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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을 진단한다 - "실패한" 종교개혁의 후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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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7년 03월호>

마틴 루터에 의해 본격적인 종교개혁이(1517년) 일어난 지 500주년이 되는 2017년은 세계 여러 교회들에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해다. 한국 교회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교회 개혁의 골든타임"으로 규정하고 이를 기점으로 무언가 반등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다양한 신년계획들을 앞다투어 발표했으며, 또한 이를 기념하기 위한 각종 행사들을 벌써부터 준비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사실 이들이 개혁을 부르짖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마귀들의 거처가 되어 비정상적인 괴물로 자라 온(마 13:31,32) "한국식 기독교"가 양적 성장이 정체되고 성장률이 하향세로 돌아선 이래로 지겨우리만큼 매년마다 반복해서 "회개, 각성, 부흥, 개혁"을 부르짖고 또 부르짖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개혁은커녕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거나 결코 헤어 나오지 못할 배교의 수렁으로 더 깊이 빠져들고만 있다. 이유가 무엇인가? 이는 그들이 종교개혁의 "본질"을 무시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는 이름만 허울 좋게 달고 있을 뿐 종교개혁의 후예들로서는 완전한 실패자들이다!

1. 종교개혁의 본질은 "바른 성경의 회복"에 있다. 흔히들 종교개혁 하면 주로 루터의 95개조 반박문만 떠올리지, 그가 번역했던 성경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거나 그 책이 종교개혁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의로 무시한다. 그러나 종교개혁 당시 독일을 변화시킨 것은 루터 자신이 아니라 그가 독일어로 번역한 <루터성경, 1534>이었다. 스위스를 변화시킨 것도 칼빈과 그의 5대 강령이 아니었고, 영국 역시 청교도들을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이 아니라 개혁의 초석이 된 <위클리프성경, 1382>과 1611년의 <킹제임스성경>이 개혁을 주도했다. 종교개혁의 주체는 어떤 개혁자들이나 그들에게서 나온 신조나 강령, 강해나 주석 또는 신학이 아니다. 그 주체는 다름 아닌 "성경"이었고 "성경에 대한 평범한 믿음"이었다.

중세 암흑시대가 도래했던 이유는 "성경"이 없었기 때문이다. 로마카톨릭의 "변개된 성경"이 유럽 전역을 휩쓸며 진리의 불빛을 꺼버린 것이다. 성경 변개자 오리겐, 유세비우스, 콘스탄틴 황제에 의해 공인되고 교황들이 제멋대로 공식적인 성경으로 선정한 제롬의 <라틴벌게이트>, 곧 사탄의 성경이 A.D. 500-1500년 사이에 드리워진 암흑 세상과 역사적인 비극과 대규모의 살상을 야기했다. 필립 샤프, 라투렛, 모쉐임, 뉴만 등의 교회사가나 학자들이 암흑시대의 원인을 "게르만족의 침입으로 인한 서로마의 멸망"이나 "동로마와 서로마의 분열," "구시대적인 봉건제도" 등에서 찾아야 한다고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든 간에 그런 가르침은 참된 역사적 진실을 가리려는 사탄의 술책에 불과하다. 누가 뭐라 해도 암흑시대는 바른 성경을 버리고 변개된 성경을 취하면서 시작되었다. 더욱이 사제나 주교의 허락 없이 라틴어 외에 자국어로 된 성경을 읽는 것이 금지되었다. 왜냐하면 성경에 관한 한 무식한 자들이 많아야 카톨릭의 단합과 권력을 유지할 수 있고, 대량으로 확보된 추종자들의 양심을 완전히 장악하여 그들을 한꺼번에 지옥으로 보내기가 유용했기 때문이다.

이런 암흑시대를 종결짓는 유일한 방법은 "바른 성경"을 사람들의 손에 다시 들려지게 해서 누구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암울한 시대를 살았던 "왈덴시안"은 잔혹한 박해를 받으면서도 "Lux Lucet in Tenebris"(어둠을 밝히는 빛)이란 슬로건을 내세우며 진리의 빛을 밝히려 했던 것이다. 특히 <구라틴역본>에서 번역한 성경을 악랄한 교황에게 담대히 건네기도 했고 거리에서 자유롭게 설교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구했으며 가는 곳마다 성경을 배포했다. 그들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설교 강단에서는 라틴어 대신 각국의 언어로 말씀이 전파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용기 있는 믿음과 실행에 영향을 받은 종교개혁자들은 자국어로 된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외쳤고 회중은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는지에 대해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위클리프 및 루터의 성경 번역, 특히 <킹제임스성경>은 믿음의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런 가운데 성경에 대한 바른 믿음이 싹텄고, 개혁자들은 그 든든한 반석 위에서 카톨릭의 온갖 가증한 행위들과 우상 숭배 및 행위 구원 등의 거짓 교리들이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님을 낱낱이 파헤치기도 했다. 또한 "성령의 칼"로 그들의 교권주의와 도덕적 부패를 겨냥했으며, 로마는 창녀 교회요 교황은 적그리스도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무엇보다도 루터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고 외쳤던 설교는 대량으로 지옥의 문턱까지 휩쓸려 간 많은 회중을 구원해 내기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이 바른 성경이 낳은 열매들이었으니, 종교개혁의 성패가 바로 그 "성경"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종교개혁의 본질이며 프로테스탄트 신앙을 낳게 한 요람이다. 세속 역사학자들은 종교개혁의 의의에 대해 유럽이 중세 암흑시대에서 근대로 넘어가게 만든 사건, 유럽의 정치적 지형을 바꾼 사건이라며 떠들겠지만, 참된 의의는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나의 말을 지켰고』(계 3:8)라는 한 말씀으로 요약될 수 있다. 바른 성경을 지켰기에 종교개혁이 가능했고, 또한 이를 기점으로 교회 역사상 가장 흥미롭고 위대했던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가(1500-1900) 열릴 수 있었다. 『내가 너의 행위들을 아노라. 보라,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계 3:8). 문이 열렸다! 세계 도처에 복음의 문이 열렸고 암흑시대 동안 닫혀 있었던 성경의 계시도 활짝 열렸다. 그렇다면 오늘날 그들의 후예들이라 자처하는 자들의 손에는 성경이 들려 있는 것인가? 그들은 후예들답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 것인가? 여기저기 난도질되어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진 개역성경이나 개역개정판 등은 성경이 아니다. 그것은 암흑시대를 가져왔던 바로 그 성경들이다! 그래서 현재 라오디케아인들의 교회 시대에는(1900-현재) 문이 닫혀 버렸다(계 3:20). 복음의 문이 좀처럼 열리지 않으며 앞선 시대에 있었던 대부흥, 대각성 운동도 찾아볼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믿음도 없고 변개된 성경이나 붙들고 있는 자들에게 성령께서는 더 이상 성경의 계시를 조명해 주시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성경이 "닫힌 성경"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이 시대는 성경에 관한 한 "바보들"로 넘쳐나는 것이다. 그들은 바른 성경을 지키는 데 실패했다! 결국 암흑시대의 카톨릭처럼 권력과 단합을 유지하려는 교단 및 교회들을 따라 수많은 무지한 교인들이 지옥으로 휩쓸려 가는 씁쓸한 형국이 되고 만 것이다.

2. 종교개혁의 위대한 점은, 회중에게 바른 성경을 가져다줌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서나 성경을 읽고 상고하여 온전한 진리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했다는 사실에 있지, 결코 개혁자들이 전파한 교리나 신학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아무리 그들이 "오직 믿음으로!"를 외쳤다 해도 많은 부분에서 교리적 또는 신학적인 오류를 드러냈고 여러 가지 "한계"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혁자들의 당면 과제는 정치적이든 종교적이든 "로마에 대한 청산"이었다. 작금에 우리는 정치권에서 보수 진영의 잘못된 국정 운영 책임을 묻는다는 의미로 "적폐 청산"이나 "정권 교체" 같은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종북좌파 세력이 버젓이 국회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이 나라에서 그런 청산이나 정권 교체, 개혁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떤 왕, 대통령, 정치꾼들에게도 무슨 좋은 일을 기대할 순 없는 법이다. 어쨌든 개혁자들은 카톨릭의 잔재를 청산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일을 실패함으로써 종교개혁을 미완성으로 남기고 말았다.

대표적인 것이 "유아 세례"와 "교회 국가"였다. 이것은 다른 어떤 부분보다도 당대에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을 이단으로 정죄하여 박해하고 죽이게 만든 첨예한 문제였다. 유아 세례는 "구원"을 담보로 하여 한 사람을 태어날 때부터 특정 교회에 예속시키는 가증한 거짓 교리인데, 더 큰 문제는 그 교회가 국가와 결탁한 정치 세력이라는 점이다(교회 국가). 즉 유아 세례를 거부한다는 것은 교회 국가를 거부하는 것을 넘어 "국가" 자체를 거스르는 행위가 되기에, 유아 세례를 거부한 자들은 법으로 다스려져 끔찍한 형벌을 받거나 추방되고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것이 불가피했다. 이를테면 교황과 결탁했던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는 유아 세례를 국법으로 제정하여 의무화시켰고(789년),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는 <로마법 대전>을 만들어서 법 조항 안에 "재침례교도들은 악한 자들"이라 규정하기도 했다(534년).

종교개혁자들은 이런 카톨릭의 "적폐"를 그대로 답습하고 말았는데, 특히 칼빈은 제네바에서 "교황" 흉내를 내며 구약적인 신정 정치를 시도했다. 그로 인해 율법적인 교회법이 사회법이 되었고, 소위 약간의 불경건한 행위도 사회적인 범죄로 처리되어 처벌 대상이 되었다. 일례로 설교 시간에 웃었다는 이유로 세 사람이 3일 동안 감옥에 갇힌 적이 있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친구인 세르베투스를 화형에 처하기도 했다. 비록 세르베투스가 삼위일체에 대해 비성경적인 입장을 갖고 있긴 했어도, 그는 전천년주의자였고 유아 세례를 반대했다. 여하튼 칼빈과 같은 개혁자들은 이런 일련의 일들이 이 땅에서 "천년왕국"을 이루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개혁자들은 대부분 무천년주의자였다. 루터의 경우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국을 차지하시는 것과 적그리스도에 대한 관점에서는 전천년주의자였지만, 부활과 재림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부활과 마지막 최종적인 심판만을 믿는 무천년주의자였다. 그래서 개혁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은 채,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이 땅에 왕국을 가져오려는 변혁과 시도를 꾀했던 것이다. 장소만 "로마"에서 "개신교 국가나 도시"로 바뀌었을 뿐, 그 비성경적인 교리나 사상은 전혀 청산되지 못했던 것이다.

주의 만찬이나 구원론에 대해서도 치명적인 오류가 드러나기도 했다. 루터는 주의 만찬에 있어서 "양체공존설"을 주장했는데, 이것은 빵과 포도주가 주님의 살과 피로 완전히 변한다고 주장하는 카톨릭의 "화체설"과 사실상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서 빵과 포도주 안에 "주님이 임재해 있다."는 거짓 교리이다. 그러나 성경은 빵은 빵이고 포도주는 포도주일 뿐이라고 말씀한다. 그리스도인은 그것을 통해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소망하며 그분의 죽으심을 "기념"할 뿐이다(고전 11:23-26). 칼빈은 구원론에 있어서 예정론이라는 이단 교리를 취했고, 그에 관한 어떤 기록에서도 그가 어떻게 회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구원 간증을 찾아볼 수 없다. 그의 글에서는 믿음을 통한 구원이나 회심, 복음 전파와 연관된 어떠한 실천신학적인 측면도 발견되지 않으며, 더 나아가 예언에 관한 한 모든 프로테스탄트 지도자들 중에서 가장 하위에 해당할 만큼 예언을 소홀히 했던 사람이다. 또한 개혁자들은 기본적으로 에큐메니칼 정신을 갖고 있었는데, 카톨릭에서는 분리했다 하더라도 일단 프로테스탄트라는 테두리 안에 들어와 있다면 설령 교리가 달라도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쯔빙글리는 어거스틴처럼 마태복음 13:24-30을 잘못 해석함으로써 교회 안에는 곡식과 독보리가 함께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즉 교회 안에는 죄인도 있을 수 있으므로 그들을 성경적으로 분리해 내지 말고 포용해서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들 입장에서는 "성경적 성별"에 관한 주님의 명령이(롬 16:17, 고후 6:17, 딤전 6:5) 구시대적인 유물로서 무색하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과연 무엇이 개혁되고 청산되었단 말인가! 엄밀히 말해 아무것도 없다. 바른 성경만 회복되었을 뿐 그것은 미완성된 개혁이었다. 그렇다면 그 후예들은 어떤가? 비성경적인 "적폐"를 청산했는가? 그들은 개혁자들의 "한계"를 극복했는가? 유아 세례는 개신교회들 안에서 여전히 청산되지 않은 채 수많은 이들을 지옥으로 보내고 있다. 그나마 교회 국가는 청산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그 "괴물"의 박해 속에서도 믿음을 지킨 재침례교도들의 피 흘린 발자취의 대가로 이루어진 것이지 그들의 의지의 결과가 아니었다. 더욱이 그 잔재는 여전히 남아 있어 목사라는 자들은 교회의 정치 참여를 시대적인 사명이라 착각한다. 무천년주의와 예정론을 위시한 비성경적인 구원관은 교회들을 잠식한 지 오래여서, 그들 안에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하나님의 복음을 정확하고 담대하게 전하는 믿음의 용사들이 전무하다. 퇴색한 신학, 변질된 복음뿐이다! 교회는 많은데 정작 교회는 없고, "한 지붕 두 가족"이라는 기치 아래서 거듭나지도 않은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여든 동물원으로 전락해 버린 교회가 부지기수다.

오늘날 종교개혁의 후예들은 개혁자들이 깨달았던 가르침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다. 500년 전 가르침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가르침의 대부분은 여러모로 성경적이지 못했다. 심지어 그들은 개혁자들이 그나마 회복시킨 바른 성경마저 치워 버림으로써 암흑시대로 회귀해 버렸다! 아무것도 개혁할 수 없는 "실패자들"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유일한 희망은 <한글킹제임스성경>뿐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에 즈음한 이때, 종교개혁과 교회의 부흥을 가져온 이 성경으로 모든 비성경적인 적폐를 청산하라! 개혁자들의 한계에서 벗어나 이 성경과 함께 전진하라! 이것이야말로 "교회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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