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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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기 목사의 <4차원의 영성>에 대한 성경적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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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5년 05월호>

조용기 목사의 <4차원의 영성>에 대한 성경적 비평



제대로 갖춰 입지도 못한 상태에서 사흘을 굶주리며 추위에 떨면서 집 없이 전전긍긍하는 노숙자에게 어떤 말이 달겠는가? 김이 모락모락 나고 맛갈나는 반찬들과 구수한 된장국이 있는 밥상은 어떻겠는가? 그리고 그 풍성한 밥상이 차려져 있는 따뜻하고 아늑한 방을 묘사하여 들려줘 보라. 그가 처한 현실과 관계없이 이보다 그에게 더 듣기 좋은 말은 없을 것이다.
지난 2004년 12월 30일 조용기 목사는 <3차원의 인생을 지배하는 4차원의 영성>이라는 책을 내놓았다. 이에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 한동대 김영길 총장, 세계침례교 총회장 김장환 목사, 국제제자훈련원장 옥한흠 목사, 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장 정근모 박사,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 등이 한결같이 호평의 추천의 글을 써 주었다. 여러 기독교신문들도 조용기 목사의 책을 호평하며, 인터뷰 또는 책 리뷰의 형식을 빌어 전면광고를 해주었다. 조목사가 자신의 은사주의 교리들을 버리고 바른 성경을 믿음으로 붙들고 새롭게 사역을 시작하겠다는 내용인가? 그래서 기독교 사회의 반향이 큰 것인가?
이 책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양서인가, 아니면 거짓 교리를 유포하고 시대조류에 편승하여 인기를 모아 책장사를 하려는 졸작인가? 이번 호에서 필자는 조목사의 최근작 <4차원의 영성>을 검토하고 비평하고자 한다.

책의 구성과 내용
<4차원의 영성>은 총 2부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4차원 영적 세계로의 초대”라는 제목으로, 1장 “3차원의 인생, 4차원의 영성”과 2장 “4차원의 4가지 요소”의 두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2부는 “당신 안의 4차원의 영적 세계를 바꾸라!”는 제목으로 그가 주창한 “4차원”을 구성하고 움직이는 네 가지 요소 즉 “생각,” “믿음,” “꿈,” “말”을 각각 한 장씩 할애하며 설명한다. 2부의 각 장은 “당신의 생각, 이렇게 바꾸라,” “당신의 믿음, 이렇게 바꾸라.”는 형식의 부제를 달고 있으며, “4차원의 영성을 훈련하라.”는 5장의 에필로그로 끝난다.

이제 실제적으로 책장을 넘기면서, 그 내용을 정리해 보자. 첫째로 그가 정의내리는 “4차원”은 무엇인가? 조목사의 설명을 들어 보자.
“그래서 4차원은 3차원의 공간에 시간이 더해져서 생기는 시공간의 세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감각적인 세계를 뛰어넘은 영혼의 세계, 영적인 세계인 것입니다”(p.27). “따라서 4차원은 시간과 공간 속에 있으면서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p.29). “4차원은 영적인 세계입니다. 인간은 영혼을 가진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3차원의 세계에 있으면서도 4차원에 속하는 존재인 것입니다”(p.30). “그래서 하나님이 이미 허락하신 복된 삶을 누리며 아버지께 영광돌리길 원하십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행동을 하나님의 4차원으로 채우십시오. 당신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p.33).
쉽게 말해서 지상의 현실을 초월하지만 그것을 변화시키는 영적 세계를 쉽고 일반적인 용어인 “영적 세계”를 제쳐 두고 조목사는 “4차원”이라 새롭게 명명한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조목사는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을 지배하고 변화시키는 영적인 세계인 4차원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하는가? “4차원의 요소인 생각이 부정적인 사람은 3차원에 부정적인 일이 생깁니다”(p.38). “그러므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3차원에 긍정적인 역사가 일어납니다”(p.38). “생각을 긍정적인 프로그램으로 바꾸라”(p.66). “언제나 성공할 것을 생각하며 칠전팔기의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지십시오”(p.73).
“하나님의 방식,” “성경 말씀,” “절대 긍정적인 믿음,” “성령님,” “성령의 충만,” “그리스도의 부활,” “5가지의 복음과 3가지 축복” 등 많은 구미가 당기는 표현들을 동원했지만 결국 핵심은 그가 강조하듯이 “생각을 긍정적인 프로그램으로 바꾸라.”(p.71)는 것이다.

현실의 어려움과 인생의 역경과 영적 위기에 처한 한국인들에게 주는 조목사의 비결 전수는 계속 이어진다. 독자의 흥미를 돋구고자 하는 노력은 그가 선택한 표현들에서 볼 수 있다.
“심고 거둘 것을 기대하라”(p.95). “기도의 내용을 발전시키라”(p.97). “부정적으로 유혹하는 환경과 싸우라”(p.98). “뜨겁게 부르짖는 기도로 불신앙의 얼음벽을 녹여라”(p.101). “3차원 인생의 짐을 주께 맡기라”(p.103). “믿음학습은 평생학습이다”(p.113). 그러나 이번에도 핵심은 “현실이 어둡고 캄캄하다 할지라도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믿음으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p.113) 등이다.
이제 조목사가 주창한 4차원의 영적 세계를 변화시킨다는 나머지 요소들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는지 지켜보자. 2부의 3장 “꿈”에서도 그가 전달하고픈 메시지는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축복이 있음을 확신하며 소망을 가지고 꿈꾸십시오.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p.127)이다. 물론 이 “좋은 일”이란 조용기식 은사주의가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삶”을 말한다(p.151).
마지막으로 2부 4장 “말”에 대한 처방은 다음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할 수 없다’와 같은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p.171).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같이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선언을 해야 합니다”(p.172). “창조적이고 성공적인 말을 하라”(p.181). “천국의 언어로 생활하는 당신의 인생은 이미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고 있을 것입니다”(p.170).
그의 메시지로 볼 때 조목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엄중한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가 아니라 “적극적 사고 훈련가”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성경은 이런 류를 “거짓 선지자들”이라고 불렀고 이들의 메시지는 항상 긍정적인 것이었다(왕상 22:11,12, 렘 8:10,11). 오히려 주의 선지자의 메시지는 부정적이었다(왕상 22:8,14,17,19-23,28). 찾아보라!
2부 5장에서 조목사가 내리는 결론을 들어보자. “성령님과 함께하는 당신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인 생각과 꿈을 가지고 끊임없이 승리를 입술로 시인하며 나갈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p.206).

상하고 참회하는 마음
먼저 조목사는 이 민족이 스스로의 죄와 비진리와 타락으로 불러들인 암울한 영적 현실을 절감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태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알 수도 없는 것은 조목사 자신이 비성경적인 은사주의 교리와 실행으로 오늘날의 비참한 영적 상태를 주도한 장본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의 “적극적” “긍정적” 방법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 그러나 성경은 죄와 타락과 심판에서 회복하려는 성도를 위해 그 지침을 자상하게 기록해 놓았다.
『하나님의 희생제들은 상한 영이니 오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상하고 참회하는 마음을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영원에 거하시는 높고 우뚝 솟은 분, 그의 이름이 거룩이신 분이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겸손한 영을 지닌 자와 함께 거하여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케 하고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케 하는도다』(사 57:15).
오히려 우리 각자가 하나님 앞에 『통회하고 겸손한 영』과 『상하고 참회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이 참된 회복과 축복의 길이다. 주께서 어떻게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다가서는 바리새인을 거절하셨는지 읽어 보지 못하였는가?(눅 18:11,12) 그러나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소유하지 못했지만, “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외친 사람을 얼마나 주께서 기뻐하셨는지 알지 못하는가?(눅 18:13,14) 이러한 자세가 아니면 조목사의 “4차원”은 공상과 기만의 세계일 뿐이며, 조목사를 따르며 영적 유익을 꾀하는 모든 이에게 오히려 저주가 될 뿐이다.

적극적인 사고방식의 기독교적 각색
어려운 때에 화평과 축복을 설파하면 사람들은 현실의 고통 혹은 다가오는 심판으로 인한 두려움을 달래기 위해 그 거짓 선지자의 메시지에 현혹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심판과 고난을 이스라엘과 지상의 모든 민족과 각 개인에게 주신 것은 자신의 죄를 인지하고 죄의 결과를 슬퍼하며 진리와 의로 자비로우신 하나님께 돌아서게 하기 위함이다(호 6:1).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오히려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하여 백성들을 오도하는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렘 14:14,15).
진리와 공의가 결여된 민족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을 찢는 회개와 자성이지 “적극적인 사고방식”과 “긍정적 믿음”이 아니다(욜 2:12,13).

또한 조목사의 “적극적인 사고방식”과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절대 긍정적 믿음”이 얼마나 이질적이며 허무맹랑한 것인지 알고자 한다면 다음 질문을 숙고해 보라.
우리의 죄의 짐을 짊어지시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삶이 긍정적이었는가?(사 53:4, 막 15:28)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리스도인인 바울의 삶이 긍정적이었는가?(고전 4:9-13) 조목사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을 닮은 그리스도인인가? 아니면 어려운 시기를 틈탄 “긍정적인 말로” 백성을 오도하고 현혹하는 거짓 선지자인가?
원한다면, 조목사와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적극적인 사고방식의 기술을 익혀서 이 세상에서 잘 나가는 그리스도인으로 성공해 보라! 그러나 그것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로부터 이어받은 성경적인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삶이라고 말하지 말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죄에 대해 애통해 하고 순수한 말씀을 열망하는 마음이다(사 66:2). 또한 오직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철두철미하게 부정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선포할 수 있는 설교자가 필요할 뿐이다. 곧 비방도 멸시도 무시와 조롱과 반대에도 굴하지 않는 사람이다(겔 3:9). 전능하신 주 하나님의 말씀이 타오르는 불같이 뼈 속에 사무쳐서(렘 20:9), 만연한 죄와 다가오는 심판과, 변질된 말씀과 이 땅의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사도들과 그들의 부패를 책망하며 진리의 말씀과 의의 길을 전해 줄 그런 하나님의 사람이 필요하다(겔 22:30). 그리하여 죄악과 비진리로 굳어진 우리 마음의 묵은 땅이 일궈지고 우리 마음의 포피가 벗겨지며(렘 4:4),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슬픔으로 회개하고(고후 7:10),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에 경청하고 순종할 수 있도록 말이다(사 55:2). 그때서야 우리는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근원적인 회복과 영적인 축복과 믿음의 부요함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개인이나 무리를 막론하고 조목사의 “적극적인 사고방식”과 “절대 긍정적인 믿음”을 따른다면, 그들은 “유익을 줄 수 없는 거짓말들을” 믿는 것이며(렘 7:8), 부정적인 영적 현실을 근원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이 세상의 지혜와 자기 기만으로 해결하려 한 책임을 하나님 앞에서 져야 할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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