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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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가 개혁을 이루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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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4년 12월호>

마틴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이 3년 앞으로 다가온 지금, 한국 교회가 그에 대한 준비로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그들이 바쁘다는 것은 그들 스스로 루터의 종교개혁을 기념하여 한국 교회의 개혁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지켜 본 바, 그들의 교회 개혁은 아무것도 아닌 일에 야단법석만 떠는 형국이었다. 아무런 성경적 결실도 맺지 못하는 일에 말들만 많고 허풍(虛風)이 휘몰아쳤던 것이다. 그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쭉정이들만 나뒹굴었다. 그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그들은 그것과 동거했다. 왜 그랬을까? 쓰레기를 쓰레기로 볼 수 있는 영적 분별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올 늦가을에도 어김없이 교회 개혁의 찬바람은 불었다. 성경적인 개혁을 위한 뜨거운 믿음에서 나온 바람이 아니라, 종교개혁을 빌미로 교회 개혁의 바람을 한번 잡아 본 것이었다.

구원도 받지 못한 이들의 개혁과 자성의 목소리

지난 10월 3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국 교회 개혁과 갱신 대토론회'가 열렸다. 그곳에서는 한국 교회에 제2의 종교개혁이 필요하다는 상투적이고 고리타분한 주장이 잇따랐다. '또 그 소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년에도 들었고, 재작년에도 들었던 '식상한' 자성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500년 전 루터는 천주교의 개혁을 말했지만 현재 한국 교회는 한국 개신교의 개혁을 외쳐야 한다." 이것은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말이 아닌가? 한국 교회가 개혁을 외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던가?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않는 자들이다(마 23:3). 매번 지금부터 시작이라 해놓고 그 다음이 없다.

"한국 교회의 개혁과 갱신은 절체절명의 과제다. 이대로 가면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처럼 돼 버릴 수도 있다." 그들은 교회의 개혁을 말할 때 늘 그들의 목숨이 오락가락할 정도로 중요한 일로 묘사하곤 했다. 이미 초림 당시의 유대교처럼 외식적이고 위선적인 죽은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그렇게 "돼 버릴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무덤 속의 시체가 "이대로 무덤 속에 계속 누워 있다가는 시체가 돼 버릴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한국 교회는 무덤 속의 시체처럼 영적으로 "죽은 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현 상태로는, 그 목사들과 교인들은 큰 백보좌 심판 때 저주의 부활로 부활하여 영원한 불못에 들어가야 한다. 개혁을 이루려면 "죽은 자들"이 먼저 영적으로 "살아나야" 한다. 그 "죽은 자들"은 자신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묻히고 부활했음을 믿어야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해야만 교회의 개혁을 위해 "살아"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골로새서 2:12과 로마서 6:3,4은 한국 교회의 "죽은 자들"이 생명의 새로움 가운데에서 개혁할 수 있는 길을 보여 준다. 『너희가 침례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도 그와 함께 살아났느니라』(골 2:12). 여기서 말하는 "침례"는 어떤 이단들이 가르치는 "물침례"가 아니다. 이 말씀에는 "물"이 한 방울도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을 때 그분과 함께 살아나는 영적인 일을 묘사한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받은 우리가 그의 죽으심 안으로 침례받은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와 함께 장사되었으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인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생명의 새로움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 6:3,4). 한국 교회의 "죽은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의 죄값을 대신 치러 주시기 위해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삼 일 만에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을 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되심과 부활에 동참한 것이 된다. 그러면 그 "죽은 자들"이 "살아나게" 되고, 구원받은 그때부터 그들의 섬김과 사역에 "생명의 새로움"이 감돌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물침례(세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고 가르치거나, 행위로 끝까지 견뎌야 구원받는다고 가르치거나, 또 칼빈주의자들처럼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택하시고 예정하신 사람들만 구원받는다고 가르치는 한, 기본적인 구원관부터가 단단히 잘못되어 있는 한, 그들 안에서 절대로 개혁이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구원받지 못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죽은 자들"로 이뤄진 교회인 것이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를 따르라. 그리고 죽은 자들로 그들의 죽은 자를 장사지내게 하라."고 하시니라』(마 8:22). 죽은 자나 장사지내야 할 영적으로 "죽은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다는 것이 이 말씀에 암시되어 있다. 올바른 구원관이 없는 한국 교회는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명령에 응할 자격도 없고, 응할 수도 없다. 말 그대로 "죽은 자들"로 이뤄진 교회이기 때문이다. 주님을 따를 수 없다면 개혁은 물 건너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값을 대신 치러 주셨다는 사실을 어슴푸레 안 사람들이 교회를 세우고, 거기에 각종 이단 교리를 덧붙여 가르치며 자신들보다 더 악한 지옥의 자식들을 양산하는 곳이 한국 교회 아닌가? 구원도 받지 않은 채 교회 개혁을 논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일인가? 개혁은 올바른 구원관이 정립되어야 가능해진다. 구원받지 않은 자들의 교회놀이를 진지한 분위기로 만드는 것을 교회 개혁이라 부를 수는 없지 않은가!

종교개혁 500주년 맞아 "루터 전집" 제작

종교개혁 500주년을 3년 앞둔 지금 가장 들떠 있는 곳은 "루터회"일 것이다. 기독교한국루터회 종교개혁 500주년 사업의 일환으로 루터 전집 및 관련 도서를 제작할 계획이며, 이로써 제2의 종교개혁을 추구하는 한국 교회에 루터의 저작과 사상을 소개하는 55권의 도서를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까지 번역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루터 전집을 출간하면 한국 교회 전체에 큰 영향을 줄 것이며 그것이 바른 개혁의 초석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루터 전집을 출간하면 한국 교회에 개혁이 시작될 것이라고 생각한 그들은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다. 이미 그의 책들은 여러 권 출간되어 기독교 서점들에 꽂혀 있다. 각 교단 신학교들의 도서관에서도 얼마든지 구해 읽을 수 있다. 그런데 한국 교회에 무슨 변화가 있었는가?

루터가 『이 복음 안에는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었으니 기록된 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는 로마서 1:17 말씀에 근거하여 이신칭의를 가르친 것은 사실이지만, 그로 인해 촉발된 종교개혁의 뒤편에서 그가 저술한 책들에는 결코 성경적인 교리가 아닌 것들이 들어 있다. 일례로, 그의 <대요리문답> 제4부 '침례에 관하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나는 침례가 인간의 사소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셨다는 것과, 더욱이 우리가 침례를 받아야만 하며, 그렇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고 가장 엄숙하고 엄격하게 그것이 명령되었음을 자랑할 수 있다...』

루터의 이 대요리문답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그 근거 구절 중 하나로 "디도서 3:5"이 제시된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에 의하지 않고 그의 자비하심에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니』(딛 3:5). 루터는 여기서 『중생의 씻음』을 "물침례"로 생각하여 "침례에 의한 중생"을 가르쳤다. 그러나 이 구절은 그 뜻이 아니다. 『중생의 씻음』은 『성령의 새롭게 하심』과 함께 언급되고 있다. 중생(regeneration) 곧 거듭남은 성령께서 행하시는 일이다(요 3:5-8). 즉 성령께서는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할 때 그 사람 안에 들어가시어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적용하신다. 성령께서는 그 죄인의 죽은 영을 "거듭나게"(regenerate) 하시고 동시에 그의 혼을 그의 육신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영적 할례를 행하시는데(골 2:11-13) 성경은 이 일을 중생의 씻음(washing of regeneration)이라고 말씀한다. 중생의 씻음이라고 하는 것은 죄인이 "거듭날"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씻어지고"(엡 5:26),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어지고"(계 1:5), 성령에 의해 "씻어지기" 때문이다(고전 6:11). 죄인의 "중생"에는 철저하게 "씻음"이 동반되는 것이다.

보라!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지 못한 루터의 전집을 한국 교회에 출간하여 내다 판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가? 루터는 성경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로마서 1:17 한 구절을 붙들고서 "대탈출"을 감행했을 뿐이다. 로마카톨릭의 면죄부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세상에 알려 주려 한 것인데, 그의 책을 보면 그가 말한 "믿음"이 무엇을 믿는 것인지가 불분명해진다. 그의 신학 지식은 온전하지 않았다. 그의 책들로 어떻게 구원받지도 못한 한국 교회를 개혁할 수 있단 말인가?

"바른 성경만이 답이다!"

한국교회언론회는 종교개혁 497주년을 맞아 '종교개혁은 말씀(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논평을 발표했다. "16세기 종교개혁은 결국 성경이 말씀하시는 대로 돌아가서 기본부터 새롭게 하는 거룩한 물결이었으며, 말씀회복과 영적인 회복운동이었다. 즉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아 감추고 독점 왜곡하던 종교인들에게서 그 말씀을 본래 주인인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돌려준 것이다. 종교개혁 497주년을 맞이하는 한국 교회는 시대적 종교개혁을 요구받고 있다. 시대적 요구를 요약하면, 교회가 교회다워지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시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삶으로 진리를 보이라는 것이다."

교회언론회의 이 논평은, 한국 교회가 말씀을 빼앗기지는 않았는데 다만 기본을 상실해서 교회가 교회답지 않고, 그들 안에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지 못하고, 그 교인들이 삶으로 진리를 보이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들에게 "말씀"이 있다는 것이다.

아쉽지만 한국 교회에는 "말씀"이 없다. 책을 팔아 이익을 취하려는 교계 책장사들의 개역성경과 그 아류들은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은 없다. 이 민족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한글킹제임스성경> 한 권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의 독일어 성경과 그 뿌리를 같이 한다.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은 당시 등장한 인쇄술 덕분에 빠른 속도로 전파되었고, 비로소 성경은 카톨릭에 의해 닫힌 책이 아니라 열린 책이 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종교개혁을 위해서 바른 성경을 사용하신 것인데, 그 종교개혁 성경이 이 땅에 <한글킹제임스성경>이라는 이름으로 도착한 것이다. 이에 놀란 교계 지도자들은 "밥그릇"(롬 16:18, 빌 3:19) 걱정에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이단이 보는 성경"이라 규정하고 교인들에게서 "말씀을 빼앗는" 일을 자행해 왔다. 중세 암흑 시대에 일어났던 일이 지금 또다시 일어난 것이다!(전 1:9) 이런 교회 안에서 어떻게 성경적인 개혁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자신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데 신앙의 기본을 상실했을 뿐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는 "몽상가들"은 결코 교회의 개혁을 시작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다.

교인들에게서 바른 말씀을 빼앗아가는 자들은 마음속에 뿌려진 말씀을 빼앗아 가는 사탄만큼이나 악한 자들이다(막 4:15). 『이것은 놀랄 일이 아니니 이는 사탄도 자신을 빛의 천사로 가장하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사탄의 종들이 의의 종으로 가장한다 하더라도 큰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종말은 그들의 행위대로 될 것이니라』(고후 11:14,15). 참으로 교회의 개혁을 이루고 싶은가? 그렇다면 사람들 앞에서 개혁을 외칠 뿐 결코 개혁할 수 없는 사람들을 무시하라. 그들의 거짓과 위선을 드러내는 <한글킹제임스성경>을 믿음과 실행의 최종권위로 삼아 그 말씀 그대로 믿고 실행하도록 하라. 바랄 수 없는 자들에게서 희망을 찾지 않고, 하나님의 바른 말씀에서 희망을 찾을 때, 개인의 개혁이 전체의 개혁으로 들불처럼 번질 수 있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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