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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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 제사와 그리스도인 신앙, 양립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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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8년 09월호>

기독교가 우리 나라에 전파되면서 가장 문제를 많이 일으켰던 부분들을 손으로 꼽으라면 그 무엇보다도 바로 "조상 제사"에 대한 태도가 첫째가 될 것이다. 비기독교 집안에 기독교인이 생기게 되면 그 이후로는 조상의 기일이나 명절 때마다 가족들이 서로 충돌하는 일이 거의 일상사가 되어 버린다. "조상 제사"는 비기독교인들의 정신 속에 자리잡은 뿌리깊은 신앙이지만 성경에는 어긋나는 행위이기 때문에 기독교와는 신앙 대 신앙, 종교 대 종교로 충돌이 일어나는 것이다. "조상 제사"를 실행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이것은 신앙이나 종교가 아니라 기본적인 효도의 행위, 인간의 도리라고 둘러대려고 할지라도 그것은 엄연히 종교적인 행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드린다고 하면서 음식을 차려 놓고, 향을 피우고, 절을 하면서 그것이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는 주장은 발뺌에 불과하다. 그런 것이 종교적인 행위가 아니면 어떻게 해야 종교적인 것인가?

성경적인 효도
일반적으로 "조상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이 그런 제사를 지내지 않으려는 그리스도인을 비방할 때는 "부모님께 대한 도리를 하지 않는" 사람으로 판단하곤 한다. 하지만 부모님께 대한 도리와 관련하여 성경의 가르침은 철저하며 흠이 없다.
성경은 부모님을 공경하며, 부모님께 순종하고, 부모님에게 효도를 다하도록 가르친다(출 20:12, 레 19:3, 딤전 5:4). 부모님이 늙어도 경히 여겨서는 안 된다(잠 23:22). 그것은 옳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행해야 하는 것이고(엡 6:1) 하나님께서 아주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선언되어 있으며(딤전 5:4, 골 3:20), 거기에는 하나님의 복이 약속되어 있다(엡 6:2,3).
반대로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고 불순종하며 거역하고 업신여기는 일은 성경에 정죄되어 있고, 율법에서는 처벌의 대상으로 명시되어 있다. 율법 시대에 부모님께 불순종하고 훈계에 경청하지 않으며 고집세고 반항하는 자녀는 돌로 쳐 죽여야 했다(신 21:18-21). 자기 부모님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저주하는 자는 절대로 사형을 면할 수 없었다(출 21:15,17, 레 20:9). 자기 부모님을 천히 여기는 사람에게는 저주가 선포되었다(신 27:16). 예수님께서는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는 행위를 두고 하나님의 계명을 폐기시키고 입술로만 하나님께 다가오며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는 행위라고 힐책하셨다(마 15:5-9). 부모님을 거역하는 것은 교회 시대에도 회개하지 않은 죄인이 하나님께 심판받을 죄들의 목록 가운데 기록되어 있다(롬 1:30). 부모님께 불순종하는 것은 또 배교가 만연한 교회 시대 마지막에 믿음에서 떠난 사람들의 행실의 특징으로 언급되어 있다(딤후 3:2).
그러나 부모님 공경에 관해서 성경에 나와 있는 모든 명령은 오로지 부모님 살아생전에 해당하는 것이다. 단 하나의 예외도 없다. 세상을 떠난 부모님에 대해서 성경에 제시된 효도 명령은 아무것도 없다. 물론 성경에서 세상을 떠난 부모님의 장례 또는 유언을 실행하는 일에 대해서 명령은 아니지만 "사례들"을 제시하는 경우는 있다. 그 사례들에 대해서는 성경에서 그 어떤 부정적인 평가도 뒤따르지 않기 때문에 성경의 다른 말씀들에 전혀 위배되지 않는 그런 사례들은 아무런 문제도 없고, 그러한 실행은 그냥 바람직한 일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예컨대 성경의 첫 번째 책에서부터 우리는 요셉을 비롯한 야곱의 열두 아들들이 아버지인 야곱의 유언대로 아버지를 장사지내는 모습과(창 50:5,13),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애곡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창 50:3). 그리고 성경에 그 행동에 대해서 그 어떤 부정적인 평가도 쓰여 있지 않다. 이러한 행위는 성경의 다른 어떤 말씀에도 전혀 위배되지 않는다. 또 신약성경에 이와 다른 어떤 지침도 추가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한국의 그리스도인들도 부모님을 정성껏 장사지내고 애곡하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다. 단 구원받은 부모님이라면 소망이 없는 다른 사람들처럼 심하게 슬퍼하지 않을 수 있다(살전 4:13).
또 요시야왕은 율법 책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경고를 받고 유다 왕국 내에서 각종 우상 숭배의 잔재를 제거하던 중에 요시야왕 자신에 대해서 300년 전에 예언했던 하나님의 사람의 묘와 비석을 보고서는 그대로 남겨 두었다(왕하 23:16-18). 그리고 성경에 그 행동에 대해서 그 어떤 부정적인 평가도 쓰여 있지 않다. 이 역시 성경의 다른 말씀들에 전혀 위배되지 않으며, 신약성경에도 이와 다른 지침이 추가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한국의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을 떠난 분의 묘를 만들고 (비성경적인 내용을 기록하지 않는다면) 비석을 세워 둘 수 있으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편 예레미야서에서는 레캅인들이 그들의 죽은 조상(레캅의 아들 요나답)이 생전에 지시했던 명령에 따라 순종하여 포도주도 마시지 않고, 아무 집도 갖지 않고 장막에서 거한 사례가 등장한다.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유다 민족과 대비하시면서 아주 좋은 평가를 내려 주셨다(렘 35:18,19). 그렇다면 한국의 그리스도인들도 부모님이나 할아버지, 할머니가 남긴 유언이 하나님의 뜻에 저촉되지 않는 한, 그 유언에 순종하고 그것을 받들어 실행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뿐이다. 더 이상의 아무것도 없다. 세상을 떠난 부모님을 공경하는 제사 따위의 의식은 성경 어디서도 명령하지 않으며, 성경에 그 어떤 사례도 제시하고 있지 않다. 그리스도인이 부모님 살아생전에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벌을 받아도 하는 수 없다. 자기를 낳아 주고 길러 준 부모님을 살아생전에 공경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도 일치하는 것이며, 그야말로 하나님께서 주신 양심으로 모든 민족들이 다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 사후에 제사를 지내는 행위는 특수한 문화이며, 인간의 기본 도리가 그렇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문화는 바로 특수한 종교적인 신념에서 생겨난 것이다.

비성경적인 조상 제사
"조상 제사"를 실행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기들은 조상을 "신"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마치 자기들의 실행이 종교적인 신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 도리인 것처럼 가장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러나 "조상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 대부분은 기본적으로, 후손이 제사를 지낼 때 죽은 조상이(그것을 영이라 부르든, 혼이라 부르든, 영혼이라 부르든, 혼백이라 부르든, 귀신이라 부르든, 혹은 기타 그 무엇으로 부르든지 간에) 그 자리에 와서 그 제사를 받게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조상을 "신"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그 혼이 구천을 떠돌아다니다가 기일에 자신의 옛집을 찾아와서 제사 음식을 먹는다는 일종의 종교적 신념이다. 요즈음 들어서는 꼭 조상이 찾아온다고 실제로 믿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며 변명을 늘어놓는 사람들도 종종 있지만, 조상이 찾아온다는 생각도 없이 마치 실제의 누군가에게 하듯 음식을 차려 놓고 음식을 바치고 향을 바치고 게다가 허공을 향해 절까지 하면서 굽실거린다면, 오히려 그 사람은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조상 제사"를 실행하는 사람들 중에는 또한 "조상 제사"를 잘 받들어야 복을 받고, 잘 받들지 않으면 조상들의 분노가 재앙으로 나타나 화를 입는다는 기복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수많은 "조상 제사" 행위의 배후에는 이러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 이 역시 "조상"을 생사화복의 권한을 가진 "신"처럼 여기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조상 제사"를 잘 뒷받침해 온 체계는 바로 조선왕조 때부터 우리 나라에 본격적으로 유입된 유교, 곧 하나의 "종교적 신념 체계"였다. 이에 대해 학자들이 설명해 놓은 바에 따르면, 공자의 가르침을 담은 유교의 경전 중 하나인 <효경, 孝經>에서는 제사의 개념을 3가지로 말하면서 그 중 1가지를 "재앙을 면하는 수단"이라고 했고, 또 조상은 절대자인 "상제"에게로 가는 통로가 된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효의 지극함은 생시의 부모에 대한 순종에서보다 제사를 통하여 나타난다고도 했다. 이 모든 개념은 참으로 특수한 종교의 신념이 아닐 수 없다.

성경적 기독교는 이러한 개념들에 대해 철저히 부정하는 신앙 체계를 지니고 있다. 바로 기독교의 경전이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내용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성경에 따르면 후손들이 제사를 지낼 때 조상은 그 자리에 전혀 임할 수 없다. 죽은 자는 그 혼이 구천을 떠도는 것이 아니라 곧장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가기 때문이다(전 12:5). 바로 낙원이나 지옥이다(눅 16:22,23).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던 날, 그 날이 거의 끝나가던 무렵에 옆에 매달려 함께 죽어가던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약속하셨다(눅 23:43). 죽은 강도의 혼은 구천을 떠도는 것이 아니라, 죽는 그 날 곧 죽는 그 시각으로 낙원으로 이동해 간 것이다. 그러므로 조상들은 후손들이 제사를 지낼 때 그 제사에 결코 반응할 수 없다. 결국 그 제사를 받는 것은 조상들이 아니라, 조상들이 찾아온다고 사람들을 속임으로써 제사를 지내게 하여 그 제사로 거짓 경배를 받는 마귀들이다. 이 점에서 "조상 제사"는 어떤 형상을 만들어 놓고 섬기는 우상 숭배와 일맥상통한다. 똑같이 마귀들에게 바치는 제사이고, 똑같이 마귀들과 교제하는 행위이다(고전 10:20,21).
성경에 따르면 생사화복의 권한을 가지신 분은 오직 주 하나님뿐이시며(시 68:20, 사 45:7), 조상의 혼은 그 영역에 있어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성경은 주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는 행위를 완전히 금하고 있다(출 20:3). 또한 성경에 따르면 죽은 자는 산 자를 위해 아무런 중보도 할 수 없으며(눅 16:27-31), 죽은 자와 산 자는 서로 교류할 수 없도록 끊어져 있다. 죽은 자와 교류하는 유일한 방책은 사울왕이 했던 것처럼 부리는 영을 통해 접근하는 것이겠지만(삼상 28:7,8), 그런 행위는 아주 강력하게 정죄되고 금지되었다(레 19:31; 20:27, 신 18:10-12). 하나님 대신 죽은 자들에게 구하는 행동과(사 8:19) 죽은 자들에게 바치는 제사에 연합하는 행동은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일이다(시 106:28,29).

조상 제사와 타협한 기독교
이처럼 "조상 제사"는 성경에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나라에 기독교가 전파될 때부터 양측 사이에는 수많은 갈등과 대립이 있어 왔다. 우리 나라에는 개신교보다 로마카톨릭교가 더 먼저 전해짐으로써 카톨릭교에서 "조상 제사" 문제와 관련하여 먼저 홍역을 치렀고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 물론 카톨릭 교도들은 성경을 믿는 신앙을 가지고 거룩한 순교와 박해를 당했다기보다는 당시 교황의 강경한 "조상 제사 금지 칙서"(1715년 교황 클레멘스 2세가 내린 칙서와 1742년 교황 베네딕토 14세가 내린 칙서)에 따랐기 때문에 일종의 봉변을 당한 것이다. 그처럼 성경적인 입장을 강경하게 고수하다가 박해를 받는 것은 그들의 본래 신앙 모습이 아니었다. 아닌게아니라 1939년에 또 다른 로마카톨릭교 교황은(피오 12세) 칙서를 내려 "조상 제사"를 단순히 "효성을 표시함에 지나지 않는 민간 의식"으로 규정하고서 제사를 허락했고, 이후의 카톨릭 교도들은 이 새로운 교황의 칙서에 따름으로써 더 이상의 봉변을 당하지 않고 한국 사회에 융화될 수 있었다.
이로써 카톨릭교의 조상 제사 예식에는 차례상을 준비하고 향을 피우고 절을 하는 것, 술과 과일과 음식들을 올리는 것 등의 순서가 버젓이 자리잡게 되었고, 그것은 현재까지 그러하다.
우리 나라에서 개신교는 로마카톨릭교가 한참 홍역을 치른 뒤에 선교가 이루어져서 그나마 많은 박해를 피할 수 있었다. 선교사들은 "조상 제사 중지 및 폐지"를 우리 나라 사람이 교인으로 인정받는 필수조건 중 하나로 삼았다. 하지만 한국 교인들의 "조상 제사"의 뿌리깊은 욕구를 해결할 수 없었던지, 1904년에는 중국 중앙선교협의회에서 추도식을 도입하자, 우리 나라의 개신교도 그것을 도입했다. 제사는 안 된다니까 제사 비슷한 것이라도 해서 그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는 것이다. 추도식은 현재까지도 기독교인들이 조상의 "제삿날"에 제사 대신 행하는 의식으로서, 성경에 어긋난다고 비판받을 만한 점들만 없앤 채 실행하고 있는 다소 "정체성의 규명이 어려운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쨌든 개신교에서는 계속해서 "조상 제사"에 대해 철저히 거부해 왔다. 1920년에는 기독교인이 된 남편이 제사를 폐지하자 아내가 자살해 버린 일도 있었다. 이 사건은 신문에 크게 보도되어 사회적인 논란을 가져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신교인들은 계속해서 "조상 제사"를 거부하며 마찰을 빚는 것을 개의치 않고 감당해 왔다.
1979년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가 "우리는 부모를 절해서 섬기고 경배해서 섬깁니다. 산 부모에게 절하고 죽은 부모도 부모니까 절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라고 하며 부모를 사랑하는 애정으로 제사상 앞에서 절하는 것은 절대로 우상 숭배 행위가 아니라고 했다. 조용기 목사는 이 발언 때문에 이단 시비에 걸리기도 했다. 시끄러워진 교계에서 수많은 목사들이 반대 의견을 제시하자, 조용기 목사가 나중에는 뒤로 물러섰다.
얼마 전에는 기독교장로회 교단 소속 교회에서 기존 개신교의 추도식과 로마카톨릭교의 조상 제사 예식의 중간쯤 되는 형태로 추도예식서를 펴냈다. 거기에는 향을 피우고 절하는 것과 "고인과의 영적 교통" 시간이 포함되어 있다. 조상 신 숭배와 죽은 자와의 교류라는 비성경적 내용이 소위 개신교의 추도식 속에 버젓이 포함된 것이다. 기독교장로회 측 신학자인 김경재 교수는 그것이 이상적인 예식서라고 두둔했다(본지 184호, 『죽은 조상에게 제사하고 절하라는 한신대 김경재 교수』 참조). 물론 이것이 개신교 전체에서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비성경적인 "조상 제사"와의 타협안이 개신교 내에서도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제는 1979년 당시만큼 그런 비성경적인 주장을 바로잡으려는 목소리도 별로 많지 않다.
2008년 추석에 즈음하여,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조상 제사"에 관해 올바른 지식으로 무장하여 성경적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그리스도인으로 여전히 남아 있게 되길 바란다. 또 성경적 믿음을 간직한 독자들이 성경 말씀대로 부모님을 공경하며 참으로 효도를 행함으로써 가족과 친척들에게 본이 되어, 그들에게 죽음 이후에 대해 올바로 설명해 주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효과적인 기회를 얻게 되길 바란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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