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신학논단 분류

눈먼 소경을 인도하는 눈먼 안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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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0년 02월호>

필자는 오래전에 애잔한 장면 하나를 목격한 적이 있었는데, 소경 남편이 소경 아내의 손을 붙잡고 앞서서 길을 인도하는 모습이었다. 살다가 둘 다 소경이 되었는지, 함께 살기 전에 이미 소경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어쨌든 남편은 지팡이로 앞길을 더듬으며 아내를 인도했고 아내는 어색한 자세로 이끌려 가고 있었다. 그 소경 부부가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가기 위해서는 차라리 그 편이 나아 보였다. 둘 다 지팡이로 더듬으며 길을 걸었다면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한쪽이 길을 열고 다른 쪽이 이끌리는 것이 두 사람에게 안전했던 것이다. 필자는 그들의 모습에서 아무런 “악”도 찾을 수 없었다. 살아야 할 인생길을, 비록 세상을 볼 수 있는 두 눈은 없어도 서로 힘을 보태서 걷고자 하는 “의지”만 엿보였을 뿐이다.

예수님께서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일의 악”에 대해 마태복음 15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버려 두라. 그들은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들이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14절). 그런데 주님께서는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내버려 두라고 하신 것일까?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주님께 와서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어기나이까? 그들은 음식을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2절)라고 하면서 시비를 걸었는데, 이에 주님께서는 하나님께 드릴 예물이라는 핑계로 부모 섬기기를 거부하는 그들의 위선을 지적하신 후(3-9절), 무리를 부르셔서 『듣고 깨달으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느니라.』(10,11절)라고 말씀하셨다. 이때 제자들이 와서 바리새인들이 주님의 그 말씀 때문에 실족한 것을 아시느냐고 여쭙자, 주님께서 해 주신 답변이 바로 『내버려 두라. 그들은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들이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라는 말씀이었다. 말하자면 부모 공경하기를 싫어하는 바리새인들의 입에서 내뱉는 말이(5,6절) 하나님의 계명을 폐기시키며 그들 자신을 더럽히는 것이지, 결코 씻지 않은 손으로 먹은 음식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님을 천명하신 것이다.

초림 때의 영적 소경들은 그 말씀에 실족해 버렸다. 왜냐하면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볼 “육신의 눈”은 있어도 마음에서 나오는 죄들의 문제를 깨달을 “영적인 눈”은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이런 자들이 무수히 많다. 철학과 교육으로 인류의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고 나서는 “지적인 소경들”이 있는가 하면, 거듭나지 않은 유신론자, 무신론자, 이신론자 등의 “영적인 소경들”이 강단을 차지하고 서서 또 다른 소경들을 회중석에 앉혀 놓고 성경을 가르치겠다고 나서는 난센스가 배교한 교회들에서 벌어지고 있다.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안내자』(롬 2:19)로 자처하는 『너희 눈먼 안내자들아, 너희에게 화 있으리라!』(마 23:16) 또한 하나님께서는 『소경에게 길을 헤매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신 27:18)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일을 행하는 자들 중에는 이처럼 “눈뜬 소경들”도 많이 있는 것이다.

뱀은 에덴 동산에서 이브를 유혹할 때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의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되는 줄을 하나님께서 아심이라.』(창 3:5)라고 말했다.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으면 “눈이 열려” 신들과 같이 될 것이라는 유혹은, “지식을 통해 눈이 열릴 수 있다”는 의미의 유혹이었다. 마귀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눈이 “육신의 눈”만이 아님을 알고 있었던 것인데, “눈이 열리면,” 곧 육안을 초월하는 시력을 갖게 되면 다른 인간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이브에게 제시했던 것이다.

인류에게는 “소경에게 눈이 될”(욥 29:15)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 역할을 하려면 빛의 자녀들로 부름받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눈이 필요한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눈을 열어 주실 수 있는 분이다. 『하나님께서 그녀의 눈을 열어 주시니, 그녀가 샘물을 보고, 가서 물을 병에다 채워, 아이에게 주어 마시게 하더라』(창 21:19). 하갈이 아들 이스마엘과 함께 아브라함에게서 쫓겨나 광야에서 방황했을 때, 그들은 물이 떨어져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갈은 자식의 죽음을 보지 않으려고 화살이 미치는 거리만큼 멀리 떨어진 곳에 이스마엘을 앉혀 놓고 목청 높여 울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녀의 눈을 열어 샘물을 보게 하시고 가서 물을 마시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현상 세계에서 미처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보게 하실 수 있는 분이다. 사실 샘물이 하갈 옆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과 아들의 목을 축여서 살게 해 줄 “생수”를 보지 못했다. 이처럼 이 세상에는 『영원한 생명으로 솟아오르는 샘물』(요 4:14)을 옆에 두고도 마시지 못해 죽어 가는 사람들로 넘쳐 난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을 여시어 그 샘물을 보게 해 주시지만, 종교, 과학, 교육 같은 것에 눈이 먼 어리석은 군상들이 그렇게 눈이 열려 분명히 보면서도 그 생명수를 마시지 않음으로 인해 지옥은 지금도 한없이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사 5:14).

『그때에 주께서 발라암의 눈을 여시니, 주의 천사가 그의 손에 칼을 빼어 들고 길에 서신 것을 그가 보고 자기 머리를 숙이고 엎드리니』(민 22:31). 하나님께서는 현상 세계는 물론 영적 세계를 볼 수 있는 눈도 열어 주실 수 있다. 발라암이 불의의 삯을 사랑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 기어코 발락에게 찾아가려 했을 때, 주의 천사께서는 손에 칼을 빼어 들고 그를 막아서셨다. 발라암을 태운 나귀는 천사를 알아보고 길에서 벗어나 들로 들어갔지만, 인간인 발라암은 그분을 보지 못했고 영문을 알 수 없었기에 애꿎은 나귀만 때리는 우를 범했다. 결국 주님께서는 발라암의 눈도 여시어 그에게 닥친 위급한 상황을 깨닫게 하셨으니, 눈을 여시어 영적인 세계를 보게 하시는 데에는 인간이나 짐승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발라암은 주의 천사께서 목에 칼을 들이대시자 죽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이스라엘을 축복했지만, 결국에는 계략을 꾸며 이스라엘로 하여금 모압의 딸들과 음행하게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직접 그들을 치시게 했고, 그 자신은 발락에게서 삯을 받아 냈다. 오늘날 배교한 교회들 안에도 이 발라암의 길을 따르는 거짓 교사들이 상당히 많다. 주님께서 눈을 열어 주시자 그들은 바른 성경과 바른 진리가 무엇인가를 깨닫고 한국 교회의 문제의 심각성도 깨달았지만, 교단을 떠나서는 먹고살 길이 막막하기에 불의의 삯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서가에는 바른 성경인 <한글킹제임스성경>이 꽂혀 있고, 피터 럭크만의 주석서들과 진리의 서적들도 꽂혀 있지만 그 말씀과 진리의 지식을 실행할 의사가 전혀 없다. 『의의 길을 알고 난 뒤에 그들에게 전수된 거룩한 계명을 저버리는 것보다는 알지 못했던 편이 더 나았으리라. 그러나 참된 잠언대로 그들에게 이루어진 것이니 “개는 그 자신이 토해 낸 것으로 다시 돌아가고 또 돼지는 씻고 나서 그녀의 진창 속에서 뒹군다.” 하였도다』(벧후 2:21,22). 진리를 깨달았다면 그것을 실행에 옮김으로써 자신의 교회를 변화시켜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삯을 목적으로 일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일꾼들이 아니라 삯꾼들임을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열어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은 엘리사의 종의 눈을 열어 주신 일에서도 드러난다. 『그때 엘리사가 기도하여 말하기를 “주여, 내가 청하오니 그의 눈을 여시어 그로 보게 하소서.” 하자, 주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어 그가 보니, 보라, 엘리사를 에워싼 말들과 불병거들이 산을 가득 채웠더라』(왕하 6:17). 이 사건과 관련해서는 엘리사의 종의 영적인 눈을 열어 주신 일뿐만 아니라, 시리아의 군대의 눈을 멀게 하셨다가(왕하 6:18) 다시 열어 주신 일도 일어났다(왕하 6:20).

엘리사가 본다고 하는 자들은 못 보게 하고, 못 보는 자기 종은 영적인 눈을 열어서 영적 세계를 보게 한 것인데, 그러한 이적은 초림 때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도 적용될 수 있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심판을 위하여 이 세상에 왔으니, 이는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 되게 하려 함이라.”고 하시니라』(요 9:39).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태어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눈뜨게 해 주신 사건과 관련이 있다. 주님께서는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 소경의 눈에 바르시고 “가서 실로암 못에서 씻으라.”라고 말씀하심으로써(요 9:6,7) 그의 눈을 뜨게 하셨는데, 이 일은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라.』(5절)라는 선언과 함께 이뤄졌다. 다시 말해 진흙으로 사람의 눈을 빚으신 창조주이심을 소경의 눈에 진흙을 바름으로써 나타내셨고, 그의 눈에 빛을 주심으로써 주님 자신이 세상의 빛으로 오신 『참 빛』(요 1:9)이심을 입증하셨던 것이다.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눈을 여실 수 있는 분인데, 그렇게 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 일은 주님의 사역과 관련된 예언에도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때에 소경의 눈이 뜨이며』(사 35:5). 침례인 요한이 제자들을 보내서 오시기로 한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냐고 묻자, 주님께서는 바로 이 구절을 언급하심으로써(눅 7:22) 자신이 예언된 메시아이심을 입증해 보이셨다. 또한 주님께서는 이방인들의 빛으로 주어지실 것이라고도 예언되어 있다. 『나 주가 의로 너를 불렀으니 내가 네 손을 붙들고 너를 지킬 것이며, 백성의 언약과 이방인들의 빛으로 너를 주어 앞 못 보는 눈들을 뜨게 하며』(사 42:6,7). 주님께서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심은 물론 영적인 소경이 진리를 보도록 하시는 임무도 맡으셨던 것이다.

특히 부활하고 승천하신 뒤에는 영적인 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 일에 누구를 부르셨는가? 다름 아닌 유대교 “열성파”였던 바울이었다. 주님의 사역에는 말씀에 강한 열정을 지닌(빌 3:5-9)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려고 다마스커스로 가던 길에 해보다 더 밝은 그분의 빛으로 그를 비추셨는데, 그때 눈이 멀어 버린(행 9:8) 바울을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들로부터 구해 내셨고, 이후 그를 그들에게 다시 보내시어 그들로 하여금 눈을 뜨게 하심으로써 흑암에서 광명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서게 하셨다(행 26:17,18). 또한 아나니아로 하여금 그에게 안수하게 하셨을 때 바울은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 다시 앞을 볼 수 있었는데(행 9:17,18), 이때부터 그는 “육신의 눈” 이상의 눈을 갖게 되었다. 즉 그의 영적인 눈이 열려 진리를 알게 되었고, 그에게 보여 주신 그 빛을 이방인들에게 비추어 그들의 눈도 뜨게 했던 것이다.

주님께서는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의 눈을 여시어 주님을 알아보게 하셨듯이(눅 24:31), 바울의 눈도 멀게 하셨다가 새로운 눈을 여시어 신약의 진리를 깨닫게 하셨다. 그렇게 눈이 열린 바울이 우리를 위해 기도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자기를 아는 지식 안에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시어 너희의 지성의 눈을 밝히셔서 너희로 하여금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들 안에 있는 그의 유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또 그의 강력한 능력의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향하신 그의 능력의 지극히 위대하심이 어떤 것인가를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엡 1:17-19). 소경이 소경을 가르치겠다고 설쳐 대는 이 마지막 배교한 교회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적인 일들을 볼 수 있는 “지성의 눈,” 곧 “진리의 지식을 깨닫는 눈”이다! 이 눈은 바울 한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가져야 할 눈이다. 이것이 바로 바울의 기도였는데, 이 눈을 가지려면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 그리고 구원받은 사람이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시는(딤전 2:4) 하나님께 『내 눈을 열어 주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법의 경이로운 것들을 보리이다.』(시 119:18)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당신은 눈이 열렸는가, 닫혔는가? 열리지 않았다면 지금 바로 이 기도를 하라! 눈이 열려야 죄로 멸망할 죄인들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다. 눈먼 자는 결코 다른 눈먼 자를 안내할 수 없다. 흑암에서 광명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서게 하는 일은 눈이 열린 성도들에게만 맡겨진 위대한 과업인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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