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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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할 줄 아는 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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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3년 06월호>

『주 하나님께서 지으신 들의 어떤 짐승들보다도 뱀은 더욱 간교하더라. 그가 여자에게 말하기를 “참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니, 여자가 그 뱀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동산 나무들의 열매는 먹을 수 있으나, 동산 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에 관해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것을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혹 죽을까 함이라.’ 하셨느니라.” 하더라』(창 3:1-3). 창세기의 이 본문에서 여자는 하나님의 말씀 중 “마음대로”라는 단어를 삭제했다. 깜박한 것이 아니다. 최초의 사람인 아담과 이브는 현대인들이 겪는 “건망증”이 없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사람이 건망증을 겪었다면 모든 생물들의 이름을 자신이 직접 지어 놓고 어떻게 아내인 이브에게 알려줄 수 있었겠는가? 아내 이브 또한 아담이 전해 준 생물들의 모든 이름을 한 번 듣고 모두 기억했기에 모든 것들을 다스리는 아담의 일을 도울 수 있었다. 최초의 사람은 건강과 체력, 기억력, 암기력 등 많은 부분에서 현대인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존재로 창조되었다.

하나님의 명령을 아담에게서 전해 들은 이브는 하나님의 명령을 정확하고 선명하게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대로”라는 단어를 자기 마음대로 삭제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동산의 셀 수 없이 많은 열매들 중 단 하나였던 금지된 열매에 대한 욕심이 그녀의 마음에 불평과 불만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과 증오라는 두 마음은 어떤 형태로든지 반드시 영향력을 발휘하고 만다. 선을 사랑하든지 악을 사랑하든지, 사랑하는 마음은 반드시 큰 힘으로 작용하고, 증오 역시나 숨길 수 없는 힘으로 드러난다. 이브 또한 금지된 한 가지 열매 때문에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마음대로” 먹을 수 없다는 불만을 그 단어를 삭제함으로써 드러냈다.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도 이브와 비슷한 마음이었다. 『이런 일 후에 아하수에로왕이 아각인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을 승격시켜, 그의 자리를 그와 함께한 모든 고관들 위에 두자, 왕의 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하들이 하만에게 절하고 경의를 표하였으니 이는 왕이 그에 대하여 그렇게 명하였음이더라. 그러나 모르드캐는 그에게 절하지도 아니하고 경의를 표하지도 아니하더라』(에 3:1,2).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과 아담의 아내 이브는 공통점이 많다. 두 사람 모두 “2인자”였다. 하만은 아하수에로왕 다음가는 2인자로 권세와 부와 수많은 자녀들이 있었다(에 5:11). 이브 역시 왕인 아담의 아내였으며 모든 산 자들의 어미였다(창 3:20). 또한 이들은 절대적인 권력을 소유함과 동시에, 자신들의 마음을 완벽하게 충족시키지 못하는 불만을 한 가지씩 품고 있었다. 이브는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열매를 먹지 못하는 불만이 있었고 하만은 자신에게 경배하지 않는 모르드캐가 불만스러웠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만족할 줄 아는 경건은 큰 이익이 되지만(딤전 6:6), 만족할 줄 모르는 불만은 큰 죄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라오디케아 교회 기간의 교회들에 대해 비참하고, 가련하며, 가난하고, 눈멀고, 헐벗었다고 말씀하시지만 그들은 자기들을 가리켜 부자며 부요하고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계 3:17). 그러면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주여, 주여” 하며 주님께 달라고만 외친다. 이것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도 마찬가지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에 만족할 줄 아는 경건을 지닌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현상이 아닌가? 모든 것이 발달하고 풍요함에도, 가장 부요한 시대를 살면서도 그들은 왜 만족하지 못하는가? 결핍 때문이 아니라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이브와 하만이 품었던 불평도 필요한 것들에 대한 결핍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차고 넘칠 만큼 풍족한 것들에 대한 감사가 결핍되어 있었고, 만족할 줄 모르는 마음으로 인한 불평이 차고 넘쳤던 것이다. 이브와 하만은 남편이나 왕이 아닌 오직 자기 자신만을 누구보다도, 무엇보다도 사랑했던 사람들이었다.

디모데후서에는 위와 같이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관한 예언의 말씀이 있다. 『또 이것을 알라. 마지막 날들에 아주 어려운 때가 오리라.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며』(딤후 3:1,2). 이브와 하만은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했던” 인물들로서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고 그들의 이 불경건한 어리석음은 성경에 기록되어 우리 앞에 교훈으로 제시되어 있다. 지금 이 시대 역시나 성경에 예언된 대로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자기를 가장 사랑했던 하만은 이브와 마찬가지로 무수히 많은 감사할 것과 기뻐할 것을 제쳐두고 오직 한 가지 예외적이었던 것에 더 집중했고 그것에 불만을 품었다. 『하만이 모르드캐가 자기에게 절도 아니하고 경의도 표하지 아니함을 보자 심히 화가 났더라』(에 3:5). 하만은 자신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던 모르드캐를 증오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기를 첫째로 사랑하게 되면 다른 사람을 쉽게 증오하게 되고, 이는 하나님 앞에 쉽게 죄를 짓는 상태로 귀결된다. 이와 같이 자기를 사랑함으로써 현재 가진 것들로 만족하지 못하고 자기가 갖지 못한 것에 더 마음을 두면 그것이 곧 불경건함이고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것으로 연결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실 때 말씀하신 가장 큰 계명은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둘째 계명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었다(마 22:37-39). 결국 첫째도 사랑이고 둘째도 사랑인데, 주님의 말씀에서 보듯 사랑해야 할 대상에는 결코 “나 자신”이 없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하루하루를 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영적으로 매우 빈곤한 그리스도인들도 많다. 그리스도인이 왜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활력 있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인가? 그 이유는 “불경건함”에 있다. 즉 감사하지 않는 마음과 자기를 사랑함으로써 현재 가진 것들로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 때문에 기뻐하고 감사하지 못한다. 자기를 사랑하면 육신적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현재 가진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그러면 불평과 불만이 차츰 쌓여 가는데, 이는 이브와 하만처럼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들로 만족하라고 했다(딤전 6:8).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는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을 위해 계획하지 말라고 했다(롬 13:14). 즉 만족은 현재 있는 것들로 해야 하는 것이다! 결코 내가 원하는 것을 충족시킴으로써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있는 것들로 만족하고 감사하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무엇보다 우리의 만족은 하나님께 있다. 『우리는 어떤 일이라도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만족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기 때문이라』(고후 3:5).

많은 것을 갖고도 만족하지 못하고 오히려 갖지 못한 한 가지를 기어코 더 채우려고 욕심을 부렸던 하만의 계략은 결국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왔다. 『내시 중 하나인 할보나가 왕 앞에서 말하기를 “높이 오십 큐빗의 교수대가 하만의 집에 서 있는 것을 또한 보소서. 하만이 왕을 위하여 좋은 조언을 한 모르드캐를 매달려고 만든 것이니이다.” 하니 왕이 말하기를 “하만을 그 위에 매달라.” 하더라』(에 7:9). 또한 하만이 살아 있을 때 왕에게 받은 반지는 그가 죽이려고 했던 모르드캐에게 돌아갔고, 하만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는 에스더에게 돌려져 모르드캐가 관리하게 되었다(에 8:2). 즉 자기 정욕을 채우고자 작은 것에 집착함으로써 하나님께 죄를 지었던 하만은 왕에게 받은 반지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와 열 명의 아들들의 목숨과 자기 자신의 목숨까지도 모두 빼앗기게 된 것이다. 반대로 한 분 하나님께만 경배하며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했던 모르드캐는 그를 위협하는 모든 세력으로부터 안전과 화평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구하지 않았던 부와 재산까지 많은 것들을 풍족하게 받았다.

에스더서는 솔로몬의 노래와 더불어 “하나님”과 “주”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 책이다. 전면에 등장하시지는 않지만 모든 상황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는 책이 에스더서다.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가장 적절한 때 주실 수 있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다면, 현재 가진 것들로 만족하며 삶의 초점을 주님을 섬기는 데 두어야 한다.



에스더서는 솔로몬의 노래와 더불어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과 “주”라는 단어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책이다. 전면에 등장하시지는 않지만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보시며 모든 상황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는 책이 바로 에스더서인 것이다. 성도가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가장 적절한 때 주실 수 있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다면, 눈앞의 부족한 것들을 채우려고 육신적인 욕심만 부리지 말고 현재 가진 것들로 만족하면서 경건한 삶을 추구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삶의 초점을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데 둔다면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그분의 풍요함에 따라 매우 풍성하게 채워 주실 것이다. 『그러나 나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영광 가운데서 그의 풍요함을 따라 너희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실 것이라. 이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영원무궁토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빌 4:19,20).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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