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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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권위” 없이 하나님의 사역을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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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2년 03월호>

거듭난 성도의 믿음과 실행에 있어서 성경이 “최종권위”라는 말은 그 책이 곧 “교리서”라는 뜻이다(딤후 3:16). 따라서 어떤 성경에서 번역이 잘못되었거나 구절이 변개되었다면 당연히 교리도 틀리게 되어 있다. 틀린 성경으로 “영감”을 주장하고 성경의 권위를 외치는 사람은 녹슬고 이 빠진 칼을 명검이라고 내세우는 사람과 같다. 이런 자들이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라고 말할 때면 항상 눈을 꼭 감고 말하며, 그런 다음에는 “최초의 원본은 사라지고 없다.”라고 주장한다. “영감”이란, 하나님께서 “백지”(파피루스나 양피지) 한 장을 펼쳐 놓으시고 친히 선정하신 사람들로 하여금 그 위에 그분의 말씀을 기록하도록 호흡을 불어 넣으신 것을 의미한다. 그분의 호흡은 아담을 흙으로 빚으신 후에 불어 넣으신 “생명의 호흡,” 즉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영”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영감을 주셔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후 그 말씀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으시고 내버려 두셨다면, 굳이 영감으로 기록하셨어야 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잘 기르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둘 것이라면 애써 아기를 낳아 무엇하겠는가? 사도들에게까지만 온전한 말씀을 주시고 그분의 자녀들인 우리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변개된 말씀을 주시면서 믿음과 행위의 최종권위로 삼으라 하셨다면, 진정 그런 “불합리한 하나님”을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과연 그런 불완전한 말씀을 영적인 양식으로 먹으면서 우리의 영을 강건하게 할 수 있겠으며, 또 성령 하나님께서 그런 말씀을 완전한 말씀이라고 확신시켜 주시면서 우리를 진리로 인도해 주실 수 있겠는가? 절대로 그렇게 하시지 않는다!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영감으로 기록하신 하나님께서 그 동일한 능력으로 말씀을 보존하셨다는 사실에 대해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 말씀의 “보존”이란, 기록된 말씀을 친히 선정하신 사람들의 손을 통해 보존케 하셔서 오늘에 이르도록 하신 것을 가리킨다. 바로 이 말씀을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목숨을 바쳐 지켜 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고 그분의 섭리로 보존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은 “성경 교리”를 있는 그대로 준행하는 반면, 그렇게 믿지 못하는 자들은 갖가지 “이단 교리”를 그들의 취향대로 날조해서 유포한다. 이것이 바로 현대주의, 신정통주의, 자유주의, 친카톨릭주의, 비성경주의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믿음에서 떠나 버린 “라오디케아의 교인들”(계 3:14-22) 안에 이런 사상들을 가진 사람들뿐만 아니라 복음주의, 보수주의, 개혁주의, 정통주의, 근본주의에 속한 자들까지 유입되었는데, 이들은 변개된 성서들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이라고 가르친다. 이런 “주의자(主義者)들”은 자기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성경을 더 올바르게 안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이들 복음주의자들, 보수주의자들, 개혁주의자들, 정통주의자들, 근본주의자들은 교회나 신학교 강단에서 NIV, NASV, 개역한글판성경, 개역개정판, 표준새번역, 현대인의 성경 등을 펴 놓고 “성경의 권위”를 가르치고 있다. 그야말로 “위선자들”인 것이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모여든 젊은 학생들을 그런 삭제되고 변개된 성서들을 가지고 거짓말로 오염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을 하나님께서 보존하지 않으셔서 그 성경이 손상되고 유실되어 버렸다면, 어떤 사람의 믿음이 올바른지 아닌지를 제대로 시험할 수 없었을 것이고, 또한 틀린 성경이 왜 틀렸는지 증명할 수도 없어서 참다운 신약 교회들이 세워질 수 없게 되었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하나님의 바른 말씀이 없었기에 신약 교회 역사상(“반카톨릭 교회사”) 단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는 교회들로 꽉 차 버렸다. 말씀이 없기에 요란한 악기 연주와 춤으로 감흥을 돋우는 소위 “경배와 찬양”만 난무하고 있다. 교인은 많아도 그리스도인이 적은 나라, 교회 건물은 많아도 교회다운 교회가 없는 나라, 성령만을 외치고 예수 그리스도는 배제해 버린 나라, 신학자와 신학교는 많아도 바른 신학이 없는 나라가 바로 이 나라인 것이다.

신구약 전체에서 성경이 하나님의 섭리로 보존된다고 가장 확실하게 밝히고 있는 구절은 “시편 12:6,7”이다. <한글킹제임스성경>에 올바르게 보존된 이 구절을, 대한성서공회가 10여 년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번역했다는 표준새번역이나 개역한글판 및 개역개정판의 본문들과 비교해 보자.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흙 도가니에서 단련되어 일곱 번 정화된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이 말씀들을 간수하시리니 주께서 이 세대로부터 영원토록 그것들을 보존하시리이다』(<한글킹제임스성경>).

「주님의 말씀은 흠 없는 말씀, 도가니에서 단련한 은이요, 일곱 번 걸러 낸 금이다. 주님, 주께서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표준새번역).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번 단련한 은 같도다 여호와여 저희를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영토록 보존하시리이다」(개역한글판).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여호와여 그들을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보존하시리이다」(개역개정판).

이상 살펴보았듯이 번역의 미숙함은 덮어 두고라도 가장 심각한 오류는 “말씀들”을 “우리, 저희, 그들”로 바꾸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 저희, 그들”은 문맥적으로 “유대인”을 지칭한다. 변개된 성서들은 하나같이 하나님께서 이 말씀들을 간수하시고 영원토록 보존하신다는 약속을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자신들을 지켜 달라고 간구하는 기도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이런 심각한 오류는 현대인의 성경, NIV, NASV, ASV 등 1582년에 출간된 로마카톨릭 성경 “림즈 듀웨이”(Rheims-Douay)를 따르는 성서들에서 모두 나타나고 있다. 이 성경의 기원은 시내 사본과 바티칸 사본을 근거로 번역한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Latin Vulgate)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조금 안다고 해서 성경을 번역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성경을 번역하려면, 왜 그 단어가 거기에 있어야 하고, 또 왜 그 시제가 그렇게 되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는 거기에 없어야 할 단어가 끼어들어 갔다면 언젠가는 다시 뽑혀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성경 번역”은 “원천 언어들”을 “수용 언어들”로 선별해 낼 수 있는 능력과 원문 비평학적인 견지에서 필사본 증거들을 광범위하게 다룰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쓰시는 손길들이 필요하다. 그러한 손길들은 왜 하나님의 말씀이 변개되어서는 안 되는지를 확실히 알고 있는 손길들이어야 한다.

사탄이 성경을 공격하는 방법은 언제나 “세 가지”다. 첫째,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단어를 삭제함으로써 성경을 변개시킨다. 둘째, 그 자리에 없어야 할 단어를 첨가함으로써 성경을 변개시킨다. 셋째, 구절 자체를 몽땅 삭제함으로써 성경을 변개시킨다. 이렇게 손상된 성경을 들고 성경의 영감과 권위를 가르치는 사람은 과연 누구의 종인가? 하나님의 종인가, 아니면 사탄의 종인가? 하나님의 종이 “하나님의 말씀”을 손상시키겠는가? 신약 교회 역사상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키고 이 세상에서 완전히 없애 버리려고 시도했던 세력들은 사탄이 사용했던 폭군들과 교황들 그리고 사탄이 일으킨 학자들뿐이다. 폭군들과 교황들은 말씀을 보존하던 그리스도인들을 죽였고, 사탄이 일으킨 학자들인 웨스트코트와 홀트 등은 자기들이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보다 더 현명하다고 생각하여 말씀을 변개시켰다. 그것은 위로부터 온 지혜가 아니라 땅에 속한 지혜였다(약 3:15).

하나님의 말씀이 처음에 기록된 그대로 보존되어 왔다는 사실은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음을 증명해 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그 말씀이 오늘날 우리의 손에 보존되어 있지 않다면, 그 영감은 당연히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보존된 그 말씀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 또한 올바른지 확인할 길이 없어서 우리는 무엇을 믿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믿는다고 떠들어 대며 위선이나 부리게 될 것이다.
<한글킹제임스성경>은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기록하신 그 말씀이 그분의 섭리로 보존되었음을 믿는 사람들이 모여서 우리 한글로 그 말씀을 보존하기 위해 번역하고 교열해 온 성경이다. “최초의 원본”을 운운하는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보존되었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들로서 자기들에게는 있지도 않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고 우기는 자들이다. 『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내 말들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

하나님의 말씀과 연관해서 가장 이해 안 되는 점은 “삭제된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내세우는 경우다. 왜 삭제된 성경이 삭제되지 않은 성경보다 우위를 점유해야 하며, 왜 삭제된 성경이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람들의 손에서 출판되고 사용되는 것인가? 왜 학자란 사람들이 삭제된 성경을 천거하고 변증하는 데 열을 올리는 것일까? 아주 간단한 문제인 것 같은데, 실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들은 삭제된 성경으로도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데 불편함이 없지 않냐고 볼멘소리를 한다. 누가 들으면 제법 성경도 알고 구령할 줄도 아는 사람처럼 말한다. 하나님께서도 하시지 않는 말을 자기 멋대로 하는 것이다. 사실 이 말은 사탄이 했던 말과 똑같다. 사탄도 이브에게 『참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 3:1)라고 물었다. 이에 그녀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에서 “한 단어”를 삭제하면서 마치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양 이렇게 대답했다. 『동산 나무들의 열매는 먹을 수 있으나』(창 3:2). 본래 하나님께서는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네가 마음대로 먹을 수 있으나』(창 2:16)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브는 『마음대로』를 임의로 삭제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류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하나님의 섭리적인 계획에 지장이 초래될 것을 아셨기에 유독 그 열매에 대해서만 의도적으로 제한을 두셨다. 그 대신 “다른 나무의 열매들”은 “마음대로”(freely) 먹어도 좋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브는 바로 그 “마음대로”를 제거하고 말함으로써, 마치 하나님께서 그들의 자유를 제한하시는 분인 것처럼 불만스럽게 표현했다.

도대체 왜 삭제된 성경을 옹호하려는 것인가? 그 저의가 무엇인가? 삭제되지 않은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자는데 왜 반대하는 것인가? 솔로몬의 법정에 선 두 여인 가운데 죽은 아기를 살아 있는 아기와 바꿔치기한 여인은 살아 있는 그 아기가 자기 아기가 아니기에 둘로 나눠서 반반씩 가지라는 솔로몬의 제안에 찬성했고, 이에 그녀는 『내 것도 되지 않고 네 것도 되지 않도록 그것을 나누자.』(왕상 3:26)라고 말했다. 아기를 바꿔치기한 여인에게는 살아 있는 아기든 죽은 아기든 필요가 없었다. 필요 없는데 살리면 어떻고, 또 죽이면 어떻겠는가?
성경을 변개시키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 여인의 마음과 똑같다. 단어가 빠지면 어떻고, 절이 빠지면 어떻고, 무엇이 첨가되면 또 어떤가? 어떤 신학자도 나와 한통속이요, 이쪽 교단도 나와 한통속이며, 저쪽 신학교도, 이쪽 교회도 나와 한통속이니, 문제 될 것이 전혀 없다는 심산인 것이다. 성경이 필요 없는 사람은 단순히 필요 없는 사람이 아니라 “성경을 거부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성경이 필요 없는 사람들, 즉 성경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말하고 가르치고 설교하며 성경 강연회를 열고 있으니,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자행되고 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느니라...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므로,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으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14).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러한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니라』(롬 10:17).

“믿음”은 방언을 하고 병이 낫고 하는 따위의 짓거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위한 “속죄제물”이 되시기 위해 육신을 입으셔야 했고, 그렇게 하시기 위해 “여자의 씨”(창 3:15)로 태어나셨다. 그런데 여자에게는 씨가 없으므로 “성령 하나님”에 의해 잉태되셔야 했다. 만일 예수님께서 “인간의 씨”로 잉태되셨다면, 그분께서는 부활하실 수 없었을 것이다. 부활하시지 못했다면 승천하실 수 없었고, 승천하시지 못했다면 다시 오실 수 있는 분이 못 되었을 것이다. 결국 죄인인 인간들은 죄의 용서함을 받지 못한 채 영원히 멸망했을 것이고, 기독교 역시 거짓 구원을 믿는 종교들 가운데 하나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지 않은 채 기독교를 하나의 종교로 믿고 있으니, 실로 한심한 일이다.

성경 변개는 “사탄의 계략”의 일환이다. 성경에서 변개된 부분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거나 격하시키려는 의도가 그 안에 상당 부분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계략은 단순한 성경 변개가 아니라는 점을 독자들도 잘 알 것이다. 3세기경의 “오리겐”을 위시하여 유세비우스, 팜필루스, 콘스탄틴, 제롬 및 그 외 교황들, 17세기에 와서는 브라이언 월턴, 존 펠, 존 밀, 리처드 벤틀리, 벵겔, 섬너, 그리스바흐, 월터, 슐츠, 그리고 그 이후로는 티쉔도르프, 트레겔레스, 알포드, 웨스트코트, 홀트, 네슬 등이 솔로몬 법정의 여인, 곧 “아기를 바꿔치기한 여인”처럼 성경이 필요 없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감히 함부로 성경을 다뤄 왔다. 이 시대에 가장 한심스러운 친구들은 세상이 인정한 신학교에서 받은 학위를 내세워 “학자”로 자처하면서(세상에서 인정받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인정하시지 않음) 성경 변개자들의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NIV, NASV, RSV, 리빙바이블, 개역성경, 개역개정판, 표준새번역, 공동번역, 현대인의 성경 등 “변개된 성서들”을 교회와 신학교에서 추천한다.

삭제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추천하고 사용하는 저의가 무엇인가? 이들 삭제된 성서들로는 영어 성경만 해도 233가지가 넘는다. 과연 그중 어떤 것이 하나님의 최종권위인가? 이 질문에 답변해 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우리나라 역시 대한성서공회와 그 외 출판사에서 나온 성서들 모두 변개된 성서들이다. 그중에서 어떤 것이 최종권위냐고 물으면 답변해 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왜 그런지 아는가? 이들 역시 성경이 필요 없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에서 233가지 이상의 성서들이 나온 것도 다름 아닌 “돈” 때문이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니』(딤전 6:10).

이들이 성경이 필요 없는 자들이라는 점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필자는 이들이 변개시킨 부분들을 아래에 제시하고자 한다. 다만 지면 관계상 이들의 성서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그 몇 가지 내용만 살펴보도록 하자.

1. 『그의 아들 예수』(행 3:13,26)에서 『아들』을 “종”으로 바꾸었다. 개역성경과 개역개정판이 원본이 아닌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개역성경과 개역개정판이 저본으로 사용한 성경에서 번역된 소위 사탄의 성경들은 모두 이 모양이다.
2. 『요셉과 주의 모친』(눅 2:33)에서 『주의 모친』을 “그의 부모”로 바꿈으로써 마치 “요셉”이 예수님의 “문자 그대로의” 아버지인 것처럼 만들어 버렸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부인한 것이다.
3. 『빌립이 말하기를 “만일 당신이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합당하니라.”고 하니 그[에디오피아 내시]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나이다.”라고 하더라.』(행 8:37)에서 에디오피아 내시의 고백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한 성도들의 신앙 고백이기도 하다. 그런데 가짜 성경들은 이 구절을 송두리째 삭제해 버렸다. 그러고 나서는 염치도 없이 “우리는 원문에 충실한 사람들이다.”라고 말한다.
4. 『주께서 그들에게 축복하실 때 그들에게서 떠나 하늘로 올라가시니라. 그들이 주를 경배하고 기쁨이 충만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와』(눅 24:51,52)에서 소위 원문에 충실하다는 성서들은 『하늘로 올라가시니라... 주를 경배하고』를 삭제함으로써 예수님을 향한 경배와 예수님의 승천을 제거해 버렸다.
5. 『이는 하늘에서 증거하시는 이가 세 분이시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시요, 이 세 분은 하나이심이라.』(요일 5:7)라는 이 구절을 완전히 삭제해 버림으로써 “삼위일체”를 부인하고 있다.
이상 변개하고 삭제한 부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격하시키는 것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으레 그러하듯이 개역성경이나 개역개정판을 위시하여 무슨 성경, 무슨 성경 하면서, 그런 성경들도 복음을 전하기에는 무난하다고 말하는 것은 “사탄의 속임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성경을 가지고도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전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부인하고 거절하는 사람의 행동일 뿐이다.

한편 사탄은 또 하나의 계략으로 항상 “다수”를 내세운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나는 일은 “다수의 문제”로 다룰 일이 아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수많은 사람이 그 성서들을 쓰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중 하나를 쓰고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 모두 잘못된 사람들이란 말인가?” 하나님의 사역은 다수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쭉정이는 항상 알곡보다 많은 법이다. 이와 관련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셨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이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고 그 길이 광대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으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소하여 그것을 찾는 자가 적음이니라』(마 7:13,14). 말하자면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 대다수가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지옥에 가는 것이다.

“노아의 때”에도 절대다수가 노아의 설교를 거절한 결과 홍수로 죽었다. “롯의 때”에도 소돔과 고모라에서 죽은 사람이 절대다수였다.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섬긴 이스라엘 백성도 절대다수였다.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던 사람들도 절대다수였으며, 예수님의 지상 사역 동안 그분을 메시아로 영접하기를 거절했던 사람들도 절대다수였다. 오늘날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의 구주로 영접하기를 거절하는 사람이 절대다수다.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유아 세례로 구원받았다고 하는 사람들, 거듭나지 않은 채 교회만 다니는 사람들, 신앙이 아닌 것을 신앙으로 착각하는 사람들,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로 알고 있는 종교인들이 절대다수다. 정녕 그런 자들이 거듭났다면 성령님께서 내주하셔서 그 사람을 진리로 일깨워 그가 구원받았는지 알게 해 주실 것이다.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와 있다는 점도 알게 해 주실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표류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 모두 구원받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천만 명 이상의 교인들과 대형 교회들을 자랑하는 이 한국 교회에서 오늘 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다면 과연 몇 사람이나 올라갈 것 같은가? 지상에 남는 쭉정이가 절대다수일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바른 성경 없이 올바르게 믿을 수는 없다. 삭제된 예수 그리스도, 손상된 예수 그리스도, 잘못된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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