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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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를 낳은 한국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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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0년 04월호>

첫 사람 아담이 타락하여 "에덴"을 상실한 이후로 사람들은 현실보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어 왔다. 죄로 왜곡된 세상에서 벌어지는 부조리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토피아"를 꿈꾸어 온 것이다.

유토피아(Utopia)는 영국의 인문주의자 토머스 모어가 만든 말로서, 그가 1516년에 펴낸 <최선의 국가 형태와 새로운 섬 유토피아에 관하여>라는 책을 통해 알려지게 되었다. "유"와 "토피아"의 합성어인데, "유"(u)는 "없다" 또는 "좋다"라는 뜻이고 "토피아"(topia)는 "장소"라는 뜻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좋은 곳"이라는 의미인 것인데, 따라서 유토피아는 현재 이 세상에만 없을 뿐, 결코 실현 불가능한 곳은 아니라는 말이 된다. 러시아의 종교 사상가 니콜라이 베르자예프는 "유토피아는 지금까지 인간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실현 가능성이 있다. 인간의 삶은 유토피아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라고 했지만, 과연 그러할까?

사람들 대부분이 유토피아를 단순한 "이상 세계" 정도로 생각하지만, 인류 역사를 돌아볼 때 현 세상을 "이상 사회"로 만들기 위한 노력은 끊이지 않았다. 비근한 예로 공산주의 국가들의 경우 그들은 칼 마르크스의 "계급 없는 노동자 세상"을 유토피아로 여겼다. 그들은 유혈 혁명의 공산주의 1당 독재 체제를 그런 노동자들의 세상에 이르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도기"라고 주장하지만, 아무도 그런 유토피아를 맛보지 못한 채 잔인한 독재 속에서 죽어 갔다. 또한 1919년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주장한 국수주의적·권위주의적·반공주의적 정치사상인 "파시즘"과, 개인의 모든 활동은 오로지 전체(민족 또는 국가)의 존립과 발전을 위해 존재한다는 이념 아래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가 유토피아로 여겨지기도 했다. 독일의 나치즘과 구소련의 스탈린 체제가 여기에 포함된다.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시킨다는 점에서는 일본도 전체주의 국가였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진주만 공습을 감행한 가미카제 특공대를 보라. 사람들은 왜 그런 악취 나는 착취와 모순 속에 스스로를 파묻어 버린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불순종의 자녀들 안에서 역사하는 영』, 곧 『공중 권세의 통치자』를 따라 그 불순종의 자녀들이 공산주의, 나치즘, 파시즘, 전체주의라 불리는 『세상의 풍조』를 따라 잘못된 길로 가 버렸기 때문이다(엡 2:2).

정치권력을 힘입어 유토피아를 건설하려 하는 것을 "세속적 유토피아주의"라고 하고, 종교의 힘을 빌려 건설하려 하는 것을 "종교적 유토피아주의"라고 한다. 앞서 언급했던 공산주의, 나치즘, 파시즘 등이 세속적 유토피아주의라면, 요즈음 큰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이만희의 "신천지" 같은 경우가 종교적 유토피아주의이다. 종교적 유토피아주의는 종종 집단 자살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세속 학자들은 종교적 유토피아주의에서 비롯된 집단 자살을 "마인드 바이러스"(mind virus)로 설명한다. 질병을 옮기는 바이러스처럼 한 사람 또는 일부 집단의 잘못된 주장이나 생각이 다른 사람의 사고방식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TV 광고 및 종교 등 여러 경로를 통해 거의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의 일상에 침투하여 생각과 행동을 지배한다는 것인데, 이를 성경적으로 말하면 "집단적 마귀 들림"이다. 마귀와 마귀의 역사를 모르는 자들이 마인드 바이러스 운운하면서 그들의 무지를 드러낸 것이다.

마귀는 특정 종교 집단의 거짓 교리를 통해 사람들을 점유하여 그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그들의 "의지"도 관장한다. 여호와의 증인, 안식교, 몰몬교, 통일교, 로마카톨릭, 개신교에 만연한 각종 이단 교리들과 자유주의 신학 등이 마귀가 인간에게 다가가는 접근점인데, 때로는 그들보다 더 지독한 "신천지" 같은 곳에 아주 심하게 중독되게 만든다. 『이제 성령께서 분명히 말씀하시나니, 마지막 때에 어떤 자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들을 따르리라』(딤전 4:1). 다시 말해 진리가 아닌 거짓 교리를 따르는 것이 곧 마귀에게 사로잡힌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는 것이다. 『반대하는 자들을 온유함으로 바르게 잡아 주어야 하리니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회개하는 마음을 주셔서 진리를 깨닫도록 하실까 함이요 마귀의 뜻대로 그에게 사로잡혔던 그들이 마귀의 올무에서 깨어 나올까 함이라』(딤후 2:25,26). 신천지에 소속된 사람이 무려 30만 명이라고 하는데, 그들이 사기꾼 이만희의 말 한마디에 군대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 분명 그의 거짓 교리에 미혹되어 마귀에게 단단히 점유당한 지옥의 자식들임을 알 수 있다.

이만희는 1931년생(90살)으로, 그의 사기 행각의 기원은 전도관의 박태선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박태선은 스스로를 "동방의 의인," "이긴 자," "감람나무," "천상천하의 하나님"이라 일컬었고 "평범한 물을 만병통치의 생명수로 만들어 팔아먹은" 희대의 사기꾼이었다. 이만희는 27세 때 전도관에 입교했고, 박태선의 거짓 교리를 터득한 후에는 김종규의 호생기도원(말세 심판 때의 유일한 피난처)으로 옮겼다. 김종규가 여자 문제를 일으킨 후로 그는 유재열의 장막성전에 가입했지만, 장막성전의 시한부 종말론이 불발되자 다시 떨어져 나와 자신을 요한계시록 11장의 두 증인 중 하나로 자처하면서 1984년에 신천지를 창설했다. 이런 이만희에게는 "대한민국의 모든 신흥 종교들을 융합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그가 거쳐 온 사이비 종교들의 "특징과 장점"을 모두 통합한 막강한 파워를 지닌 "사이비"라는 것이다.

이만희는 그가 몸담고 있었던 장막성전이 신천지로 어떻게 이어지게 되었는가를 요한계시록의 내용과 억지로 짜 맞추었는데, 특히 자신을 요한계시록의 등장인물들로 제시한다. 그래서 스스로를 "만유의 대주재," "또 다른 보혜사," "약속의 목자," "기름부음 받은 자," "이긴 자," "하나님이나 예수님과 같이 보좌에 앉아 계시는 분," "예수님의 새 이름을 받은 자," "예수님의 모든 소유를 받은 자," "책을 받아먹은 자," "두 증인 가운데 한 분" 등으로 부르는 것이다. 결국 이만희는 그의 사이비 집단 안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이 되어 버리고, 동시에 요한계시록 11장의 두 증인(모세와 엘리야) 가운데 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이 대환란 때 두 증인 중 하나로 활약한다는 얼토당토않은 얘기가 만들어진다. 예수님의 새 이름을 받는 것은 필라델피아 교회에게 주신 말씀이다(계 3:12). 책을 받아먹은 것은 사도 요한인데(계 10:10), 그것이 요한인지 하나님인지도 모르는 무지한 자를 하나님이라고 추종하는 자들이 무려 30만 명이나 된다고 하니 실로 "혼미한 자"에게서 "혼미한 자들"이 양산된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 명칭을 가져오려 했다면, 차라리 이만희를 "사탄의 회당"(2:9), "마귀"(2:10), "사망과 지옥"(6:8), "끝없이 깊은 구렁에서 나오는 메뚜기"(9:2,3), "끝없이 깊은 구렁의 천사," "아바돈," "아폴루온"(9:11), "끝없이 깊은 구렁에서 올라오는 짐승"(11:7), "커다란 붉은 용"(12:3), "사탄이라고도 하는 옛 뱀, 곧 온 세상을 미혹하던 자"(12:9), "큰 창녀"(17:1), "주홍빛 짐승"(17:3)이라고 불렀어야 옳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모독한 자에게는 이런 저주받을 이름들이 딱 맞는 것이다.

이만희의 거짓 교리는 144,000명에 관한 내용이 그 중심을 이루는데, 사실 이만희가 처음 찾아갔던 전도관의 박태선이 먼저 144,000명을 오용했었다. 곧 "자격자들"(144,000명)의 수가 차야 주님이 오신다고 가르쳤던 것이다. 거기서 배운 장막성전의 유재열이 자신에게 만국을 다스릴 권세가 있고 144,000명에게 구원의 징표를 주는 것이 자기의 사명이라고 거짓말했는데, 거기에서 떨어져 나온 이만희가 144,000명의 신도가 채워지는 종말의 날이 오면 신인합일이 되어 육체가 죽지 않고 불사영생하게 되며 한국인을 중심으로 세계 질서가 재편되고 많은 사람들이 흰옷을 입은 무리처럼 시중들게 될 것이라고 가르쳤다. 마귀 들림은 거짓 교리를 통해 전염되며, 그것은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고 "거짓된 가르침"을 통해 확산된다. 요한계시록 7장의 144,000명은 대환란 때 인장으로 표시받을, 문자 그대로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서 나올 "유대인 환란성도들"인데, 이 땅의 사이비들은 마귀에게 이끌려 제멋대로 해석해 버렸다. 『또 내가 인장으로 표시를 받은 자들의 숫자를 들었는데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에서 십사만 사천 명이 인장으로 표시를 받았더라』(계 7:4). 한국 교회는 144,000명이 택함받은 신실한 교인들이라고 가르치지만, 이런 아전인수식 성경 해석은 박태선, 유재열, 이만희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이만희는 신천지의 본거지가 있는 경기도 과천을 새 하늘과 새 땅, 곧 "신천지"가 이루어질 장소라고 말한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천년왕국 뒤에 우주의 구성 요소들이 불타 없어지고 백보좌 심판이 있은 후 새롭게 창조될 영원 세계인데 그것을 "과천"이라고 속인 것이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있지 아니하더라』(계 21:1).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열망하라. 그때는 하늘들이 불에 타서 녹아 버리고 우주의 구성 요소들도 맹렬한 불에 녹아내릴 것이나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거하는 새 하늘들과 새 땅을 기다리도다』(벧후 3:12,13). 그런데 과천은 동물원에 "짐승들"이 있는 지역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깨닫지 못하는 짐승들"과 같다는 사실을 스스로 선언한 것인가? 『사람이 존귀에 처해 있어도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들과 같도다』(시 49:20).

그동안 한반도에 출현한 토종 사이비들이 한글개역성경을 들고 교회를 자처한 것을 보면, 오늘날 신천지의 문제는 전적으로 한국 교회에 그 책임이 있다고 하겠다. 신천지에 빠져든 사람들은 거의가 "성경을 배우겠다고 찾아간" 기존 교인들인데, 교회라는 곳들이 바른 복음으로 그들의 구원을 확인하고 바른 성경으로 진리의 지식을 가르쳤다면 신천지가 오늘날처럼 큰 세력을 형성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한국 교회는 『내가 생명의 빵이니라. 내게 오는 자는 결코 배고프지 아니하며, 또 나를 믿는 자는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교회가 아니기에, 교회들에서 영적 배고픔과 목마름을 해결하지 못한 혼들이 이만희의 유치한 "비유 풀이"를 듣고서는 미혹되어 버린 것이다. 그 거듭나지도 못한 불쌍한 혼들은 바른 성경과 진리의 지식을 가로막는 목사들에게 노예처럼 종속되어 있었다가, 교회라는 곳들이 올바른 대안이 되지 못하자 카리스마를 지닌(?) 사이비 교주에게 자신을 맡겨 버렸다. 성경에 무지하여 영적 분별력이 전무했기에, 이만희가 "요한계시록"에 관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해도 모두 수용해 버린 것이다.

토종 사이비들은 이만희처럼 한결같이 "요한계시록"을 악용했다. 그 책을 한국 교회처럼 풍유적으로 해석했고, 자신에게 적용시켜 하나님, 재림 예수 등을 자처했다. 마귀는 한국 교회가 요한계시록을 풍유적으로 해석하도록 유도했고, 그 책을 사이비들의 계보를 이어가는 데 이용한 것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성경의 마지막 책이자, 가장 중요한 책이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구약이 열리고 신약이 열린다. 성경 자체가 해석되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 해석의 절대적 기준이 없는 풍유적 해석으로 일관한 교회들은 사이비들의 공격에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이 땅에 왜 해충과 같은 사이비들이 끊이지 않는가? 기형적으로 성장한 "한국 교회" 때문이다. 그들은 한국 교회가 낳은 변종들인 것이다. 원래 사이비 집단은 그 특유의 사회적 일탈로 추종자들이 많지 않은 법인데 신천지는 예외이다. 소위 "추수꾼들"을 교회들에 잠입시켜 교인들을 몰래 빼내 간 그들은 한국 교회를 숙주 삼아 번식한 "바이러스성 사이비"인 것이다(신천지에 우한 폐렴이 집단 발병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교회들이 바른 성경을 거부했더니 잔꾀 많은 사이비가 등장해서 골탕을 먹인 것이다. 믿음이 아닌 이성으로 바른 성경을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미친 반역이다. 믿음 없는 교회들은 교인들의 계속되는 이탈을 막을 수 없다. 한국 교회는 사이비 교주 "이만희"만을 탓하지 말라. 이번 기회에 자신을 돌아보고 바른 성경과 진리의 지식의 가치를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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