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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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법적 사고는 성경적인 사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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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0년 01월호>

악한 현 세상의 역사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역사이다. 미리 기록된 인류의 역사책인 성경에 의하면, 최초의 "살인자"이자 "도시 건설자"인 "카인의 성읍"부터 시작하여 "적그리스도의 왕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 온 인간의 정부들은 모두 배교로 끝이 난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도 이 역사적인 흐름을 벗어날 수 없었기에, 그들의 죄에 합당한 심판을 받아 약 1,900년 동안 영토도, 국가도 없이 전 세계에 흩어져 살아야 했었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인류사의 배후에는 최초의 반역자 "루시퍼"(사 14:12), 곧 사탄이 있었다. 마귀가 인류를 배교로 몰고 가기 위해 사용하는 여러 방법들 중 하나는 다름 아닌 "교육"이다. 물론 성경적으로 올바른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도 그러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네 자손에게 그것들을 열심히 가르칠지니, 네가 네 집에 앉아 있을 때나, 네가 길을 걸을 때나 네가 누워 있을 때나 네가 일어날 때 그 말씀들에 관해 말할지니라』(신 6:7). 하지만 하나님께서 만드신 좋은 것들을 변질시켜 악한 일에 이용하는 마귀는 "세상적인 교육"으로 변질시켜 "견고한 요새들"(고후 10:4)을 구축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그분의 일들을 대적하게 하고 있다.

세상 교육이 낳은 가장 심각한 오류들 중 하나는 "이분법적 사고가 잘못된 사고방식이라는 것"이다. 이분법적 사고는 세상의 철학 서적, 교양서적, 학교 교과서, 신문 사설 등에서 예외 없이 "틀린" 논리로 소개된다. 일례로 중학교 윤리 교과서의 『시민 윤리의 기본 정신』에는 합리적인 사고를 위해 "흑백 논리"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흑백 논리는 이분법적 사고의 극단적인 형태로서 합리적인 사고가 아니며, 깨어 있는 시민이라면 반드시 지양해야 할 사고방식이라는 것이다. 결국 학생들은 현시대를 사는 세계 시민으로서 당연히 흑백 논리와 이분법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고 배우고 있다.

도대체 흑백 논리와 이분법적인 사고가 어떤 사고방식이기에 세상은 그것에 대해 그토록 부정적인 자세를 고수하는 것인가? 사전적인 의미로 보면 "흑백 논리"는 "모든 문제를 양극단으로만 구분하여 중립적인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편중된 사고방식이나 논리"이고, "이분법적인 사고"는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가능성에만 한정하여 사고하는 오류"이다. 세상이 이러한 사고방식을 "오류"로 보는 이유는 다양한 의견들을 무시하고 단지 "두 가지 의견"으로만 그 범위를 너무 단순화시켰기 때문이다. 캐나다의 저명한 임상심리학자 조던 피터슨도 이러한 사고방식이 오류인 이유에 대해 "그것으로 인해 중요한 가치들의 미세한 차이가 완전히 지워진다."라고 말했다. 예를 들면 정치 집단은 우파와 좌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중도파"도 있는 것이고, 성적 정체성은 반드시 남녀 두 성으로만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의 철학과 교육에 의하면 성경은 "오류"로 가득 찬 책이 되고 만다. 왜냐하면 성경만큼 이분법적 사고가 두드러지게 등장하는 책도 드물기 때문이다. 선과 악, 의와 불의, 하늘나라와 지옥, 복과 저주 등 성경에서 이분법은 쉽게 발견된다. 각 시대마다 사람들은 구원받기 위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아담"은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열매를 먹을지 말지를 선택해야 했다(창 2:16,17).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킬지 말지 선택해야 했다(신 30:19). 교회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믿을지 말지 선택해야 한다(롬 10:9,10). 교회의 휴거 이후 대환란을 겪게 될 사람들은 짐승의 표를 받을지 말지 선택해야 한다(계 13:16,17). 말하자면 인류는 하나님의 편에 설지 마귀의 편에 설지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중립 지대"가 없다. 하나님의 구원 방식은 항상 이분법적이다. 하나의 시대 안에서 다양한 구원 방법을 인류에게 제시하신 적이 없다. 『그러므로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나니 이는 하늘 아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을 인간에게 주신 적이 없음이라』(행 4:12).

이러한 사고방식은 비단 구원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나 민족을 평가하실 때도 "선하다든지 악하다든지" 둘 중 하나로 말씀하신다. 한 사람의 인생에는 "공"과 "과"가 섞여 있기 마련이지만,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둘 중 하나, 곧 선 또는 악으로 종합적인 평가를 내리시는 것이다. 일례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선하다고 판단하신다. 비록 그가 파라오와 아비멜렉에게 그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고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믿지 못하여 이스마엘을 낳기도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가 믿음이 약해지지 아니하여』(롬 4:19)라고 말씀하시면서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롬 4:22). 또한 "라합"은 창녀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녀가 보인 단 한 번의 "믿음과 행위"를 통해 그녀를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해 주셨고(히 11:31), 심지어 왕의 계보에까지 이름을 올려 주셨다. "다윗"은 간음과 살인을 저질렀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선한 왕으로 간주하셨다. 물론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죄를 간과하셨다는 말이 아니다. 각 사람의 전체 인생을 평가하실 때 이처럼 이분법적으로 명확하게 구분해서 평가하셨음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차든지 덥든지"(계 3:15) 하기를 원하시는 분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분법적인 사고를 즐겨 사용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홀로 위대하시며 불의가 전혀 없으신 분, 절대적으로 의로우시고 옳으신 분, 모든 지혜와 지식의 근원이신 하나님이시기에 이분법적 사고를 사용하실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절대적인 진리이기에 하나님의 말씀과 상치되는 것은 무조건 틀리다. 아무리 사악한 죄인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죄 때문에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믿으면 구원해 주시겠다고 하나님께서 선언하셨다면, 설령 그 방법이 사람에게는 불의해 보일지라도 그 선언은 절대적인 진리요 유일한 구원의 길이 된다. 밥 존스 시니어 목사는 "성경이 말씀하는 모든 것에 동의를 할 수 없을 때조차도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은 무조건 옳다."라고 말했다. 즉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을 사용할 자격이 있는 존재가 하나님 외에는 없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오류투성이의 인간에게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을 사용할 자격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분법적 사고와 흑백 논리를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부류가 있는데 바로 "그리스도인들"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생각』(고전 2:16)을 지닌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생각"을 지닐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생각이 담긴 책 한 권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성경인데, 이 책을 통해 하나님께서 무엇을 사랑하시고, 무엇을 미워하시며, 어떤 대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적인 사람은 최종권위인 성경을 통해 모든 것들을 판단할 수 있다. 사람들은 종종 피터 럭크만 목사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펜사콜라성경신학원을 나온 졸업생들은 아주 권위 있게 말하는 모습 때문에 어디에 내놓아도 금방 눈에 띕니다." 이에 럭크만 목사는 이렇게 답변하곤 했다. "네, 잘 보셨습니다. 하지만 그 '권위'는 나, 럭크만이나 우리 학교로부터 나온 권위가 아니고 오직 '성경' 그 자체에서 나온 권위입니다. '바로 그 책'이 우리 학생들을 가르쳤고, 그 학생들은 그 책을 전파하고 가르쳤기 때문에 권위 있게 말하는 것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그 누구라도 성경을 가지고 있는 한,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공부하고 믿고 실행하는 한 그의 손에는 "위대한 권위"가 들려 있는 것이고, 또 그 권위를 가지고 이분법적인 사고를 올바르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분법적인 사고가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분별" 때문이다. 성경에서 분별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구절은 창세기 27:23인데, 여기서 이삭은 "야곱과 에서," 이 둘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 결과 야곱을 축복했다. 즉 분별이란 단어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다. 솔로몬 왕은 하나님께 선과 악을 분별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고(왕상 3:9) 주님께서는 이 기도를 기쁘게 받으셨다. 하나님과 관련해서 주님의 일과 마귀의 일, 선과 악, 의와 불의, 옳고 그름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분별이기 때문에 분별은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보호 장치"(잠 2:11)가 된다. 특히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에 능숙한 사람들만이 이러한 보호 장치를 지닐 수 있다고 말씀한다(히 5:13,14). 반면에 마귀는 세상 교육을 통해 이분법적 사고가 틀린 사고방식이라고 가르침으로써 분별력을 해체시키고 있다. 세상 교육에 의하면 분별없는 사람도 만물의 척도가 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분별없는 사람을 돼지나 개로 여기신다(잠 11:22; 26:11).

이처럼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은 너무 다르다(사 55:8).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생각을 알아야 한다. 또한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생각대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에 일치시켜야 하는 것인데, 그래서 바울은 우리에게 『생각의 영 안에서 새롭게』(엡 4:23) 되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생각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기록하시고 섭리로 보존하신 바른 성경을 공부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그리고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함으로써(딤후 2:15) 세상 교육을 통해 배운 배설물(빌 3:8)을 즉시 처분해야 한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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