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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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상식 vs. 인간의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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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8년 01월호>

사람들은 자기들 나름의 상식을 가지고 살아간다. 세상이 말하는 상식은, "일상적인 현실 경험을 바탕으로, 매일 직면하는 일들에 대해 간단히 판단할 수 있게 해 주는 기본적인 지식" 또는 "이 기본 지식에서 이끌어 낸 자명하면서도 폭넓게 공유되는 논리"이다. 그런 상식은 개인마다 접하는 환경에 따라 제약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출처조차 알 수 없는 유언비어가 대중의 생각 속에 오랜 시간 수용되어 오다가 상식이 되는 경우도 있다. 대다수는 그런 상식이 틀린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상식의 틀을 깨는 학술적 연구 성과를 발표해도 그것을 진지하게 고찰해 보기는커녕 거부해 버리기 일쑤다.

일례로 환경에 관한 잘못된 상식을 들어 보자. 고인 물은 반드시 썩는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나라 저수지들은 모두 썩은 물이고, 국민들은 그 썩은 물로 농사지은 쌀을 먹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물은 고여서 썩기 이전에 "오염원"의 유입으로 썩는다. 우리나라의 화학 비료 사용량은 OECD 국가들 평균의 10배에 달한다. 과연 녹조가 4대강에 설치된 보(洑) 때문에 발생했는가? 물에 관한 교과서 에 따르면, 녹조 발생의 원인으로 강에 설치된 보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녹조 발생의 원인은 온도, 태양광, 영양물질 세 가지이다. 고인 물이 녹조 발생의 원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2012년 8월 초 녹조 현상이 발생했을 때, 『녹조 현상, 4대강 사업 보 건설 때문』이라는 문구가 언론을 통해 퍼지면서 많은 국민들이 4대강 보가 녹조의 원인이라는 잘못된 상식에 오염되고 말았다. 그러나 당시 녹조가 발생한 곳은 보가 설치되지 않은 북한강이었으며, 세 개의 보가 설치된 남한강에서는 발생하지 않았다. 북한강의 녹조 물을 떠 놓고 4대강 보 때문에 녹조가 생겼다고 주장하는 그 거짓말이 대다수의 무지한 사람들의 생각을 장악했을 때, 전문가들의 고견은 여지없이 무시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나라 4대강 보는 16개이지만, 라인 강은 86개, 센 강이 34개, 미시시피 강은 43개, 템스 강은 45개, 다뉴브 강이 59개다. 보가 녹조의 원인이라면 이 강들이 있는 나라들도 녹조 천국이 되어야 한다.

이처럼 상식은 폭넓게 수용되는 관계로 진리인 것처럼 인식될 뿐, 진리이기 때문에 용인되는 견해는 아니다. 따라서 검증되지 않은 상식이 "진리의 자리"를 차지할 때, 그리고 진리를 통해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는 일이 거부될 때, 진리와 공의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게 된다. 분명한 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밝혀진 진리에 의해 자신의 잘못된 상식이 무너지면 그 진리를 기꺼이 수용한다는 점이다. 이런 사실은 영적인 일들에 있어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한 가지 성경"을 주셨는데, 이 성경에 동의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이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상식"이며, 또한 그 상식은 하나님의 생각, 곧 성경을 아는 데서 출발한다. 성경은 진리이기 때문에 수용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영원한 상식"인 것이다. 반면 세상 사람들이 따르는 상식의 길은 반성경적인 가치관으로 포장되어 있는데, 이 세상의 신인 사탄이 만들어 놓은 "거짓말의 길"인 것이다. 따라서 악한 현 세상에서 태어나 마귀가 주입한 가치들을 배우며 자라난 어떤 죄인이 구원받은 이후에 성경대로 믿으려고 한다면, 그는 구원받기 전 세상에서 보고 배웠던 "헛된 철학"에 근거한 모든 잘못된 상식들을 성경으로 재검토하여 바로잡은 다음, 그 모든 상식들을 『주의 생각』(고전 2:16)에 일치하도록 새롭게 정리해야 한다(고후 10:5).

당신은 구원받기 전에 가졌던 가치관, 역사관, 경제관, 사회관 등을 성경에 근거하여 남김없이 재정립했는가? 아니면 아직도 이 세상 신이 퍼뜨린 헛된 철학에 오염되어 있는가? "내가 가난한 이유는 누군가가 내가 가져야 할 몫을 가져갔기 때문이다."라는 공산주의식 가치관에 오염되어 있는가? 또는 인간의 노력으로 모두가 평등하고 잘사는 유토피아를 이룩할 수 있다는 망상을 갖고 있는가? 이런 것들은 모두 세상에 내려진 저주와 인간의 죄성을 망각한 채,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없이 이 땅에 평화를 이룩할 수 있다는 후천년주의식 발상에서 비롯된다. 그런 헛된 철학에 입각한 모든 정책들은 비참한 결과만 가져올 뿐이다.

한편 이 배교한 교회 시대에 우리나라 교회들이 가지고 있는 상식은 어떠한가? 그들은 개역성경이나 개역개정판을 성경으로 믿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내 말들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개역성경과 개역개정판은 "없음"이라고 버젓이 표기되어 있는 곳이 13구절이나 된다. 뿐만 아니라 신약에서만 2,200단어가 삭제되었고, 성경 전체로는 36,000군데 이상 변개되었다. 이런 변개된 성경들을 어찌 하나님의 말씀이라 할 수 있겠는가?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며 하나님의 기준에 입각한 건전한 상식으로 판단해 볼 때, 분명 그런 변개된 성경은 하나님께서 보존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성경이 아니다. 말하자면 이 나라 기독교계는 자기들의 상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짓밟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진리에 따른 참된 상식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내가 아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은 무엇이나 영원히 있을 것이라는 것이라. 아무것도 거기에 첨가될 수 없고 또 아무것도 거기서 뺄 수도 없으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분 앞에서 두려워하게 하려 하심이라』(전 3:14). 이 말씀에 근거한 상식에 의하면, "삭제된 구절"이 있는 성경은 결코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없다. 특히 첨가되거나 삭제되지 않도록 성경을 보존하시는 목적이, 바로 그 성경으로 인해 "하나님을 두려워하도록 하는 데 있다."라고 말씀하신다. 오늘날 개역성경과 개역개정판을 내세우는 자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두려워하고 있는가? 진정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라면, 그처럼 자기들의 상식으로 거룩한 성경을 짓밟을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덫에 걸린 자들"이다. 당신의 상식이 성경과 배치된다면 당신의 상식을 버리라! 세상적인 상식이 성경을 짓밟고 있는 그런 곳에서 빠져나와야 하는 것이다(딤전 6:5).

럭크만 목사는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알 수도 있는 것을 깊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롯이 거했던 소돔과 연관해서 "죄인"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하고 있다(창 13:13). 동성애가 "소돔인들"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일로서 죄가 아니었다. 그것을 죄라고 말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것이 소돔의 현실이자 상식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동성애를 죄라고 보는 것이 참된 상식이지만, 현대 사회의 변질된 상식에 의하면 그것은 더 이상 죄가 아니다.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상식에 의하면 그것은 『본성을 거역하는』(롬 1:26) 가장 수치스럽고 가증한 죄이다. 만약 어떤 그리스도인이 동성애를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자에게 표를 주고 있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눈에는 그가 "하나님의 상식"에 어긋나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그런 자는 아직도 하나님의 상식이 아닌 자신의 상식을 따르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세상의 상식들 중에는 죄로 여겨지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렇게 여기지 않는 사람을 영원한 멸망으로 이끌어 가는 매우 심각한 상식도 있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죄"이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요』(요 16:9). 오늘날 현대인들은 자기들에게는 죄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에 "구속주"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처럼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세상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지 않는 "화인 맞은 양심"을 양산한다는 데 있다. 양심이 화인을 맞게 되면, 악은 죄가 아닌 글자 그대로 "평범한" 일이 되어 버린다. 독일 나치의 "유대인에 대한 최종 해결책"(유대인 멸절)의 선봉에 있었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에 관한 책을 쓴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란 개념을 이끌어 냈다. 일반인들이 악으로 여겼던 "유대인 학살"을 아이히만은 전혀 악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독일의 제3제국에서는 지극히 합법적인 일이었고 양심에 전혀 거리끼지 않는 행동이었다. 아이히만은 남들처럼 평범한 가장이었고 정신적인 장애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일에 충실하려고 했으며, 자기 양심에 반하지 않는 "유대인 멸절 정책"과 관련하여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을 때 오히려 양심의 가책을 느낀 사람이었다. 유대인을 사악한 존재로 배워 왔던 잘못된 상식이 국민의 양심을 지배하고 그것이 법의 탈을 쓰고 제도화되었을 때, 그 사회는 악이 평범한 일상처럼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제 곧 다가올 대환란 때에도 유대인을 죽이는 일은 양심에 전혀 거리낌이 없는 평범한 일이 될 것이다. 악이 평범해지는 것은 "마지막 때"의 주된 특징이다.

그렇다면 "악의 평범성"을 말했던 한나 아렌트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은 자신의 "악의 평범성"에 대해 제대로 인식했던 것인가? 악이 평범해지는 이 시대에 복음을 전파하는 성도는 결코 "평범한 사람"이 될 수 없다. 세상이 보기에 매우 "이상한"(peculiar)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지극히 "독특한"(peculiar, 벧전 2:9) 사람으로 보일 것인즉, 이것이 바로 참된 그리스도인의 상식이다. 이와 관련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피로 사신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은 "상식들"을 기대하고 계신다. 이를테면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고전 10:31) 행하는 일이거나, 죄인들이 『듣든지 그만두든지 간에』(겔 2:5)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다. 또한 한 몸 된 지체들을 『생각의 겸손함으로... 자신들보다 존중하고』(빌 2:3), 『형제애로 서로 다정하게 사랑하며 서로 존경하기를』(롬 12:10) 먼저 하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상식인 것이다. 과연 당신은 하나님의 상식에 합당한 사람인가?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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