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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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환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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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3년 10월호>

B.B.평론은 현재 우리나라 신학의 흐름을 파악하여 그 주류를 이루고 있는 설교자들이나 학자들의 글을 매회 한편씩 선정하여 성경적인 관점으로 논평하는 코너입니다. 이번 호에서 다룰 주제는 “환경신학”으로서, 제시되는 자료는 월간 「목회와 신학」(두란노서원) 1993년 9월호에 게재된 「개혁주의 환경신학」이라는 특집 논문들과 「한국교회 환경 교육의 문제점과 대책」이라는 제목의 권두좌담<참석자 : 인명진(한국교회환경연구소 소장), 전병금(강남교회 담임목사), 최선희(구세군사관)>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 편집자 주 >

흔히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그들의 신학을 정립할 때면 성경보다는 주변 환경에 더 많이 영향을 받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의 관심은 말씀 속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모습들을 발견하기보다는 세상의 철학자들처럼 인간 생활에 대한 문제를 세상적 관점으로 해결하려는 데 있다. 70년대에 일단의 자유주의자들이 “도시산업 선교회”를 통해 해방신학으로 물의를 일으켰고, 80년대에 와서는 민주화 운동에 더욱 역점을 두고 통일 신학과 경제 정의 신학을 정립시켰다. 최근에 이들은 새로운 이슈를 가지고 접근하는데, 바로 “환경신학”, 또는 “생태신학”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성경 말씀’을 인용하고 ‘성경’ 속에서 해답을 제시하려고 하지만, 역시 그들의 이론은 전혀 성경적이지 못하며 인본주의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목회와 신학> 93년 9월호에는 이러한 문제가 “개혁주의 환경신학”이라는 주제 하에 특집으로 다루어지는데,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 글들을 쓴 사람들을 알지는 못하지만 그들의 글들을 읽으면서 그들이 자유주의자들이며,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들임을 확인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창세기 2:15을 들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잘 지키라” 하셨기 때문에 인간은 자연환경을 지켜야 했는데, 인간은 지속적으로 땅을 “정복”했고, 그럼으로써 땅이 황폐케 되어 종말로 치닫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처음에 명령했던 대로 자연을 회복시키는 것이 구령하고 선교하는 일만큼 중요하다고 말한다(p.28).
<한국교회 환경 교육의 문제점과 대책>이라는 제목의 권두좌담에서 전병금 목사(강남교회)는 이렇게 말한다. “창세기 2장 15절에는 ‘잘 지키라’고 했어요. 인간은 이 말씀을 보지 않고 ‘다스리라’는 것과 땅을 ‘정복하라’는 것에 창조신학의 근간을 두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결국에는 자연이 훼손을 당하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연이 너희에게 엉겅퀴를 낼 것이라는 저주를 하게 되죠”(p.28).
전 목사는 이 글에서 인간이 하나님의 자연보호 명령을 어겼기 때문에 땅이 저주를 받은 것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창세기를 한 번만 읽어 본 사람이면 땅이 엉겅퀴를 낸 이유를 알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자연 파괴로 인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범죄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범하는 가장 큰 오류 중 하나는 하나님의 저주와 인간의 파괴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인데,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땅의 황폐 현상을 인간의 생태계 파괴라고 인식한다. 한국교회 환경 연구소 소장인 인명진 소장은 이렇게 말한다. “전 요즘 성경을 다시 보면서 몇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봅니다. 요엘서를 보세요. ‘팟종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늣이 먹고 늣이 남긴 것을 황충이 먹고... 완전히 땅과 자연이 다 없어져서 모든 밭이 황폐하고 곡식이 다 죽고 포도송이가 말라 쪼그라지고... 곡식이라고는 구경할 수도 없고 씨앗이 모두 말라 죽고...’ 놀랍게도 요즘 환경오염으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을 그대로 적어 놓았어요”(p.31). “계시록 8장에 종말론이 나와요. 거의 마지막 말세의 징조가 환경오염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현재 나타나고있는 것들 입니다. 첫째 나팔을 부니 하늘에서 우박과 불이 피에 섞여 땅에 떨어져서 땅의 삼분의 일이 타버리고... 결국 종말이란 것이 자연환경 파괴로부터 비롯된 것인데 그동안 우리가 이 성경을 오랫동안 읽으면서도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고 성경을 너무 편협되게만 보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p.32).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필자의 편협된 견해는 인 소장의 말이 오류임을 밝힌다. 물론 맨 처음 땅이 저주받은 것이 인간의 범죄로 인한 것이라는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의 이 ‘범죄’는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땅을 파괴시킨 그 죄가 아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방신들에게로 돌아섰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 대한 책망으로 땅을 황폐시켜 버리신 것이다. 그들은 70년 간의 포로생활을 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거역한 그 범죄로 인해 그 땅은 저주받게 되었다.
특별히 계시록에 나오는 종말의 상황은 교회의 휴거 이후에 이 땅에 임하는 하나님의 진노이다. 이것은 결코 자연파괴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예언된 종말의 상황이 분명히 일어난다는 것인데, 만약 이것이 인간의 생태계 파괴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들의 주장은 성경의 예언이 인간의 노력으로 뒤집어져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럼에도 이들은 인간의 노력으로 생태계가 회복된다는 것도 성경 예언에서 언급하는 것으로 잘못 적용시키고 있다.
인명진 소장은 계속 말한다. “그러나 또 하나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것은 주님께서 큰 일을 하셔서 ‘들짐승들아 두려워 하지 말라. 이제 광야에서 풀이 무성할 것이고 나무마다 열매를 맺고 무화과 나무, 포도나무도 열매를 맺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p.31,32). 또한 전병금 목사는 “로마서 8장 22절에 ‘모든 피조물들이 탄식하며 하나님의 사람들이 나타나길 기다린다.’고 바울 선생이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곧 도구로서의 하나님의 사람인데 어서 자기들을 살리라고 하나님의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나서서 그 일을 해야 하는데...”(p.31)라고 말한다.
이러한 자유주의자들을 대하면서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왜 그들은 파괴를 말하고 회복을 말하면서 그 사이에 있는 그리스도의 재림은 모르는가 하는 점이다. 계시록에 나오는 하나님의 진노가 평화로운 천년왕국의 안식으로 바뀌기 전에 이루어질 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셔서 이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실 것인데, 그 때가 되면 사자도 풀을 뜯고, 광야는 샘물을 내며,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는 자연의 회복이 있을 것이다(사43:19, 65:25).
로마서 8:19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와 함께 내려오는 구원받은 성도들을 말한다. 23절을 보면 그것이 재림의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피조물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그 저주에서 풀려나 회복될 것이다. 땅의 회복을 말하면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알지 못하는 것을 보아 분명히 무천년주의나 후천년주의자들의 주장임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진보는 결코 회복으로 이끌 수 없다. 김경철 교수(부산대)는 진보라는 말을 좀 다르게 해석하여, 땅을 황폐시키는 진보가 아닌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기 위한 진보, 피조세계에 대한 인간의 청지기직을 위한 진보를 역설하고 있으나(p.54), 인간의 자연에 대한 청지기직을 다하여 땅이 회복된다는 말은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이 하나 같이 이야기하는 것은 인간은 만물의 청지기이지 지배자가 아니라는 것이다(김영한, p.88, 개혁주의 생태신학). 그러나 성경을 살펴보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다산하고 번성하며 땅을 다시 채우고 땅을 정복하라(subdue). 그리고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have dominion).” 하시니라』(창1:28). 이것은 왕권의 위임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라고는 둘 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땅에 대한 통치권을 수여하신다. 자연을 무조건 파괴하라는 뜻은 아니지만, 이 말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통치권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다른 피조물들을 다스리는 존재였다. 그러나 인간은 죄때문에 타락했고, 통치권을 잃었다(창3:19). 결코 자연 환경을 파괴했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비슷한 명령을 하셨으나,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다시 채우라. 너희를 두려워함(the fear of you)과 너희를 무서워함(the dread of you)이 땅의 모든 짐승들과 공중의 새들과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들과 바다의 모든 고기들에게 미치리니, 그들이 너희 손에 넘겨졌음이라』(창9:1,2). 자연은 인간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인간은 동물들을 잡아 먹게 되었다. 그러나 자연의 저주는 근본적으로 노아와의 언약 이전에 있었던 인간의 죄때문이었지 자연에 대한 잘못된 경영 때문이 아니었다.
자연은 인간때문에 저주를 받았고 인간의 회복과 함께 회복될 것이다(롬8:21). 그러나 인간의 노력으로써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으로써다(롬8:17-25).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간과하면서 세상을 살리자는 말을 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제외한 세계평화를 주장하는 뉴에이지 운동가들과 무엇이 다른가?
92년 6월에 브라질에서는 ‘리오 환경개발회의’가 있었다. 이 모임은 단지 사회단체만이 아니라 기독교계에도 자연계에 대한 “신선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래서 기독교계 내에서는 하나님의 계획과 성경 말씀의 진리를 모르는 자유주의자들이 함께 동조하는 에큐메니칼 집회로 연결되었다. 많은 교회들과 교단이 이 운동에 가담하여 환경 살리기 운동을 한다. 이들은 이 운동을 신앙고백적인 차원에서 한다고 한다. “신앙고백적이지 않은 운동은 단기적으로 끝날 수 밖에 없죠. 효과도 없고 영향력도 적어요. 철저한 자기부인, 십자가의 삶, 기본적인 신앙인의 올바른 태도가 있어야 이 환경 운동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최선희-구세군 사관, p.33). 그래서 교회에서 하는 운동을 세상 단체들보다 우세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며, 성경을 끌어다 맞춤으로써 자신들의 논점을 신학적으로 뒷받침한다. 이들은 작게는 자연보호운동부터 시작하여 크게는 정책 마련까지 하나하나 실천사항을 정해놓고 교인들을 세뇌시킨다. 93년도 대한예수교 장로회 통합측의 여름성경학교 주제가 “자연을 사랑하는 어린이”였다는 것만 봐도 얼마나 이 일이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배제하고 피조 세계의 회복운동을 하여 평화를 찾고자 하는 행위는 바로 적그리스도를 예비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들은 교회의 휴거 이후 하나님께서 진노하시어 이 땅에 극심한 환란이 닥친 후에도 여전히 자연을 살리자며 켐페인을 벌이고 있을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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