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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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구원의 악취가 진동하는 교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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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0년 07월호>

흔히 꽃에서는 좋은 향기가 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세상에는 악취를 풍기는 꽃도 있다. “사체화”(死體花)라는 별명을 가진 “시체꽃”인데, 정확한 꽃명은 “아모르포팔루스 티타늄”이며 세계에서 가장 큰 꽃으로서 크기가 약 3m에 달한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가 원산지인 이 꽃은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꽃들 중 하나인데, 동물의 사체 썩는 냄새나 오래된 쓰레기통 냄새 같은 것을 수 시간 간격으로 내뿜기 때문에 역겹기가 그지없다. 꽃이 풍기는 악취는 “사육(死肉) 파리”를 유인하기 위한 것이고, 그 선명한 빛깔의 꽃잎은 벌을 유인하는 기능을 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식충(食蟲) 식물”(벌레잡이 식물)인 것인데, 꽃이 피는 시기를 예측할 수도 없고, 한 번 피었다 하면 이틀 정도로 매우 짧게 피었다가 시들기 때문에 세계 식물원들에서는 그 꽃의 개화에 매우 관심이 높다. 하지만 관심은 관심일 뿐, 역겨운 것은 역겨운 것이다. 만일 그런 꽃을 선물로 받는다면, 처음에는 그 모양에 관심을 가졌다가도 결국 그 꽃이 내는 악취에 진저리를 치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런 꽃에 어울리는 군상들이 있다. 혼인식에서 꽃다발을 받아 든 신부의 모습에서는 꽃향기가 아른거리고 빨간 장미꽃을 받아 든 여인에게서는 그 향기도 붉게 피어나는 반면, 세상에는 향긋한 꽃내음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들이 많고, 특히 교회라는 곳들에서 넘쳐 난다. 그들에게 어울리는 꽃이라면 단연 “시체꽃”이어야 할 터인데, 이는 그들이 죄와 거짓의 악취를 풍기면서 걸어 다니는 “시체들”이기 때문이다(마 8:22).


배교한 라오디케아 교회 시대의 교회들은 시체꽃과 같다. 시체꽃의 커다란 꽃잎은 마지막 때의 대형 교회들을 연상시켜 주고, 꽃의 악취는 그 교회들 안의 영이 죽어 있는 죄인들의 영적인 악취를 생각나게 하기 때문이다. 영이 죽은 죄인들은 비록 교회에 다닌다 해도 진리를 알 수 없다. 『허물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너희를 그가 살리셨으니, 전에는 너희가 그것들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 권세의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녀들 안에서 역사하는 영을 따라 행하였으니 그들 가운데서 우리 모두가 이전에는 우리 육신의 정욕들 가운데서 행하였으며 육신과 마음의 욕망들을 이루어 다른 자들과 마찬가지로 본래 진노의 자녀였느니라』(엡 2:1-3). 모든 인간은 허물과 죄들 가운데서 영이 죽은 상태로 태어난다. 출생 이후의 삶이란, 위의 말씀에서 보듯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 권세의 통치자인 마귀를 따라 행하며, 육신의 정욕들 가운데서 육신과 마음의 욕망들을 이루어 진노의 자녀로서 사는 삶일 뿐이다. 이런 자들이 교회들에 유입된다면 교회가 어떻게 되겠는가? 거듭나지 못한 자들의 육신적인 악취로 코를 찌르는 곳이 될 것이다!


이 나라의 교회라는 곳들이 바로 그런 상태이다. 그들은 크게 보면 “칼빈주의 교회들”과 “알미니안주의 교회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자 자기들의 교리가 최고라고 떠들어 대지만 알고 보면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가장 기본적인 “구원”조차 받을 수 없는 이단 교리를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들의 교회들로 찾아간 사람들은 십자가만 세워져 있으면 교회인 줄로 알았기에 찾아간 것이지 그들의 실체를 알고 찾아간 것은 아니다. 그들은 무지했던 것이다. 어떤 교회를 찾아가야 하는지 알지 못해서 아무런 기준도 없이 지레짐작으로만 교회에 적을 두고 다녔을 뿐이다.


교회에는 바른 성경과 그 성경을 잘 가르치는 바른 목자가 있어야 한다. 바른 신학교에서 정통신학을 공부한 사람이 그 신학적 바탕 위에서 교회를 세우는 것이 성경적인 신약 교회의 설립 방법이다. 그와 같은 교회는 거리에서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하여 죄인들을 주님께로 이겨오고, 그들에게 성경을 가르쳐서 마귀와의 영적 전쟁을 수행하게 하며, 또한 영과 진리로 경배를 드리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하게 한다. 한편 이와 같은 성경적인 일을 전혀 수행할 수 없는 무능력한 교회들은 십자가만 세워 놓고, 여름밤에 불나방들을 유인하여 태워 죽이는 모닥불처럼 죄인들을 끌어들여서 자신들보다 두 배나 더 악한 지옥의 자식들로 만든다.

지난 2천 년간의 교회사를 돌아보면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교회들이 가장 큰 “이단 세력”을 형성했다. 필자가 젊은 시절 신학대학원에 노크하려 했을 때, 당시 신학대학원 시험 준비생들은 신학교들에 등급을 매겨 놓고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그들은 세계 최고의 경쟁률 어쩌고저쩌고하면서 장로회신학대학원을 1급으로, 감리교신학대학원을 2급으로, 서울신학대학원을 3급으로 분류해 놓고, 장신대 쪽에 합격한 사람들을 몹시 부러워했다. 왜냐하면 교단 규모가 가장 크기 때문에 졸업 이후 취업 기회의 문이 넓었기 때문이다. 2순위, 3순위의 신학대학원들은 1순위 신학대학원들에서 떨어진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여겨졌는데, 그들은 신학에 대해 잘 알고 그런 것이 아니라 그저 교세의 크기를 우열의 근거로 삼아 그런 쓸데없는 머리 굴림을 했던 것이다. 가장 큰 교세를 형성한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는 구원과 관련하여 서로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주장을 한다. 흔히 “칼빈주의” 하면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가르치고 “알미니안주의”는 끝까지 견디는 행위 구원을 가르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칼빈의 5대 강령 중 마지막 강령인 “성도의 견인(堅忍, 굳게 참고 견딤)”에 이르게 되면 두 신학은 동일한 것을 말하게 된다. 다음은 어느 신학자들의 글들을 인용한 것인데 이 글들이 어떤 신학의 설명인지 추측해 보도록 하라.


“생활의 거룩함은 우리 ‘구원’의 일부이며 하늘의 빛과 영광 안에서 성도의 유업에 참여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우리는 생활에서의 거룩함이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결론짓는다.”
“계속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생명으로 들어가기 위한 ‘부가 사항’이 아니라 구원받는 믿음에 있어서 ‘필수적인 부분’이다. 순종 없이 구원받는 믿음은 어디에도 없다.”
“꾸준히 믿음을 견인하지 않고서는 어떤 개인의 선택이나 최종적인 구원의 보증도 의미가 없다.”


어떠한가? 이 글들은 하나같이 “행위 구원”을 가르치고 있는데 모두 한 가지 신학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지 않는가?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처음 두 문장은 칼빈주의자 “아더 핑크”(Arthur Pink)의 저서 <거룩하게 됨, Sanctification>(p.28)에서 발췌한 것이고, 나머지는 알미니안주의자 “로버트 쉥크”(Robert Shank)가 저술한 책 <아들 안에 있는 생명, Life in the Son>(pp.219,293)에서 발췌한 것이다. 아더 핑크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죄인이 참으로 그리스도를 그의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면 그 뒤에 그가 어떻게 살더라도 멸망당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상하고 저주받을 이단이 있다. 그것은 사탄의 거짓말이며... 혼이 하늘나라에 이르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것 이상으로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이처럼 존 칼빈의 5대 강령은 구원의 영원한 보장으로 들어갔다가 알미니안주의로 나온다. 이러한 거짓 교리를 바탕으로 세워진 이 나라의 교회들이 과연 정상적인 교회들이겠는가?


성경은 현 교회 시대의 구원과 관련하여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받는 구원을 가르치고 있다. “은혜”이면 행위가 아니고, “행위”이면 은혜가 아니다.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2:8,9). 『은혜로 된 것이면 더 이상 행위가 아니니 그렇지 아니하면 은혜가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니라. 그러나 행위로 된 것이면 그것은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니 그렇지 아니하면 행위는 더 이상 행위가 아니니라』(롬 11:6). 그리스도인이 거듭난 뒤에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은 구원을 유지하기 위함이 아니다. 다만 구원받았기 때문에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을 사는 것일 뿐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거룩함이며(살전 4:3), 우리는 그분의 작품으로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선한 일들을 위해 창조된(엡 2:10) 새로운 피조물이다(고후 5:17). 우리가 선을 행하는 목적은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해 드리려는 것과,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열매 맺는 삶을 살려는 것이지 결코 구원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다. 『그 복된 소망, 곧 위대한 하나님이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음이니, 그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은 우리를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시고 자신을 위해 정결케 하사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독특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3,14). 여기서 보듯이 우리를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신 일이 먼저이고,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것은 나중 일이지 않은가? 디도서 3:14에서도 선한 일은 열매를 맺기 위한 것이지 구원을 위한 일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성도라면 선한 일에 진력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그 목적은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에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같은 서신에서 성도의 열매 맺는 삶을 강조함과 동시에 우리의 구속이 어떻게 이뤄졌는가를 다음과 같이 제시함으로써, 두 이단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그후 인간을 향한 우리 구주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사랑이 나타나서,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에 의하지 않고 그의 자비하심에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이 성령을 예수 그리스도 우리 구주를 통하여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셨느니라. 이는 우리가 그의 은혜로 인하여 의롭게 되어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3:4-7). 그리스도인의 구원은 구주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사랑과 자비하심을 따라 주어진 것이지, 결코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에 의해 주어지지 않았다. 말하자면 아전인수 격으로 칼빈주의자들이 바울도 칼빈의 교리를 가르쳤다고 주장하지만, 그 위대한 사도는 “나는 너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라고 하면서 그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는 것이다.

바른 말씀에서 나온 바른 구원의 교리를 깨닫지 못한 그들은 성경을 올바르게 나누어(딤후 2:15) 가르치는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해 왔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향해 이렇게 경고하신다. 『어찌하여 너희는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너희가 나의 말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라.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나와서 너희 아비의 정욕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으며 진리 가운데 거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자기 안에 진리가 없음이라. 그가 거짓말을 할 때는 자신에게서 우러나와 한 것이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또 거짓말의 아비이기 때문이라』(요 8:43,44). 주님께서는 주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을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부르셨다. 마귀는 지난 6천 년간 인류를 다뤄 온 베테랑이고, 다니엘보다 더 현명하며(겔 28:3), 하나님께 도전해서 의인 욥을 극심한 고난에 던져 넣었을 뿐만 아니라,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신 그리스도께 접근해서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이라고 무엄하게 시험하기도 했다. 실로 눈에 뵈는 게 없는 아주 무시무시한 존재인 것이다. 『칼로 그에게 대어도 소용이 없고 창이나, 단창이나, 갑옷도 소용이 없도다. 그는 철을 지푸라기같이 놋을 썩은 나무같이 여기는도다. 화살도 그를 도망치게 할 수 없으며 던진 돌들도 그에게는 그루터기 같도다. 단창들도 그루터기처럼 여겨지니 그가 투창의 흔들림을 비웃는도다』(욥 41:26-29). 이러한 마귀가 낳은 자식들이 그들의 아비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것은 너희를 미워하기 이전에 나를 미워한 것임을 알라.』(요 15:18)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주님을 미워하여 십자가에 못박은 세상은 그분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 역시 미워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깨달았다면 알았을 것이고 알았다면 미워하지 않았을 것 아닌가? 깨닫지 못했고, 또한 결국 몰랐기 때문에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는 것이다!


바른 교리를 깨닫지 못한 자들은 성령의 조명을 받지 못한 자들이 꾸며 낸 이단 교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단 교리는 그것에 귀 기울이는 자들을 향해 울리는 “조종”(弔鐘)임을 알라. 그들은 이미 멸망의 침대에 드러누워 버린 것이다. 자신들의 행위를 의지하기에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구원받지 못한 칼빈주의자들과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성령이 없는 시체들이며, 그들의 교회들에서는 지옥의 악취가 진동한다. 성령이 없다면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다는 얘기이다. 마귀가 거짓 교리를 통해 그들에게 침투하여 그 목사들과 교인들을 사로잡아 버린 것이다. 『반대하는 자들을 온유함으로 바르게 잡아 주어야 하리니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회개하는 마음을 주셔서 진리를 깨닫도록 하실까 함이요 마귀의 뜻대로 그에게 사로잡혔던 그들이 마귀의 올무에서 깨어 나올까 함이라』(딤후 2:25,26). 마귀는 『마귀들의 교리들』(딤전 4:1)을 통해 자칭 목사들과 교인들에게 침투해 왔다. 교회라는 곳에서 그런 교리들을 가르치고 있다면, 그것이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이겠는가, 마귀가 세운 교회이겠는가? 이방 여신을 숭배하던 자들도 그들의 신전을 “교회”라고 부르지 않았던가!(행 19:37) 성경적인 『지식의 향기』(고후 2:14)가 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비성경적인 교단 교리의 악취를 풍기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당신은 어떤가? 당신에게서 나는 것은 향기인가, 악취인가? 어디 한번 답변해 보라.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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