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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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왕국”에 안달 난 가짜 교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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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0년 06월호>

성공에는 수고가 따른다. 어떤 일이든 성공하려면 합당한 힘을 쏟아야 하는 것이다. 콩쿠르에 출전하는 바이올리니스트는 현에 손가락 끝이 달라붙을 정도로 연습해야 한다. 세계 경연 대회에 나가는 피아니스트 역시 손끝에서 배어 나온 피가 흰 건반을 물들일 정도로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가만히 있어도 모든 일이 술술 풀려 나가고, 상과 상금이 저절로 굴러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성경에서 “성공”(success)이란 말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곳은 여호수아 1:8이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주야로 그 안에 있는 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모든 것대로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너의 길을 번영하게 만들 것이고 네가 좋은 성공을 이루리라.』 여호수아에게 약속된 성공은 카나안 땅 정복 전쟁에서의 승리였다. 그가 율법의 말씀들을 주야로 묵상하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대로 지켜 행하면 그 일을 이룰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것이다. 약속의 땅을 정복한 여호수아는 율법책을 주야로 묵상하고 지켜 행했음이 분명하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율법책은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 “모세오경”을 담고 있었는데, 카나안 땅 정복 전쟁의 성공을 위해 특별히 유념해야 할 말씀이 있었다면 “성경에서 가장 무서운 장”이라고 불리는 “신명기 28장”이 아니었을까 싶다. 왜냐하면 그 장에는 비록 카나안 땅을 소유하고 또 번성했다 해도 그 땅에서 율법을 범하면 망할 것이라고 경고하기 때문이다. 『주께서 너희에게 선을 행하시고 너희를 번성케 하시기를 기뻐하신 것같이 주께서 너희를 멸하시며 너희를 망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시리라. 또 너희는 네가 차지하려고 들어갈 그 땅에서 뽑히게 될 것이니라』(신 28:63). 여호수아는 이 말씀을 되새기면서 자신이 그 땅을 『차지하려고 들어갈』 때에도 “말씀을 준행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곱십었을 것이고, 그만큼 더 율법에 충실하여 정복 전쟁을 수행했을 것이다.

성도의 인생에서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날마다 몰입해야 한다. 그 말씀을 지키면 번성하고, 어기면 쇠락한다는 것이 절대 불변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약 교회 시대에 그리스도인의 성공은 무엇에 있는가? 그리스도인의 성공은 세상에서의 번성이 아니라, 그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아 그 뜻을 성취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가장 긴요한 것 중의 하나가 “교회”에 관한 지식이다. 이는 자신이 속한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 알 때 성도로서의 “영적인 성공 가도”를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유기체인 그리스도의 몸 안에 속한 성도는 그 유기체인 교회의 사명을 아는 일에 결코 게을러서는 안 된다. 사명을 모르면 교회의 사기꾼들에게 속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때의 교회들은 자기들의 사명이 “교회 왕국”을 세우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들이 그리스도의 몸과 무관한 “조직체”라는 것에 있는데, 이 조직체 교회들이 교회와 왕국을 혼동하여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와 “물리적인 천국”을 같다고 봄으로써 지상에 교회 왕국을 세우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웅장함을 자랑하는 초대형 교회들을 보라. 과연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런 교회들을 세우셨겠는가? 그런 교회들로 하여금 사회사업이나 펼쳐서 소위 사회복음을 통해 천년왕국을 건설하게 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셨겠는가? 주님의 제자들이 헤롯이 증축해 놓은 성전에 대해 “선생님, 이 얼마나 거대한 돌들이며 건물들인지 보소서.”라고 했을 때, 주님께서는 “너희가 이 거대한 건물들을 보느냐?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라고 말씀하셨다(막 13:1,2).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지 않고 예수님을 교회 문밖에 세워 두는(계 3:20) 교회들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그들의 건물이 아무리 웅장하다 한들 대환란 기간에 모두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계 16:18)

현 교회 시대에 교회를 통해 천년왕국을 세우려 하는 자들을 “후천년주의자들”이라고 부르는데, 이들의 등장에 관해 요한계시록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내가 너의 행위와 환란과 궁핍을 아노라. (오히려 네가 부요한 자로다.) 자칭 유대인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모독을 아노니 그들은 유대인이 아니요, 오히려 사탄의 회당이니라』(계 2:9). A.D. 100-325년의 “스머나 교회 기간”에 등장하기 시작한 이들 “자칭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영원히 관계를 끊으셨고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신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구약의 모든 약속들이교회에게로 넘어왔다고 주장한다.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물리적인 왕국이 영적인 왕국으로 바뀌어 교회에게 주어졌다고 거짓말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그들에게는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가 동일하게 여겨진다. 그들은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다 보면 재림 전에 천년왕국이 지상에 이뤄질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 때문에 로마카톨릭은 십자군 전쟁을 일으켜서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을 몰아내고 그 성읍을 함락시키려 했었다. 소위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 구약 시대처럼 물리적인 방법을 쓴 것이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칭 유대인들”의 가증스럽고 어리석은 행위를 신성 모독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을 가리켜 『사탄의 회당』이라고 저주하셨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교회는 왕국이 아니고 왕국은 교회가 아니라는 점이다. 교회는 성경에서 단 한 번도 왕국이라고 불린 적이 없다. 다만 “집”(딤전 3:15), “성전”(고전 3:16,17), “몸”(고전 12:12-31)으로 불릴 뿐이다. 또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라고 말씀하시지 교회의 “왕”이라고 하시지 않는다. 성경의 단 한 구절도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오직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우리가 모든 일에 성장하여 그에게 이르리니 그는 머리시며 곧 그리스도시니라』(엡 4:15).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라. 그는 몸의 구주시니라』(엡 5:23).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골 1: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초림 때 이 땅에 “물리적인 천국”을 세우실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셨으나(마 4:17),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 백성들이 그들의 왕을 영접하지 않았고(요 1:10,11) 십자가에 넘겨주고 말았다. 그 결과 주님께서 세우시려 했던 천국은 2천 년 뒤로 연기되었고, 그분의 “고난”(초림)과 “다가올 영광”(재림) 사이에는(벧전 1:11) 구약에서 감춰져 있던 “교회 시대”가 펼쳐지게 되었다. 거부당하신 왕께서는 현 교회 시대에 하나님과 죄인들 사이에 화해를 이루시는 『대제사장』(히 3:1), 곧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대제사장』(히 10:21)으로서 사역하고 계신다. 따라서 주님께서 왕으로 통치하시는 때는 『만왕의 왕, 또 만주의 주』(계 19:16)로 오실 미래의 지상 재림 때가 되는데, 다시 말해 주님께서는 교회의 왕으로서 교회 왕국을 이루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정죄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를 통하여 세상이 구원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17). 초림 당시 “다윗의 아들”로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셨다가 “아브라함의 아들”로서 (이삭처럼) 십자가에 “제물”이 되시어 공생애를 마치신 분, 곧 『다윗의 아들이요, 아브라함의 아들인』(마 1: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사건 이후로는 애초의 계획을 바꾸시어 천국을 연기시키시고 세상을 구원하시는 일에 전념하고 계신다. 이 소중한 일에 신실한 복음의 일꾼들을 들어 쓰고 계시는 때가 바로 교회 시대인 것이다(마 28:19,20, 행 1:8).

이제 주님께서 대제사장으로 계시는 교회 시대가 휴거로(살전 4:16,17) 막을 내리면, 지상에는 7년 대환란이라는 전무후무한 대재앙이 펼쳐지게 된다(마 24:21). 그 대환란 끝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재림하셔서 이 땅에 천년왕국을 수립하시고 철장으로 다스리실 것인데(시 2:9), 그때에 교회도 주님과 함께 다스리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부르며 말하기를 “주께서 그 책을 취하시며 그 봉인들을 열기에 합당하시니이다. 이는 죽임당하셨던 주께서 하나님께로 각 족속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서 우리를 주의 피로 구속하여 우리 하나님 앞에 우리를 왕들과 제사장들로 삼으셨음이니, 우리가 땅 위에서 통치하리이다.”라고 하니라』(계 5:9,10). 『도살당하였던 것 같은 한 어린양』(계 5:6)께서 보좌에 앉아 계신 분의 오른손에서 한 책을 취하셨을 때 울려 퍼진 이 노래는, 땅 위에서의 “통치”를 현재가 아닌 “미래”에 두고 있다. 사도 요한이 그 일을 “A.D. 96년경” 셋째 하늘에서 목도했을 때도 교회의 통치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통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 이후에 있을 일임이 분명하다(계 19:11-20:4).

교회는 교회 시대에 통치하지 않는다.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박해와 고난을 견뎌야 할 때이며, 그렇게 할 경우 미래에 “영광스러운 통치권”으로 보상을 받게 된다(딤후 2:12). 지상에 대환란이 펼쳐질 때 셋째 하늘에서는 “그리스도의 심판석”이 있을 것인데(롬 14:10, 고후 5:10), 그 심판석을 통해 정결해진 신부는(엡 5:27)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어린양의 혼인식”을 올린 후에(계 19:7) 그분과 함께 “천 년간의 신혼여행”을 위해 지상으로 내려올 것이다. 그때 신부인 교회는 『하늘에 있는 군대들』(계 19:14)로 불릴 것인데, 이처럼 하늘의 군대로서 내려오는 신부의 모습은 신랑과 신부의 사랑을 노래한 “솔로몬의 노래”에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아침처럼 비추고, 달처럼 고우며, 해처럼 맑고 깃발들을 든 군대처럼 위엄이 있는 여자는 누구인가?... 돌아오라, 돌아오라, 오 술렘 여인아. 돌아오라, 돌아오라, 우리가 너를 보리라. 너희는 술렘 여인에게서 무엇을 보려느냐? 그것은 마치 두 군대를 합친 것 같도다』(솔 6:10,13). “아침처럼 비추고 해처럼 맑으며 깃발들을 든 군대처럼 위엄이 있는” 술렘 여인은 『의의 태양』(말 4:2)이 떠오르는 재림의 아침에 신랑과 함께 내려올 “군대로서의 교회”를 예표한다. 또한 이 신부는 “달처럼 고운” 여인으로도 묘사되는데, 이것은 신부인 교회가 밤으로 상징되는 교회 시대에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 세상을 비추어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해 준다(롬 13:12, 빌 2:15).

“술렘 여인”의 모습은 마치 두 군대를 합친 것과 같은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신부인 교회”와 더불어 구원받은 “유대인 환란 성도들”도 또 하나의 군대를 이루어 내려올 것이기 때문이다(판 5:10,11). 그래서 “돌아오라. 돌아오라.”라고 “두 번” 말하는 것이다. 유대인들로 구성된 군대는 교회와는 구분되는 성도들로서 천년왕국 때 이스라엘을 통치하게 될 것이다(마 19:28, 계 20:4). 천년왕국 기간에 신부인 교회는 각자가 다스릴 유업을 받아 이방 세계를 통치하게 되고, 유대인 성도들은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창 15:18-21)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통치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천년왕국에서의 통치 구도이다.



이처럼 천년왕국은 성경적인 용어인 반면, 교회 왕국이란 용어는 성경 어디에도 없다. 자칭 유대인들인 후천년주의자들이 비성경적인 사회복음으로 천년왕국을 건설하려는 헛된 수작을 부리고 있는데, 다시 말해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통치를 거부한 채 이 악한 현 세상에서 왕 없이 스스로 교회의 거물들이 되고싶어 안달 난 자들인 것이다. 『이제 너희는 배부르고, 부유해졌으며 우리 없이도 왕들처럼 통치하였으니 내가 하나님께 바라는 것은 너희가 통치하게 되는 것이라. 우리 또한 너희와 더불어 통치하리로다』(고전 4:8). 이것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내에서 “왕들처럼 통치하고 있던” 육신적인 성도들을 책망하는 말씀이다. “배부르고 부유해진” 그들은 자기들이 무언가 되는 양 왕들처럼 통치했던 것인데, 이처럼 “부요하고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는”(계 3:17) 배교한 라오디케아 시대의 교회들 역시 교회 왕국을 세워 “스스로 통치하고” 있다. 이 마지막 때의 교회들은 비성경적인 방언과 신유뿐 아니라 스스로 통치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육신적인 고린도 교회와맥이 닿아 있다. 바울은 그런 그들을 향해 교회의 통치는 미래에 있을 일이라고 딱 잘라서 말하고 있다. 『내가 하나님께 바라는 것은 너희가 통치하게 되는 것이라. 우리 또한 너희와 더불어 통치하리로다』(고전 4:8).

재림 때 신부인 교회는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 땅에 내려올 것이다. 『사랑하는 자에게 기대어 광야에서 올라오는 이 여인은 누구인가?』(솔 8:5) 또한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옷에서 향내를 내시며 재림하실 것이다. 『연기 기둥과도 같이, 몰약과 유향과 상인들의 모든 향료로 향내를 내며, 광야에서 오는 이가 누구인가?』(솔 3:6) 재림 직전에 향내가 가득한 어린양의 혼인식을 마치셨기 때문에(계 19:7-9), 그분의 모든 옷에서 가슴속까지 파고드는 강한 향기가 풍겨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당신의 모든 옷에서는 상아 궁전에서 나온 몰약과 알로에와 계피의 향내가 나며 그것들이 당신을 기쁘게 하였나이다』(시 45:8). 유기체인 교회를 구성하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향기로운 재림을 거부하면서 교회 왕국을 세우려고 악취를 풍기는 자들을 물리쳐야 한다. 유기체인 교회가 지상에 존재하는 목적은 이 땅에 천년왕국을 이룩하기 위한 것도,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것도 아니다. “의로운 왕국 정부”의 수립과 민족들이 열망하는 “평화”는 『유일하신 통치자시요,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딤전 6:15)께서 미래에 재림하실 때 이루어질 일이다(사 9:6,7, 눅 1:33, 학 2:7). 그날이 이르기까지 참된 교회가 해야 할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 끝까지 전파하는 것이다(막 16:15, 롬 1:16). 조직체에 불과한 가짜 교회들이 비성경적인 사회복음과 사회사업 등으로 교회 왕국을 이루려고 골몰하고 있을 때, 참된 교회는 그들로부터 온전히 성별하여 복음으로 인한 고난을 견뎌 냄으로써 왕국 통치권을 확보하고(딤후 2:12), 이제 곧 다가올 교회의 휴거를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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