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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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을 믿지 않는 “무덤” 교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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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2년 2월호>

한국 교계에서 출간되는 신문들을 보면 한 가지 특이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성경의 진리”에 관해 전혀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간혹 성경 내용을 언급한다 해도 진리를 말하지는 않는다. 소위 십자가를 앞세워 “기독교의 진리”를 전파하고자 앞장선 언론사들이라면, 최소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는 교리” 정도는 이야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십자가의 복음, 지옥의 실체, 재림 및 천년왕국 통치와 영원 세계에 관한 진리들을 주요 주제로 다뤄야 할 터인데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자칭 “대표적인 기독교 신문들”이라는 것들의 주요 기사를 살펴보니, “도대체 성경의 진리는 어디 있고, 또 진리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이 절로 나올 법한 제목들로 도배되어 있다. 이를테면 “검은 호랑이의 해... 성경에는 ‘호랑이’가 몇 번 나올까?” “성경, 명품 브랜드로 과하게 치장하는 것 금하는 이유,” “‘불후의 명곡’ 우승자 피지 출신 소코, 모교 고신대 방문,” “무슬림의 네 가지 주요 공격적 질문에 강력하게 반격하기,” “OOO, 백혈병 환아를 위해 선한트롯 가왕전 상금 기부,” “‘하나님 경외하고 성경 존중하는’ 지도자 선출되길,” “대통령 선거 앞두고 기억해야 할 ‘진정성’의 세 가지 원칙” 등이다.


소위 기독교 언론사라는 곳들이 그나마 “성경”을 언급한 제목이라고 해야 “명품 브랜드로 치장하는 일”에 관한 기독교적 관점을 이야기하는 수준일 뿐, 그 어디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왕국에 관한 기대가 보이지 않는다. 재림과 영원한 통치를 믿지 않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 정부”가 아닌 “세상 정부”에 소망을 두고서 대통령 선거 이야기나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자기 때가 되면 주께서 나타나시리니 그분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통치자시요,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라.』(딤전 6:15)라고 기록했다. 만일 바울이 현 21세기에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아 문서 사역의 일환으로 언론사를 차렸다면, 과연 세상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런 기사들을 썼겠는가?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파하는 일과 교회의 휴거, 주님의 지상 재림과 왕국에 그의 관심이 쏠려 있었기에, 오늘날과 같은 배교한 기독교계의 언론사들을 보았다면 혀를 차고 가슴을 치며 눈물로 개탄했을 것이 분명하다. 『(내가 자주 너희에게 말하였고 지금도 눈물로 말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들로 행하고 있느니라. 그들의 종말은 파멸이며 그들의 하나님은 자기들의 배요, 그들의 영광은 자기들의 수치 속에 들어 있고 그들은 땅의 것들을 생각하느니라.)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므로 우리가 그곳으로부터 오실 구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으니 그가 만물을 자신에게 복종시키는 그 능력의 역사로 인하여 우리의 천한 몸을 그분의 영광스러운 몸같이 변모시키시리라』(빌 3:18-21).


그 언론사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그들에게 성경적 진리를 이야기해 줄 목사나 신학자가 한국 교회에 전무하기 때문이다. 각 기독교 언론사들에도 편집 방향을 제시할 목사들이 있기 마련인데, 그들의 존재 자체가 무용지물인 것이다. 기독교 언론 기자들은 주로 교회의 행사나 사건들을 취재하고, 목사나 신학자들과 인터뷰한 것을 대담 형식 기사로 올려놓기 때문에, 성경을 가르친다는 자들이 입을 다물면 그들은 성경에 관한 기사를 전혀 쓸 수 없게 된다. 배교한 신학교들의 성경 지식으로는 교회의 휴거, 대환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과 왕국 정부를 다룰 수 없고, 그 신학교들에서 배운 목사들 역시 그리스도의 “고난”(초림)과 “다가올 영광”(재림)에(벧전 1:11) 근거한 성경의 다양한 진리들과 초림과 재림 사이에 위치한 교회 시대에 교회가 해야 할 임무 및 역할에 관한 성경적 지식이 없기에, 그들에게서 기삿거리를 찾지 못한 언론들은 자질구레한 교회 행사 소식들이나 시시껄렁한 교단 총회 소식들 혹은 그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세상의 사건 사고들을 양념처럼 버무려 넣어 그들이 과연 기독교 언론인지 세상 언론인지 헷갈리게 하는 애매한 지면들을 독자들에게 펼쳐 놓는다. 성경적으로 차려 놓을 진리들이 없으니까 세상의 “인스턴트 가십거리들”이나 구해다가 내놓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 교회에는 그 언론사들을 성경적으로 운영할 영적 지도자들이 없는 것이다. 그동안 필자는 기독교 언론들을 유심히 살펴보아 왔지만, 특히 구약의 “소선지서”에 관심을 두고 그 핵심 진리를 독자들에게 정확히 설명하는 목사나 신학자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그들에게 아담, 야곱, 모세, 여호수아, 다윗, 솔로몬 등의 인물은 “성경 동화”의 주인공들 같은 간헐적인 흥미의 대상이고, 선지자 이사야나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등은 그들이 말한 예언들이 무슨 의미인지 몰라 입에 담기에 “몹시도 거북한 존재들”로 여겨진다. 기껏해야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였다거나(“예레미야처럼 시대의 아픔을 위해 울자!” - “사회 복음”), “다니엘”에 관해서는 “신앙에 있어서 타협이 없었던” 그가 사자 굴에 던져졌다가 살아 나왔다는 정도의 수준으로만 설명할 뿐, “이사야”에 기록된 재림과 천년왕국의 회복된 자연계, “에스겔”에 나오는 곡과 마곡의 전쟁, 천년왕국 성전과 회복된 레위인 제사장직, “다니엘”에서 느부캇넷살의 꿈의 형상을 통해 계시된 인류 역사의 진행이나 칠십 주의 환상 같은 진리는 아예 손도 대지 못한다. 더욱이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카, 나훔, 하박국, 스파냐, 학개, 스카랴, 말라키 같은 선지자들은 그들의 기억 속에서 아예 사라진 존재처럼 보였는데, 그 선지자들이 “재림”에 관해 기록한 실로 엄청나고 응축된 진리들을 전혀 깨닫지 못해 그저 한쪽으로 조용히 치워 버린 것이다.


한국 교회 목사들과 신학자들은 먼지가 수북이 쌓인 “선지서들”의 진리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과연 그들에게서 잘못 배운 교인들이 선지서들을 통해 재림과 지상 왕국에 관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겠는가? 『위선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에게 화 있으리라! 이는 너희가 한 사람의 개종자를 얻으려고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얻고 나면 그를 너희보다 두 배나 더 악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기 때문이라』(마 23:15). 그들은 모두 한통속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인간 왕국에서 잘 먹고 잘 살 생각만 하고 있다. 그런 자들이 성경의 진리에 관해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교회들과 신학교들과 기독교 언론들 모두 총체적으로 부패하여 “세상의 나팔수” 노릇이나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바르게 보존된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고 선지서들에 기록된 재림에 관한 말씀들을 깨달아 그 진수를 맛본 성도라면 그것을 결코 잊지 못하여 보고 또 보고, 공부하고 또 공부할 것이다. 절대로 물리지 않는 재림의 진리들은 볼 때마다 새롭고 우리의 영을 강건하게 하는 “영의 양식”이 되는 것이다. 당신은 “소선지서”의 진리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 진수를 맛본 적이 있는가? 맛보았더니 어땠는가? 도무지 믿을 수 없어서 쓰고 떫기에 뱉어 버렸는가, 아니면 너무나 달고 오묘해서 먹고 또 먹었는가? 『주의 명령들은 모두 참되고 의로우니, 그것들은 금보다, 정녕 많은 정금보다 더 바랄 만하며, 꿀과 벌집보다 더 달도다』(시 19:9,10). 『주의 말씀들이 내 입맛에 어찌 그리 단지요! 정녕,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시 119:103). “소선지서”는 자칭 그리스도인들과 신학자들과 목사들에게 가장 홀대받고 외면당하는 책이다. 소위 “주석가”라는 자들도 소선지서 각 책의 주제가 무엇인지 전혀 가늠하지 못하다 보니 자기 추측만 남발함으로써 그들이 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진리의 지식을 전혀 공급하지 못한다. 그들은 성경의 진리에 관해 무언가를 배워 보려고 온 사람들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완전한 이해의 확신이 모든 풍요함에 이를 수 있는”(골 2:2) 기회를 박탈해 버림으로써 그들과 똑같은 영적 소경들이 되게 했다. 그러나 소선지서 각 책의 대주제와 그와 관련된 구절들 몇 개만 살펴봐도 성경의 진리가 얼마나 달고 오묘한지 금세 깨닫게 되어 성경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된다. 선지자들의 임무는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미래의 일들을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데 있었기 때문에, 그 계시된 말씀들을 문자 그대로 해석할 때 그 참된 의미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와 관련하여 아래에 간략한 내용 몇 가지만 제시하고자 하는데, 이 내용만 잠깐 음미해도 소선지서를 공부하고 싶은 의욕이 충만해질 것이다.


“호세아”는 “재림 때의 이스라엘의 회개와 회복”을 다룬다. 『오라,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자. 이는 그가 찢으셨으나 우리를 낫게 하실 것이요, 그가 치셨으나 우리를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이틀 후에 그가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그가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목전에서 살리라. 만일 우리가 계속 주를 알고자 하면 그때 우리가 알게 되리라. 그의 나오심은 아침처럼 마련되어 있으며 그는 우리에게 비처럼 오시리니, 땅에 내리는 늦은 비와 이른 비처럼 오시리라』(호 6:1-3). “요엘”은 “재림 때의 아마겟돈 전쟁”을 다루고 있으며,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주변 민족들에 대한 심판과 종교적 형식주의에 대해 심판받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다룬다. 『너희는 이것을 이방인들 가운데 선포하라. 전쟁을 예비하며 용사들을 깨우고 모든 전사들로 가까이 오게 하며 그들로 올라오게 하라. 너희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고 너희 낫을 쳐서 창을 만들라. 약한 자로 ‘나는 강하다.’라고 말하게 하라. 너희 모든 이방들아, 모여서 오라. 다 함께 주위에 모이라. 오 주여, 주의 용사들로 그곳으로 내려오게 하소서』(욜 3:9-11). 『그 날에 내가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리라. 또 내가 그의 파괴된 것들을 일으켜 옛날처럼 세우리니 그들이 에돔의 남은 자와 나의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이방의 남은 자를 차지하리라. 이 일을 행하는 주가 말하노라』(암 9:11,12). “오바댜”는 “재림 때 있을 에돔에 대한 심판”을 예언하고, “요나”는 “대환란 기간에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유대인의 모형”을(욘 3장), “미카”는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주님의 심판과 다가올 영광”을 예언한다. 『야곱의 집은 불이 되고 요셉의 집은 불꽃이 되며 에서의 집은 그루터기가 되리라. 그들이 그들에게 불을 붙여 그들을 삼키리니 에서의 집에는 남는 것이 없으리라. 이는 주가 그것을 말하였음이라... 구원자들이 시온 산에 올라와 에서의 산을 심판할 것이요, 그 왕국은 주의 것이 되리로다』(옵 1:18,21). 『그 우두머리들은 뇌물을 바라고 재판하며 그 제사장들은 삯을 바라고 가르치고 그 선지자들은 돈을 바라고 점을 치는도다... 그러므로 시온이 너희로 인하여 밭같이 쟁기질당할 것이요, 예루살렘이 무더기같이 되고 그 전의 산은 숲의 산당들같이 되리라. 그러나 마지막 날들에 주의 전의 산이 산들의 정상에 세워질 것이요, 그 산은 작은 산들 위에 높여지고 백성들이 그곳으로 몰려들리라』(미 3:11-4:1).


“나훔”은 “재림 때 있을 니느웨의 멸망”을(나 2:8-3:19), “하박국”은 “재림의 경로와 천년왕국에서의 주님의 영광”을 선포한다. 『하나님은 테만으로부터 오시며 거룩하신 분은 파란 산으로부터 오셨도다. 셀라. 그의 영광이 하늘들을 덮으며 그를 찬양함이 땅에 가득 찼도다. 그의 광채는 빛과 같고 그는 그의 손에서 나오는 뿔들을 가졌는데 거기에 그의 권능이 감추어져 있도다』(합 3:3,4). “스파냐”는 “다가올 심판과 이스라엘의 영광”을 예언하고(슾 3:8,19,20), “학개”는 “재림 때 다시 세워질 주님의 성전”을 예언하고 있는데, 당신은 이런 위대한 진리를 믿고 있는가? 『만군의 주가 이같이 말하노니, 조금 있으면 하늘들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내가 또 한 번 흔들 것이요, 또 내가 모든 민족들을 진동시키리니 모든 민족들의 열망이 이르리라. 그러면 내가 이 집을 영광으로 채우리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이 나중 집의 영광이 먼저 집의 영광보다 더 크리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이곳에 내가 화평을 주리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학 2:6-9). 이제 “소선지서”는 바야흐로 그 끝에 가서 “스카랴”를 통해 “시온의 영광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포하고(슼 2,8장), “말라키”에서는 “의의 태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을 예언한다! 『보라, 이는 화덕같이 탈 그 날이 오기 때문이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정녕 다 그루터기가 되리라. 오는 그 날이 그들을 태우리니, 뿌리나 가지도 그들에게 남기지 아니하리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그러나 내 이름을 두려워하는 너희에게는 의의 태양이 그의 날개에 치유를 가지고 솟아오르리니, 그리하면 너희는 나가서 외양간의 송아지들처럼 자라리라』(말 4:1,2).


소선지서를 읽고 깨닫는 데 있어서 무엇을 더하고 빼겠는가? 거기에 예언된 미래의 일들은 문자 그대로 성취될 것이다. 이상 소선지서 각 책의 주제가 될 만한 구절들을 간단히 추려서 나열해 보았는데, 이 몇 구절만 보더라도 하나님께서 그 짧은 예언서를 통해 재림의 영광을 얼마나 풍성하게 계시하셨는지 알 수 있다. 성경의 예언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분의 왕국”이다. 그 왕국은 영원한 왕국이며, 주님께서는 초림 때부터 영원무궁한 왕국의 왕으로서 계시되셨다. 『보라, 네가 너의 태 안에 임신하여 한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는 위대하게 될 것이며, 가장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요, 또 주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의 조상 다윗의 보좌를 주실 것이며 그는 야곱의 집안을 영원히 통치할 것이요 그의 왕국은 무궁하리라.”고 하니라』(눅 1:31-33). 이처럼 “만왕의 왕이신 주님의 재림과 영원한 통치”를 부인하는 교회는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가 아니다. 십자가를 세워 놓았다고 해서 교회가 된다면, 십자가가 새겨진 공동묘지의 무덤들도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실로 재림의 영광을 기대하지 않는 교회들은 “공동묘지 교회들”인 것이다! 그 회칠한 무덤들은 영적으로 죽은 죄인들의 모든 더러운 것들로 가득 차 있어서(마 23:27) 주님께서 그 안으로 들어가실 수 없다(계 3:20). 주님께서 계시지 않는 교회가 당신을 미혹하고 있으니, 두 눈 부릅뜨고 주의하라!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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