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BB칼럼 분류

비방받을 표적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컨텐츠 정보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7년 04월호>

예로부터 세상 "유명 인사들"의 시신들은 수난의 대상이었다. 파헤쳐진 무덤에 시신이 도난당하거나 쪼개지거나 불태워졌고, 매매되고 수집되고 연구 대상으로 해부대에 오르기도 했으며, 방부 처리 및 냉동 상태로 보존되거나 박제로 만들어졌다. 박물관을 위시하여 냉장 박스, 사무실 서류함, 심지어 침대 밑에 둔 가방 안에 보관되기도 했고, 손가락, 치아, 두개골, 심장, 은밀한 부분 등 부위별로 절단되어 전 세계를 누빈 시신들도 더러 있다. 우상 숭배 집단인 로마카톨릭은 소위 "성인들"이라 해서 그 시신들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한때 유럽에서 머리뼈 모양을 가지고 성격 및 심적 특성을 연구하는 골상학이 유행했을 당시에는 두개골 절도가 기승을 부리기도 했다.

이처럼 사람들이 유명인의 시신들에 집착하는 이유들을 보면, 기념, 추억, 사랑, 교감, 소통 등 어떤 형태로든 그들과 연결되고픈 개인적인 욕망에서부터 과학 및 의학 발전, 종교적인 목적, 정치적 또는 경제적인 수단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경우, 시신은 화장되었지만 두뇌만큼은 그의 천재성에 대한 연구를 빌미로 부검 담당의에게 강탈당해 오랜 기간 미국 전역을 떠돌아다녔다. 음악가 베토벤의 귓속뼈를 노린 사람도 있었고, 하이든의 두개골을 가지길 원하는 사람도 있었다. 로마카톨릭은, 성경만을 절대적인 진리라고 믿으면서 최초로 교황을 적그리스도라 불렀고 그의 횡령, 오만, 탐욕, 폭정, 무오성(?)에 대해 거센 공격을 가했던 존 위클리프를 너무도 증오한 나머지, 그가 죽은 지 30년이 되었을 무렵 그의 무덤을 파헤쳐 유해를 끄집어내어 불태웠다. 그렇게 하면 위클리프를 저주하여 지옥으로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오산한 것인데, 지금 지옥의 불길에서 고통받고 있는 당사자는 교황들과 그 추종자들이다. 스탈린은 공산주의를 위한 선전물로 죽은 레닌의 시신을 미라로 만들어 모스크바 광장에 전시했는데, 정작 자신은 "나는 이제 희망이 없는 존재가 되었구나."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며 몹시 슬퍼하다가 몇 분 후에 고통과 괴로움이 가득 찬 모습으로 숨을 거뒀다고 한다. 파시스트 정권의 몰락과 더불어 처형된 무솔리니의 시신은 반대파에 의한 훼손을 피해 수도원 벽장에 11년간이나 은폐되어 있어야 했고, 체 게바라의 유해가 묻힌 장소도 수십 년 동안 비밀에 부쳐졌었다. 그 외에 아브라함 링컨, 엘비스 프레슬리, 찰리 채플린 등의 시신으로 한몫 챙기려 했던 자들도 있었다.

사람들이 주목하고 집착하는 것은 기껏해야 죽을 수밖에 없고 벌레 먹고 썩을 수밖에 없는 시신들이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진정한 대상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렇게 말씀한다. 『또 시므온이 그들을 축복하고, 주의 모친 마리아에게 말하기를 "보라,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 있는 많은 사람의 패망과 흥성을 위하여, 또 비방받을 표적을 위하여 세워졌으니, (정녕 칼이 또 네 자신의 혼을 찌름같이 되어,)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들이 드러나게 되리라."고 하더라』(눅 2:34,35). 여기서 『비방받을 표적』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리킨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이 왜 "표적"인가? 표적(sign)은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간판(sign)과 같은 도구이므로, 표적과 더불어 시작된 이스라엘은 그 『표적의 소리』에 경청해야 했다. 『만일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고 처음 표적의 소리에 경청하지 아니하면, 그들이 나중 표적의 소리를 믿으리라』(출 4:8). 하나님으로부터 이 말씀을 받은 바 있던 모세는 백성들에게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네 가운데로부터 네 형제들 가운데서 나와 같은 한 선지자를 네게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에게 경청할지니라.』(신 18:15)고 명령했다. 즉 모세와 같은 선지자는 모세처럼 표적을 행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선지자가 표적을 통해 전파하는 말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귀를 기울여야 했던 것이다. 초림 당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 등장하시어 많은 표적들을 행하셨다. 그러나 백성들, 특히 종교지도자들은 그 표적들의 소리에 경청하지 않았다. 처음 표적의 소리에 경청하지 않았다면 나중 표적의 소리라도 믿었어야 했는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결국 어떤 표적에 대해서도 경청하거나 믿으려는 자세가 없으면서 계속 표적을 구하기만 했던 그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게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표적"을 제시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요나의 표적"이었다(마 12:38,39). 이 표적은 『요나가 사흘 낮과 사흘 밤을 고래 뱃속에 있었듯이, 인자도 그처럼 사흘 낮과 사흘 밤을 땅의 심장 속에 있을 것이라.』(마 12:40)는 말씀으로 설명된다. 그러니까 요나의 실제적인 죽음과 부활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말하는 표적"이었고, 부활은 그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요(롬 1:4) 주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해 주는(행 2:36) 확실한 표적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부활이 "비방받을" 표적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표적이 되는 사건의 당사자인 요나와 요나서가 비방받고 있는데, 성경 66권 중에서 요나서만큼 성경을 비평하는 학자들에 의해 그렇게 많이 비난받는 책도 없다. 자유주의자들은 요나의 사건을 실화로 믿지 않는다. "고래는 사람을 삼켰다가 뱉을 수 없다."라든지, "요나는 실제로 죽은 것이 아니며, 그저 꿈을 꾸고 있었을 뿐이고, 그는 지옥에 간 적이 없다."라든지,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들의 신화 중 하나를 택하여 미신적인 백성들의 수준에 맞춰 말씀하신 것뿐이다."라는 식으로 진실을 왜곡하면서 요나서를 우화나 비유, 전설, 신화 또는 "성서 문학" 정도로 취급해 버리는 것이다. 즉 예수님께서는 한낱 소설 같은 이야기를 하신 것이고 더 나아가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 역시 우화에 불과하므로 인류의 구원자가 될 수 없다고 비방하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 자체도 상당히 많은 비방을 받고 있다.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은 밤에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갔다는 거짓말을 유포시켰고(마 28:11-15), 자유주의자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게 아니라 십자가상에서 잠시 기절하셨다가 깨어나신 것이고, 무덤 안에 가득 찬 냉기와 시원함 때문에 원기를 회복하신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적인 몸의 부활은 없었고 다만 "영적으로" 부활하신 것이라고 말하는 이단들도 있는데, 그들은 어떤 영을 보고 있다고 착각했던 제자들처럼 의심과 불신에 사로잡혀 있는 자들이다(눅 24:37,38). 그러나 그들은 어떤 "영"이 살과 뼈를 가진 몸을 지닌 채 만질 수도 있고 음식을 먹을 수도 있는가에 대해서는(눅 24:39-43) 꿀 먹은 벙어리처럼 함구해 버린다.

"부활"은 참된 복음의 시금석이며, 다른 종교들은 감히 흉내 낼 수조차 없는바, 성경적 기독교 신앙만이 지니고 있는 두 가지 뚜렷한 특징 중 하나이다(다른 하나는 "예언"이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피의 속죄보다 부활에 대해 더 많이 강조했다. 누군가가 설교했듯이 인류 역사상 최고의 뉴스는 "무덤에서 온 소식이었다." 『그분은 여기에 계시지 않고 말씀하셨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주께서 누우셨던 자리를 보라』(마 28:6). 그 자리는 비어 있다! 세상 유명인들의 "죽은 시신"에 집착하는 죄인들은 예수님에 대해서만큼은 유독 "빈 무덤"에 집착한다. 왜냐하면 이 땅 어떤 무덤에서도 예수님의 시신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면서 예수님의 "살아난 몸"에 대해 논쟁과 시비를 거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은 『많은 무오한 증거들』(행 1:3)로 확증된다. 변개된 성경들처럼 그 증거들은 단순히 "확실하거나 많은" 정도가 아니며, 절대적으로 진리이고 오류나 속임수가 있을 수 없는 무오한 증거들이다. 우선 그 사실을 예언했고, 또 예언한 그대로 성취되었음을 보여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목록 제1호로 제출할 수 있고, 예수님의 부활을 실제로 목격한 "증인들"을 최소 500명 이상 법정에 세울 수도 있었다(고전 15:5-8). 만일 의심 많은 누군가가 그 500명의 증인들을 일일이 만나 심문하면서 사건의 진위를 확인하려 했다면, 그들의 증언 내용들을 토대로 진실 여부를 가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부활이 거짓이었다면 수백 명의 증인들의 진술들은 분명 엇갈리게 나왔을 테니 말이다. 혹자는 "그들이 서로 교묘하게 짜고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어 거짓말을 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그 목격자들의 정직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지 모른다. 그러나 당시는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라고 주장하면 유대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목숨을 위협받는 시대였기 때문에, 목숨을 담보로 그런 거짓 알리바이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가정 자체가 난센스이다. 신변 안전을 위해서라면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다 해도 그것을 숨기려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부활의 증인들"은 성경 곳곳에서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예수님의 부활을 거침없이 증언했다. 담대함은 정직을 기반으로 한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결코 담대할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무오한 증거들로 제시되는 표적 앞에서 죄인들은 계속 부인하며 그 표적의 소리에 믿지도 경청하지도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 그들은 마치 기어코 지옥의 불길로 뛰어들겠다고 떼쓰는 고집쟁이들처럼 보인다. 그들이 계속해서 빈 무덤에 집착하고 예수님의 부활한 몸에 대해 비방하고 부인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못하셨어야 성경은 거짓이 되고, 복음도 우리가 믿는 믿음도 헛것이며 엉터리임이 판명되기 때문이다(고전 15:14). 복음을 전파했던 우리가 모두 거짓말쟁이가 되고 우리 역시 여전히 죄들 가운데 있는 것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또한 구원받고 죽은 모든 성도들 역시 멸망한 것이고, 현재 살아 있는 우리도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고전 15:14-19). 말하자면 그렇게 판명되어야만 스스로 안심하고 지옥에 갈 걱정 안 하면서 화인 맞은 양심으로 제멋대로 죄짓고 살 수 있다는 심산인 것이다. 그러나 구원받지 않은 죄인은 한시라도 마음 편히 발 뻗고 잘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누우셨던 그 자리는 분명 비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인간의 무덤들은 그 뼈들이 먼지와 재로 변하면서 영원히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덤을 비우신 예수님께서는 그분을 믿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는 내가 살고 너희도 살겠음이라』(요 14:19). 구약의 "유명 인사"였던 모세는 그가 죽었을 때 아무도 그의 묘를 아는 자가 없었다(신 34:5,6). 왜냐하면 그는 부활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마귀는 그 부활한 몸에 대해 논쟁을 걸기도 했다(유 1:9). 오늘날 마귀의 자식들은 모세와 같은 한 선지자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한 몸에 대해 시비를 걸고 있다. 그런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그 모세가 이집트에서 나올 때, 요셉의 유언대로 그의 뼈들을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출 13:19). 요셉은 세상의 예표인 이집트에 뼈들을 남길 이유가 없었다. 그는 150가지 이상의 항목에서 예수님을 가장 잘 예표하고 있는 인물이다. 예수님의 뼈들 중 단 하나의 뼈도 지상에 남아 있지 않다. 예수님의 뼈는 모두 셋째 하늘로 들어갔다. 예수님과 한 몸인 그리스도인들 역시 그 뼈들이 이 땅에 남아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우리의 뼈들 역시 살아나야 하고 또 휴거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고 또 우리에게 주신 산 소망이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비방받을 표적"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BB

전체 926 / 19 페이지
RSS
번호
제목