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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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목사는 반역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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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2년 01월호>

여자 목사라는 직분이 과거 교회들에 처음 등장했을 때는 “희귀 질환”처럼 여겨졌지만, 현재는 코로나 팬데믹처럼 전 세계 교회들의 강단이 “여자들”로 감염되어 “보편적인 영적 질환”이 되었다. 성경은 남자가 가정을 이끌어야 하고(창 3:16, 벧전 3:5), 가정을 이끄는 남자가 교회를 이끌어야 한다고(딤전 3:2,4,5) 말씀하는데도, “여자들”이 남자를 자신의 머리로 삼고 복종하기를 거부하면서 교회들의 강단을 장악해 버린 것이다. 이 해괴망측한 도전은 성경에 계시된 창조주의 섭리에 정면으로 반역한 것으로서 마귀가 개입한 일인데, 배교한 교회들은 성경에 없는 마귀적인 직분을 용인하고 또 용인함으로써 반역의 강도를 더해 오고 있다.

여자 목사들은 우리가 사는 현 라오디케아인들의 교회 기간이 “대배교의 시대”라는 점을 보여 주는 “산 증인들”(?)이다. 배교한 교회들은 그들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는 바른 성경과 바른 교리가 없기에 성경이 아닌 세상으로 눈을 돌려 세상의 영향을 받았고, 이로써 여자가 남자 옷을 입고 남자와 똑같은 일을 하며 가정과 사회에서 남자와 동등한 역할을 하려는 반성경적인 일을 교회 내로 수용해 버리고 말았다. 바른 성경을 거부한 교회들은 선악을 분별할 수 없는 영적 소경들이 되어 성경에서 목사에 관해 말씀하는 가장 기본적인 진리조차 혼란스러워하며 어려워하고 있다. 『감독[목사]은...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하며』(딤전 3:2). 말하자면 교회들이 성경에서 『악한 현 세상』(갈 1:4)이라 불리고 마귀에게 넘겨진(눅 4:6) 이 세상의 영향을 받음으로써 창조주의 섭리를 거스르는 여자들의 반역을 남녀평등과 여성 해방이라는 명분하에 용인해 준 것이다. 현 세상은 그들의 “신”(고후 4:4)인 마귀의 권세하에서 통제를 받는 곳인데, 바로 그 세상에서 벌어지는 여자들의 반역이 세상의 영의 통제를 받는 교회들 안에 스며들어 영적 체계에 대혼란이 야기되고 말았다. 혼란을 조장하는 존재가 누구인가? 하나님이신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혼란의 창시자”가 아니시다(고전 14:33). 하나님의 권위를 넘봄으로써 “피조 세계”에 대혼란을 가져온 자는 마귀였으며(사 14:12-14), 그 마귀에게 점령된 교회들에서 여자들이 성경을 가르치겠다고 활개를 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 혼란스럽고 가증스러운 일은 교회들이 성경이 아닌 세상으로 눈을 돌렸기에 일어난 일인데, 그런 문제는 교회를 위한 영적 지침을 바른 성경에서 찾을 때 쉽게 해결될 수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여자가 지배하는 것을 싫어하신다. 여자가 남자를 지배하여 가정과 교회와 국가에서 권위를 행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계획에 없던 일이며, 이 점은 멸망 전의 이스라엘을 향해서도 분명히 지적하신 바였다. 『악인에게는 화로다! 그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그의 손들의 보응이 그에게 주어질 것임이라. 내 백성으로 말한다면 아이들이 압제자가 되며, 여자들이 그들을 지배하는도다. 오 내 백성아, 너를 인도하는 그들이 너로 탈선하게 하여 너의 진로를 멸망시키는도다』(사 3:11,12).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은 인간의 본성에서 나온 진실이다. 과거 이스라엘은 여자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민족으로 전락했고, 결국 탈선하여 멸망했다. “자유 대한민국”이 작금에 겪고 있는 정치적인 대혼란은 한때 여자 대통령을 뽑은 것이 화근이었는데, 그 여진으로 지금까지도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여자에게 지배하는 권위를 주신 적이 없으며, 여자는 교회 안에서 목사나 집사로 세워질 수 없고 그 어떤 경우에도 남자 위에 권위를 행사하는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온전히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게 하라. 나는 여자가 가르치는 것이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다만 조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았고 그후에 이브며, 또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라, 여자가 속아 범죄하였음이라』(딤전 2:11-14). 『너희의 여자들을 교회 안에서 조용히 하게 하라. 그들이 말하는 것이 허락되지 아니하였으니 율법에서도 말한 것과 같이 다만 복종할지니라. 그러나 만일 그들이 무엇을 배우고 싶어하면 집에서 자기 남편들에게 물을지니라. 이는 여자들이 교회 안에서 말하는 것은 수치임이니라』(고전 14:34,35). 이렇듯 성경은 여자가 남자 위에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분명히 금하고 있으며, 방언이 실행되던 사도들의 시대에는 여자가 교회에서 방언하는 것조차 금할 정도로 여자가 전면에 부각되는 것을 막았는데, 오늘날에는 여자들이 심지어 “목사”까지 되어서 교회 안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여자들이 강단에 서서 목소리를 높이는 교회는 창조주께 반역하는 교회다. 성령님께서 앞선 디모데전서 2장에서 교회의 질서를 위해 예로 드신 것은 다름 아닌 “창조의 순서”다.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았고 그후에 이브며』(13절). 한 집안에서도 먼저 태어난 아들이 장자이고, 그에게 “장자권”이 주어진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 일이다. 야곱이 형 에서에게 『오늘 형의 장자권을 내게 팔라.』(창 25:31)라고 했을 때, 야곱은 장자가 누리게 될 모든 영적이고 물질적인 특혜를 누리고 싶어 했었다. 이처럼 한 집안에서 아들들의 서열에도 의미가 있을진대, 하물며 창조의 순서는 두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았고 그 후가 이브이기 때문에, 이브는 아담의 주관하에서 순종해야 할 위치에 있었다. 『여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의 고통과 너의 임신을 크게 늘리리니, 네가 고통 가운데서 자식들을 낳을 것이요, 너의 바람은 네 남편에게 있을 것이니, 남편이 너를 주관할 것이라.” 하시더라』(창 3:16). 사도 바울은 바로 이 창조의 순서와 그에 따른 영적 체계를 지역 교회에 적용하면서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았고 그 후에 이브라고 말했으니, 곧 『여자는 온전히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게 하라. 나는 여자가 가르치는 것이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다만 조용할지니라.』(딤전 2:11,12)라고 말한 것이다. 심지어 바울은 여자가 뱀에게 속아 범죄하는 어리석음을 범했으므로 남자에게 더욱더 복종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여자들은 그들의 첫 조상인 이브처럼 남자들보다 마귀에게 더 속기 쉬운 체질을 지니고 있다. 여자는 연약한 그릇이기에 마귀가 접근하기에는 남자보다 훨씬 더 수월하다. 그래서 뱀은 이브가 혼자 있을 때 그녀에게 접근하여 금지된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먹도록 유혹할 수 있었다. 그 이브의 후손 중에는, “신지학”(神智學)의 창시자인 러시아의 영매 “마담 블라바츠키,” 안식교의 교리를 정립한 “엘렌 G. 화이트,” 크리스천 사이언스의 창시자 “메리 베이커 에디” 등이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마귀에게 강력하게 사로잡힌 여자들이었다. 각 나라의 무당들은 또 어떤가? 일반적으로 여자들이 점술과 굿을 하는 것을 보면, 여자가 마귀에게 더 쉽게 사로잡힌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창조의 섭리를 거슬러서 여자에게 안수를 주어 영적인 일에 앞장서게 하는 것은 마귀에게 단단히 사로잡힌 자들의 교리이며, 그것은 마귀에게 점유를 당한 “무당” 하나를 데려다가 강단에 세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여자는 남자보다 연약한 그릇이기에 영적인 의존도가 남자보다 더 강한 면이 있다. 이 점은 초림 당시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헌신적으로 섬겼던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와 요세의 모친 마리아, 세베대의 자녀들의 어머니 같은 자매들에게서도 엿볼 수 있다(마 27:55,56). 심성이 부드러운 여자들은 영적인 흡수력과 이끌림이 남자들보다 더 강해서 성경도 남자보다 더 열심히 배우는 경향이 있다. 피터 럭크만 목사는 교회가 휴거될 때 자매들이 형제들보다 더 많이 휴거될 것이라고 했다. 여자 목사가 되기를 원하거나 이미 되어 버린 자들은 영적인 이끌림이 비성경적인 데로 쏠려서 마귀에게 속아 버린 자들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세우신 영적 체계를 무시하고 스스로 목사직을 꿰찬 마귀 들린 자들을 강단에 세우는 것은 거듭나지 않은 종교인들로 가득한 이 마지막 때의 교회들이 주님의 심판을 눈앞에 두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한 교회들은 휴거되지 못하고 대환란에 들어갈 것이며 전무후무한 대재앙 속에서 멸망하게 될 것인데, 그들이 가게 될 종착지가 오직 “불이 절대로 꺼지지 않는 지옥”뿐임을 하루속히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전서에서 강조한 목사의 자격 요건 중 하나는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딤전 3:2) 한다는 점이었다. 디도서에서 강조한 목사의 자격 요건 또한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딛 1:6) 한다는 점이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에 기록한 그 명령에 관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 없고 책망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딤전 6:14)라고 했고, 디도서에 기록한 명령에 관해서는 『이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서, 우리를 가르치시되, 불경건과 세상 정욕들을 거부하고, 우리로 신중하며, 의롭고 경건하게 이 현 세상을 살아가게 하시며, 그 복된 소망, 곧 위대한 하나님이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음이니... 이런 것들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를 가지고 책망』(딛 2:11-13,15)하라고 했다. 한 아내의 남편을 목사로 세워야 한다는 것은 주님의 재림 때까지 지켜져야 할 명령이며, 지역 교회의 선임 목사들이 철저히 지켜야 할 교리다. 남자를 목사로 세우는 것은 지역 교회의 성도들이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이 현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가운데 하나일 뿐만 아니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다리면서 선한 일에 진력하는 데 꼭 필요한 일이다.

특히 디도서에서는 “나이 많은 여자들”을 향한 권면에서 『젊은 여자들을 가르쳐서 절제하고 남편을 사랑하며 자녀들을 사랑하고, 신중하며 정숙하고 집안 일에 힘쓰며 선하고 그들 자신의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모독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딛 2:4,5)라고 말씀하는데, 이는 여자가 남자가 아닌 다른 여자를 가르치는 것은 성경적인 일이지만, 여자가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모독을 받게 하는 일임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여자가 자기 머리 위에 남자를 권위로 두어야 한다는 점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첫 번째 서신”(11장)에서도 다뤄졌다.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즉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시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니라』(3절).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인 남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하거나 예언하면 자신의 머리인 그리스도를 수치스럽게 하는 것이기에 금지되지만(4,7절), 여자는 자기 머리인 남자의 권위 아래 있다는 표시로 머리에 쓰거나 그것을 긴 머리로 대신함으로써 영적인 일에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여자가 긴 머리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녀에게 영광이 되느니라. 이는 그녀의 머리가 그녀의 쓰는 것을 대신하기 때문이라』(15절).

여자가 영적인 일에 참여할 때 남자의 권위 아래 있음을 표현해야 하는 이유는 각 지역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하늘의 천사들이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여자는 천사들로 인하여 머리 위에 권위를 두어야 하리라』(10절). 천사들은 그들의 창조주께서 지으신 “피조 세계”가 그분께서 정하신 질서대로 운영되는 것을 보기를 간절히 원한다. 과거 루시퍼의 반역에 동참하지 않은 “택함받은 천사들”(딤전 5:21)은 권위를 넘보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는가를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에, 그 뒤로 재창조된 인간이 하나님의 질서와 순리대로 사는 모습을 보기를 간곡하게 원하는 것이다.

천사들은 그들의 하나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가 창조의 순리대로 운영되는 것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것인데, 그렇기에 그들은 남자에게서 나온 여자가 자신의 머리인 남자에게 복종하는 지역 교회의 모습에 기뻐한다. 『이는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기 때문이며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창조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창조된 것이기 때문이라』(8,9절). 그러나 주 안에서는 여자 없이 남자만 있을 수 없고 남자 없이 여자만 있을 수도 없는데,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나는 것같이 남자도 여자를 통하여 나며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나기 때문이다(11,12절).

남자든 여자든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것이기에 모두 다 소중한 사람들인 것은 맞지만, “권위”의 문제에서는 여자가 남자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 성경적 지침이다. 예전에 필자는 어떤 여자 목사가 자기 교인들을 갈취하고 폭력을 행사하다가 감옥에 갔을 때 그 풍성한 머리가 죄수의 머리로 짧게 깎인 것을 본 적 있다. 그것은 남자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고 그들 위에 군림한 여자들이 결국 죄를 짓고 머리가 수치스럽게 깎일 수도 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 준 사례였다.

재판관기 4장에는 여선지자 드보라와 바락의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 배교한 이스라엘 안에는 그 민족을 지도하고 이끌 마땅한 남자가 없었기에,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지닌 한 여자를 세우시어 선지자로 사용하셨다. 남자들이 말씀에 무지하고 나약하여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을 때 여자를 들어 쓰시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군대 대장인 바락이 시스라와 결전을 치를 때 홀로 나가지 않고 드보라를 끌어들인 것만 봐도 당시 이스라엘 남자들의 상태가 어떠했는지를 읽을 수 있다.

한국 교회에 여자 목사가 넘쳐 나는 이유는 남자 목사들이 무능하기 때문이다. 목사의 자격이 없고 목사직을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약하고 무지하기에 나타난 현상인 것이다. 다만 드보라 때와 다른 것은 “여자 목사”는 결코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이 아니라는 점이다. 목사라면 건전한 교리로 담대하게 권면하고 설득할 줄 알아야 하지만(딛 1:9), 정녕 한국 교단 교회들에서는 그럴 만한 남자 목사를 좀처럼 찾아볼 수 없기에, 여자 목사들이 강단에 서서 반역의 치맛바람을 일으켜도 아무도 막지 못하는 비참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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