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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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위선자의 “스터디”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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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2년 06월호>

한국인에게는 “남이 하면 나도 하는” 민족적 특성이 있다. 일명 “모방 강박증”인데, 어떤 유명인이 멋진 옷을 입으면 그 주에 그 옷이 완판되곤 한다. 최근에는 현 대통령의 새 구두가 완판되었다. “킹제임스성경 번역”을 따라하는 자들은 한둘이 아니다. <한글킹제임스성경>이 최초로 출간되자, 하나님의 승인도 받지 않은 자들이 너도 나도 한국어판 번역에 나선 것이다. 말씀보존학회에서 하나님의 승인을 받아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출간하자 자신도 따라하겠다며 흉내 낸 자들에는 정동수(킹제임스 흠정역), 박만수(권위역 성경), 서달석(KJV 완역한글판 성경전서), 이일배(공인역), 강희종(한국어 권위역 킹제임스 성경)이 있는데, 필자는 이들을 생각하면 이 나라에 등장한 자칭 “재림 예수”들을 보는 것만 같아 안쓰럽기만 하다. 자신을 “하나님”이라 하는 자들이 우리나라에 무려 “50명”이나 된다 하지 않는가? 마귀는 모방의 천재이다. 신약 교회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마귀적인 일들이 이 자랑스런 붉은 악마의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신드롬(syndrome)이라는 말은 “어떤 것을 좋아하는 현상이 전염병과 같이 전체를 휩쓸게 되는 현상”을 가리키는데, 이 나라에는 “재림 예수” 신드롬을 넘어 “킹제임스” 신드롬이 휩쓸고 있다.

필자는 지난 4월 어느 일간 신문에 난 기이한 광고 하나를 보게 되었다. “성경이 잘 안 읽힌다는 분들도 술술 읽히는 신기한 성경,” “세계 최초로 각본화해 이해를 높이고 느낌을 살린 성경”이라는 에 관한 광고였다. 필자가 왜 이 책의 이름을 영어로 썼는가 하면 책의 이름이 영어로 표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 이름인 “스터디 드라마 바이블”은 뭐가 부끄러운지 한쪽 귀퉁이에 콩알처럼 작게 써 놓았다. 역자는 자신이 ‘초대 이스라엘 대사’임을 과시하는 박동순이라는 인물인데, 자기가 초대 이스라엘 대사였기 때문에 유대인에게서 나온 하나님의 말씀을 잘 번역했을 것이라는 암시를 주는 듯했다.

그러나 <스터디 드라마 바이블> 역시나 “킹제임스 신드롬”의 산물에 불과했다. 이는 그것이 킹제임스 버전을 기본으로 20여 권의 성경(?)을 참조했다고 광고에 밝혔기 때문인데, 알고 보니 우리가 아는 킹제임스성경이 아닌 변개된 뉴킹제임스 버전(1982)을 기본으로 하고 히브리어 원문과 20여 권의 기타 성경이라 불리는 조잡한 것들을 대조해 가며 완역한 것이었다. 그런데 <스터디 드라마 바이블>이라 해서 그 속을 들쳐보았더니 번역이 가관이 아니었다. 성경의 첫 책인 창세기 1장 3,4절의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해설자 ll 3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님 ll 빛이 있어라.
해설자 ll 그랬더니 빛이 있었다. 4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빛이 좋았다. 하나 님께서 빛을 어둠에서 분리하셨다.

또한 창세기 3장에서 죄 지은 아담이 하나님과 나눈 대화는 다음과 같다.

여호와 ll 네가 어디 있느냐?
해설자 ll 10 남자가 대답했다.
남자 ll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벌거벗은 것이 두려워서 숨었습니다.

과연 “드라마” 대본 수준이다. 성경을 드라마 대본으로 만들어 놓은 <스터디 드라마 바이블>! 이런 것이 과연 성경이란 말인가? 하나님께서 말씀을 그런 식으로 기록해 놓으셨던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이 온전하게 되며,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게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은 그 일점일획도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할 것이기에(마 5:18) 그 단어들을 함부로 삭제하거나 첨가하거나 위치를 바꿔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 드라마 바이블은 변개된 성경들을 참조했기에 바른 성경과 비교했을 때 36,000군데가 틀리고 신약에서만 2,200단어가 삭제되었으며 “(없음)”이라고 표기된 구절이 13구절이나 된다. (세상에 “없음”이라고 된 드라마 대본도 있는가?) 그것도 모자라서 “해설자”라는 존재를 등장시켰는데, “해설자”가 대체 누구인가? 이 이상한 책은 하나님(여호와)과 예수님의 말씀이 붉은 글씨로 되어 있고, 기타 상황 서술은 모두 “해설자의 설명”으로 되었는데, 이처럼 해설자라는 존재가 하나의 인격체로 제시된다. 성경이 기록되는 데 있어서 정체불명의 인물이 개입한 것으로 보이게 만드니, 이 마지막 때에 참으로 별의별 성경을 다 보는 것이다.

“스터디” 바이블이라 해서 요한계시록을 펼쳐봤더니 그 12장에 관한 설명이 번역자의 혼미한 영적 상태를 드러냈다. 요한계시록 12장은 “해로 옷입고 달을 발 밑에 두며 머리에 열두 별이 있는 면류관을 쓴 여인(이스라엘)”을(1절) 용이 박해하는 내용을 다룬다. 여인은 그 모습이 창세기 37장에서 요셉의 꿈에 나타난 해와 달과 열한 개의 별들과 관련이 있는데, 꿈에 해와 달과 열한 별들이 요셉(나머지 한 별)에게 경의를 표했다는 말에 아비 야곱은 『네가 꾼 이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미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창 37:10)라고 해석했다. 해와 달과 열두 별은 야곱의 집안, 곧 “이스라엘”을 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해와 달과 열두 별들과 관련된 여인은 “이스라엘”을 상징함이 분명하다. 그러나 <스터디 드라마 바이블>의 저자는 「용은 사탄이며, 이스라엘은 여인을 박해한다(12:13).」라고 설명했다(신약, p.555). 그는 이스라엘이 박해하는 여인을 “교회”라 했고 사탄이 그 여인을 핍박한다고 했는데,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이 사탄이 되고 교회가 사탄인 이스라엘에게 박해를 받는다는 해석이 되고 만다. 참으로 대단한, 일고의 가치도 없는, 신약 교회사에 둘도 없는 “스터디” 바이블이다!

국내에는 “킹제임스 신드롬”에 사로잡힌 “스터디” 바이블이 한 종 더 있다. 이름 하여 <스터디 성경전서>다. 오랫동안 <성경전서>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어 온 한글개역성경을 연상시키는 그 성경은 “킹제임스 흠정역 마제스티 에디션”(이 역시 작은 글씨체임)으로 정동수에 의해 출간되었다. 킹제임스라는 이름 대신 <성경전서>라는 이름을 대문짝만하게 써 놓음으로써 한국 교회의 교인들에게 매우 친숙한 “성경전서”의 이미지를 오버랩시켜 자기 성경을 거부감 없이 집어 들게 하려는 판매 전략으로 보였다. “킹제임스”라는 이름은 눈에 잘 띄지 않게 아래쪽에 작게 쓰고 “성경전서”라는 이름은 눈에 확 들어오게 위쪽에 크게 썼다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 한국 교회 안으로 편입해 들어가고자 하는 정동수의 얄팍하고 교묘하고 가련한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의 <스터디 성경전서>를 펼쳤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에게 너무도 친숙한 그림들이 그 책의 부록을 상당 부분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좌측의 첫 번째 그림은 클라렌스 라킨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말씀보존학회) 12페이지의 “도표 2”이며, 동저자의 역작 <세대적 진리>(말씀보존학회, p.18,19)에 더 자세히 그려져 있다. 그 아래의 그림은 정동수의 <스터디 성경전서>의 부록 「지도와 선도」의 74페이지에 모방된 것으로 한눈에 봐도 라킨의 도표를 표절했음을 알 수 있다. 좌측 세 번째 그림은 <세대적 진리>의 도표 「적그리스도와 이방인들의 때」(p.212,213)의 일부인데, <스터디 성경전서>의 「지도와 선도」의 77페이지에 의심의 여지없이 표절되어 있다. 또한 본 지면 우측에 있는 13페이지의 도표는 라킨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도표 4”(「하늘들」, p.62)이다. 정동수는 그의 「지도와 선도」 80페이지에 그것을 표절해 놓았다.

눈이 의심스러우면 두 도표에 기록된 영어 알파벳에 주목하라. 상단 좌측부터 “E, C, W, J,” 중앙 하단 상부의 “P, H, K, T, A”까지 불못 “G”를 제외하고는 동일하게 표절되어 있다. 이외에도 <세대적 진리>의 소중한 도표들이 <스터디 성경전서>의 「지도와 선도」에 상당수 표절되어 있는데, <세대적 진리>의 「사람의 삼중성」(p.184)이 “사람의 세 요소”(「지도와 선도」, p.61)로, 「교회와 왕국」의 ‘왕의 조상’ 부분이(p.158) “처녀 탄생: 예수님의 계보”(p.63)로, 「그리스도의 위대하신 생애와 사역」(p.86)이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p.65)으로, 「유대인」(p.104,105)이 “유대인”(p.72)으로, 「성경의 예언의 날들」(p.80,81)이 “예언의 날들”(p.75)로, 「다니엘의 칠십 주」(p.126)가 “다니엘의 칠십 이레”(p.78)로, 「영의 세계」(p.180,181)가 “지하 세계: 지옥”(p.81)으로, 「교회와 왕국」(p.158,159)이 “교회와 왕국”(p.85)으로, 「상급에 대한 심판」(p.200)이 “보상의 심판”(p.84)으로, 「사탄 이 세상의 신」(p.206, 207)이 “사탄: 이 세상의 신”(p.70)으로, 『새 세대』(p.75)가 “만물의 회복”(p.94)으로 표절되었으며, 본 논단 다음 페이지에는(p.14) <세대적 진리>의 「천년왕국의 땅」 (p.172,173) 우측 도표가 “천년왕국의 성전과 도시”(p.93)라는 선도로 표절되었음을 제시해 놓았다. “표절”은 법률 용어라기보다는 윤리적 개념이다. 타인의 저작물을 자신의 저작물인 것처럼 공표하는 것을 말하는데, 타인의 저작물을 무단히 이용한다는 점에서 저작권 침해와 유사하지만, 클라렌스 라킨의 저서들처럼 보호기간이 만료된 저작물을 표절하는 경우에는 저작권 침해는 아니어도 표절에는 해당되어 윤리적 비난을 면할 수 없다. 한두 도표도 아니고 대체 이것이 무슨 짓이란 말인가? 정동수는 라킨의 도표들로 자기의 “스터디” 흠정역을 도배해 놓았다. 세간에 기계공학 박사로 알려졌는데, 정동수 “교수”는 자신의 공학박사 논문도 이런 식으로 썼는가? 자기가 번역했다는 흠정역에도 『너는 도둑질하지 말지니라.』(출 20:15)가 있을 텐데...

필자는 정동수의 비리를 “폭로”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일로 사람들의 관심을 사는 데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사람들로부터 오는 영광이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해야 한다고 나의 주님께서 가르쳐 주셨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너희가 서로 영광을 받으면서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겠느냐?』(요 5:41,44) 정동수는 예수님을 믿을 수 없고, 예수님에 관해 계시된(요 5:39) 성경을 믿을 수 없다. 사람들로부터 오는 영광이 탐이 나서 배교한 교회들에 기웃거리는 자가 어떻게 예수님에 관한 “모든 진리”를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진리의 영이신 그분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리라...』(요 16:13) 정동수는 우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롬 8:14). 진리의 일부만 믿고, “믿기지 않는 것”을 내다 버리는 것은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우주를 재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골 1:16,17). 예수님에 관한 모든 진리를 가르쳐 주시는 성령님께 배운 클라렌스 라킨은 정동수가 표절한 <세대적 진리>에서 다음과 같이 “재창조”를 가르쳤다.

「아담 이전의 태초의 땅... 이 창조는 말할 것도 없이 무한한 과거의 일이며, 그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다(창 1:1). 이것은 창세기 1:3-5에 묘사된 첫째 날의 시작이 아니다. 창세기 1:3-31에 기록되어 있는 6일 동안의 일은 하늘들이나 태양계 밖의 우주 공간이 아니라 “형체가 없고 공허한,” “물과 어두움”이 스며들기 이전의 땅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태초의 땅”이 창조된 후 측량할 수 없는 시간이 지났다. 분명히 이 땅은 가장 아름다웠을 것이고, 땅 위에는 식물들과 고기와 가축들이 덮고 있었을 것이다. 얼마나 이 상태가 지속되었는지 말할 수 없지만 여기에 엄청난 재앙이 발생했음이 틀림없다. 그래서 땅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게 되었으며 물과 어둠 속에 잠겼다(창 1:2)」(<세대적 진리>, 말씀보존학회, p.46).

성령님께서는 정동수와 같은 “모방 강박증”에 걸린 한국인에 대해 『그러한 자들은... 기만하는 일꾼들이요... 이것은 놀랄 일이 아니니 이는 사탄도 자신을 빛의 천사로 가장하기 때문이라... 사탄의 종들이 의의 종으로 가장한다 하더라도 큰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종말은 그들의 행위대로 될 것이니라.』(고후 11:13,14,15)라고 말씀하신다. 재창조를 부인하는 자가 재창조를 가르친 라킨을 표절해서 <스터디 성경전서>를 팔아먹고 있는 것이다! 남의 도표들을 도둑질해서 돈을 벌어먹고 있다는 얘기다. 양심이 죽은 그는 재창조를 믿지 못했고, 멀쩡한 “replenish”(창 1:28)를 “가득 채우다”로 변개시켰다. 왜 replenish라는 말씀만 보면 입에 거품을 물고 다른 단어로 대체하려고 안달이 나는가? replenish를 보면 “다시 채우다”로 읽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경 변개자들의 실체이다. replenish라는 말씀이 성경을 기록된 대로 믿을 의향이 전혀 없는 자들의 마음의 생각들과 의도들을 판별한 것이다(히 4:12).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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