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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폐케 한 자”인가, “황폐한 곳”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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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2년 07월호>

영어 <킹제임스성경>을 번역한 <한글킹제임스성경>이 나온 지 6년 후에 “킹제임스 흠정역”(이하 흠정역)이라는 책이 나왔다. 이미 번역되어 나온 <한글킹제임스성경>이 있는데도 정동수가 자기 나름대로 따로 번역해서 출간을 했다는 것이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 번역이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생각나게 할 정도로 조악한 번역이라 “왜 이렇게 조악한 번역물”을 “성경”이라고 출간했는지 참으로 의아하기만 하다. 정동수는 “루시퍼의 반역”에 따른 창세기 1:2의 “전 우주적 심판”을 인정하지 않고 창세기 1:1에 대한 “부연 설명 구절”로 주장한다고 하니, 아마도 그는 창세기 1:2에 걸려 넘어져 나름 “자기 교리”를 담은 “자기 성경”을 펴내겠다는 포부를 가졌던 모양이다. 참으로 성경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의 오역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문맥을 이해 못한 오역 : 다니엘 9:27 ▣

한글킹제임스성경
『그가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주 동안 언약을 확정하고, 그 주의 중간에 그가 희생제와 예물을 금지시킬 것이요, 그는 가증함을 확산시킴으로 황폐케 하리니 진멸할 때까지 할 것이며, 정해진 것이 황폐케 한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더라.』

킹제임스흠정역
「그가 많은 사람과 한 이레 동안 언약을 확정할 것이며 그가 그 이레의 한중간에 희생물과 봉헌물을 그치게 하고 가증한 것들로 뒤덮기 위해 심지어 완전히 끝날 때까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작정된 그것이 그 황폐한 곳에 쏟아지리라, 하니라.」

다니엘 9:27은 적그리스도에 관한 중요한 예언이다. 이 구절의 『황폐케 한 자』(the desolate)를 흠정역은 「황폐한 곳」으로 잘못 번역했다. 아무리 영어의 용례나 히브리어의 문법적인 구조를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정동수의 흠정역의 번역이 매우 어색하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여기서 『정해진 것』은 적그리스도에게 쏟아지기로 정해진 것,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적그리스도에게 쏟아 부으시는 “심판”을 의미한다. 『그리고 나서 그 악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께서 그를 자기 입에서 나오는 영으로 소멸하시고 그의 찬란한 오심으로 제거하시리라』(살후 2:8). 그러므로 이 구절은 “정해진 것,” 즉 “심판”이 “황폐케 한 자”인 “적그리스도”에게 쏟아진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흠정역 번역자인 정동수는 『정해진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므로 고민하다가 “적그리스도가 작정한 것을 황폐한 곳에 쏟는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서 번역한 문장이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문장이 되었다. 도대체 “작정된 것”은 무엇이며, 그것이 왜 아무런 쓸모도 없고 효과도 없을 “황폐한 곳”에 쏟아진다는 것인가? “황폐한 곳”은 이미 황폐한데 거기에 무엇을 더 쏟는다는 것인가? 적그리스도가 황폐한 곳을 더 황폐케 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인가? 정동수는 영어사전을 펼쳐 보니 “desolate”가 “황폐한”이라고 되어 있어서 그 단어를 그냥 “황폐한 곳”이라고 번역하면 된다고 생각했는가?

▣ 쉼표(,)를 무시한 오역(1) : 시편 19:3 ▣

킹제임스성경
『There is no speech nor language, where their voice is not heard.』

한글킹제임스성경
『말도 없고 언어도 없으며 그들의 음성도 들리지 않으나』

킹제임스흠정역
「그것들의 음성이 들리지 않은 말이나 언어가 없도다.」

시편 19편은 『하늘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창공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로 시작하는 찬양시이다. 3절은 분명히 『말도 없고 언어도 없으며 그들의 음성도 들리지 않으나』처럼 차례대로 번역되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앞의 쉼표(,) 때문이다. 쉼표는 수식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차례대로 해석하라는 표시이다. 그런데 흠정역은 이것을 「그것들의 음성이 들리지 않은 말이나 언어가 없도다.」로 뒷부분이 앞부분을 수식하는 것으로 번역했다. 하물며 “is”는 현재형인데, 과거를 의미하는 “않은”으로 번역했다. 결국 흠정역은 이렇게 번역하여 문장 뜻이 반대가 되게 했다. 즉 “말, 언어, 음성이 모두 없다”는 뜻이 되어야 하는데, 반대로 “음성이 들리는 말과 언어만 있다.”는 뜻으로 번역한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문은 “말이 없다. 언어가 없다. 그리고 음성도 들리지 않는다.”로 되어 있어서 말과 언어를 동시에 수식하는 해석이 불가능하다. 정동수는 잘 모르겠으면 히브리어 원문이라도 보지 그랬는가? 히브리어 원문과 히브리어 사전을 가지고 있을 텐데, 왜 안 보고 이렇게 번역했는가?

▣ 쉼표(,)를 무시한 오역(2) : 시편 21:12 ▣

킹제임스성경
『Therefore shalt thou make them turn their back, when thou shalt make ready thine arrows upon thy strings against the face of them.』

한글킹제임스성경
『그러므로 주께서 그들을 돌아서게 하시리니 주께서 그들의 얼굴을 향하여 활시위를 당기시리이다.』

킹제임스흠정역
「그러므로 주께서 그들의 얼굴을 향해 주의 활시위의 화살들을 쏠 준비를 하사 그들이 등을 돌리게 하시리이다.」

시편 21:12은 악인들을 대적하시는 하나님을 묘사한다. 정동수는 아마도 “악인들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다가 하나님께서 활시위를 당기시니 등을 돌린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서 쉼표(,)를 무시하고 뒷부분을 먼저 해석했다. 그러나 정동수는 잘못 이해했다. 악인들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지 않다. 악인들은 원래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언젠가는 반드시 그들을 하나님 쪽으로 돌아서게 하시고 그들의 얼굴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실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그분의 원수들에 대해 강하고 적극적이다.

▣ 국어사전도 안 펼쳐 본 어리석은 번역자 : 창 37:27 ▣
킹제임스성경
『Come, and let us sell him to the Ishmeelites, and let not our hand be upon him; for he is our brother and our flesh.』

한글킹제임스성경
『오라, 그를 이스므엘인들에게 팔고, 우리 손을 그에게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형제요, 우리의 골육이라.』

킹제임스흠정역
「오라, 우리가 그를 이스마엘 족속에게 팔고 우리 손을 그에게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 살붙이니라」

정동수는 여기에 나온 flesh를 “골육”이 아닌 “살붙이”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살붙이는 flesh의 번역으로 적합하지만, 골육(骨肉)은 골(bone)과 육(flesh)이므로 골(bone)을 임의로 첨가했기 때문에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말의 용례를 잘 모르고 주장하는 것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골육”은 “부자, 형제 등의 육친”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그런데 “살붙이”와 “피붙이”는 둘 다 “혈육으로 볼 때 가까운 사람. 보통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쓴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쓰는 “살붙이”보다는 “부자, 형제 등의 육친”에 쓰는 “골육”이 “형제”를 표현하는 “더 적합한 단어”인 것이다. 정동수는 국어사전 한 번 펼쳐 보지 않고 감히 <한글킹제임스성경>에 덤비는가?

▣ 단어의 용례를 모르는 번역자 : 시편 89:18 ▣

킹제임스성경
『For the LORD is our defence; and the Holy One of Israel is our king.』

한글킹제임스성경
『주는 우리의 방패시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은 우리의 왕이시니이다.』

킹제임스흠정역
「이는 주께서 우리의 방벽(防壁)이시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께서 우리의 왕이시기 때문이니이다.」

정동수는 이 구절과 함께 시편 7:10에서도 『방패』(defence)를 “방어용 성벽”을 의미하는 “방벽”이라고 번역했는데, 히브리어 “마겐”에는 “방벽”이나 “성벽”이라는 뜻이 없다. 이 구절에서 “마겐”의 뜻은 확실히 “방패”이다. 또 시편에서 하나님은 방패, 요새, 피난처, 반석 등에 비유되시지만, 성벽이나 방벽에 비유되시지는 않는다. 그런데 왜 정동수는 거룩하신 주 하나님을 아무것에나 비유하는가?

“킹제임스 흠정역”을 읽어 보면, 정말 아무렇게나 한 번역이라는 것이 너무나 확연히 드러난다. 정동수는 “킹제임스 흠정역”을 통해 <킹제임스성경>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이다.

유튜브에는 어처구니없게도 <한글킹제임스성경>과 가짜 흠정역을 비교하는 자도 있다. 번역이 뭔지도 모르는 자가 자기 마음대로 해설을 하는데, “국어사전이나 한번 펼쳐 보고 얘기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유튜브에 올린 영상 중 2022년 2월 16일자 1편 첫 구절만 예로 들어 보겠다. 즉 전도서 6:3에는 『낙태된 자가 그보다 나으니라.』라는 부분이 있다. 흠정역은 「유산된 자가 그보다 나으니라.」로 번역했다. 해설자는 “낙태”와 “유산”은 다른 것이고, 이 구절에서는 “유산”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매우 강조했다. 3시간짜리 영상이었는데, 그 많은 구절들 중에서 이 구절을 1편의 첫 구절로 선정했으니 뭔가 제대로 비교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는 “낙태”와 “유산”이 동의어인 줄도 모르면서 제멋대로 해설하고 있었다. “낙태”(落胎, 태에서 떨어짐)와 “유산”은 “태아가 달이 차기 전에 죽어서 나옴. 인공 유산과 자연 유산이 있다.”로 국어사전상 그 뜻이 “동일”하다. 왜 유튜브에 이런 영상을 올린 것인가? 자기의 “무식함”과 “경솔함”을 만천하에 드러내기 위해서인가? 1편의 첫 구절이 이 모양이니 더 볼 필요가 있겠는가?

<한글킹제임스성경>의 권위에 도전하는 유튜브 영상을 보거나, 성경 교사인 척하는 자들의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읽고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실현할지 생각하고 묵상하라. 『시간을 사서 얻으라. 이는 그 날들이 악하기 때문이니라』(엡 5:16). 그리고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어떤 모습으로 서야 할지 계획하고 실행함으로써 자신의 믿음을 입증하는 성도가 되기 바란다. 『무엇이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인지 입증하라』(엡 5:10).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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