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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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만이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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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6년 06월호>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리에 역행하여
분열을 일으키고 공박하는 자들을 주의하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로마서 16:17)



We are the World, Hand in Hand, 지구촌(Global Village), “우리는 하나”, “교회일치운동”(Ec- umenical Movement), “단합하면 살고 나뉘면 죽는다.”, “노동자여 단합하라”, 이밖에도 단합(Unity)을 외치는 구호가 그야말로 “지구촌”을 뒤흔들고 있는 상황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할는지 몰라도(아마 시대착오적이고 반역사적인 망언이라고 평가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따르면 “분리”만이 살 길이다. “분리”란 거룩한 구별이요 거룩함이 없이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합당하게 섬길 수 없기 때문이다. 구약의 레위기 전체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로만 구별(분리)되어야 함을 가르쳐 준다.
하나님께서는 빛과 어두움을 나누신 이래로(창 1:4) 사망과 지옥을 갈라내어 불못에 던지시기까지(계 20:14) 계속해서 나누시는 분리주의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최초의 유엔 빌딩이었던 바벨탑에서 인류를 흩으셨고, 우상 숭배자들로부터 아브라함을 분리시키셨으며, 육신적 그리스도인을 예표하는 롯과 영적 그리스도인을 예표하는 아브라함을 분리시켰고, 깨끗한 동물과 불결한 짐승도 나누셨으며(레 11장), 식물도 섞어서 심지 못하도록 하셨고, 이스라엘과 이집트를 구별하셨으며(출 8:22; 11:7), 민족들의 거주지와 시기도 나누셨고(신 32:7,8, 행 17:26),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고 하셨으며 그들에게서 나와 따로 있고 더러운 것을 만지지 말라 하셨고(고후 6:14-17), 바빌론 큰 음녀인 로마 카톨릭 교회로부터 나오라 명하셨다. 『나의 백성들아, 그녀에게서 나오라』(계 18:4). 그분께서는 결국 온 인류를 곡식과 독보리로 나누시고 곡식은 창고로 독보리는 불못으로 보내실 것이다(마 13:30).
교회사를 보아도 하나님은 역시 분리의 하나님이심이 분명하다. 교회(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는 단어 자체가 “불러냄을 받은 무리”(called-out assembly)라는 의미를 갖고 있듯이 참된 주님의 신약 교회들은 늘상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잠 30:5, 시 12:6) 다수의 무리들로부터 분리해 왔다. 3,4세기의 몬타니스트, 노바티안, 도나티스트들은 부패한 지역교회들로부터 분리되어 순수함을 (도덕적 순수함과 아울러 교리적으로) 고수했고 마틴 루터와 칼빈 역시 정통적 근본주의를 표방하던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분리했다. 또한 루터 교회가 형식화되어 가면서 다시 카톨릭화해 가자 경건파들과 모라비안들은 루터교회로부터 분리했고 청교도들은 성공회로부터 분리했으며, 회중교회는 장로교로부터 분리했다. 이들 분리한 무리들은 처음부터 무조건 분리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루터도, 웨슬리도, 경건파 운동의 지도자였던 스페너와 프랑케도 에라스무스처럼 분리 대신 개혁을 시도했지만 배교한 교회들은 결코 개혁되는 법이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성경적 지역교회들의 역사는 순수함을 지키기 위한 분리의 역사였다. 물론 이 분리는 고린도 교인들의 실행이었던 분열과는 다르다(고전 1:10). 또한 이 분리는 욕망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분리한(잠 18;1) 성경변개자나 학자들의 분리도 아니다. 이 분리는 첫째로 성경만을 최종권위로 삼는 그리스도인들이 성경 이외의 것을 성경과 더불어 권위로 삼는 자들로부터 실행한 것이요(딤후 3:16), 둘째는 진리에서 벗어난 교리들을 주장하는 자들로부터의 분리였으며(롬 16:17), 셋째는 이단 종파로부터의 분리였다(딛 3:10). 이에 앞서 세상으로부터의 분리는 그리스도인이 된 모든 자들의 최우선적인 의무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롬 12:2).
그리스도인들이 겪게 되는 많은 문제들 중에는 주님께서 명하신 “분리”를 실행에 옮기지 않음으로 생기는 것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은 아비와 친족의 집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반쯤 순종했다. 그는 친족 롯을 떠나지 못함으로써 온전한 순종이 이루어질 때까지(창 13:11)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하나님의 귀중한 시간들을 낭비하기도 했다. 이스라엘 민족 역시 주변의 카나안 민족들과의 완전한 분리를 실행하지 못한 채 수많은 악에 물들게 되었음은 이스라엘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 오늘날 세상과 분리되지 못한 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실로 이쪽도 저쪽도 아닌 난감한 처지에서 “신앙생활”이 아닌 “영적 생존”에 급급한 상황이다.
그러나 필자를 가장 안타깝게 하는 것은 분명히 분리의 음성을 듣고 그것이 주님의 뜻인 것을 알면서도 실행에 옮기고 있지 못하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다. <한글킹제임스성경>이 1994년 4월 12일 출간되어 나온 이래 대한민국의 모든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신 30:19). 하나님께서 섭리로 보존하신(시 12:7) 성경과 하나님의 대적 마귀에 의해 변개되어 버린(고후 2:17) 성서 사이에서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지금껏 5만부 이상이 팔린 것으로 보아 상당수의 사람들이(물론 성경을 갖고 있다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최종권위로 인정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러한 결단을 내린 그리스도인들 중에 대다수가 그 다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전에 다니던 장로교회의 한 형제에게 이렇게 물었다. “우리 교회 교인이 500명쯤 되는데 그 중 몇 명이 거듭난 것 같습니까?” “적어도 100명은 될 겁니다. 우리 교회는 다른 교회와 달리 그래도 목사님께서 복음은 분명히 전하시잖아요.”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요즘 한창 줏가가 오르고 있는 동대문구 이문동의 D교회 K 목사는 방송 설교 도중 “저는 우리 교회 교인들 중 거듭난 사람이 많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필자의 경험과 기타 자료들을 종합해 보면 우리나라 개신교인 1200만 명 중 약 10%만이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라는 결론이 나온다. 거듭나지 못한 자들은 불순종의 자녀요 진노의 자녀라고(엡 2:2,3, 요 3:36) 성경은 말씀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다수의 거듭난 자녀들이 거듭나지 못한 마귀의 자식들과(요 8:44) 함께 예배드릴 수 있으며 교제할 수 있단 말인가? 왜 그들은 따로 나와 성경적 성별을 못하는 것인가? 더군다나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최종권위로 삼고 새로운 출발을 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믿지 않는 무리들은 물론 잘못된 성경을 들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분리하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한가? 성경적 교리에 어긋나는 사람들로부터 떠나라고 하는 것이 성경의 명령이라면(롬 16:17) 틀린 성경을 쓰는 사람들과는 분리하는 것은 더더욱 마땅하다고 할 것이다(로마서 12:18에 따르면 바울은 모든 사람과 가능하면 화평하라고 했지만 교리가 다르면 나뉘라고 명령하고 있다. 즉 단합을 이유로 진리를 희생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제까지 다져온 인간적인 정과 그 동안 함께 해 온 형제, 자매들을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한국적 실정으로 보자면 대다수의 하나님의 자녀들은 미국처럼 배교해 버린 경우가 아니고 오히려 이제껏 잘못 배워왔기에 어떻게든 성경에 대한 진실들을 알리고 계도하고 올바로 가르쳐 주는 것이 필요하고 깨달을 때까지 인내하고 참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를 위해 지난 4년여 동안 학회지와 기타 단행본들을 통해 말씀보존학회는 최선을 다해 왔다. 그 결과 많은 성경과 책들이 보급되었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되찾은 기쁨과 진리의 지식을 얻게 된 축복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음은 실로 복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마냥 사람들이 변화되기를 기다릴 수는 없다. 역사의 교훈은 에라스무스보다 루터가 옳았음을 보여 준다. 이제는 주님을 위해 “분리”할 때이다. 분열이 아닌, 주님께로의 분리만이 성경적 의미에서 하나됨을 가져다 준다.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그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켜주셔서 그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 17:11). 지난 몇 년간의 경험으로 보아 안으로부터의 개혁을 위해 몸부림쳤던 그리스도인들 중 상당수가 낙담과 실망으로 뒤쳐져 버렸고 현실과 타협하고 말았다. 가정적인 어려움이든(마 10:34) 인간적인 정이든 그 밖의 그 어떤 이유에서든 간에 분리하지 않은 사람은 순수함을 잃게 되고 다시 타락해 버린다. 물론 엘리야 대신 오바댜처럼 아합의 궁정 안에 남아서도 선지자들을 돕고 하나님을 섬길 수는 있을 것이다(왕상 18:3,13).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들이 선한 뜻이나 기뻐하시는 뜻에 머물기보다는 온전한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를 원하신다(롬 12:2). 하나님께서는 30배나 60배보다 100배의 열매를 원하시고 단순히 부르심을 받거나 택하심을 받기보다는 신실하기를 원하신다(계 17:14).
올바른 성경과 올바른 교리 위에 올바른 신앙을 갖고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사람들끼리 순결함과 거룩함 가운데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분리”가 선행되어야 만하는 것이다. 『...오직 순수한 마음으로 주를 부르는 사람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추구하라』(딤후 2:22).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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