 양 교만을 부추기고 말았다. "현대식" 설교로는 주님을 위해 어떤 결단이나 헌신도 이끌어 내지 못한다. 교회에 출석한 지 오래되었어도 마음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기에,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친 두 마음으로 능력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원인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교회 안에서 인간의 권리를 택했다 . 사람의 권위를 하나님의 권위보다 높인 것이다. 하나님의 권위를 인간의 권위로 대체하여 하나님의 종이 아닌, 목사들의 종이 된 교인들이 교회들을 가득 메우게 되었다. 교회가 배교하지 않으려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참된 목자의 지도와 감독을 받아야 한다(벧전 5:3,4, 행 20:28). 그러려면 자신을 인도하는 목자가 참된 목자인지 거짓 목자인지 구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나라 교인들에게는 그러한 분별력이 전무하다. 성경은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서 쓰시는 목자임이 분명하고, 특히 말씀과 교리에 수고한다면, 당연히 그를 배나 존경할 사람으로 여겨야 한다고 말씀한다(딤전 5:17). 그러나 인간의 권리가 판을 치는 교회들은 눈에 명백히 드러난 악한 증거들을 보고서도 오히려 거짓 목사들을 옹호하는 악한 습성이 있다. 담임목사가 죄를 범했음에도, 그가 그들의 교회를 키우는 데 "성공"(?)했다는 이유로 불륜이나 횡령, 공금유용, 위법 등으로 사회적인 지탄을 받아도 오히려 그 목사 편을 들고 감싸 주는 "공범들"이 되는 것이다. 성범죄를 저지른 삼일교회 전 담임목사 전병욱(현 홍대새교회)은 자신의 파렴치한 죄를 궤변 같은 설교로 무마시켰는데, 해당 교인들은 자신들의 목사를 여전히 떠받들며 주님께서 쓰시는 종이라고 맹신하고 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쓰시지 않는 종이라면 그렇게 교회를 성장시킬 수 있었겠냐!"는 몰상식한 말로 그의 범죄 사실을 덮어 버렸다. 2,900억 원으로 국내 최대 교회 건물을 지은 사랑의교회는 법원으로부터 불법 도로점용으로 허가 취소 판결을 받은 바 있는데, 그 교회 담임목사 오정현은 학위 논문 표절과 학력 과대 포장 등으로 지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만방자하게도 "국내 3위 규모의 교회 목사를 끌어내리겠다는 발상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더럽고 몰상식한 항변을 토해 냈다. 그 교회 교인들은 이에 동조해 버렸다. 담임목사가 사회적·법적 지탄을 받아도 소속 교인들은 아무런 문제도 삼지 않는 이 참담한 현실을 무엇으로 다룰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권위가 있는 바른 말씀으로만 다룰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너희가 통곡하기는커녕 교만해져서 이런 행위를 한 자를 너희 가운데서 쫓아내지 아니하는도다』(고전 5:2). 갖은 도덕적 범죄와 교회 재정 유용 등에 속수무책으로 손을 놓고 있는 교회들이 어디 이들뿐이겠는가!

한국 교회 전체가 죄의 가증한 누룩을 제거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반죽 전체가 부풀어 버린 것이다. 그들은 지금, "바른 성경"을 믿음과 실행의 최종권위로 삼고 그 성경으로 배우기를 거절한 그 가증한 죄의 열매들을 거두고 있다. 세상에 미련을 갖다가 소금기둥이 되어 버린 롯의 아내처럼(창 19:26),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문둥병에 덮여 버린 죄인처럼(레 13:12), 한국 교회는 죄로 곪아 터져 어디부터 손을 써야 할지 모를 지경이 된 것이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느냐? 너희가 더욱더 반역하리니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기진하였도다. 발바닥에서 머리끝까지 그 어느 곳도 성한 데가 없고 다만 상처와 상한 곳과 곪은 자국뿐이요, 그것들은 봉합되거나 싸매지거나 향유를 발라 유연하게 되지도 못하였도다』(사 1:5,6).

▷ 길은 오직 하나, 바른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한국 교회의 위기를 말하는 사람치고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 총론에는 이의가 없는 것이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인의 삶이 "말씀"으로 거듭남으로써 시작되고, 교회가 "말씀"을 통해 세상에서 불러냄을 받은 유기체가 되어 영적 양식인 "말씀"으로 양육되며, 또 "말씀"으로 무장해야 영적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한국 교회에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기에 그 총론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총론이 진리가 되려면 각론으로 들어가서 그 진정성을 확인해 보아야 한다.

첫째, 성경으로 돌아가려면, "변개된 성경"이나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는 "최초의 원본"의 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 필자는 개역성경이 변개된 사실을 알고 성별하기까지 6개월이 걸렸는데, 그 이유는 그간 10년 넘게 다녔던 성서침례교회만큼은 성경 문제에 대한 바른 인식을 공유할 것이라는 "공연한" 기대 때문이었다. 그래도 성서침례교회는 그 교회 이름에 "성서"란 명칭을 명시하고 있고, 세례로 기록된 부분을 모두 "침례"로 바꾼 개역성경을 따로 제작해서 사용할 정도로 그들 나름대로 성경적인(?) 교회라고 자부하지 않았던가! 어쨌든 교회 측에서는 필자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 이렇다 할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던 중 고(故) 장두만 목사와의 상담을 주선해 주었다. 교단 내에서는 나름대로 이름 있는 교수였고, 성경에 관하여 책을 쓴 학자라는 평도 있었기에 내심 기대를 하며 만났었다. 준비해 간 필자의 질문은 세 가지였다.

① "성서침례교회에서 성경은 영감받았다고 가르치며 설교하는데 현재의 개역성경은 그런 성경이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소 저돌적인 질문이었다고 여겼는지, 아니면 대학자(?) 앞에서 일개 "평신도"의 당돌한 질문이 불쾌했는지, 아무튼 그의 대답은 다분히 감정적이었다. "미국 사람들이 <킹제임스성경>을 영감받은 성경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 개역성경을 영감받은 성경이라고 받아칠 것입니다!" ② 보다시피 제대로 된 상담이 이어지겠나 싶었지만, 이왕에 왔으니 다음의 두 번째 질문을 던져 보기로 했다. "그러면 개역성경에는 오류가 없다는 말입니까?" "아니, 오류가 많습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목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알지 못하는 성도들을 가르쳐야 하니까요. 오늘도(주일) 헬라어 원본으로 대조해서 틀린 부분을 바로잡아 설교했습니다." "그러면 성도가 혼자 성경을 읽을 때 그런 틀린 본문을 만나면 어떻게 바로잡습니까? 매일 목사님과 함께 있는 것도 아닌데요." "아, 부분적으로 오류가 있어도 성경 전체 메시지를 전하는 데 개역성경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③ 답변이 갈수록 가관이었지만, 필자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서 말씀하는 성경은 '최초의 원본'만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맞습니다. 그러나 필사본이나 다른 번역 성경으로도 중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자, 어떠한가? 이것은 장 박사 개인뿐 아니라 개역성경을 추천하는 모든 목사들과 학자들에게서도 동일하게 들을 수 있는 답변이다. 그들이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아무리 외친다 해도, 돌아갈 그 성경이 변개된 성경이거나 듣도 보도 못한 "최초의 원본"이라면 말 그대로 허무한 총론에 불과하다. 한국 교회가 외치곤 하는 "성경으로 돌아가자!"라는 구호는, 마치 촉이 나가 버린 전등만큼이나 교회 시대의 밤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다. 이 배교의 바다를 비추는 유일한 등불은 <킹제임스성경>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하나님께서 이 민족에게 주신 유일한 등불인 <한글킹제임스성경>만이 그들이 돌아와야 할 유일한 성경인 것이다. 한글개역성경으로 망가진 교회가 그 변개된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은 죽음을 피하려고 간 곳에서 또다시 죽음을 만나는 것과 같다. 좋은 열매는 좋은 나무에서 나오듯, 바른 성경에서만 바른 신학과 바른 교리가 나오고, 바른 교리를 통해서만 바른 믿음이 형성된다. 그렇게 해야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성경 전체의 계시를 부정한다면 바른 성경으로 돌아간다 해도 무의미한 일이다 . 즉 아무리 부분적인 진리에 대해 탁월하다 해도 "온전한 성경적 진리"를 부인한다면 성경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일례로 성경 전체를 "구원"에만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교회들이 있다. 그러나 성도는 구원을 시작으로, 지혜와 계시의 영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의 전체적인 뜻을 알아야 한다. 이 목적으로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을 보내 주셨고 성경도 주신 것이다. 그 결과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알고 현재의 부르심과 다가올 소망 가운데 흔들림 없이 진리를 실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자기를 아는 지식 안에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시어 너희의 지성의 눈을 밝히셔서 너희로 하여금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들 안에 있는 그의 유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또 그의 강력한 능력의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향하신 그의 능력의 지극히 위대하심이 어떤 것인가를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엡 1:17-19).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을 뿐만 아니라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고 계신다(딤전 2:4). 구원만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뒤로 성경을 공부하여 진리의 지식으로 무장하는 것이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인 것이다. 성경 전체적으로 흐르는 진리의 지식으로 무장될 때, 세상과 육신의 모든 영역을 통해 오는 사탄의 시험과 공격을 능히 이겨 낼 수 있게 된다. 바른 성경을 택했다 해도, 온전한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 않으면 결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진리의 지식으로 자라지 않는 한 또다시 배교하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날마다 바른 말씀을 공부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안에서 자라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고 죄를 미워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는 것이다. 바른 성경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하는 "세대적 진리"를 통하여(딤후 2:15), 인류의 역사가 그 말씀 그대로 진행될 것을 믿고 실행하면서 교회의 휴거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지상 재림을 향해 나아갈 때 두 번 다시 배교의 늪에 빠지지 않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교회들의 배교는 바른 성경을 거부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수많은 교인들이 그러한 교회들을 떠나지 못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그들이 여전히 "성경"에 관해서 무지하기 때문이다. 누구 하나 성경을 제대로 가르쳐 준 적도 없고, 바른 성경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믿고 실행하자고 독려한 적도 없었다. 이것이 바로 한국 교회인 것이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시지 않은 거짓 목사들이 자기 교인들이 <한글킹제임스성경>을 보는 것을 막고, 그들을 계속 성경에 무지하도록 만들어 하나님을 대적하게 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천국을 닫아 버려 자기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같은 자들인 것이다(마 23:13). 이제는 그들에게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변개된 성경을 거부하고 바른 성경을 택해야 한다. <한글킹제임스성경>을 믿음과 실행의 최종권위로 삼고, 그 성경을 부지런히 공부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안에서 자라가야 한다(벧후 3:18). 하나님께서는 망해 가는 이 나라에서 그와 같은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만일 너희가 한 사람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공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내가 그 성읍을 용서하리라』(렘 5:1). 바른 성경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되어 "이 나라를 살리는 주역들"이 된다면 그 얼마나 복된 일이 될지 생각해 보라!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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