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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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것에 욕심을 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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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3년 07월호>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동화의 줄거리는 대부분 권선징악이다. 주인공은 선하고 순수하지만 의도치 않게 악하고 위험한 상황으로 내몰리게 되고, 가장 급박한 위기 상황에서 극적으로 벗어나며 이야기가 마무리되곤 한다. 이런 마무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결론은 “주인공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더래요.”이다. 결론이 비슷하여 흥미를 떨어뜨릴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 않은 것은 독자들 또한 이런 결론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인 미래를 제시하면 더 재미있게 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이야기의 결론은 그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마무리로 충분하다. 왜냐하면그것보다 더 아름다운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에 더하거나 덜한 것보다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다”는 마무리는 독자의 마음에 더도 없고 덜도 없이 그 자체로 완벽한 매듭을 지어 준다.


창세기는 모세가 기록했고, 그 내용 모두가 지나간 과거의 일이기 때문에 창세기를 읽는 독자들은 과거의 사건을 읽게 된다. 과거의 내용을 자세히 기록했다는 것은, 기록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강조하고 싶은 내용이었을 것이고, 그것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구체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창세기의 50개 장 중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생애에 관한 부분은 무려 38개의 장에서 다루고 있다. 2천 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에 대한 내용을 기록한 창세기에서 겨우 몇 백 년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대부분의 장을 할애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들 세 명의 삶을 통해 강조하시고 싶은 부분이 있으셨기 때문이다. 반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영원히 사는 영원 세계에 대한 기록은 요한계시록 2개의 장에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마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마무리처럼 극적이고 흥미롭게 이야기를 간략히 마무리하는 모습으로 보이는데, 이와 같이 상대적으로 간략하게 마무리하시는 이유는 위대하신 하나님과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보다 더 큰 기대와 소망을 인간에게 안겨 줄 표현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자, 그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 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주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곧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시더라. 모세가 자기 얼굴을 가리니 이는 그가 하나님쳐다보기를 두려워함이더라』(출 3:6). 하나님께서는 그분 자신을 “네 조상의 하나님”이라고만 소개하시지 않고“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셨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다른 사람들과 구분된 이들이고 하나님께 특별한 의미를 지닌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물론 이들이 이스라엘의 대표 조상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들 세 명의 이름을 동시에 거명하시며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반복적으로 자신을 소개하신 데는 하나님께서생각하시는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첫째,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믿음으로 난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알라. 성경은 하나님께서이방인들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하실 것을 미리 보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파하기를 “네 안에서 모든 민족이복을 받으리라.”고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난 사람들은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더불어 복을 받느니라』(갈3:7-9). 아브라함은 육신으로는 이스라엘의 조상이지만 영적으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조상이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기 때문에 교회 시대에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조상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영적 조상인 아브라함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믿음”이다.


둘째, 이삭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털 깎는 자들 앞의 양이 말 없듯이, 억압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여도 입을 열지 않으시고 자신의 몸을 하나님 앞에 제물로 바치셨다(사 53:7). 이와 같이 이삭도 하나님께 번제로 드려질 때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온전히 순종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훌륭한 예표가 되었다. 이삭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믿음으로 구원받은 후에 필요한 것은 온전한 순종에서 비롯된 헌신”이라는 것이다.


셋째, 이삭의 아들 야곱은 다음의 말씀들에서 그의 특징을 알 수가 있다. 『그 사람이 말하기를 “날이 새니 나로 가게하라.” 하니, 야곱이 말하기를 “당신이 나를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였고』(창 32:26).『그 사람이 말하기를 “네 이름이 더 이상 야곱이라 불리지 아니할 것이요, 이스라엘이라 불리리라. 이는 네가 통치자로서 하나님과 사람들과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하니』(창 32:28). 야곱은 하나님께 축복을 구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축복하시지 않으면 하나님을 가게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아 낸 사람이었다. 야곱은 그의 형 에서로부터도 장자권을 탈취한 이력이 있다. 참으로 야곱은 욕심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야곱을 하나님께서는 욕심이 많다고 나무라지 않으시고 오히려 사랑해 주셨다.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노라.” 함과 같으니라』(롬 9:13).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것에 욕심을 내는 야곱은 사랑하셨고, 반대로 영적인 것에 관심이 없었던 에서는 미워하셨다. 이런 야곱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영적인 것, 즉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에 욕심을 내어 기도로 하나님께 밀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욕심내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을 욕심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많아도,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역에 열심을 다하는, 하나님께 더 특별한 사랑을 받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믿음과 헌신과 전투적인 기도를 참으로 기뻐하시고 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신은 믿음으로 구원받았는가? 성경대로 믿는 교회에 출석하여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경배드리고 있는가? 하나님의 피로 사신 구원받은 자녀들과 교제하며 구령의 열매를 내기 위해 애쓰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제 영적인 것에 욕심을 내어야 할 때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적인 복들을 욕심내서 기도로 분투할 때이다!


야곱이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은 장자권과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받을 축복과 하나님께 받을 축복에 대해 욕심을 내었던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리스도인은 휴거 이후에 있을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의 상급과 면류관, 영원한 통치권과 새 예루살렘에서의 삶을 기대하고 욕심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시는 모습이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소망이다. 『이 때문에 우리가 애쓰는 것은 거하든지 떠나 있든지 그분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를 바라는 것이라. 이는 우리 모두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아가서 선이든지 악이든지 각자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으로 행한 것들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고후 5:9,10).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시거니와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들이니 하나님의 상속자들이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공동 상속자들이니 우리가 그와 함께 고난을 받은 것은 함께 영광도 받게 하려 함이니라』(롬 8:16,17).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있지 아니하더라. 나 요한은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는데 마치 신부가 자기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같이 예비되었더라』(계 21:1,2).


영원 세계를 묘사하는 요한계시록 22장은 생명수의 강과 생명 나무를 언급하면서 시작된다. 아담의 죄로 사람이 접근할 수 없었던 그 생명 나무가 허용되는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 그런 나무가 있다면 아마 서로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끊임없이 벌이다 결국 모두 멸망하거나, 그 나무의 열매를 무기 삼아 사람들을 노예로 부리는 비극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나무의 열매가 값없이 제공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이 점을 알게 된 당신은 설레고 기쁜가? 하나님께서는 설레며 기다리는 모습을 원하신다. 또한 천년왕국 때의 땅은 물론, 천년왕국 뒤에 창조될 영원 세계의 새 땅에도 저주가 없을 것이다.저주받은 땅에서 태어나 일평생을 저주받은 곳에서 수고하는 사람에게 저주가 없는 땅은 상상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그러한 땅은 반드시 있게 될 것이다.


영원 세계의 새 예루살렘에서는 하나님의 보좌를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데 그곳 보좌에 앉아 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뵙게 될 것이다(계 22:3,4). 새 예루살렘은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보며 지낼 수 있는 곳이다.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반드시 내가 속히 오리라.』(계 22:20)라고 약속하셨다. “속히”라는 말씀은 예언들을 머지않아 성취하실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갑자기 이루어질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하다. 어느 날 갑자기 눈깜짝하는 순간에 그리스도인은 하늘로 올라갈 것이고 그리스도의 심판석을 거쳐서 어린양의 혼인식을 치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천년을 통치할 것이고 영원 세계에서 영원한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당신은 이 사실을 믿는가? 그렇다면 성경에 기록된 대로기도하라.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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