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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에 이른 금욕주의 “사제독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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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3년 04월호>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 10년을 맞아 모국 아르헨티나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로마카톨릭의 “사제독신제”가 영원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즉 “사제 서품”은 영원하지만 “사제독신제”는 교회가 행한 일시적인 처방이므로 재고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들의 사제독신제 찬반 논란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반대 측은 사제가 부족해지는 현실에 대한 대안이자 끊임없이 불거지는 사제들의 성추행, 성학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기에 사제독신제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찬성 측은 교회의 오랜 전통을 무너뜨려서는 안 되므로 사제독신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보적인 성향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9년에 이미 사제독신제가 로마카톨릭 전통이지만 교리는 아니기에 지역 사정이나 필요에 따라 예외를 허용할 수 있다고 했다. 결국 2020년에 “교황권고”를 내면서 폐지할 수도 있었지만, 보수적인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청의 보수파를 대변해 온 로버트 사라 추기경과 사제독신제 전통을 고수해야 한다는 책을 내어 폐지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더욱이 이 문제에 관한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 양측의 갈등이 고조되자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발 물러서서 폐지 결정을 유보했다. 그러나 지금은 주변 환경이 바뀌었다. 지난해 12월에 전임 교황이 별세했고, 혼인을 막는 사제독신제로 인해 성욕을 참지 못한 사제들의 성추행과 성학대 문제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문제는 1985년 길버트 고드 신부 사건을 통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고드 신부는 미국의 루이지애나주에서 1974년부터 1983년까지 아동 37명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2002년 보스턴에서는 사제들 235명이 1940년부터 60년간 1,000명 이상의 아동을 성적으로 학대한 사실이 미국 전역에서 폭로됐다. 바티칸 교황청은 이러한 사건들을 미국 내의 문제로 치부했으나 이후 독일, 오스트리아, 영국, 아르헨티나 등 세계 곳곳에서 오랜 기간 사제들이 아동 성추행을 자행해 왔음이 드러나면서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아일랜드 정부는 성학대, 강간, 폭력은 아일랜드 카톨릭 기숙학교와 고아원에서 70여 년간 만연해 있던 문제라고 밝혔다. 호주에서는 2012년에 교회의 성학대 사실을 조사하는 독립 기구인 “왕립 조사위원회”를 발족했다. 왕립 조사위원회에 따르면 1980년부터 2015년까지 호주의 어린이 4,444명이 사제와 남녀 수사들, 교회 관계자들에게 성추행과 성학대를 당했다. 가해자 2,000여 명 가운데 572명이 사제였다. 독일 카톨릭은 2019년에 1,679명의 사제가 1946년부터 2014년까지 미성년자 성폭력 범죄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했으며 피해자만 3,677명에 달한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프랑스 카톨릭도 2021년 9월 23일에 1950년부터 2020년까지 사제들과 카톨릭 관계자들에게 성학대를 당한 아동이 33만 명에 이른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사실 사제독신제와 같은 금욕주의는 영지주의나 마니교 등에서 주장하는 극단적인 금욕주의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육체를 부정하고, 학대하며, 고행하고, 몸에 상처를 낸다. 혹은 로마카톨릭의 사제독신제처럼 성관계를 거부하고 독신으로 지내는 등 금욕주의적인 삶을 사는 것을 더 고상하고 더 영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자신들의 금욕주의적인 삶을 더 높은 도덕적 이상을 추구하는 증거로 내세우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내는 열매는 파면 팔수록 나오는 성추행과 성학대에 관한 더럽고 추잡한 것들뿐이다. 제아무리 금욕주의적인 삶을 위해서 수도원에 찾아 들어가고 사막과 오지에서 수행한다 할지라도 그들이 가는 곳에는 그들의 성적 욕망도 함께 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성욕과 관련된 문제는 금욕적인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만일 해결할 수 있었다면 왜 사제들의 성범죄에 관한 추문이 끊임없이 나오겠는가? 육신적인 방법으로 육신의 욕구를 다루는 것은 또 다른 육신적인 문제를 낳을 뿐이다.

성경은 육신적인 금욕주의를 마지막 시대의 특징들 중 하나로 묘사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의 유치한 원리에서 죽었을진대 어찌하여 마치 세상에서 살아 있는 것같이 법령에 복종하느냐? (손대지 말라, 맛보지 말라, 만지지 말라 하는 것이니 사용함에 따라서 부패할 모든 것이니라.) 이것은 사람의 계명들과 교리들에 따른 것이라. 이런 것들이 의지 숭배와 겸손과 금욕에는 지혜 있는 것처럼 보이나 육체를 만족시키는 데는 아무 소용이 없느니라』(골 2:20-23). 골로새서에 기록된 금욕주의에 대한 경고는 마지막 때의 교회들에게 직접적으로 보내는 경고와도 같다. 왜냐하면 골로새서는 사도 바울의 다른 서신서들과 달리 영적으로 마지막 때의 교회를 보여 주는 “라오디케아인들의 교회”(계 3:14)와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골로새는 지리적으로 라오디케아와 가깝다. 또한 골로새서에는 “라오디케아”라는 단어가 5번이나 등장한다(골 2:1; 4:13,15,16). 특히 4장 16절에서는 『이 편지를 너희 가운데서 읽고 나면 라오디케아인들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케아에서 온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라고 말씀한다. 이처럼 골로새서는 영적으로 병든 라오디케아 교회 시대에 관해 계시하는데, 라오디케아 교회는 의사의 치료가 필요한 병든 교회이며(골 4:14), 교육과 철학을 자랑하고(2:8), 성사와 천사에 대한 생각이 로마카톨릭과 거의 동일하며(2:18), 하늘나라를 바라보지 않는 세속적인 교회이고(3:1-3), 육체를 만족시키는 데 아무런 쓸모가 없는 금욕을 자랑한다(2:23).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4:1-3에서 사제독신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예언했다. 『이제 성령께서 분명히 말씀하시나니, 마지막 때에 어떤 자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들을 따르리라. 그들 자신의 양심이 화인을 맞아 위선으로 거짓을 말하리라. 혼인을 금하고 음식을 삼가라고 명하리니, 이 음식은 하나님께서 진리를 믿고 아는 사람들이 감사함으로 받도록 지으신 것이라.』 이러한 예언이 정확히 성취된 로마카톨릭의 금욕주의는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경건의 능력은 없고 경건의 모양만을 흉내 내며(딤후 3:5) 인간의 본성적 욕구를 억제해 보려는 지난 1천여 년간의 시도는 실패로 끝난 것이다.


금욕으로 경건의 모양을 흉내 내는 자들이 알아야 할 것은, 그들의 속 사람이 새롭게 태어나야만 영적 변화가 시작된다는 점이다(롬 7:13-25). 성령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죄인에게서 그의 죄들의 몸을 벗겨 주시면 그 일이 가능해진다(골 2:11). 성령님에 의한 영적 할례로 죄인의 혼이 죄의 몸을 벗어 버리는 때로부터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롬 8:14) 영적인 삶이 시작될 수 있다. 로마카톨릭 안으로 잘못 흘러들어간 사람들은 그곳의 금욕주의를 거부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도록 하라. 그 마귀의 교리로는 구원과 영적 성장에 있어서 그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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