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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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을 조롱하는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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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1년 11월호>

재림을 조롱하는 자들
한승용 / 킹제임스성경신학교 교수


예수님께서 지상에 오신 목적들 가운데 하나는 땅 위에 “칼”을 주시는 것이었다. 주님께서는 그 칼로 진리와 비진리를 나누시어 화평을 깨뜨리신다. 『내가 땅 위에 화평을 주러 온 줄 생각하지 말라. 나는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그 어머니와, 며느리가 그 시어머니와 서로 대적하게 하려 함이니라. 사람의 원수들은 그의 가족 중에 있으리라』(마 10:34-36). 예수님의 칼은 사람들의 혼을 찔러서 그 마음속에 있는 생각들을 드러나게 한다(눅 2:35). 마음의 생각들과 의도들을 판별하고 드러내는 그 칼은 “하나님의 말씀”(히 4:12)이며, 사도 요한에 따르면 그 하나님의 말씀은 성육신하신 『말씀』(요 1:1)과 같다. 바로 이 『말씀』께서 “말씀의 칼”(엡 6:17)을 주시려고 세상에 오신 것인데, 그분께서는 친히 그 “칼”도 되시기에 초림 당시 그분의 사역은 진리와 비진리를 찢고 분리하여 불화하게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칼을 주러 오신 주님께서는 그 칼로 분쟁을 야기하셨는데, 이로 인해 주님께서 계신 곳에서는 늘 분열이 일어났다. 『그 바리새인들 중 몇 사람이 말하기를 “그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이 아니니, 이는 그가 안식일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니, 다른 사람들이 말하기를 “죄인인 사람이 어떻게 그러한 기적들을 행할 수 있느냐?”고 하더라. 그리하여 그들 가운데 분열이 생기더라』(요 9:16). 『그러므로 이 말씀들로 인하여 유대인들 중에 다시 분열이 생기더라』(요 10:19). 이러한 분열 현상은 기독교계 안에서도 일어난다. 겉으로는 “갈보리 십자가”를 표방해도, 그 십자가에 달리신 분에 관한 “교리”에 있어서는 2천 년 교회사 기간에 서로 찢기고 분열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만 것이다. 왜 그런 것인가? 진짜를 흉내 내는 “가짜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진리가 아닌 것을 들고나와 진짜 행세를 한 자들이 신약 교회사 기간에 기독교계를 잠식하여 혼란에 혼란을 가중시킨 것이다. 『또 내가 이것을 아노니,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들이 너희 가운데로 들어와서 양떼를 아끼지 아니할 것이며 또한 너희 가운데서도 사람들이 일어나서 왜곡된 것을 말하여 제자들을 끌어내어 자기들을 쫓게 할 것이라』(행 20:29,30).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책인 성경에서 이와 같은 “가짜들”에 대해 경고하셨는데, 멸망 직전의 비참한 상태에 놓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첫 번째로 꼽으신 문제가 바로 “거짓 선지자들”이 활보하는 모습이었다. 『경이롭고 무서운 일이 그 땅에서 행해지는도다. 선지자들은 거짓되이 예언하고 제사장들은 그들의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렇게 하는 것을 사랑하니 그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렘 5:30,31)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선지자들의 거짓된 예언과 제사장들의 육신적인 지배를 사랑할 때 그 결말이 어떻게 되겠느냐?”라고 그들에게 물으셨다. 그 경이롭고 무서운 일의 최전선에 서 있던 자들이 거짓 선지자들이었는데,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시지 않았음에도 자칭 선지자로 행세하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은 것을 마치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처럼 예언했던 것이다(렘 23:21). 주님께서는 이웃으로부터 그분의 말씀들을 도둑질하는 바로 그 가짜 선지자들을 대적하신다(렘 23:30).


주님께서는 가짜들을 대적하신다. 영적인 일에 가짜가 끼어드는 것은 교회 시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백성 가운데도 거짓 선지자들이 있었던 것처럼 너희 가운데도 거짓 교사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저주받을 이단들을 비밀리에 불러들여서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기까지 하며, 급격한 파멸을 스스로 불러들이느니라』(벧후 2:1). 이것은 교회가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동안 원수인 마귀가 와서 곡식 사이에 독보리를 뿌리고 가 버린 것을 말하는데(마 13:25), 여기에 중요한 교훈 하나가 있다. 즉 “독보리”는 밀과 같이 자라고, 그 모양이 밀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마귀가 기독교계 안에 뿌려 놓은 “거짓 교사들”은 그리스도인처럼 행동하는데, 이렇듯 그리스도인처럼 보이기에 쉽게 구분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거짓 교사들을 그리스도인으로 오인하여 그들에게 쉽게 속아 넘어가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흉내 전문 이리들”을 주의하라고 경고하셨으며(마 7:15), 사도 바울도 그 가짜들의 특기가 진짜 사역자들과 똑같아 보이도록 “가장하는” 것임을 재차, 삼차 강조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하리니 이는 기회를 찾는 자들에게서 그 기회를 끊어 버림으로써 그들이 자랑하는 그 일에 대하여 그들이 우리와 동등하게 보이게 하려 함이라. 그러한 자들은 거짓 사도들이요, 기만하는 일꾼들이요, 자신들을 그리스도의 사도들로 가장하는 자들이라. 이것은 놀랄 일이 아니니 이는 사탄도 자신을 빛의 천사로 가장하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사탄의 종들이 의의 종으로 가장한다 하더라도 큰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종말은 그들의 행위대로 될 것이니라』(고후 11:12-15). 거듭나지 않은 채 교회에 “광신적으로” 출석하는 자들은 비성경적인 교리로 교란하는 자들의 “위장술”에 속아 너무나 쉽게 그런 자들을 따라가 버린다(갈 1:6-8). 가짜 성경을 들고 진리를 모방하는 마귀의 종들을 일말의 의심도 없이 맹목적으로 추종함으로써 자신들의 멸망을 스스로 불러들이고 마는 것이다.


일례로, “종말론”에 관한 교리는 성경의 교리들 가운데 정점에 놓여 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으로 현 세상에 종말이 닥치기 때문이다. 『그 후에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하늘에서 큰 음성들이 있어 말하기를 “이 세상의 나라들이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왕국들이 되어서 그분이 영원무궁토록 통치하시리라.”고 하더라』(계 11:15).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 땅에 도래할 “왕국”은 성경 전체의 주제다. “재림”은 인류 역사의 최대 변곡점이다. 재림은 이토록 중요한 사건이기에, 그것에 대한 해석 또한 분분하여 후천년주의가 등장하더니 무천년주의가 뒤를 이었고, 성경적 교리인 “전천년주의”는 빛이 들지 않는 구석으로 치워놓은 채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다. 속임수와 교활한 술책에서 비롯된 온갖 교리의 풍조로 말미암아(엡 4:14), 마지막 때의 교회들은 “종말론”에서도 정처 없이 여기저기로 밀려다니고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인하고 있는데, 이 점을 사도 베드로가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적시했다. 『먼저 알 것은 이것이니 마지막 날들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그들의 정욕대로 행하며, 말하기를 “그가 온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만물은 창조의 시작부터 그대로 있다.” 하리니』(벧후 3:3,4). 여기서 “마지막 날들”은 교리적으로 대환란 기간을 지칭하는데, 그 기간에 그렇게 조롱하는 자들 중에는 교회 시대의 마지막 시기를 살다가 휴거되지 못하고 대환란으로 들어간 교인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들은 교회에 다녔어도 구원받지 못한 채 헛된 종교 행위에만 매달리다가 대환란에 들어간 것인데, 그런 그들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가 온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벧후 3:4)라고 지껄일 것이다.

그가 온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대환란 때 있을 이러한 교리적 무지는 재림에 관한 현 교회 시대의 완고한 마음에서 기인한다. 교회 시대에 재림을 부인하는 자들은 대환란에 들어가서도 재림을 부인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가 하면 그들이 재림을 부인하는 것은 그들의 “정욕”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마지막 날들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그들의 정욕대로 행하며』(벧후 3:3). 그들은 자신들의 정욕을 채우려고 자기 배를 하나님으로 삼아 십자가를 이용해 먹는 “십자가의 원수들”일 뿐만 아니라, 하늘로부터 다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재림의 원수들”이기도 하다. 『(내가 자주 너희에게 말하였고 지금도 눈물로 말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들로 행하고 있느니라. 그들의 종말은 파멸이며 그들의 하나님은 자기들의 배요, 그들의 영광은 자기들의 수치 속에 들어 있고 그들은 땅의 것들을 생각하느니라.)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므로 우리가 그곳으로부터 오실 구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으니 그가 만물을 자신에게 복종시키는 그 능력의 역사로 인하여 우리의 천한 몸을 그분의 영광스러운 몸같이 변모시키시리라』(빌 3:18-21). 이 말씀에 따르면 하늘의 시민권이 없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변모되지 못한 배교한 신학자들과 목사들과 교인들은 대환란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들은 대환란에 들어가서도 “개 버릇 남 못 준다.”라는 속담대로 여전히 땅의 것들을 생각하면서 재림을 부인하는 “진리의 원수들”로 행할 것이다. 바른 성경을 배격하고 진리를 왜곡하는 것이 그들의 특징인데, 피터 럭크만 목사는 재림을 조롱하는 그런 자들에 관하여 이렇게 경고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조롱하고, 성경과 성경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들을 조롱하고,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자들이 ‘바깥세상’에 널려 있다면 또 모르되, 그런 자들은 소위 ‘기독교계’ 안에 기생하고 있고, ‘기독교 신학’을 가르친다는 신학교들 안에 득실거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교회들 안에까지 파고들어 왔다! ‘설마?’ 하고 당신은 믿고 싶지 않겠지만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신학교라는 곳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대신 인간이 만들어 낸 ‘현대주의 신학’을 가르치기 시작한 지 이미 오래되었고, 여기에서 배출된 자들이 기독교계와 교회들에 파고들어 반성경적인 현대주의 사상을 퍼뜨리기 시작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 않던가? ‘성경 변개’는 또 어떤가? 하나님께서 섭리로 보존하신 유일한 성경인 <킹제임스성경>을 조롱하고 뜯어고치기 시작한 지가 이미 100년도 훨씬 넘지 않았던가? ‘은사주의 운동’은 또 어떤가? 성경을 극도로 왜곡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면서 ‘성령의 능력’을 제멋대로 사칭하는 가운데, 성령님을 농락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은사주의가 교회 안으로 침투하기 시작한 지도 벌써 반세기가 넘지 않았던가? 베드로는 1,900여 년 전에 벌써 이것을 경고해 두었다. 그리고 그 ‘조롱하는 자들’을 ‘그들의 정욕대로 행하는 자들’이라고 일찌감치 규정해 놓았다.


“재림을 조롱하는 자들”은 세속적인 탐욕에 젖은 채로 예수 그리스도 없이 기독교계의 거물이 되고 싶어 하기에 재림을 부인한다. 또한 성령님의 이름을 남용하여 밥 벌어 먹고사는 은사주의자들처럼 세속적인 복에만 관심이 있기에 재림을 부인한다. 그러나 현 세상을 종결시키고 천년왕국과 영원 세계의 문을 여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경이 가르치는 확실한 진리다. “재림”에 관한 한 초림 때 예수님께서 친히 증거하셨고(마 16:27; 24:30; 25:31,32, 요 14:2,3), 올리브산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예언했으며(행 1:10,11), 바울도(빌 3:20,21, 딤전 6:14,15, 딛 2:13, 히 9:28), 야고보도(약 5:7,8), 베드로도(벧후 1:16), 유다도(유 1:14,15) 주님의 다시 오심을 예언했다. 특히 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재림을 실감 나게 묘사했다. 무엇보다도 마태복음 17장의 “변형산 사건”이 주님께서 그분의 “왕국”으로 오시는(마 16:28) 명백한 재림의 모습이지 않았던가!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을 데리고 따로 떨어져 있는 높은 산으로 올라가시어, 그들 앞에서 변형되시니 그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의 옷은 빛처럼 희어지더라』(마 17:1,2). 베드로는 이 광경이 주님의 다시 오심을 미리 보여 준 사건이었고, 결코 교묘하게 꾸며 낸 이야기가 아님을 천명했다(벧후 1:16-18). 하지만 베드로는 설령 변형산 사건이라는 재림의 분명한 예시적 증거가 있다 해도, 그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성경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이며 이 말씀에 주의하는 것이 잘하는 것임을 강조했다(벧후 1:19). 재림에 관한 “성경 예언”을 믿고 주님의 다시 오심을 대비하는 것이 참으로 잘 사는 인생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목사를 세우신 목적은 성도들에게 진리의 지식을 가르쳐서 그들을 성장시키려는 데 있다. 『어떤 사람들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들을 온전케 하며 섬기는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여 우리 모두가 믿음의 하나 됨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지식의 하나 됨에 도달하게 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하여 우리가 이제부터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요, 사람들의 속임수와 교활한 술책으로 그들이 속이려고 숨어서 기다리는 온갖 교리의 풍조에 밀려 이리저리 다니지 아니하고 오직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우리가 모든 일에 성장하여 그에게 이르리니 그는 머리시며 곧 그리스도시니라』(엡 4:11-15).


『목사와 교사』는 “목사 따로, 교사 따로”의 개념이 아니라 목사라면 당연히 성경을 잘 가르치는 교사여야 함을 의미하고 있다. 그래서 한 사람을 향해 “목사와 교사”라는 호칭이 동시에 쓰인 것이다. 위의 말씀에 따르면 “목사”는 성도들이 온갖 교리의 풍조에 밀려다니지 않고 바른 믿음과 바른 지식으로 온전한 사람이 되도록 헌신적으로 노력해야 하지만, 이 배교한 교회 시대의 목사들은 정작 그들이 온갖 교리의 풍조를 조장하는 장본인들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세우신 사람들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마음의 완고함 때문에 그들 안에 있는 무지를 통해 하나님의 생명에서 멀리 떨어진 자들로서 명철도 어두워져(엡 4:18) 결국 재림을 조롱한다. 어떤 사람의 믿음이 진짜인가 아닌가는 재림을 문자적으로 믿는지 안 믿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재림을 믿지 않는다면 십자가도 믿지 않는다는 얘기가 된다. 십자가에 달리신 구주를 믿는다고 하면서, 그 메시아의 다시 오심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인데, 이는 성경에 초림의 십자가보다 재림에 관한 구절이 월등히 많기 때문이다. 특히 신약의 교리를 다루는 바울 서신 안에는 십자가와 재림에 관한 말씀들이 함께 제시되어 있다. 따라서 재림을 믿지 않으면서도 십자가의 대속을 믿고 구원받았다고 하는 고백은 명백한 “거짓말”이다. 당신은 재림을 믿는가? 재림을 믿지 않는다면, 당신과 당신을 가르친 목사의 구원부터 점검해야 할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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