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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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하나님”으로 미혹하는 안상홍증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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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2년 05월호>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는 안상홍이라는 인물을 성령 하나님이요 재림 예수로 믿는 안상홍증인회가 교주 안상홍이 죽고 나서 이름을 바꿔 활동하는 곳이다. 그들은 “유월절”을 지키고 "어머니 하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는 자들로, 바른 말씀으로 진리의 지식을 공부한 그리스도인은 그런 허무맹랑한 교리에 눈길도 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에게 미혹된 사람이 전 세계적으로 145만 명이라는 데에는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미혹되어 지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미혹은 오늘날 기독교계의 다양한 구석들에서 편만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들의 숫자는 등록교인 숫자지만, 똑같이 등록교인수를 자랑하는 다른 허풍선이 교단 교회들은 명함도 못 내밀 엄청난 숫자이다. 그러니 그들의 "기괴한" 교리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의 치명적인 이단 교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첫째, 신약 교회 시대에 "유월절"을 지켜야 장차 임할 대재앙을 면하고 구원받는다는 교리이다.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가 신약 교회 시대에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유월절”의 성경적인 기원은 출애굽기 12장이다.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던 날 밤 주님은 다른 누구도 아닌 “이스라엘”에게 유월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셨다. 『이날이 너희[이스라엘]에게 기념이 될지니, 너희[이스라엘]는 그것을 너희[이스라엘] 대대에 걸쳐 주께 명절로 지킬 것이며 너희[이스라엘]는 그것을 영원히 율례로 삼아 명절로 지킬지니 』(12-14절). 이후로 이스라엘이 지켰던 “유월절”은 위의 말씀처럼 그들을 이집트에서 구속하여 주신 주님의 역사를 “기념하는” 명절이었을 뿐 이후로 그것을 지킨다고 해서 어떤 재앙을 면하고 구원받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가 신약 교회 시대에 "유월절" 준수를 강조하는 것은 마태복음 26:19-28 때문이다.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께서 지시하신 대로 행하여 유월절을 준비하더라... 예수께서 빵을 가지고 축복하신 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받아 먹으라. 이것은 나의 몸이니라.”고 하시고 또 잔을 가지고 감사를 드린 후에 그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것을 모두 마시라. 이는 이것이 죄들을 사하심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리는 나의 새 언약의 피이기 때문이라. 』 그러나 그들이 모르는 것은 주님이 그 구절에서 말씀하신 “빵”과 “잔”의 포도즙은 “상징”과 “기념”을 위한 소재였다는 사실이다. 모친 마리아가 갈릴리 카나의 혼인식에서 포도주(포도즙)가 떨어져 주님께 없다고 말씀드리자 주님이 『여인이여,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나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요 2:4)라고 말씀하셨을 때, 『나의 때 』란 주님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실 때를 언급하신 것으로, 주님은 포도즙을 주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실 “피”와 연결시켜 “상징적으로” 받아들이셨다. 마찬가지로 지상에서의 마지막 유월절 “포도즙”을 주님이 흘리시는 “새 언약의 피”라고 하신 것은 그 유월절이 끝난 뒤 십자가에서 흘리실 주님의 피를 “상징”하신 것이다. 주님이 인류의 죄를 위한 『하나님의 어린양 』으로서 제물로 드려지시기 전에 지키신 유월절은 주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을 상징하는 의식으로서 치러졌을 뿐 그 의식 자체에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주님이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 』(눅 22:19. 고전 11:24-25 참조)고 하신 점 역시 주의 만찬 의식에 “기념”의 개념을 부여하셨음을 천명한다. 주님은 결코 마태복음 26장의 유월절 준수를 “구원”의 교리로 언급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음식으로나 마시는 것으로나 거룩한 날이나 새 달이나 안식일들에 관해서는 아무도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이런 것들은 다가올 것들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골 2:16-17). 말하자면 구약의 유월절은 십자가에 제물로 드려지실 『하나님의 어린양 』의 “그림자”에 불과했다. 그 그림자의 “몸”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셔서 십자가에 제물로 드려지심으로써 더 이상의 구약 의식은 불필요하게 된 것이다.

둘째, “어머니 하나님”을 믿어야 구원받는다는 교리이다. 전 세계적으로 145만 명이나 몰려든 주요 원인은 “어머니 하나님”이라는 거짓 교리에 미혹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교주 안상홍이 죽고서 그의 영적 아내라는 “장길자”를 “어머니 하나님”으로 믿고 있는 그들이 내세우는 근거 구절은 갈라디아서 4:26이다.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로우니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 』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는 이 구절의 “어머니”를 “어머니 하나님”으로 해석해 버렸고, 이 “어머니”를 요한계시록 21:9의 『어린양의 아내 』와, 22:17의 성령과 신부에서 『신부 』와(여기서 그들은 안상홍을 성령이라고 주장한다), 또 21:2의 『새 예루살렘 』과 동일시해 버린 것이다.
우선 “어머니 하나님”의 교리를 다루기에 앞서, 우리 주님께서 초림 때 “비유”를 즐겨 사용하셨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님은 마태복음 11:16-17에서 초림 당시 이스라엘을 “장터에서 노는 아이들”에 “비유”하셨고(이스라엘이 곧 장터의 아이들이라는 직접적인 언급이 아니었다!), 또 마태복음 13장에서는 천국의 신비들에 관하여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드신 후, 『천국은 좋은 씨를 자기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4절), 『천국은 어떤 사람이 가져다가 자기 밭에 뿌린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31절), 『천국은 어떤 여인이 가져다가 가루 서 말에 숨겨 넣어, 전체를 부풀게 한 누룩 같으니 』(33절), 『천국은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으니 』(44절), 『천국은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으니 』(45절), 『천국은 갖가지 종류의 물고기를 모으기 위해 바다에 던져 놓은 그물과 같으니 』(47절)라고 하셨다. 성령께서는 이 모든 것이 『비유 』(3,24,31,33절)임을 밝히셨는데, 이것들을 비유라고 하신 것은 다만 그러한 물리적인 실물들의 행위와 작용을 상고하여 거기서 천국과 관련된 것들을 해석해 냄으로써 진리를 깨달아야 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주님께서 “비유”를 사용하신 목적은 그 비유를 통해 “배우라!”는 것이었으니, 이스라엘과 관련하여 『무화과나무의 한 비유를 배우라. 』(마 24:32)는 말씀에서 그것이 분명해진다.
신약 교회사를 보면 문자적인 것을 비유로, 비유를 문자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지옥으로 곤두박질친 사람들이 수없이 등장했다.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의 “어머니 하나님” 교리 역시 “비유”를 실물로 오인하여 생겨난 거짓 교리에 지나지 않는다. 자, 그들이 근거 구절로 내세우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도록 하자. 『기록되기를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여종에게서 났고 하나는 자유로운 여자에게서 났다.”고 하였느니라. 그러나 그 여종에게서 난 아들은 육신을 따라서 났고 자유로운 여자에게서 난 아들은 약속으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이것들은 비유니, 이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이는 하갈이라.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이니 지금의 예루살렘과 같아서 그녀는 자기의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나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로우니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 』(갈 4:22-26).
이 말씀에서 보듯이 “이것들은 비유이다!” 이삭(약속의 자녀)과 이스마엘(종의 자녀), 그리고 그들을 낳은 사라(자유로운 여자)와 하갈(종)이라는 역사적 실존 인물들의 대조를 통해서 주님은 진리에 관한 한 “비유”를 드신 것이다. 만일 이 단순한 비유를 문자적으로 본다면, “하갈 = 시내 산 = 땅의 예루살렘 = 여전히 율법에 매여 율법의 종노릇 하는 유대인들의 어머니”라는 논리가 형성되는데, 이는 한 인간이 “산”과 “도성”일 뿐 아니라 유대인들의 어머니가 “이집트인”(하갈, 창 16:1)이라는 허무맹랑한 결론까지 도출되게 된다. 그렇다면 말씀 그대로 이것은 “비유”인 것이 분명하다. 하갈과 대조되는 사라 역시 한 비유를 위해 사용되었다. “사라 = 자유로운 여자 = 위에 있는 예루살렘 = 신약 성도의 어머니.”
그러면 여기서 잠깐 곁길로 가서 요한복음 1:13을 보도록 하자. 『그들은 혈로나 육신의 뜻으로나 또한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였고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라. 』는 말씀이 있다. 육신을 따라서 난 이스마엘이 육신의 뜻으로 난 자라면, 약속으로 말미암아 난 이삭은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들에게 영적으로 적용된다. 갈라디아서 4:29은 이삭을 가리켜서 『성령을 따라 난 자??라고 말씀하는데, 이는 이삭이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처럼 성령으로 거듭났다는 의미가 아니다. 십자가 이전에는 아무도 거듭나지 않았다. 이것은 그의 출생이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그분의 약속을 따라 이뤄졌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때에 육신을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하였던 것처럼 지금도 그러하도다. 』(갈 4:29)라는 말씀은 『지금 』 곧 교회 시대에도 『성령을 따라 난 자 』가 있음을 시사한다. 이 교회 시대에 『성령을 따라 난 자 』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다. 이삭에게 자유로운 여자로서의 어머니가 있었듯이, 성령을 따라 난 이삭으로 예표되는 신약 성도들에게도 그 “자유로운 여자”와 같은 “어머니”가 있다는 것이 갈라디아서 4장의 “비유”의 요지이다. 『너희는 이 비유를 알지 못하느냐? 그렇다면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 』(막 4:13)
자, 그렇다면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 』는 이 “비유”는 무엇을 뜻하는가? 솔로몬의 노래 6:9은 『나의 비둘기, 나의 더럽혀지지 않은 자는 오직 하나요, 그녀는 그 어머니의 외동딸이며 그녀를 낳은 어머니의 귀한 사람이라. 』고 말씀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예표하는 술렘 여인에게는 “어머니”가 있다. 이 어머니가 바로 갈라디아서 4:26의 신약 성도들의 어머니인 『위에 있는 예루살렘 』을 예표한다. 신약 성도 각자에게는 육신의 어머니가 있지만, 우리가 영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났을 때에는 우리의 영적 태반은 『하늘의 예루살렘 』(히 12:22)에 있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곳으로부터 오셨기에(고전 15:47), 주님으로 인해 『태어날 한 백성 』(시 22:31), 곧 “그분의 몸인 교회”(골 1:18)는 자동적으로 『하늘의 예루살렘 』에서 난 사람들이 된다. 『위에 있는 예루살렘 』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낳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 』로 “비유”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갈라디아서 4장에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 』와 관련하여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하늘의 새 예루살렘은 신약 성도들의 어머니로 “비유”되는 것이지 그 도성이 “어머니 하나님”이라는 구절은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어머니 하나님에 대한 교리는 이교도 로마카톨릭의 『하늘의 여왕 』(렘 7:18) 마리아에게서 찾을 수 있으며, 이 이교도 여신은 중국에서 “아마 츠파,” “마 추포,” “싱 무”로 불린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장길자”이다.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의 145만 명이 이 거짓 어머니 하나님에게 이끌린 것은 “합리적인” 것을 좋아하는 죄성에서 기인한 것이다. 인간에게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는데, 하물며 “아버지” 하나님을 언급하는 성경에 “어머니” 하나님은 없을까 하는 호기심이 충족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어머니 여신을 믿는 이교도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바른 성경은 하나님에 관해 『이는 하늘에서 증거하시는 이가 세 분이시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시요, 이 세 분은 하나이심이라. 』(요일 5:7, 개역성경에는 이 구절이 삭제됨.)고 말씀한다. 한 분 하나님의 신격(Godhead)은 “세 인격”으로 나타나지 네 인격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어머니 하나님이 지금은 땅에 내려온 “장길자”이기 때문에 그 구절에 세 인격만 나온 거라고 할 터인가? 그렇다면 다음 구절은 어떠한가?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하늘에 있는 인자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요 3:13). 예수님은 초림 당시 땅과 하늘에 동시에 계셨었다!
“장길자”는 하나님이 아니다.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기 원한다면, 없는 어머니 하나님을 만들어 내어 자기를 어머니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그 죄인을 추종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도록 하라. 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순수한 복음을 믿을 때 구원받을 수 있다. 구원은 “장길자”라는 풀과 같은 육체를 믿어서가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복음의 말씀을 믿음으로써만 받게 됨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이는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사람의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며, 풀은 마르고 꽃은 져도 주의 말씀은 영원토록 남아 있음이라. 이것이 너희에게 복음으로 전해진 말씀이니라 』(벧전 1:23-25).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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